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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사슴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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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무
Feb 1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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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때가 가까워지면서 깊은 산골짜기에도 어둠이 짙게 물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성급한 산짐승들은 마치 기디리기라도 했다는 듯 벌써부터 목청껏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으르르렁— 으르르렁 ---”
“캥, 캐앵—캥, 캐애앵---”
아기사슴은 지금 막 지친 걸음걸이로 노루 산등성이를 터벅타벅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난 왜 하필이면 사슴으로 태어나서 언제까지나 이렇게 사람들한테 쫓겨 다니며 살아가야 한담!”
그렇지 않아도 겁이 많은 아기사슴의 입에서는 한숨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마냥 어리석고 천진난만하게 생긴 커다란 눈망울에서는 이슬마저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아기사슴은 이제 하루하루를 살아가기가 그렇게 무섭고 두려울 수가 없었습니다.
지난 겨울까지만 해도 아기사슴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근심이나 걱정이라는 걸 전혀 느끼지 못하고 아빠 엄마와 함께 그러대로 행복한 나날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몇 달 전, 그러니까 지난 겨울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얘, 아가야, 절대로 이 굴속에서 나가지 말아야 한다. 멀리 나갔다가는 큰일 난단 말이야, 알았지?”
아빠와 엄마 사슴은 아기사슴에게 늘 이렇게 단단히 일러주곤 하였습니다.
“네, 걱정 마세요. 저도 잘 알아요. 호랑이나 사자 같은 사나운 짐승한테 잡혀 먹힐까 봐 그러는 거죠?”
“아니야. 그게 아니란다. 사나운 짐승도 그렇지만 사람이 더 무서우니까 그런단다.”
“네? 사람들이 그렇게 힘이 센가요?”
엄마사슴의 말에 가뜩이나 큰 아기사슴의 눈망울이 더욱 커다랗게 되었습니다.
“그렇기도 하지만, 사람들은 멀리에서도 손가락 하나만 까따가면 우리들을 힘 하나 들이지 죽일 수 있는 총을 가지고 있단다.”
아기사슴의 눈이 아까보다 더욱 둥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래요? 그런데 사람들은 왜 죄도 없는 우리들을 해치는 거죠?”
엄마는 대답 대신 괴로운 듯 긴 한숨부터 쉬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뒤에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사람들은 다른 짐승들보다 우선 우리 같은 사슴들을 더 좋아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왜 우리들을 더 좋아하는데요?”
“그건 아빠처럼 지금 네 머리 위에서 자라고 있는 뿔 때문이란다.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는 우리들의 뿔이 엄청나게 크 돈으로 팔리고 있거든.”
엄마 사슴은 안타까운 얼굴로 지금 한창 귀엽게 볼록하게 솟아 나오고 있는 아기사슴의 뿔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아기사슴이 다시 물었습니다.
“우리들의 뿔이 왜 그렇게 비싼 건데요?”
“응, 그건 사람들의 몸이 쇠약해졌을 때 우리들의 뿔을 달여먹으면 기운이 나고 힘이 솟아나기 때문이란다.”
“어머! 끔찍해라. 이 뿔을 잘라서 달여먹는다고요?”
아기사슴은 그만 기겁을 해서 저도 모르게 뿔로 손이 갔습니다.
그해 겨울에는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산골짜기는 온통 눈으로 뒤덮여서 어디가 어딘지 분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온통 하얀 눈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빠사슴과 엄마사슴, 그리고 아기사슴은 별 수 없이 굴속에 갇혀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벌써 여러 날째 갇혀 지내다 보니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먹잇감을 구하러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엄두도 못낼 일이었습니다. 아니 그보다는 섣불리 밖에 나갔다가 발자국이라도 남겼다가는 그게 더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냥꾼들한테 들키게 되면 그게 더 큰 일일 테니까요.
“엄마, 나 목이 말라 죽겠단 말이야.”
아기사슴이 쩍쩍 입맛을 다시며 물을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벌써 여러 날째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아기사슴은 갈증 때문에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목이 말라도 눈이 녹을 때까지는 참아야 한단다. 만일 굴 밖으로 나갔다가 잘못되는 날에는 우리 세 식구 모두 끝장이란 말이야. 그럼 목이 말라 못 견디겠으면 이거라도 먹고 좀 참아보렴.”
엄마는 곧 굴 밖에 쌓여있는 눈을 한 덩이 뭉쳐 아기사슴의 입에 넣어주었습니다.
아기사슴은 엄마가 뭉쳐준 눈덩이를 먹고 난 뒤에도 여전히 목이 마른다며 계속 보채고 있었습니다.
아기사슴의 애석한 모습을 보다 못한 엄마사슴과 아빠사슴은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위험한 줄 알면서도 조심스럽게 샘가로 가기로 하였습니다.
샘물은 꽤나 먼 곳에 있었습니다.
마당바위를 지나 다시 골짜기를 따라 내려가면 추운 겨울에도 늘 얼지 않고 맑은 물이 퐁퐁 솟아나오는 옹달 샘물이 있습니다. 목 마를 때마다 틈틈이 달려가서 퍼마시곤 하던 샘물이었습니다.
이윽고 세 식구가 샘가에 다다랐습니다.
아기사슴은 샘물을 보자 정신없이 마셔대기 시작하였습니다. 엄마와 아빠는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가슴을 졸이며 망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탕! 탕! 탕!”
아기사슴은 난생 처음 들어보는 요란한 소리에 기겁을 해서 놀랐습니다. 순간 저도 모르게 엄마와 아빠가 서있는 쪽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아아,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지금까지 바위 위에서 망을 보기 위해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던 엄마사슴과 아빠사슴이 삽시간에 그만 바위 위에 나동그라지고 만 게 아니겠어요. 온몸에서 피를 줄줄 흘려가면서…….
순간 아기사슴은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온몸이 납덩이처럼 굳어지고 말았습니다.
“와아, 사슴 잡았다, 잡았어!”
그리고 곧이어 신바람이 나서 소리소리 지르며 급히 달려오고 있는 사냥꾼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순간, 아기사슴은 정신을 바짝 차렸습니다.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그저 살아남으려면 죽을 기를 쓰고 도망을 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정신없이 뛰어가고 있었습니다.
“저기 또 사슴이 보인다! 저놈 잡아라!”
이번에는 다시 아기사슴을 발견한 사냥꾼들이 다시 총을 쏘아대며 뒤쫓고 있었습니다. 깜짝 놀란 아기사슴은 오직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에 더욱더 죽을 힘을 다해 미친 듯이 도망을 치고 있었습니다.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결국 사냥꾼의 총에 맞지 않고 깊은 산골짜기에 다다른 아기사슴은 가쁜 숨을 헐떡이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도망을 치다가 상처가 난 아기사슴의 온몸에서는 피와 땀방울이 흥건히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그 끔찍하기만 했던 추운 겨울이 지나고 어느새 봄이 왔습니다.
이제 아기사슴의 머리 위에 돋아나던 뿔도 제법 몰라보게 크게 자랐습니다. 마치 선인장과 비슷한 모양으로 멋지게 자랐습니다.
아기사슴은 지난 겨울에 겪었던 끔찍한 광경이 문득문득 떠오를 때마다 그동안 얼마나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는지 모릅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아빠와 엄마를 모두 잃고 홀로 얼마나 외롭고 힘든 나날을 보냈는지 모릅니다.
‘엄마와 아빠는 결국 나 때문에 죽은 거야.’
아무리 후회를 해봐도 이제 와서는 그 모두가 아무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산골짜기는 어느새 다시 어둠으로 뒤덮이고 있습니다. 그러자 갖가지 산짐승들의 울음소리도 점점 더 요란스럽게 산골짜기마다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져 나갑니다.
세상이 온통 두렵고, 외롭고, 쓸쓸하고, 슬프기도 하고…….
아기사슴은 이제 세상 모든 게 다 싫었습니다. 더이상 혼자 살아갈 용기도 없고 희망도 모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아아, 안 언제까지 이렇게 피해 다니며 살아가야 한단 말인가! 그리고 무슨 낙으로 이렇게 살아가야 하나!’
아기사슴의 입에서는 가느다란 한숨이 연신 새어나옵니다. 모두가 즐겁고 행복한데 이 세상에 혼자만 외롭고 쓸쓸하다는 생각에 공연히 억울하기도 하였습니다.
아니 그보다는 머리에 난 뿔만 없더라도 그런대로 덜 불안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 모두가 이놈의 뿔 때문이란 말이야!”
한참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있던 아기사슴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습니다. 그리고는 큼직한 바위에 대고 뿔울 힘껏 들이받기 시작하였습니다. 뿔이 금방이라도 동강이 나고 박살이 날 정도로 미친 듯이 들이받고 있었습니다.
“딱! 따악! 딸그락……!”
열 번, 스무 번, 서른 번…….
아기사슴의 머리통은 금방 갈라질 것처럼 아팠습니다. 곧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가엽게도 머리통은 온통 피가 흥건히 흘러내리면서 금방 피범벅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아기사슴은 여전히 죽을 기를 쓰고 쉬지 않고 머리를 들이받고 있었습니다.
“딱! 따악! 딸그락……!”
그러는 동안 산골짜기의 밤은 점점 깊어만 갑니다.
그러나 아기사슴이 바위를 향해 머리를 부딪치는 요란한 소리는 좀처럼 멈출 줄을 몰랐습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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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무의 브런치입니다. *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부문 당선 * 문화체육관광부 우수도서선정 심사. 1종교과서 집필 * 지은책 : 창작동화집 '생각하는 떡갈나무' 외 20여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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