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찾아서(2)

[중편 창작동화 -북에서 넘어온 젊은이 ② -]

by 겨울나무

2. 북에서 넘어온 젊은이


그다음 날 밤이었습니다.


영구네 식구들은 밤 열두 시가 가까워지자 다시 불안이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오늘 밤에도 또 전화가 올까요?”


한동안 불안한 표정으로 있던 엄마가 다시 초조한 목소리로 아빠를 바라보며 물었습니다.


"글쎄, 모르긴 해도 약속을 했으니까 또 올거라고 생각해.“


이렇게 대답을 하고 있는 아빠의 목소리도 은근히 떨리고 있었습니다.


직구들이 온통 전화통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을 때, 마침내 전화의 벨이 다시 요란스럽게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따르릉--- 따르르릉---“


식구들은 한결같이 화들짝 놀란 나머지 가슴에 손을 얹은 채, 두 방망이질을 하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아빠가 조심스럽게 수화기를 귀에 대고 입을 열었습니다.


“여, 여보세요? 여보세요?”


아빠가 몇 번이고 불러보자 이윽고 젊은이가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예, 어제 전화를 드렸던 사람입네다. 약속대로 신고 같은 건 안 하셨겠디요?”


“그, 그렇소.”


“그럼 됐습네다. 잘 하셨습네다. 지금 식구들은 어데 있습네까?”


“모두 잠자리에 들고, 지금은 나 혼자뿐이오.”


옆에서 숨소리를 죽인 채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엄마가 궁금해서 못 견디겠다는 듯 속삭이듯 작은 소리로 물었습니다.


“어제 전화했던 그 사람이 맞아요?”


“…….”


아빠는 대답 대신 고개만 약간 끄덕이면서 손가락을 입에 대고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습니다. 그러자 젊은이가 얼른 물었습니다.


“혹시 지금 옆에 누가 있는 게 아네까?”


"아, 아니오. 나 혼자뿐이니까 제발 나를 믿고 말을 해 보라니까요.”


젊은이는 계속 한숨을 쉬고 있다가 이번에는 결심을 한 듯 입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저어, 당신의 성함은 김정수 씨, 그리고 김달수란 분을 알고 계시겠디요?”


“뭐? 뭐라구? 그건 어떻게……. 그래서요? 어서 말을 해봐요.”


“사실은 제가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한 것도, 그리고 전화를 자꾸 드리게 된 것도 바로 그분의 소식을 전해 드리기 위해서 였다면 짐작이 좀 가십네까?”


“아니, 뭐라구요? 그럼 도대체 젊은이 당신은 누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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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 아빠는 순간 숨이 막힐 것만 같았습니다. 젊은이가 말하는 김달수 씨란 바로 영구 아버지의 형님이었기 때문입니다.


영구 아빠가 복잡한 생각에 한동안 정신을 가다듬고 있을 때, 젊은이가 다시 말을 걸어왔습니다.


“어떠십네까? 저와 김달수 씨와의 관계, 그리고 그분의 소식을 좀더 자세히 알고 싶은 생각은 없으십네까? 약속 시간과 장소, 그리고 단둘이 만나시겠다는 조건이면 저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그대로 따르겠습네다.”

“그래요? 그렇다면 지금 당신이 있는 곳은 어디요?”


“그건 비밀입니다. 하지만 댁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으니끼니…….”


“좋소. 그럼 지금 당장 만납시다. 누구도 모르게 우리 집에서 단둘이 말이오.”


“좋습네다. 그 대신 저와의 약속이 틀리면 재미 없습네다. 식구들을 모두 죽여버릴 수도 있으니끼니. 그럼 지금부터 약 20분이나 30분 후에 도착하갓시오. 괜찮겠습네까?”


“좋아요. 그렇게 합시다. 그럼 내가 시간에 맞추어 대문 밖에 나가서 기다리고 있겠소,”


“예, 고맙습네다. 그럼 잠시 뒤에 뵙도록 하겠습네다.”


젊은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일단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러자 아빠는 불안스러운 마음에 조금 전보다 표정이 더 굳어졌습니다.그리고 식구들을 향해 침착하게 말했습니다.


“그 사람이 우리 집으로 곧 온다니 당신도 자는 척하고 있어요. 그리고 영구와 영숙이도 너희들 방에 가서 꼼짝 말고 누워 있고…….“


"아빠, 정말 괜찮을까요? 전 무서워서 오늘은 엄마하고 안방에서 같이 있을래요.”


영숙이가 겁이 난 얼굴로 엄마 품에 바짝 붙으며 말했습니다.


“경찰과 군인 부대에 미리 신고를 해놓았는데, 설마 무슨 일이야 있겠니? 자, 시간이 없다. 어서들 이불을 덮고 누워있거라.”


아빠가 급하다는 듯 식구들을 안심시키면서 서두르고 있었습니다.


“여보, 그건 그렇다 치고 도대체 무슨 일로그 사람이 하필이면 우리 집에 오겠다는 것인지 영문을 모르겠네요. 미리 신고를 해 놓은 것도 그 사람이 눈치챘을까 봐 마음에 걸리기도 하고요.”


“글쎄, 지금 그런 얘기를 나눌 시간이 없다니까 그러네. 그 얘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아무 걱정말고 어서 자리에 누워 있으란 말이오.”


식구들을 안심시켜 일단 자리에 눕게 한 다음 아빠는 건넌방 한 군데만 남겨 놓고 집 안에 켜놓았던 불을 모조리 껐습니다. 그리고는 외투를 단단히 걸치고 대문 밖으로 나와 두리번거리며 밖의 동정을 살피고 있었습니다.


“쌔앵--- 쌔애앵---?”


겨울밤의 삭풍은 여전히 쉬지 않고 불고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겁에 질린 영구 아빠의 가슴도 덩달아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습니다.


“컹, 커엉컹---”


갑자기 멀리서 개들이 짖는 소리가 차가운 밤의 공기를 흔들어 놓기 시작했습니다.


“저벅, 저벅---”


아니나 다를까. 그때 어디선가 조심스럽게 걸어오는 발걸음 소리가 차츰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영구 아빠는 곧 숨이 멎을 것만 같았습니다. 이윽고 누군가가 어둠속을 헤치고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영구 아빠가 먼저 용기를 내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누, 누구요?”


“쉿! 놀라지 마시라요. 조금 전에 전화했던 사람입네다.”


영구 아빠는 그제야 안심을 하고 젊은이를 대문 안으로 끌어들였습니다.


“어서 대문을 어서 잠궈 주시기요.”


영구 아빠는 젊은이가 시키는 대로 대문을 잠근 다음, 젊은이를 건넌방으로 안내하였습니다.


밝은 전기 불빛에 처음으로 젊은이의 모습이 드러나기가 무섭게 영구 아빠는 흠칫 놀라고 말았습니다. 한쪽 어깨에 심한 상처를 입은 채, 한손으로는 영구 아빠를 향해 권총을 겨누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흠짓 놀란 영구 아빠가 먼저 용기를 내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습니다.


“아니 갑자기 왜 이래요? 자, 그러지 말고 우선 따뜻한 아랫목으로 와서 앉아요. 그리고 심하게 다친 모양인데, 치료부터 해야 되겠소.”


그러자 젊은이는 여전히 총을 겨눈 채 대꾸했습니다.


“허튼 짓 하지 말고 그대로 있어요. 그리고 가족들은 지금 어디 있습네까?”


“저쪽 안방에서 모두 잠이 들어있어요."


“경찰이나 국방군한테 알리지는 않았겠다요?”


“아무렴, 그런 걱정 말고 나를 믿으라니까. 어서 마음 놓고 앉아서 나를 찾아오게 된 용건부터 얘기해 봐요.”

젊은이는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된 듯 사방을 한 번 두리번거리더니 불안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제가 찾아온 용건을 아직도 모르시겠습네까?”


"그, 글쎄요?”


“제 얼굴을 좀 자세히 보시라요. 그래도 모르시겠습네까?”


"그, 글쎄요?”


영구 아빠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습니다.


"그럼, 제가 바로 김달수 씨의 아들이라고 하면 짐작이 가십네까?”


“……??”


젊은이의 물음에 순간, 영구 아빠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표정이 무겁게 굳어진 채 좀처럼 입이 떨어지지를 않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젊은이의 얼굴 모습은 형님이 어렸을 때의 모습과 닮은 데가 많다고 느껴졌습니다. 영구 아빠는 한동안 마음을 진정시키다가 겨우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네가 바로 우리 형님의……?”


“예, 그렇습네다. 이제야 이해가 가십네까, 작은 아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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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젊은이의 손을 덥썩 잡은 영구 아버지의 손이 떨리고 있었습니다. 눈에서는 어느새 이슬이 맺혀 흐르고 었습니다.


소년도 굳게 잡고 있던 권총을 그제야 힘없이 방바닥에 내려놓고는 두 손을 맡긴 채, 고개를 숙이며 흐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젊은이를 내려다보며 영구 아빠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래, 어떻게 넘어오게 되었느냐?”


“도무지 북에서는 못 살갔시요. 배는 고프디요. 날마다 고된 노력동원에 시달려야 하디요. 숨이 콱콱 막힐 것만 같은 나날을 견딜 수가 없다 이 말입니다.”


젊은이는 차츰 어깨까지 들먹이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탈출을 하였단 말이냐?”


“그렇습네다, 북에서 그냥 사는 것보다는 죽는 편이 훨씬 낫다는 생각에서 목숨을 걸고 이렇게 탈출을 한 겁네다.”


“그럼 간첩으로 넘어온 것은 아니란 말이지?”


"예, 그렇습네다.“


"그래? 정말 잘했다. 그럼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떻게 되었느냐?“


“…….”


영구 아빠의 물음에 젊은이는 더욱더 흐느끼면서 좀처럼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더듬거리며 입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아바디는 이미 오래 전에 돌아 가셨디요. 반동분자라는 누명을 쓰고 인민재판을 받은 뒤 총살을 당했디요. 그리고 오마니는 반동분자의 가족이라 해서 탄광으로 끌려간 지, 5년이 넘었디만 아직도 소식이 없디요. 아마 모르긴 해도 벌써 돌아가셨을 겁네다. 그놈의 아이 새끼들은 사람의 목숨을 파리나 짐승만도 못하게 여기니끼니.”


젊은이의 이야기를 대강 들은 영구 아빠는 그만 맥이 탁 풀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약 38년 전의 처참했던 모습들이 눈앞에 아련히, 그리고 차츰 선명하게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 * )


< 4회 중 2회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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