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민이네 학교에서는 한 달에 한 번씩 전교생 모두에게 편지 쓰기를 벌써 몇 해째 하고 있습니다.
편지를 쓰는 날은 매달 맨 마지막 날로 정해 놓고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쓰게 하고 있습니다.
학교에는 선생님들이 마련해 준 예쁘고 큼직한 우체통이 두 군데나 있습니다.
아이들이 쓴 편지를 아이들이 직접 우체통에 넣기만 하면 5,6학년에서 집배원으로 정해진 형과 누나들이 다음날 교실마다 신바람이 나서 뛰어다니며 골고루 배달을 해줍니다.
편지 쓰기를 거듭할수록 아이들은 제가 쓴 편지를 손수 우체통에 넣어 보는 일에 점점 재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편지 쓰기를 자주 하다 보니
글을 쓰는 문장력도 나날이 향상되고 있었습니다. 물론 편지 쓰기를 지겨워하는 아이들도 더러 있기는 했지만요.
아이들이 편지를 쓸 때는 한 통만 쓰는 게 아닙니다. 어떤 아이들은 두 통, 또는 세 통까지 써서 우체통에 넣는 아이들이 점점 더 늘어가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마침내 다시 한 달이 끝나는 마지막 날입니다.
편지 쓰기 시간이 되자 2학년인 영민이네 반 아이들도 지금 한창 신바람이 나서 편지를 쓰고 있었습니다.
편지는 주로 엄마나 아빠, 그리고 선생님이나 가까운 친구들에게 전해주게 될 편지들이었습니다.
또 어떤 아이는 군인 간 외삼촌이나 멀리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신 선생님에게 보내기도 합니다. 같은 반 친구나 교내가 아니라 밖으로 보낼 편지는 주소까지 써서 우표를 붙여야 하는데 학교에서 준비해 둔 우표를 구입해서 붙이면 됩니다.
어떤 아이들은 대문짝만한 글씨로, 또 어떤 아이들은 연필에 좁쌀만큼 작은 글씨로 침을 발라가며 정성 들여 눌러 쓰기도 합니다.
“혹시 다 쓴 사람 없어요? 어디 자신있게 잘 썼다고 생각하는 어린이는 이 앞으로 가지고 나오세요.”
선생님은 지금 한창 편지 쓰기에 정신이 팔려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은 갑자기 벌집이라도 건드린 것처럼 발을 동동 구르며 여기저기서 아우성들입니다.
“선생님! 아직요. 조금만 더 쓰면 돼요!”
“저도요. 쪼끔만 시간을 더 주시면 안 돼요?”
그렇게 조금만 시간을 더 달라고 안절부절을 못합니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자 몹시 귀엽다는 듯 선생님의 입에서는 흐뭇한 미소가 저절로 흘러나옵니다.
엊그제 입학을 한 것 같은데 어느새 편지까지 그렇게 다들 잘 쓰게 되었다는 생각에 정말 대견스럽고 귀엽기가 그지없습니다.
“시간은 얼마든지 더 줄 테니 아무 걱정말고 틀린 글씨가 없게 정성껏 예쁘게 쓰기나 하세요.”
선생님의 한마디에 안심이 된 듯 아이들은 다시 쓰던 편지를 열심히 쓰기에 바빴습니다.
그렇게 조금 시간이 지나자, 제일 먼저 편지를 써서 앞으로 가지고 나온 아이는 바로 영민이었습니다. 영민이는 자랑스러운 듯 선생님에게 편지를 내밀며 씩씩하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여기 있어요!”
“음, 그래. 영민이가 일등을 했네. 편지 쓰느라고 수고 많았어요. 그럼 이 편지 친구들 앞에서 읽어줘도 되겠니?”
“네!”
영민이가 이번에는 약간 수줍은 듯 얼굴까지 조금 붉어지며 자신있게 대답하였습니다.
선생님은 우선 속으로 영민이의 편지부터 훑어보기 시작하였습니다. 순간, 편지를 읽어 내려가는 선생님의 입가에 활짝 미소가 번져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소리내어 웃음보를 터뜨리고야 말았습니다.
"호호호……. 영민아! 은하가 도대체 누구니? 누구길래 앞으로 결혼까지 하겠다는 거니, 응? 호호호…….“
선생님의 웃음소리에 아이들 모두가 덩달아 선생님과 영민이를 번갈아 바라보며 어리둥절한 표정들입니다.
“뭐어? 벌써 결혼을 한다고? 으이그, 쟤가 갑자기 미쳤나 봐. 호호호…….”
“누구하고 결혼한다는 건데? 하하하…….”
아이들이 제멋대로 지껄이는 소리에 영민인 몹시 민망한 듯 홍당무가 된 얼굴로 입을 꼭 다문 채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영민이가 써서 낸 편지는 서울에 있는 은하에게 쓴 편지였습니다.
은하는 영민이가 서울에서 살 때 그 누구보다도 다정하고 가깝게 지냈던 친구입니다. 은하는 얼굴도 예쁘지만, 마음씨도 아주 곱고 착한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3년 전에 영민이네가 이곳 시골로 이사를 오게 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헤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영민인 가끔 은하가 문득 보고 싶기도 하고 그리워지곤 합니다. 사실은 지금 현재 영민이의 짝인 혜윤이도 은하 못지않게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아주 잘합니다. 그래서 영민이는 혜윤이를 은근히 좋아합니다.
그런데 바로 며칠 전에 혜윤이의 쌀쌀한 태도를 보고 영민이는 다시 옛날 친구였던 은하가 다시 문득 떠올랐던 것입니다.
며칠 전, 영민이가 공부를 마치고 혜윤이와 같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영민이는 혜윤이한테 슬그머니 다가서며 말을 걸었습니다.
“혜윤아, 너 내 부탁 좀 들어줄래?”
“부탁이라고? 무슨 부탁인데?”
혜윤이가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물었습니다. 그러자 영민이가 좀 쑥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으음, 난 네가 좋거든.”
“그래? 나도 네가 좋아. 그런데?”
“으음, 그럼 너 이 다음에 나하고 결혼하지 않을래?”
“아니, 뭐라고? 싫어! 얘가 미쳤나 봐. 싫어. 난 네가 싫어졌단 말이야!”
혜윤인 순간 기겁을 하듯 얼굴색이 빨갛게 변하면서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듯 뛰어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날 있었던 이야기를 자세히 쓴 영민이의 편지를 읽은 선생님은 너무 재미있다는 듯 한동안 배꼽을 잡고 웃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나 웃었는지 눈물까지 찔끔찔끔 흘리고 있었습니다.
“히히히…….”
”호호호…….”
아이들은 여전히 웃고 있는 선생님의 모습을 바라보며 전혀 무슨 영문인지를 모른 채 덩달아 킬킬거리며 웃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혜윤이를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혜윤아! 이제부터는 영민이한테 부드럽게 잘 좀 대해 주렴. 그렇게 해줄 수 있겠니?”
“…….”
선생님의 물음에 혜윤이는 대답 대신 선뜻 고개만 조금 끄덕이며 생글생글 웃고 있었습니다. 영민이도 그런 혜윤이를 바라보자 이제야 마음이 놓인다는 듯 싱글벙글 웃고만 있었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