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경태는 마음에 내키지는 않았지만 명월댁이 시키는 대로 산소 위로 올라갔다. 산소 위에도 아침 이슬이 흥건히 맺히고 있어서 경태의 바짓자락은 금방 흠뻑 젖어버리고 말았다.
“자, 이제 올라갔으면 두 손을 땅을 짚고 한번 굴러 보렴. 다치지 않게 아주 조심스럽게 굴러야 한다. 알겠지?”
경태는 곧 두 손을 땅에 짚은 다음 산소 아래로 굴러떨어지며 재주를 넘었다. 그 바람에 비를 흠뻑 맞은 듯 입고 있는 옷이 모두 새벽이슬로 흠뻑 젖어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명월댁은 경태를 다시 산소 위로 올라가게 하였다. 그리고 조금 전과 같은 재주 넘기를 세 번이나 시켰다. 그것은 몸에 들어온 소위 못된 잡귀들을 털어 버리기 위한 치료 방법이라고 하였다.
아무 대꾸 한마디 하지 못하고 명월댁이 시키는 대로 하기는 했지만, 경태는 속으로 못마땅하기 그지없었다. 경태의 표정은 마치 벌레를 씹은 것처럼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지고 말았다.
명월댁은 산소에서 재주를 세 번이나 넘은 경태를 데리고 곧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마당에 팔과 다리를 쭉 벋고 그대로 가만히 누워있게 하더니 곧 부엌으로 들어가서 식칼을 들로 나왔다.
식칼을 들고 나온 명월댁은 그 식칼로 경태가 누워있는 몸을 사방으로 돌아다니며 금을 긋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경태를 일어나라고 하였다. 땅바닥에는 경태가 누웠던 모습 그대로 큰 대(大)자로 된 그림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다.
경태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명월댁은 경태가 누워 있던 그림의 머리 부분 형상에 식칼을 힘껏 꽂아 놓았다. 어린 경태가 생각하기에도 매우 섬뜩하면서도 혐오스럽기 짝이 없는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또 어느 날은 경태를 냄새가 코를 찌르고 더럽고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뒷간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는 용변을 볼 때 발을 딛고 앉게 놓여 있는 큼직한 돌멩이 위에 미리 준비해 온 나뭇잎을 한 개 깔아 놓더니 그 나뭇잎을 혓바닥으로 세 번 핥으라고 하였다. 그 역시 잡귀를 물리치기 위한 방법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는 어디선가 큰 돈을 주고 구해 온 부적을 불로 태운 뒤 이른 아침마다 눈을 뜨기가 무섭게 숟갈에 물을 떠서 부적을 태운 재를 타서 단숨에 마시게 하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짓을 강요하기도 하였다.
"엄마, 이런 거 하는 거 난 정말 지긋지긋하고 싫단 말이야. 이런 게 다 미신이란 말이야. 그러니까 제발 다시는 나한테 시키지 않으면 안 돼?“
경태가 어쩌다 애원이라도 하듯 이렇게 매달리기라도 하면 명월댁은 당장 큰일이 빌어지기라도 할 것처럼 오히려 그때마다 펄쩍 뛰면서 경태를 무섭게 나무라곤 하였다.
“쉿! 어린 녀석이 뭘 안다고 어디서 그런 아가릴 함부로 놀리고 있어? 부정 타기 전에 제발 입 좀 다물고 에미가 시키는 대로 하란 말이야, 알겠어?“
이토록 두 사람의 생각과 고집이 워낙에 달랐기 때문에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모자지간의 골은 더욱 계곡처럼 깊게 벌어져 가고만 있었다.
그러기에 두 사람과의 생각의 차이는 그야말로 물과 기름처럼 좀처럼 섞이지를 못하고 늘 평행선을 유지할 수밖에 없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두 사람은 결국 도무지 한 지붕 밑에서 살아가기가 어려울 지경에 이르게 되자 명월댁은 마침내 경태를 앞에 앉혀 놓고 따지듯 다짐을 하기에 이르렀다.
"도대체 넌 누굴 닮아 못된 고집이 그렇게 센지 모르겠구나. 엄마는 그런 꼴 보고는 못 산다. 네가 끝까지 내 말을 지금처럼 우습게 여기고 듣지 않으려거든 당장 이 집에서 나가서 혼자 살도록 해라. 어쩔 테냐? 앞으로 내 말을 고분고분 들어가면서 같이 살 생각이냐. 아니면 혼자 나가서 살고 싶은 게냐?“
”…….“
명월댁이 심각한 표정으로 몇 번이고 경태에게 이렇게 다그쳐 물었지만, 경태 역시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꼭 다문 채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다가 경태는 결국 그날 밤으로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집을 나가고 말았다. 그때가 바로 휴전 협정이 체결되고 난 후에 2년 뒤였으니까 경태가 열여덟 살이 되던 해의 일이었다.
“이런 천에 못된 배은망덕한 녀석 같으니라구. 어린 녀석이 웬 고집이 그렇게 지독하담. 지금까지 내가 제 놈을 어떻게 길렀는데…….”
명월댁은 분하다는 듯 마침내 땅바닥을 치면서 한바탕 통곡을 하고 말았다.
그 뒤부터 명월댁은 입만 열었다 하면 자식에 대한 원망과 한탄이 넋두리처럼 한도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오곤 하였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남편이든 자식이든 언젠가는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못한 채 오직 금순이 하나만을 의지하며 오늘날까지 긴 세월을 살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1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그날 그야말로 뜻밖에도 꿈과 같은 일은 벌어지고 말았다. 지금까지 10여 년 동안 생사조차 모르고 지내던 경태가 마침내 거짓말처럼 제 발로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토록 학수고대하며 꿈에도 그리던 아들을 만난 기쁨은 그날 그 순간을 마지막으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명월댁으로서는 차라리 경태가 영영 돌아오지 못한 채 소식을 모르고 지내는 것보다 훨씬 못한 결과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경태가 하필이면 장로라는 이름을 달고 난 데 없이 소위 그 못된 서양 잡귀들을 잔뜩 몰고 불쑥 고향으로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아니 하필이면 그 못된 녀석이…….”
명월댁은 하늘이 갑자기 노랗게 변하고 말았다. 심한 현기증까지 일어나면서 좀처럼 일손이 잡히지 않았다. 그 모두가 경태 때문이었다.
경태는 고향으로 돌아오자마자 동구 밖 축동 한쪽에 다 쓰러져 가는 허름한 집 한 채를 헐값으로 구입했다. 그리고 서둘러 그 자리에 흙벽돌로 교실처럼 생긴 제법 큰 집을 하나를 세우더니 지붕 위에 널빤지로 만든 하얀 십자가까지 보란 듯이 높이 꽂아 놓았다.
그 뒤부터 그 속에서 날마다 찬송가도 부르고 수시로 종을 울려가면서 신도들을 하나둘씩 모으기에 바빴다. 그리고 틈만 나면 전도산가 뭔가라고 하는 새파랗게 젊은 년 하나를 데리고 다니면서 마치 문전걸식이라도 하듯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구원을 얻으려거든 제발 교회에 나와 달라고 애걸복걸을 하고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이구머니나, 내 팔자야!”
어느 날, 그 꼴을 보다 못한 명월댁은 치밀어 오르는 울분을 참지 못하고 단숨에 교회로 달려갔다. 마침내 교회에 다다른 명월댁은 미리 준비해 가지고 간 소금 바가지에서 소금을 한 움큼씩 꺼내 교회 곳곳에 사정없이 마구 뿌려댔다. 명월댁의 행패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경태가 나타나자 다짜고짜로 멱살을 움켜잡고 죽기가 아니면 살기로 매달리며 큰소리로 악을 쓰며 호통을 치기 시작했다.
"네 이 못된 놈! 옛말에 우리 것은 우리가 지켜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못된 서양 잡귀나 몰고 다니는 예수쟁이가 돼 가지고 와서 이따위 해괴한 짓을 하고 돌아다녀야 속이 시원하단 말이냐? 이놈의 예배당인지 연애당인지 내가 불을 확 질러 버리기 전에 그리고 내 눈에 띄지 않게 당장 우리 마을에서 썩 나가란 말이야. 이 천벌을 받을 못된 놈 같으니라구!“
“어머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제발 고정하세요.”
그런 난동 속에서도 의외로 태연한 경태의 목소리에 더욱 울컥 화가 치밀어오른 명월댁이 이번에는 입에 게거품까지 흘려가며 더욱 큰 목소리로 소리치고 있었다.
“뭐야? 나보고 고정을 하라구? 그래, 단 하나밖에 없는 네 누이동생을 저 꼴로 다 죽여 놓고도 감히 네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더냐? 네가 이 마을을 떠나지 않는다면 차라리 이 에미가 먼저 양잿물이라도 퍼먹고 죽는 꼴을 보고 싶은 게냐? 어디 말을 좀 해 보거라, 이 천하에 못된 자식 같으니라구.”
그러자 경태가 이번에는 더욱 의연해진 태도로 명월댁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고 싶지 않다는 듯 조용히 두 눈을 감은 채 중얼거리는 목소리로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오! 전지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이 어리석고 무지하며 불쌍한 죄인을 사하여 주시옵소서……!”
명월댁은 계속 죽기 살기로 경태한테 매달린 채 두 주먹으로 경태의 가슴을 때리기도 하고 소리소리 질러도 보았다. 하지만 이미 장정이 된 경태를 이길 수는 없었다. 경태는 추호도 동요함이 없이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여전히 입속으로 얼른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기도를 올리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놈아, 그래도 뭐가 어쩌구 어째? 씨도 먹히지 않는 미친 소리 좀 작작하고 어서 이 에미부터 죽여다오, 이 천하에 못된 놈아! 어이구, 이 년의 팔자야. 으흐흑…….”
명월댁은 치밀어오르는 울화를 참다 못해 그 자리에 그만 털썩 주저앉아 통곡을 하고야 말았다.
그 뒤로도 명월댁은 툭하면 교회로 달려가서 난동을 부리며 경태에게 행패를 부리곤 하였다. 그것도 모자라서 심심하면 구장이나 지서까지 찾아가서 제발 교회를 몰아내 달라고 부탁도 하고 애걸을 해보기도 하였지만 그 모두가 아무 소용도 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 후에도 그렇지 않아도 교회라면 넌덜머리를 내고 있는 명월댁의 가슴에 마치 부채질이라도 하듯 교회의 종소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하루도 쉬는 날이 없이 계속 울려 퍼지고 있었다.
명월댁이 이처럼 두 눈에 쌍심지까지 켜고 마치 웬수를 대하듯 아들을 원망하기도 하고 저주하며 눈의 가시처럼 여기게 된 것은 명월댁으로서는 분명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경태가 돌아온 뒤부터 금순이의 병이 점점 더 짙어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필연 아들이 서양 귀신들을 데리고 왔기 때문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건강하고 멀쩡하기만 했던 금순이가 병이 난 것은 약 달포 전의 일이었다.
명월댁은 금년에도 어김없이 성황당 고개 너머 조그만 밭뙈기에 제법 많은 고추 농사를 지어오고 있었다. 특히 금년에는 다른 그 어느 해보다 고추가 잘 자라서 탐스럽게 익은 고추들이 주렁주렁 소담스럽게 매달리고 있었다.
요즈음 명월댁과 금순이는 날만 밝으면 매일 고추밭을 달려가서 빨갛고 탐스럽게 익은 고추를 따는 일로 한창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날도 모녀는 여느 때와 같이 조반을 먹기가 무섭게 고추밭으로 달려가서 빨갛게 익은 고추를 따는 일로 한창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날씨는 아직도 여름의 끝자락이어서 등과 이마에서는 땀방울이 줄줄 흘러내릴 정도로 더운 날씨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그날따라 금순이의 태도가 다른 날과 달리 사뭇 이상하였다. 한동안 고추를 잘 따고 있던 금순이가 갑자기 무슨 까닭인지 온몸을 사정없이 부들부들 심하게 떨어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엄마, 나 오늘은 온몸이 으슬으슬 춥고 떨려서 죽겠단 말이야.”
“으이구, 네가 일이 하기 싫어서 갑자기 꾀를 부리고 있는 걸 내가 모를 줄 아니? 이렇게 무더운 날씨에 춥다니 말이나 되는 소릴 해야지, 쓸데없는 소리 좀 그만하고 어서 해지기 전에 어서 부지런히 고추나 따란 말이야.“
그러나 금순이는 여전히 계속 덜덜 떨면서 입에서 앓는 소리까지 내고 있었다. 그러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하면서도 하도 금순이가 난리를 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금순이를 집으로 먼저 가라고 하고 그 날은 명월댁 혼자 밭에 남아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