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겨울나무 Sep 17. 2021

그래도 역시 부부는 부부야

[옛날의 희한하고 별난 결혼 풍습]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옛날에는 신랑 신부가 결혼을 할 때 서로 얼굴조차 한번 보지 못한 채 부모님들이 시키는 대로 부부의 인연을 맺게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고 한다.    

 

요즈음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이야기가 되겠지만, 자식들의 뜻이나 의견은 들어보지도 않고 전혀 무시한 채 부모님들의 뜻에 따라 결혼이 성사되곤 하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가끔은 자식이 당사자와 결혼하기 싫다고 거부를 하게 되면, 왜 하필이면 하고많은 나무들 중에 대추나무였는지는 모를 일이다. 어쨌든 늘 대추나무에 묶어놓고 강제로 결혼을 성사시켰다는 이야기가 많이 전해지고 있다.      


그보다 더 기이하고 이상한 결혼 풍습도 있었다고 한다.      


즉, 어린 남자 나이 겨우 서너 살밖에 안 되었을 나이에 부모님들이 서로 뜻이 맞아 열 살이나 그 이상의 연상의 여자가 미리 시집을 와서 같이 부부로 살아가기도 하였다고 한다.      


서너 살이 된 남자아이라면 이제 겨우 기저귀를 뗀 지가 얼마 되지 않았을 나이에 불과하다. 그런 철도 들지 않은 어린아이가 열 살이나 넘는 처녀와 결혼을 하여 새 살림을 차리고 살아갔다니 지금 생각해 보면 그야말로 상상할 수도 없고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일찍 결혼을 서둘러 시키게 되었을까?     


그건 그 누구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처녀의 집이나 어린아들을 둔 집에서 결혼이 늦어지면 나중에 자식들이 장차 성장하여 성인이 되었을 때 그들의 생각이 바뀔 것이 염려되어 철이 들기 전에 미리 결혼을 시키는 풍습이 가끔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러기에 이제 겨우 젖을 뗀 어린아이네 집에 와서 새 신랑이려니 하고 처녀가 시집을 와서 같이 살게 되고 보니 그건 새색시가 아니라 그 집 심부름꾼이나 노예에 가까웠다고 한다. 집안 살림살이뿐만 아니라 어린 신랑을 돌봐야 하는 어머니와 같은 역할도 병행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농사철에는 바쁜 밭일과 논일을 하기 위해 부모님들은 모두 들로 나가고 집에는 어린 새신랑과 새색시만 남아 있게 되었다. 그러기에 새색시는 새색시대로 몹시 바쁠 수밖에 없었다.  

    

밥을 짓거나 반찬을 만들어 놓는 일은 물론이고, 어린 신랑의 옷 입혀주고 벗겨주는 일은 물론 어쩌다 오줌을 싸거나 똥을 싸면 그것을 치우고 뒤처리를 하는 일, 밥 먹여주는 일 등, 그 모두가 새색시가 담당해야 했던 것이다.      

 

심지어는 어린 신랑이 배고파 먹을 것을 달라고 울고불며 젖을 달라고 할  때가 가장 어려웠다. 마땅히 먹일 것이 없을 경우, 할 수 없이 나오지도 않는 빈 젖을 신랑에게 물려주며 달래주기도 하였다고 하니 이 얼마나

우스광스러운 일인가.

      

그리고 아무리 신랑이 어려도 신랑은 신랑이기에 새색시는 반드시 신랑에게 깍듯이 존댓말을 사용하였으며, 이와 반대로 신랑은 새색시에게 반말을 사용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렇게 여러 해 자식처럼 기르다시피 하면서 같이 지내다가 남자가 성인이 되면 그제야 마침내 정식으로 정상적인 부부 생활이 가능했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믿거나 말거나 ㅎㅎ)      






그런 시절에 어느 마을에도 그렇게 어린 신랑과 열 살이나 훨씬 넘은 연상의 신부가 같이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해 늦가을의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마침 읍내에 볼 일이 있어서 시아버지와 어머니는 아침 일찍 읍내로 나가고, 집에는 부부(?)만 남아 있게 되었다.   

   

새색시는 이제부터가 전쟁이었다. 밥과 반찬을 준비하는 일은 물론이고 어린 신랑을 하루 종일 돌봐주는 일을 도맡아 해야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밥을 지으려면 아궁이에 불을 때야 하고, 먼 곳에 있는 우물에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가서 물도 길어와야 했다.      


바깥마당에 고추도 널어야 하고 날기멍석을 깔아 놓고 곡식도 말려야 하고, 가끔 곡식과 고추 등을 잘 마르게 하려면 그것들을 가끔 젖혀주는 일도 해주어야 했다.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그리고 혼자서는 도무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어린 신랑이 문제였던 것이다.


만큼 바쁘고 힘든 일이 있을 때 신랑이 조금이라도 거들어주고 도와준다면 얼마나 고맙고 좋으랴!      


그러나 철부지인 신랑은 차라리 없는 편이 훨씬 더 나았다.  신랑이 새색시를 졸졸 따라다니며 도와주기는커녕 훼방만 놀고 말썽만 부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워낙 철이 없는 천둥벌거숭이였으니 별 수가 없었던 것이다 .      

날기멍석에 얌전하게 널어놓은 곡식을 부지깽이로 함부로 땅바닥에 흩어지게 하거나 말리고 있는 고추를 두드려서 부서지게 하는 일. 바가지에 물을 떠다가 멍석에 붓는 일 등, 그야말로 미운 짖은 혼자 도맡아 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같아서는 당장 실컷 두드려 패주고 싶었다.     


그러나 나쁜 짓을 하지 말라고 신랑을 함부로 때리며 말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비록 속은 썩어 문드러질망정 살살 달래주어야만 했다. 혹시 나중에 신랑이 부모님에게 일러바치기라도 하면, 감히 하늘 같은 남편을 때렸다고 당장 날벼락을 맞고 시집에서 쫓겨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할 일이 산더미 같은데 어린 신랑은 여전히 새색시만 졸졸 따라다니며 말썽만 부리고 있었다. 그런 신랑을 그냥 달래기만 하고 있자니 시부모님들이 오기 전에 밀린 일을 처리해 내기는 어렵고…….      


그렇다고 신랑 때문에 오늘 해야 할 일을 못다 처리하고 나면 나중에 시부모님들에게 꾸중을 들을 것이 뻔하고……. 그야말로 진퇴양난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일을 정녕 어쩌면 좋단 말인가!     


한창 그런 고민에 빠져있던 새색시의 머리에 갑자기 번개처럼 기발(?)한  묘안이 떠올랐다. 말썽만 부리고 있는 신랑을 높은 지붕 위로 올려놓으면 말썽을 부리지 못하게 되겠다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었다.    

  

새색시는 곧 말썽만 부리며 따라다니고 있는 철부지 신랑을 번쩍 들어 안았다. 그리고 달래주게 되었다.      


“서방님, 서방님이 그렇게 따라다니며 훼방을 놓으면 제가 일을 못해요. 그리고 이따가 제가 야단을 맞게 돼요. 그러니까 좀 무섭겠지만 그때까지 지붕 위에 올라가서 얌전히 계셔야 해요. 아셨지요?”    

 

“싫어! 지붕 위에는 무서워서 싫어! 그러면 엄마 아빠한테 이를거야. 이잉, 으아앙…….”     


철부지 신랑은 싫다고 울며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무서워도 조금만 참으셔야 해요. 아셨죠?”   

  

새색시는 이렇게 달래며 결국 신랑을 두 손으로 번쩍 들더니 초가지붕 위에 얹어놓고 말았다. 초가지붕 위에는 박 덩굴이 얼기설기 벋어있었고, 둥그런 박도 몇 개 여물어가고 있었다.  

      

“으아앙, 얼른 내려줘! 안 내려주면 이따가 엄마 아빠한테 이를거야! 으아앙…….”     


새신랑은 둥그런 박을 의지하고 앉아서 원망스러운 눈으로 새색시를 바라보며 벌벌 떨며 내려달라고 애원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목소리를 높여가며 앙앙 울고 있었다.     

 

“서방님, 미안해요. 아무리 무서워도 조금만 참아줘야 돼요, 아셨죠?”


그러나 새색시 역시 미안하기도 하고 가슴이 아팠지만,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달래며 부지런히 이리저리 뛰며 밀린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일을 어쩌면 좋으랴!     


그때 마침 읍내로 갔던 시부모님들이 돌아와서 지붕에 있는 아들을 보고는 깜짝 놀란 얼굴로 새색시에게 묻게 되었다. 새색시가 지붕 위에 올려놓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당장 날벼락 같은 호령을 듣거가 시집에서 당장 쫓겨날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니 저 애가 어쩐 일로 지붕 위에 올라가 있느냐?”     


“…….”     


새색시는 겁에 질린 채 한동안 아무 대답도 못하고 그저 벌벌 떨고만 있었다. 그러자 그때 울음을 뚝 그친 어린 신랑이 새색시를 향해 크게 소리치며 묻고 있었다.       


“색시야! 이 작은 박을 딸까? 아니면 큰 박을 딸까?”     


“…….”


새색시는 그제야 위기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여전히 입을 다문 채 아무 대답도 못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되었다.          


시아버지도 아들이 지붕 위에 올라간 이유을 그제야 알겠다는 듯 환하게 밝아진 표정으로 아들을 향해 소리치며 껄껄 웃고 있었다.    

  

“큰박을 따든 작은박을 따든 네마음대로 하렴! 허허허…….”  

     

아무리 철이 없고 어린 새신랑이지만, 역시 부부는 부부임에 틀림없었나보다.(*)                       

매거진의 이전글 백주(白晝)의 가정 침입 강도 사건 (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