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의 길고 자세한 설명이 끝나자, 그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 아이들은 바짝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날부터 아이들의 태도는 많이 달라지고 있었습니다. 항상 시끄럽게 떠들던 아이들이 차츰 줄어들고 있었고, 억지로라도 자리에 얌전히 앉아서 책을 보는 척하는 아이들이 차츰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비뚤어진 책상 줄을 바로 맞추는 아이, 당번이 아니면서도 쉬는 시간마다 구석구석을 다니며 청소하는 아이 등, 유리창을 열심히 닦는 아이 등, 모두가 착한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빛이 역력했습니다.
그동안의 아이들의 동태를 살피고 있던 선생님은 너무나 흐뭇한 나머지 입가에는 저절로 미소가 번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소문으로 인해 학교에서도 변 선생님 반 아이들은 모두가 얌전하고 착한 일을 많이 하는 모범생들이라며 칭찬이 자자했습니다.
그런 나날을 보내는 동안 어느덧 1학기도 끝이 나고 여름방학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방학식을 마친 바로 그 다음 날, 변 선생님은 아이들과 미리 약속한 대로 학교 근처에 있는 버스 정류장으로 달려갔습니다.
그곳에는 벌써 여섯 명의 아이들이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변 선생님이 나타나자 신바람이 난 표정으로 선생님 곁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선생님! 미영이랑 숙자, 그리고 정구는 아직까지 안 왔어요.”
"그래? 그게 웬일일까? 그럼 조금만 더 기다려보도록 할까?“
오늘 모여야 할 아이들의 숫자는 모두 아홉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직 세 명이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이들은 나머지 아이들이 빨리 오기를 발을 동동 구르며 야단법석을 떨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모두가 은근히 신바람이 나서 들뜬 표정을 감추지 못하였습니다.
오늘 아이들이 이 자리에 모이게 된 것은 선생님이 학년 초에 아이들과 약속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학년 초에 선생님은 아이들과 다음과 같은 약속을 하였던 것입니다.
"선생님은 오늘부터 여러분들이 공부를 더욱 흥미를 갖고 열심히 하게 하기 위해서 1학기 동안 성적이 가장 좋은 어린이는 서울 구경을 따로 시켜 주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어요. 물론 파란 맏대그래프도 참고를 해야 되고요. 그때 점심만 각자 준비해 가지고 오면 그 밖의 교통비나 입장료 모두를 선생님이 부담할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그때 같이 서울을 가고 싶은 어린이는 누구나 1학기 성적이 평균 90점 이상이면 데리고 갈 생각이에요. 그러니까 서울 구경을 하고 싶은 사람은 공부를 열심히 하도록 해요. 어때요 여려분! 그렇게 할 생각이 있어요, 없어요?”
“그거 정말이세요? 우와아~~~ 신난다.”
“그럼 선생님 약속을 꼭 지키셔야 돼요. 아셨죠?”
서울 구경을 시켜준다는 말에 아이들은 저마다 큰 소리로 함성을 지르며 마치 벌집을 쑤셔 놓은 듯 펄펄 뛰며 좋아했습니다. 마치 자기 자신이 벌써 90점 이상을 받은 것처럼 벌써부터 신바람이 나서 소리소리 지르며 펄펄 뛰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약속을 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6개월이 흐르고 드디어 약속한 날이 돌아온 것입니다.
변 선생님이 이런 약속을 하게 된 것은 변 선생님 대로 두 가지 뚜렷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선 공부라면 무조건 싫어하는 많은 아이들에게 공부의 흥미와 의욕을 북돋아 주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바른 생활 태도와 행동을 길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아이들을 기다리는 동안 조금 뒤에 숙자와 정구가 오고 맨 마지막으로 미영이도 그 뒤를 따라 헐레벌떡 숨이 가쁘게 뛰어왔습니다.
"히야아! 드디어 저기 버스가 오고 있다!“
아이들이 모두 모이자 그때 마침 저쪽 산모퉁이를 돌아 버스가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버스가 보이자 그렇지 않아도 신바람이 난 아이들의 마음이 다욱 들떠서 야단들이었습니다.
버스가 도착하기 전에 선생님이 다시 한번 아이들을 향해 다짐을 해주었습니다.
“얘들아, 선생님 이야기 좀 잘 들어보세요. 너희들은 1학기 동안 우리 반에서 가장 공부를 잘한다는 모범생들만 모이게 되었죠?”
“네, 맞아요!”
아이들 모두가 모범생이라도 된듯 신바람이 나서 합창을 하듯 큰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은 특히 학교에서 배운 대로 질서도 잘 지키고 모범생다운 행동을 해야 해요. 알겠죠?”
“예! 알겠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들은 곧 차례대로 줄을 맞추어 섰습니다. 그런데 버스가 도착하자 금방 선생님과 약속한 것은 까맣게 잊은 듯 서로 먼저 버스에 올라가기 위해 밀고 밀리며 허둥거리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선생님의 표정이 금세 어두워지고 말았습니다. 아이들을 바르게 가르친다는 일이 이렇게 힘이 든다는 것을 새삼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무튼 그날, 시간이 너무 짧기는 했지만, 남산으로, 여의도 방송국으로, 6.3빌딩으로 빠듯한 일정을 보내며 무사히 서울 구경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무사히 서울 구경을 끝내기는 했지만 왠지 모르게 변 선생님은 은근히 속이 상했습니다. 선생님이 바라던 대로 그리고 학교에서 배운 대로 모범적인 행동을 하지 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이들을 바르게 가르친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것인 줄을 미처 몰랐습니다. 새삼 선생으로서의 한계를 느껴며 마음 한편이 씁쓸하기도 하였습니다.
'아, 과연 앞으로 어떤 방법으로 가르쳐야 모범적이며 예절 바른 훌륭한 아이들로 이끌어 나갈 수 있을까!’
선생님은 자나깨나 그게 가장 큰 걱정거리였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긴 한숨이 새어 나왔습니다.
변 선생님이 이렇게 한숨을 쉬고 걱정을 하는 것도 지나친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학교에서 공부를 제법 잘한다는 아이들의 대부분이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과 실제로는 다른 행동을 하고 있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이들과 소풍을 가던 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입으로는 질서를 잘 지켜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버스를 탈 때부터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건 버스 안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버스에서는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런 예절을 지키기는커녕 서로 먼저 앉으려고 질서를 무시한 채 야단들이었던 것입니다.
그거참,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변 선생님은 그동안 여러 해 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도무지 이해기 어려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이들의 행동과 태도였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예의를 잘 지키고 선생님 말씀을 잘 따르고 순종하는 것은 이제 막 배움을 시작하고 있는 저학년 아이들이 훨씬 모범적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된 일인지 학년이 올라갈수록, 그리고 배우면 배울수록 학교의 규칙과 웃어른에 대한 모든 예절이 점점 엉망이 되어가고 있으니 그게 참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변 선생님이 학년 초에'착한 어린이, 미운 어린이'란 게시판을 마련해 주었던 목적도, 또한 열심히 가르친 모든 결과가 마치 다람쥐 쳇바퀴를 돌듯 모두가 헛수고에 불과하였습니다.
도대체 시험성적이란 왜 필요한 것일까?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신의 행동과는 거리가 먼 그저 시험 성적이나 올리기 위해 시험 때마다 열을 올리곤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험 성적이 좋았다 해도 그의 행동은 시험 성적과는 달리 성적의 반만큼도 실천하지 않는 현실이 너무나 답답하고 안타깝기만 하였습니다.
무더운 여름방학도 지나가고 다시 2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가을이 오기가 무섭게 전교생 모두가 자연학습장을 가게 되었습니다.
1학년과 2학년은 학교에서 비교적 거리가 가까운 공원으로, 3학년과 4학년은 20리나 되는 영릉이었습니다. 그리고 5,6학년은 수학여행을 가기로 하였습니다.
자연학습을 갈 장소가 정해지자, 변 선생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영릉이 가깝지 않고 비교적 먼 거리에 있다는 점, 둘째, 영릉을 가본 아이들이 별로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요즘 가만히 보면 어느 가정이나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지나치게 사랑하고 보호하려는 마음이 너무 자나친 게 아닌가 하는 것을 항상 못마땅하게 여겨오고 있던 변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런 부모님의 무작정 자식 사랑이 결국은 아이들 자신이 해야 할 모든 일들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부모님이 대신 해주기를 바라는 의존심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길러지게 되는 것은 너무나 뻔한 일이었습니다. 바로 그 점을 늘 못마땅하게 생각해 오던 변 선생님이었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