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옛날

[서로를 믿고 의지하던 따뜻했던 그 시절]

by 겨울나무

1940년대 말, 그때는 자동차가 너무 귀해서 구경조차 하기가 어려웠다. 더구나 내 고향이 시골이어서 더욱 그랬었던 것 같다.

그러기에 아이들 모두가 어쩌다 멀리서 자동차 한 대가 달리고 있는 모습만 발견해도 너무 신기해서 ‘저기 자동차가 달리고 있다!’ 라고 환호성을 지르며 자동차가 멀리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곤 하는 것이 일상이 되곤 하였다.


등하굣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시오리 길이나 되는 학교를 오갈 때 어쩌다 자동차 한 대가 뿌연 흙먼지를 날리며 달리는 모습을 벌견하게 되면, 아이들 모두가 달리는 자동차의 뒤를 먼지를 흠뻑 뒤집어쓰며 신바람이 나서 숨을 헐떡이며 쫓아가 보곤 하였다. 그만큼 자동차가 귀하고 신기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자동차만 보면 죽을힘을 다해 따라가다 보면 운이 좋을 때도 있었다. 아주 드물기는 하지만 때로는 자동차에 잠깐 태워주는 마음씨 좋은 분도 있었다. 그 덕분에 그 시절 최고의 기분 좋은 영광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맛볼 수도 있었던 것이다.

1940년대 말경, 초등학교 5학년인가 6학년 사회 교과서에는 뉴욕 시가지를 빼곡히 누비고 있는 자동차의 행렬이 흑백 사진으로 실렸던 것을 본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기만 하다. 그리고 자동차가 그렇게 많은 미국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으며 미국이란 나라가 막연히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그 당시 이미 뉴욕의 자동차 대수는 시민 4명당 1대꼴이라고 배웠던 내용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르곤 한다.


그러나 몇십 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떻게 변했을까. 어쩌면 그 당시의 뉴욕보다 훨씬 더 많은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가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자동차를 보기만 해도 그토록 신기하고 귀하던 내 어린 시절이었지만, 지금은 그게 아니다. 어느새 어딜 가나 자동차가 천대를 받는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말게 된 것이다.


어딜 가나 집 앞에 ‘주차금지’ 팻말이 붙어 있어서 자동차가 설 자리가 없다. 가령 집을 구입할 일이 있다 해도 우선 주차할 공간이 있는가부터알아보는 일이 필수적인 조건이 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잠깐 어딘가 볼 일이 있어도 자동차를 몰고 나가기가 겁이 나고 이만저만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잠깐 볼일 때문에 길거리에 잠시만 정차하고 있다가는 여지없이 감시카메라에 찍혀 어느새 범칙금이 나오기 때문이다.


감시 카메라뿐만이 아니다.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지방 도시에는 주차단속이 특히 심하기로 유명하다. 주차단속을 하기 위해 시청 자동차가 쉴 새 없이 뱅글뱅글 맴을 돌며 감시를 하고 있어서 자칫하다가는 하루 일당이 날아가는 것은 순식간이다.


불법 주차나 정차 단속을 철저히 하고 있는 것은 자동차들의 보다 원활한 흐름을 위해, 그리고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 시행하고 있는 제도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런 제도가 경우에 따라서는 국민들 모두에게 오히려 큰 부담과 불편을 안겨주기도 한다.

그러기에 가령 어딘가에 잠깐 볼 일이 있다 해도 대부분 먼 거리를 걸어가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되다 보니 오히려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감시카메라나 주차단속 자동차가 그만큼 두렵기 때문이다.





어느덧 약 30여 년이 지난 80년대 중반쯤의 어느 날이었다.


잠깐 볼일 때문에 지방에 자동차를 몰고 내려갔다가 다시 서울로 되돌아가던 길이었다. 그때만 해도 지방 도로에는 승용차가 그다지 많지 않고 한적해서 자동차를 몰고 다닐 만했다.


어느 호젓하면서도 인적이 드문 조용한 산길을 한창 기분 좋게 속력을 내면서 집으로 향하고 있을 때였다. 그때 마침 길가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10대 소녀 두 명을 발견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재학 중인 학생쯤 된 나이였다.

난 문득 인심 한번 써볼 생각에서 얼른 그들 앞으로 다가가서 자동차를 멈추게 되었다. 더구나 자동차가 귀하던 시절을 보낸 나였기에 이런 때 좋은 일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차를 세운 나는 그들을 향해 어디까지 가는지, 그리고 같은 방향이면 같이 타고 가자고 친절한 말로 어서 타라고 손짓까지 해 보였다.

그런데 도대체 이렇게 무안한 일이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한동안 경계의 빛이 역력한 표정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두 소녀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아예 외면을 해 버리는 것이 아닌가!


이게 웬 떡이냐며 반가운 기색으로 활짝 웃으며 얼른 차에 탈 줄 알았던 나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예상이 빗나가자 나는 너무 무안했다. 그리고 순간 아차! 하는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다.

아마 그때 그 두 소녀는 나를 치한이나 질이 좋지 않은 사람쯤으로 오인을 한 것이 틀림없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자 난 졸지에 무안만 당하고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한 채 그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치욕스럽고 무안할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좋은 일 한번 해보려다가 뺨을 맞은 꼴이 되고 말았다.


그 후로 난 지금까지 두 번 다시 내 자동차에 잘 모르는 사람을 태워주는 인심을 베풀지 않게 되었다. 아니 친절과 인심을 베풀고 싶어도 베풀 수가 없는 세상으로 변하고 말았던 것이다.


언제부터 우리 사회의 인심이 누군가가 베푸는 따뜻한 인정마저 외면해 버리는 이토록 삭막하고 각박하게 변해버리고 말았나 하는 생각에 마음한 구석이 몹시 무겁고 씁쓸하기 그지없다.

지금은 자동차 뿐만이 아니었다.


옛날과 달라 따뜻했던 인정도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기에 옛날과 달리 가령 어쩌다 예쁘고 귀엽게 생긴 어린아이들에게 함부로 말을 걸어도 곧 오해를 받기 십상이다.


가령 엘리베이터에서 귀엽게 생긴 어린아이를 만났을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그저 어색하게 모른 체하며 외면하고 있어야 한다.


그들의 손을 잡거나 머리를 함부로 쓰다듬어 주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 되고 말았다. 바로 오해를 받게 됨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신고를 당하기가 일쑤이다. 그래서 무서운 세상이 되고 만 것이다.


어쩌다 멀리에서 자동차가 지나가는 모습만 보여도 반가운 마음에 논과 밭에서 일손을 멈추고 두 손을 높이 들어 흔들며 소리소리 지르곤 하던 정경이 지금도 머릿속에 선하게 떠오르곤 한다. 그런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여기던 것이 지금은 그 모두가 아름다운 추억이 되고 말았다.


자동차가 드물고 모든 것이 넉넉하지 못했던 그 옛날이 자꾸만 그리워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아마도 그건 비록 가난하고 넉넉하진 못했지만 이웃 간에 따뜻한 인심이 넉넉했던, 그리고 서로 믿고 의지하면서 살 수 있었던 아름다운 추억 때문이리라!


아아, 비록 가난하긴 했지만 따뜻한 인정이 넘쳤던 그리운 옛날이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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