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비이락(烏飛梨落) -1회 -

[단편소설, -4회 중 1회-]

by 겨울나무

삼면이 나지막한 산으로 흡사 삼태기 모양으로 둘러싸여 있는 두메 산골 마을이었다. 대략 오십여 채의 초가집들이 게딱지처럼 옹기종기 정답게 이마를 마주 대고 모여 있는 모습이 마냥 평화롭기만 하다.

마을 앞 제법 큰 한길을 따라 남쪽으로 조금 가게 되면 산기슭에 성황당이 자리하고 있었고, 마을 앞으로는 고만고만하게 크고 작은 문전옥답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문전옥답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초가집들이 적당히 나뉘어져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성황당 반대쪽인 북쪽으로 탁 트인 동구 밖을 향해 바라보면 제법 넓은 들판이 시원스럽게 펼쳐져 있다. 그리고 동구 밖에는 이쪽 마을과 저쪽 마을을 서로 왕래할 수 있는 제법 넓은 길이 연결되어 있어서 그 모습을 바라보기만 해도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할 정도로 시골 풍경이 정겹기 그지없어 보인다.


이 마을 중간쯤에 위치한 공동 우물 가까이에는 얼른 보기에도 족히 수백 년이란 오랜 세월을 용케 견디어 냈음직한 늙은 오리나무 한 그루가 우뚝 버티고 선 채 거만스럽게 그 위용을 뽐내고 있다.


대감나무!!

그렇다. 언제부터 그렇게 부르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그 오리나무를 가리켜 마을 사람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대감나무‘라 불러오고 있다. 그리고 그 오리나무는 마을 사람들의 깍듯하고도 소중한 대접을 받으면서 마치 신주 같은 대접을 받으며 마을 사람들과 함께 희로애락을 같이 하며 오늘날까지 버티어 오고 있다.


대략 어른들의 키로 열 길도 넘을 정도로 우람스러운 자태로 크고 높게 자란 대감나무.

아름드리로 굵고 육중하게 자란 오리나무의 밑둥치에서 어른의 한 키 정도의 높이부터는 두 갈래로 뻗어 있어서 나무의 멋스러움과 운지를 한층 더해 주고 있다.


이처럼 마을 사람들과 함께 오랜 세월을 늘 같이 해온 나무였기에 이 대감나무와 관련된 마을 사람들의 갖가지 사연 또한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무성하기 그지없다.


아주 오랜 옛날, 어느 해 밤에는 뜻밖에도 갑자기 날벼락 같은 재앙이 이 마을을 덮쳤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큰 화재가 일어나서 마을 전체가 삽시간에 사나운 화염에 뒤덮이게 되었으며, 옹기종기 이마를 마주 대고 평화스럽게 모여 있던 초가집들 모두가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변하고 말았던 것이다.

밤중에 난 이 화재로 인해 미처 불길을 피하지 못한 수십 명의 마을 사람들이 불 속에서 희생되는 끔찍한 참변을 당했던 것이다.

그 끔찍한 참변을 겪게 된 이유는 참변을 당한 뒤 한참 뒤에야 소문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그 원인은 누군가가 대감나무에게 용서받지 못할 큰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오직 땔감이라고는 곡식의 짚이나 나무로만 의존하던 시절, 땔감이 그렇게 귀하던 시절이어서 누군가가 멋도 모르고 감히 대감나무에서 떨어진 삭정이와 잎을 갈퀴로 긁어다가 아궁이에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참변이 일어나기 며칠 전에 영특한 까마귀들은 이미 그런 일이 벌어질 것을 미리 예감이라도 하였다는 듯 극성스럽게 울부짖었다고도 전해지고 있다.

대감 나무가 그런 대단한 존재였기에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가을이 오면 이름난 만신을 모셔다가 대동굿을 벌이곤 하였다. 이것은 대감 나무 신을 특별히 모시고 받들기 위한 연례행사이기도 하였다.

어쩌다 흉년이 들어 끼니를 잇기조차 어려운 해에는 간단히 푸닥거리를 하거나, 간소하게 대감제라도 올려 그 어느 한 해도 소홀히 그냥 넘기는 법이 없었다.


어느 해에는 다른 해보다 음식을 푸짐하게 차려놓고 치성을 드린 결과 몇백 년 만에나 한 번 올까 말까 한 대 풍년이 들게 되었다는 둥, 또 아기를 갖지 못한 어느 아낙네는 대감나무 밑에 가서 백 일간 지성을 드린 결과 마침내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게 되었다는 둥, 대감나무가 이처럼 뜻밖의 신동함과 영험을 보여준 예는 그 밖에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러기에 이 대감 나무에는 늘 마을 사람들의 소원과 정성이 담긴 빨강, 파랑, 노랑, 흰색 등, 리본 모양으로 된 갖가지 색깔의 헝겊들이 매달린 채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또한, 대감나무 밑에는 언제나 어느 집을 막론하고 고사를 지낼 때마다 정성껏 갖다가 바친 시루떡과 굿을 하고 난 후에 버려진 갖가지 음식들, 그리고 짚으로 만든 허수아비들이 여기 저기 흉한 모습으로 너저분하게 굴러다니고 있어서 볼썽 사납기 그지없었다.

“까악! 까아악! 까르르륵……!”


어느 날, 이른 아침부터 갑자기 대여섯 마리의 까마귀가 명월댁네 초가지붕 위로 날아오더니 지붕 위의 공중을 맴돌며 시끄럽게 울부짖기 시작하였다. 그때 마침 급히 방문을 열고 나오고 있던 명월댁은 들려오는 까마귀 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말았다.


지금 안방 아랫목에서는 벌써 한 달이 넘도록 명월댁의 딸 금순이가 병명조차 알 수 없는 이상한 병에 걸려 생사의 기로를 헤매고 있는 중이었다. 시집 갈 나이가 다된 금순이가 갑자기 왜 그런 병에 걸리게 되었는지, 그리고 더구나 병명조차 알 수 없는 병이기에 명월댁의 가슴은 금방이라도 터져나갈 듯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명월댁은 지금 막 방에서 들고나오던 요강 단지를 급히 봉당 바닥에 내려놓기가 무섭게 우짖고 있는 까마귀 떼들을 향해 목젖이 찢겨 나갈 정도로 크게 소리내어 침을 세 번 내뱉고는 거친 욕설부터 퍼붓기 시작했다.

“카악, 퉤에! 퉤엣! 저런 죽일 놈의 까마귀들이 하필이면 왜 여기 와서 저렇게 짖어 댈 게 뭐람."


예로부터 아침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찾아오고, 까마귀가 울면 누군가가 갑자기 급살을 맞아 죽거나 흉사가 벌어진다는 속설을 굳게 믿고 있는 명월댁이었다. 그리고 까마귀가 울 때 까마귀를 향해 침을 세 번 뱉으면 액운을 면할 수 있다는 어리석고 부질없는 속설까지도…….


“내 언젠가는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을 벌써부터 짐작하고 있었다니까. 휘어이, 훠어이---!”


명월댁은 젊어서부터 남달리 미신을 철석같이 믿고 의지해 오던 터여서 미신은 이제 그의 생활의 일부분이요, 골수 깊숙이 밴 하나의 신앙이 되고 말았다. 명월댁이 이번에는 두 팔을 있는 대로 치켜들고 둥그런 원을 그리며 까마귀를 힘껏 쫓기 시작했다. 그래도 좀처럼 달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이번엔 바지랑대를 높이 치켜들고 흔들어 대며 쫓기도 하였다.


“뗑, 떼엥! 뗑 떼엥………!”


설상가상이라더니 그때 마침 까마귀 소리에 맞장구라도 치듯, 종소리까지 들려오기 시작했다. 동구 밖에 있는 교회에서 들려오는 종소리였다. 명월댁은 갑자기 서슬이 시퍼래진 사나운 표정이 되어 동구 밖을 향해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심한 욕지거리를 거침없이 내뱉기 시작했다. 명월댁의 표정이 그렇게 싸늘하고 무서워보일 수가 없었다.

“저런 주리를 틀고 육시를 내서 죽여도 시원치 않을 천하의 웬수같은 놈! 귀신들은 도대체 저런 놈을 잡아가지 않고 무얼하고 있는 거냐구? 내 저 놈을 당장에 그냥…….”


지금 장로란 자리에 떡 버티고 앉아서 교회를 운영하고 있는 경태는 바로 명월댁의 둘도 없는 아들이었다. 장로라고는 하지만 누이동생인 금순이보다는 네 살이나 더 많은 서른 세 살이나 먹은 젊은이였다.

경태는 태어날 때부터 얼굴 모습도 그렇고, 그만하면 어느 한 군데 나무랄 데가 없을 정도로 잘 생겨서 누구나 탐을 낼 정도로 잘 생긴 아들이었다. 잔병치레를 자주 하는 것만 빼고는…….

그런 경태가 명월댁의 정성어린 보살핌으로 그런대로 건강하게 자라 제법 건강하고 늘름한 젊은이로 성장하였다. 더구나 성인이 된 뒤에는 두메산골 출신으로서 젊은 나이에 그가 늘 갈망하고 꿈꾸어 오던 장로라는 직책까지 얻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말은 바로 그를 두고 하는 말함이리라.



명월댁은 6.25 동란 때 보급단원으로 강제 징용되어 끌려가 버린 남편이 오늘날까지 아무 소식조차 없게 되자 그때부터 젊은 나이에 졸지에 생과부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 뒤부터 오직 어린 남매만을 바라보면서 살아가고 있는 명월댁으로서는 그들 남매가 둘도 없는 낙이요, 희망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태어날 때부터 유난히 몸이 쇠약했던 경태는 어려서부터 잔병치례를 자주 하는 바람에, 바로 그때부터 차츰 명월댁과 전혀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미신을 천하에 둘도 없는 신앙처럼 절대적으로 맹종하고 있는 명월댁과, 또한 그와는 반대로 유난스러울 정도로 미신이라면 넌덜머리를 낼 정도로 싫어하는 경태와의 엄청나게 큰 생각의 차이가 명월댁과 경태와의 사이에 커다란 벽을 쌓게 되었던 것이다.

아주 오랜 옛날, 한창 피란살이를 할 때에도 정태는 툭하면 남달리 학질에 걸려 많은 고생을 하였다.


숨이 막힐 정도로 무더운 여름철에도 담요를 머리끝까지 뒤집어 쓴 채 땡볕에 나가 앉아 있어도,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마치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덜덜 떨며 고통스럽게 앓게 되는 병, 그 못된 병이 바로 학질이라는 병인 것이다.


이 학질은 하루는 멀쩡했다가 다시 그 다음날은 병이 되살아나서 앓는 병이기에 다른 이름으로는 ’하루거리‘라고도 불리기도 한다. 그 못된 하루거리는 전쟁 내내 경태의 몸에서 떨어져 나갈 줄을 모르고 괴롭히곤 하였다. 바로 그때부터 모자간의 거리는 차츰 벌어지기 시작하게 되었던 것이다.


오직 하나뿐인 자식의 병을 고쳐 주기 위해 갖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밤낮으로 정성을 다하고 애를 쓰고 있는 명월댁의 마음을 경태가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병을 고쳐 준답시고 명월댁이 경태에게 강요하고 있는 행위들 모두가 경티로서는 하나같이 못마땅하고 몸서리가 쳐질 정도로 역겨웠던 것이다.




어린 나이에 경태가 학질에 걸려 벌써 여러 날을 계속 앓고 있던 어느 날 새벽이었다.

“경태야, 얼른 일어나서 엄마를 따라오너라.”


명월댁은 먼동이 채 트기도 전에 느닷없이 새벽잠이 깊이 든 경태를 느닷없이 깨우더니 뒷산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잠이 덜 깬 경태를 데리고 이슬이 맺힌 풀숲을 헤치며 뒷산으로 올라간 명월댁은 한 길이 넘을 정도로 잡초가 무성하게 뒤덮인 어느 산소 앞에 다다르자, 경태를 산소 위로 올라가게 하였다. ( * )

- 4회 중 첫 번째 이야기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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