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 귀천은 없다]
“얘, 에미야! 좀 귀찮겠지만, 내일 아침에도 오늘처럼 도시락 좀 싸다오. 네가 오늘 싸준 도시락 반찬은 정말 내 입맛에 꼭 맞더구나. 허허허…….“
샤워를 끝낸 할아버지가 아직 물기가 채 마르지 않은 몸을 수건으로 닦아내면서 며느리를 향해 말했습니다.
"내일 아침에도 또 나가시려고요?“
“아암, 나를 기다리고 있는 꼬마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넌 잘 모르지? 그리고 그 꼬마 아이들이 내가 나타나기만 하면 어찌나 좋아하는지 이젠 하루라도 안 나가곤 못 배기게 생겼는걸. 허허허…….“
할아버지는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이렇게 대답하고는 연신 흘러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소리내어 웃고 있었습니다.
며느리는 할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가 안스러운 표정이 되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습니다.
"아버님, 아무리 그래도 그렇죠. 아버님 연세가 올해 몇이신데 그런 걸 끌고 다니세요? 그러시다가 큰일이라도 나면 어쩌시려고요. 그러니까 이제 그 일은 그만두시고 집에서 편히 쉬시든지 심심하면 친구들과 어울려 놀러다니시기나 하시는 게 어떠신지요?“
며느리의 이야기를 들은 할아버지의 밝았던 표정이 금세 어두워지고 말았습니다.
“아니, 얘가 아직도 내 말을 못 알아들은 게로구나. 일을 하는데 나이가 무슨 문제니? 아직 이렇게 수족이 멀쩡하고 건강한데 날 보고 그냥 답답한 방구석에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사람은 그저 건강할 때 자꾸만 움직이고 일을 해야 오래 살게 되는 법이란다.”
할아버지의 약간 노한 듯한 대답에 며느리는 더 이상 말을 붙여볼 수가 없었습니다.
"에이구, 집에 가만히 계시면 얼마나 좋을 텐데 왜 자꾸 저러시는지 알 수가 없단 이 말이야.”
할아버지가 방으로 들어간 뒤에야 며느리는 속이 상하다는 듯 가느다란 한숨을 내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의 고집은 그 누구도 꺾을 수가 없었습니다. 웬만한 사람들은 되도록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편히 지내려고 야단들인데 할아버지만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일단 사람의 탈을 쓰고 태어났다면, 잠을 자고 밥을 먹는 시간 외에는 늘 무엇인가 부지런히 움직이고 일을 해야 한다고. 일은 하지 않고 빈둥빈둥 놀고먹기만을 좋아한다면 짐승보다도 못한 인간이란 말이야.”
할아버지는 늘 틈만 있으면 입버릇처럼 이렇게 판에 박은 듯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곤 하셨습니다. 그래서 식구들은 이제 귀에 못이 박힐 정도였습니다. 그러던 할아버지였기에 정년 퇴임을 한 뒤에도 여전히 그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으로 계시다가 정년 퇴임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퇴임을 한 지 며칠 뒤, 잠시 밖으로 바람을 쐬기 위해 친구들을 만나러 간 줄로만 알았더니 난데없이 덜컥 웬 목마를 끌고 들어오셨습니다.
“아니, 아버님, 이게 웬 거예요?”
할아버지의 인기척에 대문을 열어 주러 나갔던 며느리는 할아버지가 끌고 온 목마 수레를 보고는 곧 두 눈이 둥그렇게 되어 물었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그런 물음이 귀찮다는 듯 조금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하였습니다.
“허어, 보면 모르겠니? 이게 바로 꼬마 아이들이 좋아하는 목마 아니니?”
“글쎄, 그건 알고 있지만 이게 웬 거냐고요?”
“웬 거라니? 내가 하나 사 왔지. 이런 걸 누가 거저 준다든?”
"아니, 그러니까 그걸 사다가 뭘 하시려고요?“
“뭘 하기는 뭘 해. 끌고 다니면서 장사를 해야지.”
“그러니까 누가 이걸 끌고 다니면서 장사를 하느냐고요?”
“누군 누구야. 이 집에 목마를 끌고 다니면서 장사 할 사람이 나 말고 또 누가 있겠니?”
"네에? 아버님이 이걸 끌고 다니면서 장사를 하시겠다고요?“
며느리는 그만 너무나 기가 막혀 입이 딱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더 이상 아무 말을 못 하고 할아버지의 얼굴만 멀뚱한 표정이 되어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런 며느리를 보자 할아버지가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 되묻게 되었습니다.
“아니, 너 표정이 왜 그러냐? 내가 목마를 끈다는 게 그렇게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거냐?”
“그렇고말고요. 그럼, 아버님은 아무렇지 않단 말씀이세요? 아범이 그런 걸 알기라도 하면 당장 난리를 칠 텐데요.”
“아니야, 애비가 이런 일을 한다는데 건방지게 난리는 무슨……. 네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걸 보니 내가 보기에는 너도 아직 세상을 살았어도 헛살았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쯧쯧쯧…….“
할아버지의 표정이 금세 어두워지면서 언짢은 기색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며느리의 그런 생각이 몹시 못마땅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날 저녁이었습니다.
직장에서 돌아오자마자 아내를 통해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은 남편은 아내와 함께 할아버지의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버님, 제발 다른 건 몰라도 그것만은 그만두십시오. 아버님이 목마를 끄신다니 벌써 망령도 아니고 그게 어디 될 말씀입니까? 그러시다가 길거리에서 잘 아는 친구나 제자를 만나면 그게 무슨 망신입니까? 혹시 다른 일이라면 몰라도 제발 저를 봐서라도 그 일만은 그만두세요.”
”…….“
간절히 말리고 있는 아들의 이야기를 한동안 듣고 있던 할아버지는 읽고 있던 책에서 눈을 떼고는 ‘탁’ 소리가 나게 덮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아들의 말이 몹시 못마땅하다는 듯 벌컥 화를 내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니, 그래 명색이 대학까지 나온 네 입에서 나온다는 소리가 고작 그거란 말이냐? 도대체 그동안 학교에 다니면서 무얼 배웠는지 모르겠구나. 직업의 귀천은 없는 법이란다. 너 혹시 이런 이야기 들어본 적이 있니??"
"어떤 이야기 말씀인지요?"
"오래 전에 미국에서는 대착 총장을 하던 분이 퇴임을 하고나서 바로 그 학교 수위로 들어가서 일을 했다는 이야기 말이다.?
"글쎄요.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요?"
"그런 훌륭한 분들도 있는데 내가 목마를 끌겠다는 게 뭐가 그렇게 창피하고 못마땅하다는 건지 어디 말 좀 해 보렴.”
”……?“
”……?“
뜻밖에도 할아버지가 너무나 화를 내는 바람에 아들은 잠시 머뭇거리며 눈치를 보다가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제가 아버님의 뜻을 몰라서 그러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학교에서는 가장 웃어른인 교장 선생님 직책을 가지고 계시던 분이 갑자기 목마를 끄시겠다니 드리는 말씀 아닙니까? 아무리 직업의 귀천이 없다고는 하지만 그건 너무하지 않습니까, 아버님.“
”…….“
아들의 말이 끝나자 이번에는 옆에서 잠자코 듣고만 있던 며느리도 한마디 거들었습니다.
“예, 저도 아범 말씀이 옳은 것 같아요. 아버님, 저희들의 얘기를 언짢게만 듣지 마시고 정 심심해서 견디실 수가 없으시면 다른 일을 찾아서 해 보시는 게 어떠신지요?”
며느리의 이야기가 끝나자 할아버지가 이번에는 더욱 크게 노해서 소리쳤습니다.
“난 그렇게는 못해! 내가 벌써부터 계획했던 일이니까 다시 또 그 얘기를 꺼내려거든 어서들 내 방에서 썩 나가란 말이야!”
아들과 며느리는 더 이상 이야기를 붙여 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만 할아버지의 서재에서 물러나고 말았습니다.
그다음 날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아침 식사를 끝내기가 무섭게 마음먹었던 대로 누가 뭐라든 목마 수레를 끌고 집을 나서고 말았습니다.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으로 도시락을 건네주는 며느리에게는 엊저녁의 노했던 표정과는 달리 아주 활짝 밝아진 얼굴로 말했습니다.
“얘, 에미야! 내가 이런 일을 한다고 조금도 부끄러워하거나 창피해 할 것 없다. 오히려 이런 일을 안 하고 빈둥거리며 놀고 있는 게 창피한 거란다. 알겠지? 자, 그럼 다녀오련다.”
할아버지는 이렇게 며느리를 안심시켜 주고는 신바람이 난 표정으로 기어이 목마 수레를 밀고 골목길을 빠져나갔습니다.
♬ 엄마 앞에서 짝짜꿍
아빠 앞에서 짝짜꿍 ♬
할아버지가 밀고 가는 목마 수레에서는 어느 새 경쾌한 동요 가락이 요란하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수레에 매달린 양쪽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동요 곡에 맞추어 여섯 마리의 빈 목마도 덩달아 겅중겅중 신이 난 듯 연신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도 덩달아 신바람이 났습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동요 가락 모두가 어린이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들이었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옛날에 풍금으로 아이들에게 가르쳤던 노래들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창피한 줄도 모르고 스피커에서 나오는 곡에 맞추어 덩달아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했습니다. 노랫말이 얼른 떠오르지 않을 때는 콧노래를 대신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야! 목마 할아버지다!”
“저 할아버지는 아이들 노래도 잘한다. 그치?”
“할아버지한테 잘한다가 뭐니? 잘하신다고 그래야지.”
“하하하…….”
“호호호…….”
신바람이 나서 노래를 부르며 목마를 밀고 있는 사이에 어느새 시장 근처에 있는 공터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곧 적당한 곳에 수레를 멈추고 자리를 잡았습니다.
"할아버지! 목마 한 번 타는 데 값이 얼마야?“
“지금 가지고 있는 돈이 요것밖에 없는데 조금만 태워 주세요.”
목마 수레를 멈추자 스피커 소리를 듣고 뒤에서 졸졸 따라다니던 조무래기들이 우르르 모여들며 저마다 한마디씩 지껄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오냐, 오냐. 할아버지도 오늘은 첫 개시니까 조금씩만 받겠다. 할아버지가 돈을 조금 받는 대신 집에 가서 엄마나 아빠 말씀 잘 들어야 한다. 알겠지?“
”네네, 그럴게요.“
할아버지는 아이들이 돈을 주는 대로 받고는 꼬마들을 안아 목마 위에 테웠습니다. 여섯 마리의 목마 위에 꼬마들을 한 명씩 태우다 보니 어느새 자리가 꽉 찼습니다. 그러자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꼬마 몇 명이 금방 울상을 지으며 안달들이었습니다.
"허허허……. 이거 목마가 없어서 어쩌냐! 너희들은 조금만 참고 기다릴겸. 그 대신 이따가 할아버지가 더 많이 태워 줄게. 알겠지?”
할아버지는 목마에 타지 못한 아이들을 이렇게 달래 놓고는 스피커 소리에 맞춰 다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꼬마들도 아는 노래가 나올 때마다 신바람이 나서 노래를 같이 따라서 불렀습니다.
“야! 이 할아버지는 정말 노래도 잘 부른다. 우리 할아버지보다 훨씬 더 잘 불러.”
"그래, 우리 아빠나 엄마보다도 더 잘 부르는걸.”
"야! 정말 웃기기도 하고 재미있는 할아버지다. 그치?“
"응 그래. 맞아. 동요 가수 할아버지야.”
꼬마 아이들은 모두가 신이 나서 제멋대로 떠들어댔습니다. 꼬마들의 그런 소리를 듣자 할아버지는 더욱 신바람이 나서 이번에는 손뼉으로 장단까지 맞추면서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지나가던 어른들도 그 모습을 힐끗힐끗 바라며보며 웃음을 참지 못합니다.
그렇게 즐겁게 하루를 보내는 동안 어느새 저녁때가 되어 땅거미가 서서히 내리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에게는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즐거운 하루를 보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재미있고 즐거울 수가 있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목마를 끌기로 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야. 꼬마들이 그렇게 좋아하고, 또 학교를 그만두었음에도 매일 이렇게 꼬마들을 상대할 수 있다니 얼마나 보람있는 일이냐 이 말이야. 아암 잘한 일이고말고. 허허허…….“
하루 종일 꼬마들한테 시달리는 일이 피곤하고 힘에 부치는 일이기는 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할아버지의 발걸음은 가볍기만 하였습니다.
"하루 일을 해보시니까 어떠셨어요? 견딜만 하셨어요?”
할아버지가 집에 돌아오자 며느리가 할아버지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습니다. 며느리는 멋도 모르고 목마를 끌고 나갔다가 너무나 힘이 들어 다시는 목마를 끌지 못하겠다는 할아버지의 대답을 은근히 기대하였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대답은 며느리의 기대를 무너뜨리고 말았습니다.
"아암, 조금 힘들긴 해도 견딜만 하고말고, 내가 이 일을 시작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라니까. 그래서 앞으로 나는 수족이 떨어질 때까지는 계속 목마를 끌 생각이다. 저절로 운동도 되고 또 밥맛도 생기고 이 얼마나 좋은 일이냔 말이다. 허허허…….“
그 뒤로부터 할아버지는 매일 출근을 하듯 목마를 끌고 어김없이 아침 일찍 나갔다가 저녁 늦게야 돌아오는 게 일과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어쩌다 비나 눈이 많이 내리는 날만을 제외하고는 일요일도 없었습니다. 비나 눈이 많이 와서 못 나가는 날 할아버지는 하루 종일 집에서 안절부절못하면서 마음을 잡지 못했습니다.
“이녀석들이 오늘은 집안에만 갇혀서 뭣들을 하고 있누? 에이, 망할 놈의 날씨 같으니라구.”
그리고는 하루 종일 몇 번이고 하늘을 쳐다보면서 비나 눈이 멈추기를 초조하게 기다리며 조바심을 내곤 하였습니다.
“아버님, 이런 날은 아이들도 집에서 장난감이나 컴퓨터, 그리고 재미있는 놀이를 하면서 얼마든지 잘 놀고 있을 텐데, 웬 그런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계세요?”
할아버지가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다 못해 며느리의 말에 할아버지는 고개를 크게 저었습니다.
"아니다. 거 모르는 소리 좀 그만 하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내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넌 모른다니까.“
하고 여전히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하늘만 바라보곤 하였습니다. 할아버지의 결심이 그렇다 보니 어쩌댜 몸이 조금 불편하다고 해서 안 나갈 할아버지가 아니었습니다. 몸살이 나도 할아버지는 굳이 목마를 끌고 나가곤 하는 할아버지였습니다.
그렇게 몸이 불편한 날은 약국에 가서 진통제나 해열제를 사서 주머니에 넣고 나갈 정도로 그저 자나깨나 목마 생각뿐이었습니다. 목마를 좋아하는 것인지 아이들을 좋아하는 것인지, 아니면 일을 좋아하는 것인지 분간을 못할 정도로 할아버지의 목마에 대한 사랑은 그야말로 대단하였습니다.
그렇게 여러 달이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하루는 말끔한 신사복 차림의 젊은이 몇 명이 갑자기 할아버지 댁을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이 댁이 교장 선생님 댁 맞죠? 우연히 시장 골목을 지나가다가 교장 선생님을 멀리서 뵙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생각다 못해 이렇게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그 젊은이들은 모두가 오래전에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며느리로부터 뜻밖의 푸짐하면서도 융숭한 대접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푸짐한 대접을 받아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이상하다는 듯, 그리고 그제야 안심이 된다는 듯 하나같이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어 되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들이 갑자기 할아버지 댁에 찾아오게 된 것은 할아버지가 목마를 끌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오죽 살림살이가 쪼들렸으면 할아버지가 목마를 끌게 되셨을까 하는 걱정을 하고 얼마간의 살림에 도움을 드릴 갸륵한 생각을 가지고 찾아왔던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또 어느 날은 젊은 아주머니들이 한 떼 우르르 몰려오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의 손에는 라면, 쌀, 계란 한판, 그리고 심지어는 헌 옷가지 등을 들고 있었습니다.
“실례지만 이 댁이 혹시 목마 할아버지 댁이신가요?”
“예, 그렇습니다만 어떻게 들 오셨는지요?”
느닷없이 아주머니들이 몰려오자 며느리가 둥그렇게 놀란 눈이 되어 되묻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며느리의 차림새와 고급스러운 집을 번갈아 훑어보고는 아무래도 잘못 찾아온 게 아닌가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물었습니다.
“저희들은 저 아래 시장 골목에 사는 사람들이거든요. 그런데 목마 할아버지가 우리 어린애들한테 어찌나 고맙게 잘해 주시는지 그 고마움에 조금이나마 보답해 드릴까 하고 이렇게 찾아왔습니다만…….“
아주머니는 말끝을 흐리며 왠지 잘못 찾아온 게 아닌가 하는 표정으로 우물쭈물하고 있었습니다. 그 아무머니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찾아온 아주머니들 모두가 어리둥절한 표정들이었습니다.
”……!“
며느리는 아주머니들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이게 모두 할아버지 때문에 벌어진 일임을 짐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주머니들을 향해 할어버지가 젊어서부터 일에 대한 욕심이 유난스러우셔서 퇴직하자마자 그런 일을 하고 계시다는 것을 자세히 설명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할아버지는 옛날부터 자신이 노력하지 않고 남이 그냥 주는 물건이나 돈은 절대로 받은 적이 없다는 것도 덧붙여 설명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자 아주머니들은 말문이 막힌 채 입이 딱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한동안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혀 있던 아주머니들 중의 한분이 다시 물었습니다.
“아니, 그럼 교장 선생님까지 하신 분이 그 힘든 목마를 끌고 다니시는 이유가 뭘까요?”
“글쎄요. 저의 아버님께서는 평소에도 늘 일을 하지 않고 밥을 먹는다는 것은 짐승이나 다를 바 없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씀하곤 하셨어요. 그래서 아마…….”
그러자 아주머니들은 그제야 조금은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사정도 모르고 우리들은 그저 불쌍한 노인네로만 생각하고…….”
두 번이나 그런 생각지도 않았던 일을 당한 며느리는 그날 저녁 남편이 돌아오기가 무섭게 낮에 있었던 일을 자세히 들려주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아내와 함께 할아버지의 방을 노크하게 되었습니다.
“아버님! 이제 그 일은 제발 그만두시는 게 어떠신지요? 아버님이 목마를 계속 끌고 다니시는 바람에 우리를 돕고 싶다는 사람들이 벌써 두 차례나 벌어지지 않았습니까? 지난번에는 제자들이 찾아오고, 또 오늘은 아주머니들까지 심지어는 헌 옷가지를 들고 와서 돕겠다고 하지 않습니까?”
“…….”
아들의 이야기를 한동안 아무 말없이 듣고 있던 할아버지는 잠시 망설이다가 무거운 입을 열었습니다. 이번에는 웬일인지 전혀 화가 난 기색이 없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얘들아! 내가 그런 일을 하는 것이 너희들한테 그렇게 부끄럽게 느껴졌다면 정말 미안하게 됐다. 그리고 오들은 내가 너희들한데 좀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 좀 들어 주겠니?”
"예, 무슨 말씀인지 해 보시지요요."
“그래, 고맙구나. 얘기가 좀 길어질 것 같구나.”
“……?”
“……?”
할아버지는 뼈가 저리고 고통스럽기만 했던 지난 날들의 고생들이 새삼 머리에 떠오르는 듯 잠시 긴 한숨을 쉬더니 무거운 입을 열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애비가 옛날 일제 시대 때 소학교에 다닐 적의 일이었단다. 그때 난 집안이 너무 가난하여 도무지 학교에 다닐 형편이 아니었지. 그래서 생각다 못해 뛰쳐나간 곳이 10리도 넘는 읍내에 있는 자전거포였단다. 난 거기서 심부름을 하면서 조금씩 주는 용돈을 꼬박꼬박 집안 살림에 보태게 되었지.
그렇게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형편에 내가 학교를 다닐 수 있었겠니? 그건 생각뿐이지 감히 엄두조차 못 낼 일이었단다. 그래서 난 그때부터 낮에는 자전거포에서 일을 하고 밤이면 집으로 돌아와 피곤한 몸이지만 열심히 혼자 독학을 하게 되었단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다더니 내가 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너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두 잃고 하루아침에 고아가 되고 말았단다. 알 수 없는 몹쓸 병에 걸려 그냥 집에서 앓기만 하시다가 두 분 다 돌아가시게 된 거지. 후유--.“
“…….”
“…….”
거기까지 이야기를 마친 할아버지는 더 이상 이야기조차 하기 괴롭다는 듯 이야기를 중단한 채 어느새 할아버지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아들과 며느리는 아무 대꾸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습니다.
“어떠냐? 내 얘기가 너무 재미가 없지? 요즈음 고생을 모르고 자란 너희들 같은 젊은이들에게는 그런 이야기가 도무지 이해를 못하거나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아 아마 흥미가 없을 거다. 안 그러냐?”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들려주십시오. 과거에 아버님이 고생을 하시면서 사셨다는 건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자세하게 들어보게 된 것은 저도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랬었나? 그럼 다시 얘기를 계속해보마. 하루아침에 부모님을 잃게 된 나는 그때 고향까지 등지고 말았단다. 부모님을 모두 잃고 보니 더 이상 고향에 머무를 필요조차 없게 된 거지. 그래서 난 그때부터 아예 고생할 것을 각오하고 객지 생활을 시작하게 된 거지. 그때의 배고픈 슬픔이야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느냐.”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의 어린 시절은 뼈에 사무치도록 눈물겨운 고된 나날의 연속이었습니다.
할아버지가 고향을 떠나 처음으로 몸을 붙이게 된 곳은 농사짓는 법을 가르치는 규율이 아주 엄한 어느 농장이었습니다. 낮에는 황폐한 땅을 삽과 괭이로 일구며 쉴 새 없이 일해야 했고, 또 밤이면 그 피곤한 공부를 해야 하는 고된 나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고작 며칠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을 쳐 나가곤 했습니다.
우선 정해진 시간 안에 맡겨진 일을 끝내야 하며 또 세 시간 이상 일을 해야만 밥 한 끼가 나오는 엄한 규율 때문에 몸이 아플 경우를 제외하고는 항상 노예처럼 억척스럽게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또 그 집단 안에서 이동하기 위해 걸을 때도 세 발자국 이상은 뛰어야 했으며 심지어는 세숫비누를 쓸 때에는 손바닥에 세 번 이상 문지르지 못하도록 엄격한 법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머리가 자라 이발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훈련이 끝날 때까지는 전혀 외출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몇 개의 이발 기계로 동료들끼리 서로 깎아 주어야만 했습니다. 머리를 멋지게 깎아야 하겠다는 생각할 틈도 없었습니다. 오직 일과 공부를 열심히 하기 위해 이발을 할 시간도 아끼기 위해 짧게 삭발을 할 때도 많았습니다.
그토록 고된 훈련을 참고 견디어 마침내 6개월이 지난 뒤에는 그 단체에서 졸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에게는 그런 고된 훈련이 아무 소용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농사를 짓는 방법과 아무리 힘든 일을 이를 악물고 참고 견디며 열심히 일할 수 있는 끈기는 배웠지만, 할아버지에게는 농사를 지을 손바닥만한 땅덩이조차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지옥과도 같은 농장에서 마침내 졸업을 하게 된 할아버지가 이번엔 다시 무작정 도시로 뛰쳐나갔습니다. 그리고 밥만 얻어먹고 공부를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가리지 않고 덤벼들었습니다. 지난번에 6개월간의 고된 훈련을 쌓았기 때문에 어떤 어려움도 이제 할아버지에게는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여러 해 일을 하며 틈이 나는 대로 열심히 공부를 한 보람이 있어서 할아버지는 결국 교원 채용 시험에 합격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고생한 보람이 있어서 비로소 안정을 찾아 오늘에 이르게 된 이야기를 마친 할아버지의 눈에서는 다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부끄러운 과거였지. 내가 오늘날 이렇게 좋은 집에서 너희들과 함께 호의호식하면서 편히 살 줄은 꿈에도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었단다. 그러니 난 이제 곧 죽어도 아무 여한이 없단다. 한마디로 너무나 행복한 거지.”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은 아들과 며느리는 오늘따라 그런 할아버지의 모습이 새삼 거룩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던 아들이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젊어서 그렇게 고생을 하셨으니까 이제는 그만 편히 쉬셔야 할 게 아닙니까?”
그러자 아들의 말을 들은 며느리도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습니다.
“네, 그렇게 하세요. 그리고 정 심심하시면 우리 명구나 은진이를 데리고 다니며 노시고요.”
할아버지는 다시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아니다. 내가 벌써 집구석에만 틀어박혀 놀고 있기에는 아직 일러. 내가 지금 목마를 끌고 있는 일이 무슨 힘든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니? 옛날에 고생을 했던 일에 비하면 심심풀이에 불과할 뿐이지. 사람은 그저 무슨 일을 하든 계속 움직이며 활동을 해야 건강도 유지할 수 있고 또한 오래 살 수 있지 않겠느냐.”
“…….”
할아버지의 외고집은 그 누구도 꺾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들과 며느리는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어서 그저 아무 말없이 할아버지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침묵이 이어지자 할아버지가 문득 무슨 생각이 떠오른 듯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아 참, 내가 깜박 잊은 것이 있구나, 우리 명구가 5학년 그리고 은진이가 3학년이지?“
"네, 맞아요, 아버님.“
그러자 며느리가 얼른 대답했습니다. 할아버지가 또 무슨 말을 하시려는지 몹시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명구와 은진이는 할아버지의 귀여운 손자요, 손녀의 이름이었습니다.
“너희들은 이런 말을 하면 어떻게 생각할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얘기를 혹시 들은 적이 있니? 왜 언젠가 대학교수인 아버지가 3남매를 기르면서 겨울에는 땅콩이나 오징어 장수, 그리고 여름이면 냉차나 아이스케키 장수, 심지어는 껌이나 신문팔이를 시켜 모두 고학으로 대학을 나오게 했다는 얘기가 오래 전에 뉴스에도 나오지 않았더냐.”
“……?”
“……?”
할아버지의 엉뚱한 아이야기를 들은 아들과 며느리는 금세 둥그렇게 된 눈으로 할아버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다시 입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나 역시 그 대학교수란 분을 항상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하며 존경하고 있단다. 일을 몸에 익히고 배우는 것은 아이들 때부터가 더욱 중요한 게 아니겠니? 대학교수인 아버지가 돈이 없어서 자식들을 모두 고학을 시켰겠니? 아니면 자식들이 미워서 학대를 하기 위해 그런 고생을 시켰겠니? 돈이 그만큼 귀중하다는 것, 그리고 일의 보람을 터득시키기 위한 부모의 깊은 사랑이었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단다.
자식이 귀엽다고 무조건 집에 앉혀놓고 애지중지하며 기르는 것만이 부모의 사랑이 아니지 않겠니? 그것은 자식을 오히려 약하게 만들거나 자주성이 없는 얼간이로 만드는 지름길이란 말이란다.”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며느리가 말도 안 된다는 듯 커다랗게 된 눈으로 할앙버지에게 물었습니다.
“그럼, 그분처럼 우리 명구나 은진이도 고학을 시키는 게 좋겠다 이 말씀이세요?”
“아암, 그래야 하고말고, 내 생각은 이렇단다. 명구가 지금 5학년이 아니겠니? 그러니까 지금부터 2년 뒤, 그러니까 중학교에 들어간 뒤부터는 얼마간의 장사 밑천으로 돈을 내주고, 죽이 되건 밥이 되건 학교에서 돌아오면 무조건 밖으로 내쫓아서 장사를 시켜보는 게 어떻겠니? 그래야 세상 돌아가는 것도 직접 깨닫게 되고 돈의 소중함도 터득하게 되지 않겠니?”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은 아들과 며느리는 그만 너무 기가 막혀 말문이 막히고 말았습니다. 그러다가 며느리가 용기를 내어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아버님, 그건 말도 안 돼요. 요즘 어떤 세상인데 어려서부터 자식들에게 장사를 시키는 부모가 어디 있어요. 아버님 말씀이 맞긴 하지만 저는 절대로 그렇게는 못하겠어요.”
그러자 할아버지가 실망한 표정이 되어 며느리에게 물었습니다.
“왜? 넌 그럼 내 말이 틀렸다는 거냐?”
“아,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니고요. 하지만 차마 어떻게 어느 부모가 그 어린 것들을 장사를 하라고 길거리로 내쫓을 수가 있겠어요, 아버님?”
"허어어----, 그래도 넌 아직 내 얘기를 못 알아들은 모양이구나, 중학생이 뭐가 어리다는 게야? 그럼 아주 대학까지 모두 다 졸업한 다음에 성인이 되어서야 독립시키겠다고? 일이란 어려서부터 몸에 배야 된다고 몇 번을 말해도 못알아들은 모양이구나?”
“……!”
“……!”
아들과 며느리는 너무도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혹을 떼러 할아버지 방에 들어갔다가 오히려 혹 하나를 더 붙인 결과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자, 이제 밤도 늦었으니 어서들 가서 자거라. 나도 내일은 또 아침 일찍 목마를 끌고 나가야 하기 때문에 미리 좀 쉬어야 되겠구나.”
오직 일만 아는 목마 할아버지의 외고집, 그 고집을 꺾을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그 누구도 없었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