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4회 중 4회-]
명월댁은 그동안 금순이의 병을 고쳐주기 위해 지금까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 보았다.
그러나 그런 방법들 모두가 아무 효험을 보지 못하자, 이제 마지막으로 다시 매달리게 된 것은 대감나무였다. 금순이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위대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대감나무 뿐이라는 명월댁 나름대로의 판단을 하게 된 것이다.
'옳지. 맞아. 이 세상에서 우리 금순이의 병을 낫게 해줄 수 있는 영험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건 역시 대감나무였어!‘
대감나무에게 온갖 치성을 다해 빌게 되면 서양 잡귀도 물러가게 되고, 또 그렇게만 된다면 금순이의 병세도 차츰 차도를 보이게 되리라는 믿음을 굳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금순이의 병이 아직까지 낫지 않고 점점 더 도져가고 있는 것은 그동안 대감 나무에 대한 자신의 지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절대적으로 믿게 되었다.
그런 결론을 굳히게 된 명월댁은 이미 한 달 전부터 매일 밤 열두 시만 되면 어김없이 대감나무 밑으로 가서 정성껏 치성을 드리게 되었던 것이다.
어쩌다 비가 쏟아지거나 날씨가 아무리 좋지 않은 날이라 해도 치성을 드리는 그의 지극한 정성은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날마다 계속되고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감히 감당해 낼 수 없는 지독한 치성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다.
그 날도 대감나무 밑으로 치성을 드리러 간 명월댁은 뜻밖의 광경을 목격하고는 하마터면 그만 그 자리에서 기절초풍을 할뻔하였다. 정말 놀랍고 두려운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누군가의 소행인지는 모르겠지만, 대감나무에 올라가서 늙어서 줄기에 여기저기 붙어 있던 큼직한 옹이들을 톱으로 무참하게 잘라버린 것이 아닌가!
너무나 오랜 세월을 살아왔기에 늙을 대로 늙은 대감나무의 줄기에는 여기저기에 구멍이 숭숭 뚫린 옹이가 흡사 혹처럼 군데군데 붙어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겁도 없이 그토록 대단한 영험을 가진 나무에 감히 올라가서 그 혹처럼 생긴 옹이들을 톱으로 잘라버린 것이 아닌가!
대감나무 밑 주변에는 옹이를 벨 때 떨어진 허연 톱밥과 대여섯 개나 되는 큼직한 옹이들이 나뒹굴고 있었고, 대감 나무 기둥 이곳저곳에는 옹이가 잘려나간 자리가 달빛을 받아 흉한 모습으로 허옇게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이런, 어떤 벌을 받을 못된 놈이 이런 끔찍한 일을……!“
순간 명월댁의 얼굴빛은 새파랗게 질려버리고 말았다. 불현 듯 불길하고도 섬뜩한 마음에 머리끝이 쭈뼛해지면서 자신도 모르게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건 두말할 것도 없이 틀림없는 서양 잡귀들의 못된 소행이 틀림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명월댁은 문득 그 웬수 같은 경태의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다.
"내 이 쳐죽일 놈을 당장…….“
명월댁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이를 깨물었다. 어젯밤엔 정체도 모를 그 누군가에 의해 대감나무의 옹이가 보기 좋게 베어져 나가고 또 오늘 아침엔 설상가상으로 까마귀까지 극성스럽게 울어댔으니 이건 필경 그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도 남을 대단한 사건의 암시일 것이라고 명월댁은 굳게 믿고 있었다.
월산댁은 그런 섬뜩한 예감에 그날 밤엔 지성도 제대로 드리지 못한 채 부들부들 떨면서 그냥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던 것이다.
그다음 날 새벽이었다.
어느새 마을을 휘감고 있던 어둠이 서서히 걷히면서 먼동이 틀 무렵의 일이었다. 그때 명월댁은 어젯밤 대감나무의 끔찍한 광경을 목격한 뒤로 두려운 예감에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새벽녘이 되어서야 겨우 곤한 새우잠이 들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불이야! 불! 불이 났어요!“
"불이야! 불이 났어요! 어서들 빨리 나오세요!“
동네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갑자기 소리치는 외마디 같은 소리에 소스라쳐 선잠에서 깨어난 명월댁은 급히 방문을 열어 젖뜨리고 밖을 내다보게 되었다. 불이 일어난 곳은 다른 곳이 아닌 바로 동구 밖에 있는 교회였던 것이다.
“컹! 컹! 컹……!”
"멍! 멍! 멍……!”
마을 사람들이 소리소리 지르며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바람에 새벽잠에서 놀라 깨어난 온 마을의 개들도 모두 일어나 겁에 질린 목소리로 무슨 일인가 하고 덩달아 크게 짖어대고 있었다.
'아아! 정녕 이게 사실이란 말인가!‘
명월댁은 이미 이런 끔찍한 변이 일어날 것을 벌써부터 예감했다는 듯 한동안 얼이 빠진 사람처럼 멍한 표정이 된 채 무섭게 타오르고 있는 불구경만 하고 있었다.
교회는 점점 무서운 불길에 휩싸인 채 타오르고 있었다. 타오르는 불길은 온 마을을 대낮처럼 환하게 밝혀 주면서 점점 더 무서운 혀를 널름거리며 거세게 타오르고 있었다.
한창 새벽의 단잠에서 놀라 깨어난 마을 사람들은 불을 끄기 위해 동이와 양동이, 그리고 쇠스랑과 갈퀴를 하나씩 들고 교회를 향해 허둥지둥 소리를 지르며 달려가고 있었다. 마치 치열한 전쟁터를 보는 것과 그 모습이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한동안 넋이 나간 표정으로 불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명월댁은 문득 대감나무의 신통함과 위력에 대해 새삼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 위대하시고 전지전능하신 대감나무 신령님! 과연 당신의 영험하심과 위대하심을 당할 상대는 이 세상에 그 아무도 없나이다. 감사하옵고 또 감사하옵나이다!”
그제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명월댁은 영험을 베풀어 준 대감나무를 향해 몇 번이고 허리를 굽혀가며 큰절을 올렸다. 지금 교회가 불길에 휩싸이게 된 것은 그동안 정성을 다해 대감나무에게 지성을 드린 결과, 이에 대감나무가 자신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받아들여 준 결과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잠시, 명월댁의 태도는 곧 이상할 정도로 돌변하고 말았다.
“안 돼! 그럴 수는 없어! 우리 아들이 죽는 것만은 절대로 안 된다구. 불이야, 부우울!!”
명월댁은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소리소리 질러대면서 교회를 향해 허둥지둥 정신없이 뛰어가고 있었다.
잠시 뒤, 이윽고 단숨에 교회에 다다른 명월댁이 미친 듯이 소리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우리 아들 어디 있어요? 우리 아들을 꼭 살려 줘야 돼요!"
명월댁은 불을 끄기 위해 정신없이 뛰고 있는 마을 사람들에게 아무나 닥치는 대로 붙잡고 매달리며 내 아들을 살려 달라며 다급한 목소리로 애걸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섭게 타오르고 있는 교회의 불길 속을 향해 금방이라도 뛰어들 듯 펄펄 뛰기 시작했다.
일이 그렇게 되자 이제는 불보다는 명월댁이 더 걱정이었다. 놀란 마을 사람들이 명월댁을 붙잡고 말리느라 한동안 실랑이를 벌이며 애를 먹고 있었다.
"아주멈니 안 돼요! 위험해요! 제발 이러지 마세요! 아드님은 불이 나자마자 미리 피신해서 가족 모두가 무사하다니까 왜 자꾸만 이 야단이세요, 네?“
”그래요? 그렇다면 내 아들은 지금 어디 있어요? 제발 내 아들을 살려 줘야 한다니까요. 어이구, 내 팔자야. 흐흐흑…….“
명월댁은 마을 사람들의 말을 믿을 수 없다다는 듯 계속 펄펄 뛰다가 결국은 힘에 부쳤는지 이번엔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땅을 치며 큰소리로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 놈을 어떻게 키운 자식인데, 으흐흑…….”
그런데 그때 화재가 일어났다는 신고를 받고 멀리 떨어진 지서에서 순경 두 명이 자전거를 타고 급히 달려왔다.
한동안 화재 현장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순경이 이번에는 갑자기 명월댁을 향해 성큼 다가와서 입을 열었다. 그야말로 뜻밖의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주머니를 당장 방화범으로 연행하겠습니다.“
”……?”
뜻밖의 사태에 소스라쳐 놀란 명월댁은 하도 기가 막힌다는 듯 입을 크게 벌린 채 한동안 뭐라고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는 잠시 후, 곧 정신을 차린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순경을 빤히 바라보면서 서슬이 시퍼래져서 무서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뭐라고요? 내가 불을 질렀다고 어떤 놈이 그래요? 생사람 잡는 소리 좀 그만해요. 난 오늘 새벽엔 교회 근처에도 온 적이 없었다니까요.“
“그래요? 신고한 사람이 누군가를 밝힌 수는 어쨌든 아주머니가 불을 질렀다는 신고를 받고 왔어요. 평소에 자주 그런 말씀을 하셨다면서요? 교회에 불을 질러버리고 말겠다고…….”
순경의 말에 명월댁은 뜨끔하였다. 교회에 불을 질러야 하겠다는 말을 자주 했던 것은 사실었기 때문이었다.
"그, 그건 서양 잡귀들이 내 딸을 죽이려고 하니까 화가 나서 그냥 해본 거라니까요.“
"아, 알았습니다. 아무튼 지서로 가 보시면 알 테니까 우선 지서까지 가십시다.“
명월댁이 펄쩍 뛰면서 몇 번이고 손사래를 쳤지만, 순경들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명월댁의 등을 거칠게 떠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다음 순간이었다. 무슨 일인지 명월댁은 갑자기 모든 것을 체념한 듯, 고분고분 한 태도로 순경들을 따라가고 있었다. 순경이 이끄는 대로 따라고 있는 명월댁의 표정이 지금까지와는 달리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가 없었다. 그런 명월댁이 만족해진 표정으로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제 그 못된 잡귀들이 모두 불에 타 죽어버리고 말았으니, 틀림없이 우리 딸의 병도 곧 낫게 될 거야. 아암, 낫고말고. 대감나무 신령님, 정말 고맙고 감사합니다. 하하하…….”
순경을 따라 지서로 향하고 있는 명월댁의 얼굴에서는 아주 오랜만에 밝고 환한, 그리고 행복한 미소가 짙게 번진 채, 좀처럼 가실 줄을 몰랐다. (*)
- 마지막 회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