좋은 게 좋은 거 아닌가?

[꽁트]

by 겨울나무

어제까지만 해도 아무 일 없이 조용하기만 했던 학교의 분위기가 하루아침에 갑자기 발칵 뒤집히고 말았다.


학교가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된 것이 석 선생으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고 울컥 속이 치밀어오르기도 하였다.


일이야 어떻게 됐든 일이 이렇게 크게 벌어지게 된 원인은 순전히 석 선생 자신 때문이었기에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하지만 석 선생은 동료들을 마주할 때마다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그래서 현재로서는 동료들의 눈치만 살펴볼 수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마치 벙어리 냉가슴을 앓듯…….


그렇다고 석 선생이 먼저 동료들에게 먼저 노골적으로 왜 그러나고 물어볼 처지도 아니었다. 그래서 마치 죄라도 저지른 사람처럼 눈치만 볼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동료들 모두가 석 선생을 대할 때마다 슬금슬금 피하고 있다는 눈치가 역력했기 때문이었다.


'쳇! 이래서야 어떻게 아이들을 마음대로 가르칠 수 있단 말인가!’


석 선생은 가만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지금 현재 처해 있는 교육 환경이 너무나 답답해서 금방이라도 미쳐버릴 듯이 끓어올랐다.


석 선생은 3년 전 봄에 이 학교로 초임 발령을 받은 이른바 햇병아리 교사였다. 그리고 교육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기까지에는 누구 못지않은 투철한 각오가 서 있었다. 오직 2세 교육을 위해 평생을 교직에 헌신하겠다는 굳은 신념으로 젊음을 불태우며 여기까지 달려왔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불길이 타오르기도 전에 생각지도 않았던 마치 찬물을 혼자 뒤집어쓰고야 만 것같은 큰일이 마침내 터지고 말았던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되자 그나마 석 선생과 가까이 지내던 선배 교사들은 이번 일에 대해 석 선생을 두둔하기보다는 노골적으로 석 선생을 나무라곤 하였다.


“석 선생, 그러면 안 되는 거야. 좋은 게 좋은 거란 말이야.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어?”


"이봐, 석 선생이 똑똑하다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어. 하지만 이건 아니잖아. 아직도 멀었단 말이야. 그 애가 어떤 애라는 것은 석 선생이 더 잘 알고 있잖아? 그런데 어쩌자고 그 애를 겁도 없이 함부로 건드려, 건드리길…….”


“…….”


석 선생은 아무 말 없이 선배 교사들의 이야기를 둘으면 들을수록 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리고 자신이 취한 이번 일에 대해 눈곱만큼의 후회는커녕 마음속으로는 울컥 반발심이 올라오기도 하였다. 그리고 교직에 대한 뚜렷한 소신이 없이 무사안일적인 태도가 몸에 밴 선배 교사들의 모습이 오히려 그렇게 추해 보일 수가 없었다.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은 바로 이틀 전의 일이었다.


그날 숙제 검사를 하던 석 선생은 의외라는 듯 둥그런 눈이 되어 민수에게 물었다. 좀처럼 약속을 어기지 않던 민수가 오늘따라 숙제를 안 해 온 것이 아닌가. 게다가 민수는 평소에 공부도 뛰어나게 잘할뿐더러 더구나 우리 학교 후원회 이사이자 사회적으로도 권력이 막강한 국회의원의 아들이 아닌든가!


그러나 석 선생으로는 결코 국회의원의 아들이라고 그냥 넘겨버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교육이란 누구나 평등하게 받아야 한다는 것이 석 선생의 투철한 교육철학이었던 것이다.


“민수가 오늘은 웬일로 숙제를 안 해 왔지?”


석 선생이 이렇게 묻자 민수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편지 봉투 하나를 얼른 내밀었다.


“엄마가 이걸 선생님께 드리랬어요."


석 선생은 민수가 건넨 편지 봉투를 받아 그 자리에서 뜯어보게 되었다. 편지 내용은 집안에 갑자기 급한 사정이 생겨서 부득이 숙제를 못하게 되었으니 죄송하지만 딱 한 번만 선처를 바란다는 민수 어머니의 간곡한 사연이었다.


“음, 알겠다. 하지만 숙제를 안 해온 건 사실이니까 민수도 다른 친구들과 똑같이 벌을 서야 되는 거야, 알아들었니?”


“…….”


석 선생의 설명을 들은 민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하지만 민수의 표정은 금세 실망의 빛이 가득했다. 당연히 벌을 서지 않을 줄 알았던 기대가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그날 석 선생은 숙제를 안 해온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민수에게도 벌을 주게 되었다. 벌을 줄 때마다 으레 그랬듯이 한동안 무릎을 꿇게 하고 숙제를 다 끝낸 다음에야 집으로 보내는 벌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던 그 일이 이처럼 무서운 불씨가 될 줄이야!


그다음 날 아침, 마침내 민수 아버지, 즉 국회의원으로부터 교장실로 전화가 걸려왔다는 소문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리고 수일 내에 민수 아버지가 석 선생을 직접 한 번 만나보기 위해 학교를 방문하겠다는 이야기었던 것이다.


그뒤, 직원들은 하나같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제멋대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경솔한 행동을 했다는 둥, 그리고 민수 아버지는 당장 이 학교의 후원회장직을 그만두게 될 것이라고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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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그렇게 되면 학교 발전에도 큰 영향이 미치게 됨은 물론, 또 석 선생은 어쩔 수 없이 사표를 내거나 심하면 파면이 될 수도 있다는 갖가지 소문과 추측이 무성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며칠이 지난 뒤, 마침내 민수의 아버지가 석 선생을 만나러 학교로 직접 찾아온다는 날은 돌아오고야 말았다.

'흥, 국회의원이란 작자가 할 일이 없어서 그런 일로 학교나 찾아다닌다면 나랏일은 언제 보누?‘


석 선생은 새삼 국회의원이란 직책을 가진 민수 아버지가 한심하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약간 두려운 감도 없지는 않았지만, 떳떳하게 그를 맞이할 마음가짐과 만반의 각오를 굳히고 있을 그때 마침, 교장실에서 석 선생을 부른다는 전갈이 왔다.


’좋다! 미련없이 교단을 떠나리라. 오늘날 국회의원 한 사람 때문에 교단이 이렇게 벌벌 떠는 실정이라면 차라리 지금 당장 다른 길을 찾아가는 것이 오히려 백 번 낫지, 아암, 낫고말고!‘

석 선생은 마침내 비장한 결심을 하고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교장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겨 놓고 있었다. 이윽고 교장실 출입문을 열고 들어간 석 선생은 공손히 목례를 한 다음 아무 말없이 미리 준비해 두었던 봉투 하나를 교장 선생님 앞에 내밀었다.

"아니, 석 선생, 이게 뭡니까?”


교장 선생님은 의외라는 듯 눈이 금방 둥그렇게 되어 석 선생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물었다.


“본의 아니게 학교에 누를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그동안 많이 생각해 봤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봤지만 학교라는 곳은 제가 머물러 있을 곳이 못 되는 것 같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선생님처럼 유능하고 교육관이 투철한 분이 교단을 떠나시겠다니?”

그러자 지금까지 잠자코 미소를 머금고 앉아 있던 민수 아버지가 석 선생의 두 손을 덥석 잡으며 입을 열었다.

“선생님, 진작에 찾아뵙지 못해 정말 죄송합니다. 그럴 리야 없었겠지만, 사실 우리 아이는 저의 직책이 직책이라서 그런지 그동안 선생님들이 너무 우리 아이만 감싸고 편애를 하지 않았나 하는 게 저의 솔직한 생각입니다. 그런데 소문을 듣고 보니 이제야 제대로 훌륭한 선생님을 만났구나 하는 생각에 제 마음이 얼마나 흐뭇했는지 모릅니다. 좀 어려우시겠지만 앞으로 저의 못난 자식을 끝까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


석 선생은 갑자기 어리둥절해진 표정이 되어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하하하……”


“허허허……”


석 선생의 그런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민수 아버지와 교장 선생님은 교장실이 떠나갈 정도로 한바탕 웃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다.


그것은 순전히 민수 아버지가 학교로 보낸 전화 한 통화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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