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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Nov 14. 2021

큰소리

[반드시 뜻을 이룬 뒤에야 큰소리도 칠 수 있다]

아주 오래 전의 일이다.      


같은 직장에 지독하게 자린고비인 동료와 함께 근무한 적이 있었다. 갓 결혼한 여직원이었다.   

  

물론 갓 결혼을 한 젊은 여성이기에 멋과 사치를 낼만도 한데 그가 입고 다니는 옷을 보면 거의 단벌에 가까웠다. 더울 때 입는 옷 그리고 추울 때 입는 옷만 다를 뿐 거의 매일 입고 다니는 옷을 보면 4철을 가리지 않고 그 옷이 그 옷이었다.      


화장도 여간해서는 하지 않고 늘 자연 그대로, 생긴 그대로 멋을 내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가 더욱 지독하게 구두쇠라는 것은 직장에서 가끔 회식이 있을 때였다. 어쩌다 직장 상사가 저녁을 내게 되면 참석을 하지만, 개인적으로 얼마씩 내고 회식을 할 때는 으레 갑자기 바쁜 일이 생겼다는 핑계로 회식에서 빠지곤 하였다.   

   

더 지독한 것이 또 있었다. 회사 동료의 결혼식이나 돌잔치 등에도 번번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여간해서는 참석조차 하지 않았다. 축의금 지출을 덜기 위해서였다.   

   

젊은 그가 그토록 지독한 태도를 보이자 동료들은 그 사람이라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를 비웃으며 수군거리기가 일쑤였다.      


그러나 그는 추호라도 부끄러워하거나 창피해 하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은 듯 늘 당당하고 떳떳하고 거침이 없었다. 그런 비웃음과 비난을 부끄러워하거나 겁을 낼 사람이었다면 처음부터 그렇게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다가 누군가가 충고를 좀 하려고 하면 그가 늘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세상에 태어나서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입고 싶은 옷 다 사서 입으며 놀고 싶은 대로 다 놀다 보면 이 다음에는 무얼 먹고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라고…….     


'검소는 수입의 미덕이다'팔만대장경에 실린 명언도 있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검소한 생활이 아닌 자린고비 중의 자린고비였다.  근면검소가 생활의 미덕이라고는 하지만, 평범하게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로서는 가히 상상을 초월한 지독한 구두쇠임에 틀림없었다.   

  

그러기에 그들 부부가 그런 계획과 실천을 하기까지는 대단한 결심이 필요했을 것이라 짐작이 간다.   

   

나중에 소문을 들어 알게 된 일이지만, 그는 생활비가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남편도 제법 이름있는 회사에 다니고 있어서 두 사람이 살아가기에는 그런대로 풍족하면서도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   

   

그런데 그 부부는 결혼을 하자마자 서로 굳게 약속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즉, 월급을 받기가 무섭게 가장 최소한의 생활비, 그리고 가장 적은 액수의 용돈을 나누어 가진 뒤 나머지는 모두 은행에 적금을 넣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용돈이 떨어지면 그 어떤 중요한 행사에도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급히 쓸 용돈이 필요할 때면 일단 급한 대로 주위 사람들에게 빌려 쓰고 다음 달에 갚는 것이 상식이라 하겠다. 그러나 그는 절대로 그런 일이 없었다. 남의 돈을 빌려 쓰게 되면 다음 달 용돈이 더욱 부족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어쨌거나 그는 그런 대단한 결심을 품은 비상식적인 주인공이 되어 주변 사람들의 갖은 비웃음과 힐난을 온몸으로 부딪쳐가며 오랜 세월을 흔들림 없이 꿋꿋하게 잘 버티어 내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몇 십년 뒤, 난 그 사람의 기억은 까맣게 잊은 채 다니던 직장에서 퇴직을 하게 되었다.      






어느 날, 오래전부터 가까이 지내고 있는 지인을 만나보기 위해 지인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지인의 집 부근에 다다랐을 때 나는 우연히 길거리에서 그때의 그 여인을 만나게 되었다. 그야말로 해후였다.


 그는 나를 보자 몹시 반가워하였다.     


난 뜻밖의 일이기도 하거니와 그 사람과 친하게 지내던 사이도 아니어서 좀 어색하긴 했지만 둘이 잠깐 동안이었지만, 길거리에 선 채 그동안 지내온 이야기를 간단히 나누게 되었다.    

  

그 여자 역시 얼마 전에 직장을 그만두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저 앞에 보이는 건물 하나를 가리키며 저 건물이 자기 건물이라고 자랑스럽게 소개를 해주었다.


상가가 딸린 건물은 규모가 제법 컸다. 지금은 집에서 하는 일 없이 가겟세를 받아가며 먹고 살아간다고 하였다. 게다가 직장을 그만둘 때 받은 퇴직금도 은행에 넣고 살아가고 있는데 살아가는 데는 별 지장이 없다고 하였다.    

    

‘광에서 인심이 생긴다’고 하더니 그처럼 지독한 구두쇠였던 그가 전과 달리 마음이 매우 후해졌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참으로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었다. 전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내가 극구 사양을 해도 집구경도 할 겸, 자꾸만 자기 집에 잠깐만이라도 들어가서 차 한 잔이라도 나누자는 것이었다. 난 끝까지 사양하고 말았지만 그를 보는 순간 새삼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지독하게 구두쇠 노릇을 하며 지금가지 보나마나 많은 사람들로부터 본의 아닌 구설수를 들어왔을 것이다.     


그런 그가 지금도 여유롭지 못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면 과연 그가 지금처럼 그렇게 너그러워질 수 있었을까?

 아마도 지금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웃음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그토록 지독하게 자린고비 짓을 하더니 아직도 그 모양 그 꼴로 살아가고 있느냐고…….     

그러나 현재 그의 앞에서는 감히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못할 것이다. 일단은 그의 뜻대로 그만큼이나마 성공을 했으니 말이다.      


엉뚱한 비유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누구나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한 사람은 절대로 큰소리를 칠 수가 없다. 가령 큰소리를 친다 해도 아무도 그의 말을 믿어주지도 않고 알아주지도 않는다.    

  

그러기에 일단 크게 성공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 말은 격언이 되고 어록이 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은 아무리 금언이라 해도 아무도 귀 기우려 들어주려는 사람이 없지 않던가!    

        

큰소리를 치고 싶다면 누구나 자신의 뜻을 굽히지 말고 끝까지 밀고 나가서 그 뜻을 반드시 이룬 후에만 가능한 일이라 하겠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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