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동화 2회 중 2회]
그날도 엄마는 민수를 부축하고 걷는 연습을 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런 엄마의 이마에서는 땀방울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민수야, 너무 힘들지?”
"으응, 힘 들어. 그렇지만 나보다도 엄마가 더 힘들잖아. 그리고 운동을 열심히 하면 옛날처럼 다시 잘 달릴 수도 있다니까 이런 고생쯤은 좀 참아야지 뭐.”
“그래, 그렇고말고. 우리 민수처럼 착하고 장한 아이는 이 세상에 또 없을 거야. 그치?”
엄마는 자신도 모르게 민수를 와락 껴안았습니다. 그런 민수가 그렇게 믿음직스럽고 대견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엄마의 눈에서는 어느새 눈물이 글썽거리며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말을 잘 듣던 민수가 오늘따라 아침부터 엄마한테 짜증을 부리고 있습니다. 민수의 짜증은 저녁때가 되어서도 풀리지를 않았습니다.
“아니, 민수 너 표정이 왜 그러니? 무슨 언짢은 일이라도 있었니?”
회사에서 돌아온 아빠가 갑자기 달라진 민수의 물끄러미 바라보며 조용히 물었습니다.
“…….”
아빠의 물음에도 시무룩한 표정으로 아무 대꾸도 하지 않자, 이번에는 엄마가 몹시 속이 상한 얼굴로 오늘 낮에 있었던 일을 아빠에게 털어놓았습니다.
엄마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난 아빠는 갑자기 껄껄 소리 내어 웃으면서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하하하…. 아암, 우리 민수가 그동안 용케도 그 어려운 힘든 고생을 용케 참아 왔지. 아암, 다른 아이들 같았으면 벌써 싫증이 나서 중간에 그만두고말고, 아무튼 우리 민수는 정말 다른 건 몰라도 참을성 하나만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으하하하…….”
엄마와 민수는 갑자기 달라진 아빠의 그런 태도를 보자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아무 말 없이 한동안 아빠의 눈치만을 살피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아빠가 다시 민수를 향해 인자한 목소리로 말하였습니다.
“민수야, 마음도 답답하고 그런데 우리 오랜만에 바람이나 쐬러 나갈까? 아빠가 모처럼 민수를 위해 드라이브를 해줄 테니까 말이야. 어때, 너도 좋지?”
아빠는 곧 싫다는 민수를 부축하더니 밖으로 나갔습니다. 민수기 한사코 싫다고 하는데도 억지로 달래가면서까지 밖으로 나가더니 자동차에 태웠습니다.
자동차는 어느 새 시내를 미끄러지듯 빠져나가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자동차가 한적한 교외로 접어들자, 공기는 시내보다 한층 맑게 느껴졌습니다. 달리는 승용차 안에서 민수는 차창 밖의 풍경을 아무 말 없이 물끄러미 내다보고 있습니다.
자동차는 마침내 작은 개울과 둑이 있고, 조그만 밭뙈기들이 띄임띄엄 있는 어느 교외의 산기슭 밑에 와서 멈추었습니다.
“민수야, 너 여기가 어딘지 기억나지?”
"…….”
민수는 아빠의 물음에 대답 대신 고개를 조금 끄덕여 보였습니다. 그 곳은 2년 전만 해도 아빠와 엄마, 그리고 민수가 토요일과 일요일이면 자주 찾아오던 주말 농장이었습니다. 시내에서 그리 먼 곳도 아니지만, 경치도 그만하면 괜찮은 곳이었습니다.
아빠는 민수를 자동차에서 조심스럽게 내려 준 후 부축을 해 주면서 다시 물었습니다.
“민수야, 저 나무를 보렴. 너 혹시 아빠하고 저 나무를 같이 심던 일 생각나니?”
이리 꼬불 저리 꼬불 꼬부라진 둑 길가에 쭉 늘어서서 자라고 있는 그 나무는 아빠의 키보다 세 배나 크게 자란 미루나무였습니다.
“저 나무가 그때 아빠하구 같이 심은 나무라구?”
민수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그제야 등 그렇게 된 눈으로 되물었습니다.
“응, 그렇고말고. 몰라보게 자랐지? 저 나무를 심은 지도 벌써 3년은 되었나 보다. 너도 기억나지? 그때 저 미루나무를 심을 때만 해도 아마 우리 민수의 팔의 길이보다 작으면 작았지 더 크지는 않았을걸.”
아빠의 설명을 듣고 보니 민수는 그제야 3년 전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바로 3년 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민수가 1학년이 되던 해의 식목일에 아빠는 민수를 데리고 이곳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식목일 기념으로 저 미루나무를 같이 심있던 일이 바로 엊그제 일인 것만 같았습니다.
그리고 2년 전에 왔을 때만 해도 미루나무는 지금처럼 지렇게 크지는 않았습니다. 민수의 키보다 조금 컸을까 말까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다시 2년 후에 저렇게 나무가 자랐다니 얼른 믿어지지를 않았습니다.
아빠와 민수는 어느새 미루나무 앞에 나란히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민수야, 저 나무들이 저렇게 자란 걸 보고 너도 놀랐지?”
“응, 정말 그때 우리가 심은 나무라고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걸.”
“그래. 네 말이 맞았다. 모든 나무들은 우리들이 눈으로 자세히 보아도 자라는 모습이 절대로 눈에 띄지를 않지. 그렇지만 우리들이 보지 않는 사이에 혼자 스스로 저렇게 몰라보게 열심히 자라고 있는 거란다. 힘이 든다고 투정을 부리기나 짜증소리 한마디도 내지 않고 말이야.”
“응, 아빠 말이 맞아. 나무들은 참 이상해. 아무리 유심히 보아도 자라는 게 눈에 보이지 않는데 며칠 뒤에 보면 어느 틈에 몰라볼 정도로 크게 자라 있거든.”
아빠의 말에 민수는 자신도 모르게 맞장구를 치고 있었습니다.
"민수야!“
아빠가 이번에는 한쪽 팔로 민수의 어깨를 감싸 안으면서 더욱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민수를 불렀습니다.
"응?“
”저 나무들이 자라는 걸 보고 뭐 혹시 느껴지는 게 없니?“
“……?”
“너도 처음에 다리를 다쳤을 때는 아예 일이 서지조차 못하지 않았니? 그런데 오랫동안 꾸준히 운동을 하다 보니까 지금은 이렇게 목발이라도 잡고 걸을 수 있게 되지 않았니?”
“……?”
"누구나 희망이 없다는 것은 주검이나 아무 다름이 없단다. 지금도 아빠는 굳게 믿고 있단다. 우리 민수도 앞으로는 더욱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운동을 해 준다면 머지않아 저 미루나무보다 더 크게, 그리고 틀림없이 더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고 말이야.”
“……!!”
민수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었습니다. 정말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아빠의 이야기를 들은 민수는 갑자기 가슴속 깊은 곳으로부터 꿈틀기리면서 치솟아 오르는 용기를 느꼈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이 어려움을 참고 일어서야 하겠다는 벅찬 감동에 젖어 아빠의 물음에 얼른 대답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민수야, 아빠와 엄마를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 줄 수 있겠지?”
“응, 아빠 나 이번엔 정말 굳게 약속할게. 내일부터는 전보다 더 열심히 공부도 하고 운동도 할 생각이야. 그리고 저 미루나무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크게 자라듯이 나도 크게 자랄 거야.”
“아암, 그래야 하고말고, 우리 민수가 누구 아들인데.”
아빠는 자신도 모르게 두 팔로 민수를 힘주어 꼭 껴안고 말았습니다. 그런 아빠의 눈에서는 어느새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아빠의 품에 안긴 민수의 눈에서는 어느 새 운동회 때 달리기에서 1등으로 골인을 하고 있는 자신의 자랑스러운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