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성호 너 반장이면 단 줄 알아? 반장이면 반장 노릇을 똑바로 해야 될 거 아냐? 너 이따가 공부 끝난 후에 공터로 나와! 안 나오면 알지?“
”……?!“
마침내 미리 어느 정도 짐작했던 대로 터질 것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성호는 하루 종일 공부가 머릿속에 들어오지를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까 눈을 사납게 부라리며 철구가 내뱉은 한 마디가 자꾸만 귀에 가시처럼 거슬렸습니다.
공터로 나오라고 말한 것만 보아도 오늘은 결국 일이 크게 벌어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학교 뒤쪽에는 으슥하면서도 작은 공터가 있었습니다. 그 공터는 철구가 마음에 들지 않는 아이를 볼 때마다 불러다가 혼을 내주는 단골 장소이기도 하였습니다.
철구라면 반에서는 물론 학교 전체에서도 주먹을 잘 쓰기로 소문이 난 마치 조폭과도 같은 무서운 아이였습니다. 작년, 그러니까 철구가 5학년 때는 한 학년 위인 상급생 형을 병원에 갈 정도로 개 패듯이 두드려 패서 며칠간 정학을 당한 적도 있는 화려한 경력을 가진 무서운 아이였습니다.
그 뒤부터는 반 친구들은 물론, 전교생들이 철구만 보면 마치 고양이 앞에 쥐처럼 슬슬 꽁무니를 뺄 정도로 무서운 존재가 바로 철구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철구가 갑자기 방과 후에 만나보자는 말에 겁이 안 날 리가 없었습니다.
'철구가 왜 나오라고 하는 거지? 그때 그 일 때문에 또 그러는 길까?‘
성호는 자꾸만 겁이 나서 일손이 제대로 잡히지 않았습니다. 공터에서 만나자는 말이 더욱 두렵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 내가 너무 대들었던 건 아닌가?‘
성호는 문득 얼마 전에 교실에서 철구와 종찬이에게 대들며 말다툼을 했던 일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이제 와서는 괜히 대들었다는 생각에 후회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 좋아! 나한테 잘못이 있어서 철구가 때린다면 맞아 주지 뭐. 사람이 한 번 죽시 두 번이까지 죽겠어?’
성호는 일단 마음을 다져 먹기로 하였습니다. 그러자 바짝 긴장했던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지는 것 같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방과 후에 철구를 만날 생각을 할 때마다 가슴이 두 방망이질을 하며 곧 숨이 멎을 듯 두근거리곤 하였습니다.
이윽고 하루 공부가 모두 끝나고 교실 정리까지 마친 성호는 철구가 미리 정해 놓은 학교 뒤에 있는 공터를 향해 발걸음을 옮겨 놓고 있었습니다.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였습니다.
“야, 임마! 왜 이제 오는 거야? 내 말이 말 같지 않아?”
”…….“
성호가 공터에 나타나자 어느 틈에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철구의 거친 목소리가 가뜩이나 겁에 질려 있는 성호의 가슴은 더욱 떨리고 있었습니다.
성호는 흠짓 놀란 얼굴로 철구가 서 있는 모습을 힐끗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아니, 저 자식도 벌써 와 있잖아?‘
공터에는 철구 혼자만 와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미리 짐작했던 대로 종찬이도 함께 와서 거만스럽게 버티고 서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진뜩 겁을 먹고 있던 성호의 가슴이 다시 두 방망이질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성호가 보기에는 그들의 눈은 마치 여러 날을 굶주린 맹수들의 눈초리로 성호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호가 나타나자 더욱 거만스럽게 버티고 서서 마치 오랜만에 맛있는 먹잇감을 발견한 사나운 맹수들의 모습처럼…….
“야 임마, 빨리 오지 않고 왜 이렇게 늦었지?”
성호가 가까이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철구가 먼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교, 교실 정리를 좀 하느라고…….”
성호의 목소리는 자신도 모르게 떨려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그들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칠구가 다시 다그치듯 성이 난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야! 너 내가 왜 보자고 했는지 알지?”
“…….”
성호는 대답 대신 고개만 젓고 있었습니다.
"그래? 너 정말 요즈음 반장으로서 잘못한 거 생각이 안 난다 이 말이지?“
“…….”
성호가 이번에도 대답 대신 고개만 약간 끄덕이고 있었습니다. 성호는 정말 철구가 왜 이러는지 답답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았지만, 철구한테 잘못한 일이라고는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호가 고개만 끄덕이자 이번에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종찬이가 끼어들며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너 정말 끝까지 이렇게 시치밀 떼어도 되는 거야? 우릴반 아이들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 말이야.”
성호는 하도 겁에 질린 나머지 입안에 고였던 침을 꼴깍 삼키고 나서야 힘없는 목소리로 겨우 입을 열었습니다.
“정말이야. 생각이 안 난단 말이야, 나한테 무슨 잘못이 있는지 얘기를 해 줘, 그래야 나도 고칠 게 있으면 고칠 게 아니야.”
성호의 목소리는 여전히 겁에 질려 목구멍 속으로 자꾸만 기어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언젠가 교실에서 그들에게 무섭게 대들던 때와는 아주 딴판이었습니다.
"어쭈, 너 정말 끝까지 이렇게 오리발 내밀 거야? 주먹맛을 봐야 순순히 불겠어? 그땐 교실이었지만 여기는 지금 우리 셋밖에 없는 공터라는 것을 몰라서 그래?“
철구의 목소리는 더욱 거칠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금방이라도 주먹을 날릴 것 같은 기세로 얼굴빛까지 벌겋게 상기되고 있었습니다.
“정말이야. 난 정말 내가 뭘 잘못했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니까.”
“흥, 목소리가 떨리는 걸 보면 이제야 겁이 좀 나긴 나는 모양이군. 그렇다면 얼른 사실을 밝혀야 하는 거 아니야?”
철구와 종찬이가 계속 으름장을 놓으며 다그치고 있었지만 성호는 그저 답답하기만 하였습니다.
“난 너희들이 왜 이렇게 화가 나서 이러는지 난 정말 모른다니까.”
“히야, 이 자식 좀 봐. 기가 막혀서 말이 다 안 나오네. 이걸 정말 어떻게 하지?”
종찬이는 종찬이 대로 성호가 너무나 뻔뻔스럽고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입이 딱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더욱 성질이 난 목소리로 다시 소리쳤습니다.
“이런 양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놈 같으니라구. 너 같은 놈이 어떻게 반장이 되었는지 정말 한심하다. 한심해. 너를 반장으로 뽑아 준 반 아이들도 그렇지만 너 같은 놈을 철석같이 믿고 있는 우리 담임 선생님이 더 불쌍하다. 야, 철구야, 안 그러냐?“
철구도 종찬이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얼른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런 놈은 정말 우리 반은 물론이고 전교생에게 이 사실을 확 퍼뜨려서 단단히 창피를 주거나 경찰에 신고를 해야 된다니까.“
종찬이의 말에 철구도 맞장구를 치며 끼어들었습니다.
“맞아. 이런 놈은 당장 깜빵에 보내야 한다니까.”
종찬이의 말이 끝나자 철구가 다시 거친 목소리로 겁을 주고 있었습니다.
"맞아. 선생님들도 눈이 멀었지. 이런 놈을 정학이나 퇴학을 시키지 않고 왜 가만히 두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니까. 너 정말 끝까지 이렇게 불지 않고 버틸 작정인 거니?“
“…….”
성호는 성호대로 아무 대꾸도 못하고 그저 고개만 숙인 채 가만히 있었습니다. 뭐라고 잘못 대꾸를 했다가는 당장에 주먹이 날아올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들에게 지금까지 맞지를 않고 있는 것만 해도 매우 다행한 일이라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질머리가 천하에 불덩이보다도 더 급하고 무서운 철구가 아직까지 주먹을 쓰지 않고 있는 것만 해도 여간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번에는 성호가 반장이 된 것을 늘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던 종찬이가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너 반장이 되었다고 해서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모양인데 정말 이래도 되는 거냐?“
“…….”
성호는 철구의 주먹을 믿고 그를 따라다니며 덩달아 설치고 있는 종찬이가 철구보다 더 아니꼽고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습니다. 성호가 종찬이를 그렇게 미워하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사실 5학년을 마칠 때까지만 해도 종찬이는 성호와 단짝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붙어다니며 사이좋게 지냈던 종찬이였습니다. 그런 종찬이가 어느 날부너 종찬이를 버리고 철구한테 붙어 다니며 성호를 볼 때마다 그렇게 괴롭힐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6학년으로 올라와서도 성호와 다시 같은 반이 되자, 너무나 좋아 필쩍 뛴 것도 바로 종찬이였습니다. 그건 성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공부도 잘하고 마음씨도 착한 종찬이와 친하게 지내게 된 것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종찬이와 갑자기 사이가 벌어지게 된 것은 바로 반장 선거 때문이었습니다. 그 이유가 아니라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성호와 갑자기 사이가 벌어질 아무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종찬이는 학년 초 반장 선거 때에 후보로 나왔지만 아슬아슬하게도 한 표 자이로 성호에게 반장 자리를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정말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뜻밖의 일이 었습니다.
반 아이들은 당연히 종찬이가 반장이 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종찬이는 저학년 때에도 여러 차례 반장을 한 경력이 있는 누구나 인정하는 모범생이었기 때문입니다.
“우와아! 결국 성호가 이겼는걸!”
“종찬이가 떨어졌잖아?”
투표 결과 성호가 예상을 뒤엎고 반장이 되자, 아이들의 눈이 일제히 둥그렇게 되면서 제멋대로 지껄이더니 그다음에는 성호에 대한 칭찬으로 떠들썩하게 되었습니다.
"왜? 성호가 반장을 하면 안 될 일이라도 있니? 너희들이 몰라서 그렇지 성호도 공부도 몹시 잘하는 숨은 인재란 말이야.“
"어디 공부 실력뿐이니? 마음씨도 하늘처럼 너그럽고 착하단 말이야.“
"맞았어, 성호네는 돈도 많고 재산도 또 어마어마하게 많은 부자래. 그래서 난 이번엔 처음부터 성호가 꼭 반장이 될 것을 짐작했다니까.“
성호는 반장 선거를 할 때 당당히 반장으로 당선된 그 때의 일이 문득 떠오를 때마다 지금도 저절로 신바람이 날 수가 없었습니다. 전에는 어쩌다 부반장을 한두 번 해보기는 했지만 반장으로 뽑히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호의 기분과는 반대로 종찬이의 기분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꼭 반장이 될 것으로 굳게 믿고 있다가 그만 그것도 고작 한 표 차이로 낙선이 되자 창피하고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가장 친하게 지내던 성호 밑에서 그의 지시를 따르며 1년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그게 더 은근히 아니꼽고 자존심이 상했던 것입니다. 반장 선거로 인해 그때부터 성호와 종찬이와의 사이는 차츰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래, 맞았어, 종찬이와의 사이가 이렇게 된 것은 그 이유말고 다른 건 아무것도 없어. 그렇다면 단 한 가지 그까짓 이유로 종찬이의 마음이 이렇게 돌변했다면 종찬이는 그야말로이 세상에서 가장 비겁하고 나쁜 놈이란 말이야!’
거기까지 생각을 하게 되자. 지금 내 앞에서 여유만만하게 버티고 서서 거드름을 떨고 있는 종잔이가 그렇게 미워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 순간, 성호의 머릿속에서 문득 번갯불처럼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성호가 먼저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습니다. 기왕에 벌어진 일인데 언제까지나 입을 다물고 있을 수는 없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아, 참! 이제야 생각이 났어.”
“무슨 생각?”
철구와 종찬이의 눈이 금방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이 둥그렇게 되어 물었습니다.
“그 일이라면 내가 잘못했어. 그리고 지금도 반성을 하고 있는 중이란 말이야.”
“그 일? 그 일이 뭔데?”
“그 일이라면 나도 기억하고 있어, 하지만 지금은 우리 집 사정이 좋지 않아서 그렇지 언제라도 사정만 좋아지면 약속은 꼭 지킬 생각이란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