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만 아는 외로움]
해님이 방긋 웃는 환한 얼굴로 둥실 떠올랐습니다. 해님은 이른 아침부터 고운 빛깔로 반짝이는 금가루를 온 세상에 골고루 뿌려주고 있었습니다.
햇빛은 아파트 베란다의 안쪽 깊숙한 곳까지 밝고 환하게 비추어 주고 있었습니다. 베란다의 깊숙한 그곳, 그곳이 바로 금붕어가 살고 있는 곳입니다.
베란다의 안이 환하게 밝아지자 금붕어의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한숨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렇게 긴 한숨을 쉬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요즈음 금붕어의 습관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 오늘도 또 미치도록 지겹고 따분한 하루가 시작되는구나!’
금붕어는 정말 외롭고 쓸쓸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금붕어에게는 아예 말 동무를 해줄 친구가 없습니다.
늘 이렇게 혼자서 허전하고 쓸쓸한 나날을 보낼 수밖에 없는 처량한 신세가 되고 만 것입니다. 곁에 진구가 없다는 사실이 이토록 가슴이 아릴 정도로 고통스러운 일인 줄은 정말 상상조차 못했던 일입니다. 그것은 차라리 생지옥이나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지금 금붕어가 살고 있는 곳은 15층짜리 아파트입니다. 아파트 8층에 살고 있는 수진이네 집의 베란다였습니다.
베란다에는 돌로 만들어진 절구통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 금붕어는 그 절구통 속에 갇힌 채 혼자 외롭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금붕어가 이떻게 하필이면 그런 질구통 속에서 살게 되었느냐고요?
글쎄요. 그건 아마도 벌써 3년 전의 일로 기억됩니다.
그 날은 수진이가 이 아파트로 새로 이사를 오는 날이었습니다.
"수진아. 이 금붕어는 어떻게 할까? 아까 먼저 살던 집에서 이삿짐을 나르다가 어항을 깨뜨렸지 않니?”
수진이 엄마는 부지런히 이삿짐을 정리하다가 비닐봉지에 든 금붕어가 눈에 띄자 수진이에게 물었습니다. 물이 담긴 흰색 비닐봉지 속에서는 빨간 색깔의 금붕어 한 마리가 한가로이 헤엄을 치며 귀여운 모습으로 놀고 있었습니다.
"글쎄에, 그걸 어떻게 하면 좋지?“
수진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우물쭈물하자 엄마는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 대답하였습니다.
“옳지! 우선 저기 있는 절구통 속에 넣고 기르면 되겠구나!”
엄마는 베란다에 있는 돌로 만든 절구통을 가리켰습니다. 그리고는 곧 절구통 속에 물을 가득 채우고 그 속에 금붕어를 넣었습니다.
“어떠니? 시장에서 산 어항보다도 훨씬 더 색다르면서도 멋이 있어 보이지?”
엄마는 금붕어가 힘차게 헤엄을 치며 노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흐뭇해진 얼굴로 수진이에게 물었습니다. 수진이가 얼른 보기에도 보통 어항들보다 그런대로 어울리고 좋아 보였습니다.
“히야아~~~ 정말 괜찮아 보이는걸! 으음, 그런데 엄마!”
“그런데 또 뭐야?”
“그런데 금붕어가 한 마리밖에 없잖아. 너무 외롭겠어. 쓸쓸하기도 하고. 그때 한 놈이 죽지만 않았어도 괜찮았을 텐데……!”
수진이는 문득 먼저 집에서 살 때 어느 날 갑자기 제 풀로 불쌍하게 죽은 금붕어 생각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그건 그렇지만, 그게 무슨 걱정이니? 네가 다음에 더 예쁜 놈으로 몇 마리 사다 넣으면 되지 않겠니?”
"아참, 그러면 되겠구나! 역시 우리 엄마 머리 좋은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호호호…….“
수진이는 신바람이 난 듯 갑자기 손뼉을 치면서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저런 버르장머리 없는 것 같으니라구. 이젠 엄마를 가지고 제 친구처럼 멋대로 가지고 놀려무나.”
엄마는 그런 수진이가 밉지 않다는 듯 가볍게 눈을 흘겼습니다.
그 다음날부터 절구통 속에는 금붕어가 좋아하는 소라와 조개껍데기가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 했습니다. 어디서 구했는지 예쁜 조약돌과 고운 은모래도 쌓였습니다. 수진이가 신경을 써서 정성껏 모은 것들이었습니다.
비록 절구통 속이기는 하지만 이제 금붕어가 생활을 하기에는 그런대로 아무 불편이나 아쉬움이 없었습니다. 그 모두가 마음씨가 곱고 착한 수진이의 덕분임을 알기에 금붕어는 늘 마음속으로 수진이에게 고마움을 느끼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도 며칠을 가지 않았습니다. 날이 갈수록 금붕어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는 뼈가 저릴 정도로 외로움과 허전함이 마치 앙금처럼 쌓여가기 시작했습니다.
“치이, 먹이만 매일 배부르게 잘 갈아주면 뭘 해, 곁에 친구가 있어야지!”
금붕어는 수진이가 베란다로 나올 때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기대에 부풀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곧 친구를 에려다 준다던 수진이는 어떻게 된 일인지 그때마다 물을 갈아주거나 먹이를 주는 것만이 고작이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어느 새 3년이란 세월이 훌쩍 흘러 버린 것입니다.
“흥, 외롭고 쓸쓸하겠다면서 금붕어를 더 사다 넣겠다더니 그새 까맣게 잊어버렸나?”
금붕어는 외로움과 허전함을 견디다 못해 마음속에 깊은 병이 들어가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몰라주는 이 집 식구들이 너무나 미웠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 누구보다도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는 수진이가 더 밉고 야속하다고 느끼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금붕어는 이제 모두가 귀찮고 싫었습니다. 소라나 조개껍데기도 싫었습니다. 그토록 좋아하던 조약돌이나 모래도 보기조차 짜증이 나고 귀찮았습니다. 그리고 베란다 창문 밖으로 시원스럽게 보이던 하늘도 이제는 답답하게만 느껴졌습니다. 아마 굳이 병명을 말하자면 이런 게 우울증인가 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식욕도 떨어지고 온몸의 힘이 쭉 빠진 채 이제는 겨우 지느리미만 조금씩 흐느적거리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걸 이 집 식구들은 바보처럼 전혀 아무도 눈치조차 채지 못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아니, 어쩌면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누구나 겉으로 드러나는 병은 잘 알아도 다른 사람의 마음속 깊은 곳에 쌓인 병은 아무리 그 병이 깊어도 잘 모르는 법이니까요.
‘다시 그때의 옛날로 돌아갈 수는 없을까?’
금붕어는 문득문득 같은 어항 속에서 친구와 함께 어울려 사이좋게 지내던 3년 전의 일이 가슴이 아프도록 그리워지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있을 때 잘하라’는 말처럼 이제 와서는 후회가 되는 일도 많았습니다.
“내가 왜 그때는 그 녀석을 그토록 귀찮게 굴었지? 지금 생각하면 참 좋은 녀석이었는데…….”
그때, 금붕어와 함께 지내던 친구는 몸뚱이의 색깔이 온통 새까맣고 못생긴 녀석이었습니다. 게다가 눈알이 툭 불거지고 볼품이 없게 생긴 친구였습니다. 그래서 툭하면 ‘못난 놈'이라고 흉을 보곤 했던 일이 그렇게 후회가 될 수가 없었습니다.
금붕어가 그렇게 옛날을 그리워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시골에서 혼자 쓸쓸히 살고 계시던 할머니가 갑자기 수진이네 집으로 올라왔습니다.
"얘, 에미야! 그리고 수진아! 이리 좀 와 보렴!”
집안 구석 여기저기를 꼼꼼히 둘러보던 할머니가 갑자기 큰일이라도 생긴 듯 베란다에서 엄마와 수진이를 큰 소리로 불렀습니다.
“이게 이사올 때 이 절구통속에 넣었다던 그 금붕어냐?”
할머니는 절구통 속에 있는 금붕어를 가리키며 물었습니다.
“예, 맞아요. 그런데 왜 그러세요, 어머니?”
엄마는 무슨 큰 일이라도 난 줄 알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할머니를 바라보며 되물었습니다.
“그런데 왜 절구통 속에 금붕어가 지금도 한 마리뿐이니? 더 사다가 넣었는데 또 죽어버린 거니?”
“……!”
“……!”
할머니의 물음에 엄마와 수진이는 그만 얼굴이 벌겋게 된 채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습니다. 금붕어가 그동안 혼자 외롭게 살고 있는 일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쓰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 있다. 당장 시장에 가서 몇 마리 사 오너라. 너희들은 젊어서 아직 모르는 모양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견디기 어렵고 힘든 것이 바로 외로움이란 걸 말이다.”
할머니는 주머니에 있던 돈을 건네주며 금방 언짢은 목소리로 나무랐습니다.
“어머님, 제가 잘못했어요. 그리고 돈은 도로 넣어두세요. 제가 바로 사올게요.”
엄마는 금방 풀이 죽은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하고는 곧 시장으로 가기 위해 부리나케 밖으로 나갈 채비를 서두르고 있었습니다. 수진이도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 없이 엄마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히야, 신난다! 그러게 외로움을 겪어 본 사람만이 남의 외로움도 아는 모양이로군!”
금붕어는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면서 신바람이 났습니다. 그리고 온몸에서는 갑자기 어느 새 알 수 없는 새로운 힘이 넘쳐흐르고 있었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