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의 비극, 그리고 달라진 언어의 비극(69)]
가만히 앉아서 티비를 보고 있던 성길 씨가 문득 혼잣말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 같이 놀던 ① 송아지동무들이 지금은 어디서 다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 워언…….“
그러자 성길 씨의 말에 궁금한 듯 아내가 얼른 물었다.
”그때 당신과 가까이 지내던 친구들이 많았나 봐요?“
”뭐 그렇게 많진 않았지만 ② 어방치기로 대여섯 명은 됐을 거야.“
”그럼 친구들 중에 여자아이들도 있었곘네요?“
”그렇게 친하지는 않았지만 아마 한두 명은 끼어있었을 거야.“
”그럼 그 여자 친구들하고도 친하게 지냈어요?“
”친하게 지내고 말고가 어디 있어. 그냥 어렸을 때 같이 놀았던 거지. 그런데 왜 그건 꼬치꼬치 묻고 있어?“
”그때 너무 친하게 지내서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는 여자 친구가 있나 해서요.“
”허허, 사람도 차암. 쓸데없이 ③어방없는 소리도 다 하고 있네. 당신 지금 질투하고 있는 거야?“
”호호호……. 내가 질투를 하다뇨. 그냥 해본 소리라니까요.“
”허허헛, 사람두 못하는 소리가 없네.“
아내가 웃자 성길 씨도 덩달아 ④얼럴루럴한 표정이 되어 웃고 있었다. 그러다가 성길 씨가 출출했는지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집에 ⑤고뿌즉석국수 좀 사다 놓은 거 있나? 배가 좀 출출한 걸.“
”왜 그새 또 출출하세요? 그런 거 사다 놓으면 혜영이가 그걸 얼마나 좋아하는데 남아있을 리가 있어요?“
”그래? 그럼 ⑥ 봉지즉석국수는 있나? 있으면 그거라도 좀 끓여서 혜영이랑 다 같이 먹자구. 봉지국수라도 ⑦얼벌벌하게 끓여서 ⑧뻬주 한잔만 곁들이면 금상첨화인데 말이야.“
”으이구, 바랄 걸 바래야죠. 그런 건 이 다음에 중국집에나 가서 찾고 지난번에 마시다 남은 소주나 한잔 해요.“
아내는 곧 일어나더니 주방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 아내를 바라보고 있는 성길 씨의 표정이 오늘따라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가 없었다.(*)
① 소꿉친구 ② 이림짐작 ③ 터무니없다 ④ 어리벙벙하다
⑤ 컵라면 ⑥ 봉지라면 ⑦ 맵다 ⑧ 고량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