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4회 중 3회-]
”그래, 그새 몸은 좀 나아졌냐?“
그날 늦게까지 고추밭 일을 혼자 하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명월댁은 금순이부터 챙기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자리에 누운 채 온몸을 사정없이 떨어대며 심하게 앓고 있는 금순이를 보고 나서야 비로소 꾀병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금순이는 그날부터 밥은커녕 미음 한 숟갈도 입에 넘기지 못하고 심하게 앓고 있었다. 그렇게 이틀이나 계속 앓고 난 금순이의 모습은 몰라볼 정도로 야위고 수척해져 있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억지로라도 밥을 한 숟갈 입에 넣어주면 음식을 입에 대기가 무섭게 그때마다 토해버리곤 하는 바람에 물조차 한 모금 목에 넘길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사흘이 지나자 몹시 조급해진 명월댁은 날이 밝기가 무섭게 서둘러 윗말 글방 선생을 찾아갔다. 오래전부터 이 마을 사람들은 물론이고 이웃 마을에서까지 어떤 어려운 일이나, 심한 병에 걸려 얼른 낫지 않고 고생을 할 때마다 찾아가서 그 해결 방안을 묻고 시키는 대로 따르곤 하던 사람이 바로 글방 선생이었다.
"허어, 이거 필경 대감나무 신이 또 노하신 게로군!“
한동안 한자로 적힌 낡은 책을 이것저것 뒤적거리고 있던 글방 선생은 몹시 심각해진 얼굴로 부적 한 장을 써 주더니 우선 정성껏 지은 밥을 며칠간 대감나무에게 바치며 치성을 드리라고 하였다. 그러면 사흘 후부터는 점차 차도를 보이며 회복이 될 것이라고 일러 주었다.
그날부터 명월댁의 지극한 치성은 시작되었다. 보리밥도 먹기 어려운 가난한 시절이었지만, 어디서 구했는지 매일 밤 열두 시만 되면 한 그릇이 될 정도의 하얀 쌀만 안쳐서 정성껏 밥을 지었다. 그리고 새로 지은 따끈한 밥을 한 그릇 퍼서 커다란 바가지에 받쳐 들고 밤 열두 시가 되기가 무섭게 대감나무 밑으로 가서 치성을 드리기 시작했다.
늘 그랬듯이 공손히 두 무릎을 꿇고 앉아 열심히 빌고 있는 명월댁의 바로 앞에는 밥 한 그릇과 금방 마을의 공동 우물에서 떠온 깨끗한 정화수가 한 대접 놓여 있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대감님께 비나이다. 제발 하루속히 우리 금순이 몸에 붙어 있는 못된 잡귀란 잡귀들을 모두 툭툭 털어버리고 그만 일어나게만 하여 주시옵소서!“
명월댁의 지성은 그야말로 지독하고 대단했다. 어쩌다 억수처럼 퍼붓는 소나기도 명월댁의 치성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처럼 억수 같은 비가 퍼붓는 밤에는 이슬치(비가 올 때 짚으로 엮어 우비 대신 사용하던 옛날의 우비)한 장만 달랑 어깨에 두르고 앉은 채 억수 같은 비를 그대로 온몸으로 다 맞아가며 치성을 드렸다. 마치 석상이라도 되어 굳어버린 듯 작은 미동도 없이 그렇게 한 자리에 꼼짝없이 앉아 고스란히 비를 흠뻑 맞으면서 새벽닭이 울 때가 되어서야 그의 치성은 끝이 나곤 하였다.
그러나 도무지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를 일이었다. 사흘이면 차도가 보일 것이라던 병이 사흘은커녕 열흘이 지나도록 병세는 더욱더 깊어만 가고 있었다. 게다가 며칠 전부터는 설상가상으로 입으로 엄청나게 많은 양의 피까지 토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냥 피를 토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한번 입을 벌렸다 하면 입에서 마치 분수처럼 무섭게 피가 뻗치면서 피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입에서 피가 한번 쏟아지기 시작하면 단숨에 요강 단지로 두 개, 그리고 세숫대야로 하나 가득 쏟아내고야 겨우 멈추곤 하였다.
그때마다 명월댁은 요강 단지와 세숫대야를 번갈아 갈아대느라고 허둥지둥 눈코 뜰 새 없이 뛸 수밖에 없었다. 그런 황당한 일은 사흘 만에 한 번씩 벌어지곤 하였는데 그렇게 엄청나게 많은 피가 사람의 몸의 어느 구석에 고여 있다가 그토록 무섭게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인지 놀랍기도 하고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벌써 그렇게 이레째나 식음을 전폐하고 앓고 있는 금순이의 모습은 이미 살아 있는 사람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마치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변한 낯빛,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몰골, 기력이 떨어질 대로 다 떨어져 전혀 미동도 없이 눈을 꼭 감고 누워 있는 앙상한 모골, 그건 이미 산 사람의 모습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그러기에 어쩌다 이웃 사람들이 와서 금순이의 꼴을 본 사람마다 혀를 내두르곤 하였다.
”쯧쯧쯧……. 저런 꼴로 도로 살아나긴 아무래도 어렵겠는걸!“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명월댁은 눈이 뒤집힐 것만 같았다. 가슴이 곧 찢어질 것 같기도 하였다. 덜컥 겁에 질린 명월댁이 이번에는 많은 돈을 들여 만신을 불러다 한바탕 푸닥거리도 하고 내림굿도 해보았다. 그래도 전혀 차도가 보이지 않자 그다음에는 두엄 장사를 지내보기로 하였다.
명월댁은 곧 마을에서 성씨가 각기 다른 장정을 네 명을 집으로 불러들였다. 그리고는 죽은 듯이 숨만 끊어지지 않고 앓고 있는 금순이를 바깥 마당에 있는 두엄더미로 끌어냈다.
장정들은 곧 멍석으로 덮어 놓은 썩은 두엄더미 위에 금순이를 내려 눕히더니 손과 다리를 각기 하나씩 잡아 세 차례 헹가래를 치는 이른바 두엄 장사를 지내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백약이 무효라더니 그 후로도 금순이의 병은 안타깝게도 전혀 차도를 보이지 않았다. 몸이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금순이는 이제 눈을 뜰 힘조차 없는지 두 눈을 꼭 감은 채 턱까지 사정없이 심하게 떨기 시작했다. 명월댁은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명월댁의 귀에 눈이 번쩍 뛸 정도로 매우 반가운 소식이 들려 왔다.
마침 아주 이름난 영판(영검이 있어 길흉을 잘 찾아내는 사람)하나가 지나가던 길에 잠시 이 마을에 묵게 되었다는 소식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 영판은 화랑이(박수 또는 남자무당)였다.
명월댁은 소문을 듣기가 무섭게 곧 화랑이를 집으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곁에서 숨을 죽인 채 열심히 점을 치고 있는 모습을 살펴보니 소문대로 그 어느 점쟁이나 만신과는 사뭇 다른 데가 있었다.
화랑이가 두 눈을 감고 한동안 무슨 주문을 외우다가 뭐라고 묻고 말을 멈추면, 그때마다 어김없이 희한하게도 화랑이의 귀에서 괴이한 목소리로 응답을 하는 해괴한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화랑이의 귀에서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오다니 참으로 신기하고도 기이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한동안 두 눈을 감은 채 작은 소반 위에 쌀을 뿌려 놓고 쌀알을 계속 만지작거리며 주문을 외우고 있던 화랑이가 갑자기 눈을 번쩍 뜨더니 이번에는 명월댁을 향해 서릿발 같은 서늘해진 눈초리로 묻고 있었다.
“이 집에 분명히 아들 하나가 있지?”
“네, 네, 그렇습니다만, 집 나간 지가 너무 오래되어 소식조차 모르고 지내고 있습니다만…….”
“그래, 맞았어. 제길헐.……그놈이 바로 화근 덩어리였었군.”
화랑이의 뜬금없는 말에 명월댁은 더욱 겁먹은 표정이 되어 우물쭈물하면서 되묻게 되었다.
"네에? 그, 그게 도대체 무슨 말씀이시온지……?“
“언젠가는 그놈이 반드시 집으로 돌아오게 될 게야. 그리고 바로 그놈으로 인해 이 집안이 쑥밭이 될 게 틀림없으니까. 그러니까 그놈을 항상 조심하라구. 자식이 아니라 웬수를 낳았구먼! 쯧쯧쯧…….”
“……?”
명월댁은 화랑이의 호통 소리에 겁에 질린 얼굴로 아무 대꾸도 못한 채 계속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까지 명월댁 역시 아들놈이 늘 마음에 꺼림칙했었는데 화랑이의 입으로 직접 그런 말을 듣자, 아들에 대한 원망스러운 마음이 점점 더 가슴 속에 응어리가 되어 커져만 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 날도 이웃에 살고 있는 과수댁이 금순이를 보기 위해 문병을 왔다. 가끔 문병을 와 주곤 하는 고마운 그는 꽃 같은 젊은 나이에 병으로 남편을 잃고 오늘날까지 혼자 외롭게 수절을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는 동네에서도 얌전하고 착하기로 소문난 여인이었다.
두 눈을 꼭 감은 채 마치 죽은 것처럼 누워 있는 금순이의 표정을 한동안 조용히 살펴보고 있던 과수댁이 혀를 끌끌 차면서 속삭이듯 조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지금 금순이의 한쪽 콧구멍에서는 코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코피가 늘 저렇게 한쪽 콧구멍에서만 흘러나오고 있는 거죠?”
“…….”
영문을 모르는 명월댁은 고개만 약간 끄덕이고 있었다. 그러자 과수댁은 그나마 천만다행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안심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하였다. 만일 코피가 다시 다른 쪽 콧구멍으로 나오게 되는 날이면 그날이 바로 큰일이 나는 날이라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일러주었다.
그 여인이 그렇게 아는 소리를 할 수 있는 것은 자기 남편이 바로 열아홉 살에 금순이와 비슷한 증세의 병을 앓다가 변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과수댁의 남편 역시 코피가 계속 한쪽 콧구멍으로 흘러나오다가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쪽으로 나오기 시작하면서 그날 바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는 섬뜩한 이야기였다.
과수댁은 또 사람은 누구나 아홉수를 넘기기가 가장 어렵고 힘든 고비라며 그때를 잘 넘겨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금년에 금순이의 나이가 스물아홉이어서 그 역시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일이어서 이래저래 명월댁의 불안과 걱정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높게 쌓여만 가고 있었다.
“어이구, 이러다가 결국 처녀 귀신을 만드는 건 아닌지 이거 워언…….”
그 시절만 해도 처녀들은 갓 스무 살이 되기가 무섭게 무슨 애물단지라도 치우듯, 서둘러 시집을 보내던 시절이었다. 그러기에 처녀 나이 스물다섯 살만 넘기면 시집을 가지 못한 본인은 물론 그런 딸을 둔 부모들까지 덩달아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마음에 얼굴조차 들고 바깥 출입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명월댁에게는 금순이가 죽는다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두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보다는 금순이가 처녀 귀신이 될 게 더 불안하고 무서운 일이었다. 만일 그런 불행한 일이 벌어지기라도 한다면 먼 훗날 자신이 죽은 뒤에 무슨 면목으로 조상들을 대하느냐 하는 것 또한 큰 걱정거리요,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한동안 지붕 위를 떠나지 않고 빙빙 맴을 돌면서 요란스럽게 울부짖던 까마귀 떼가 명월댁의 시야에서 차츰 멀리 이동을 하며 사라지고 있었다. 명월댁은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된 표정으로 묵직한 요강 단지를 들고 부엌문 바로 앞에 있는 수채(빗물이나 집안에서 버린 허드렛물 따위가 흘러나가도록 만든 작은 개울)로 다가갔다.
지금 명월댁이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있는 놋쇠로 된 요강 단지 속에는 금순이가 금방 입으로 무섭게 토해 낸 선홍 빛깔의 핏물이 가득 담겨 있었다. 아직도 채 식지 않은 핏물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얼른 보기에도 금방 비위가 뒤틀릴 정도로 끔찍하면서도 혐오스럽기 그지없는 광경이었다.
“어이구, 이게 모두 그 못된 놈 때문이라니까. 으이구, 내가 전생에 무슨 죄가 많아서 어쩌다가 그런 천하의 못된 놈을 낳아 가지고 이 고생인지 워언…….“
수챗구멍에 시뻘건 핏물을 쏟아부으면서 명월댁은 눈을 잔뜩 찡그린 채 외면을 했다. 쏟아져 내리고 있는 핏물에서 허연 김이 펑펑 피어오르는 바람에 눈을 뜨기조차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 * )
- 4회 중 3회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