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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나무 Nov 23. 2021

전쟁 시절의 병정놀이

[단연 인기가 높았던 병정놀이]

요즈음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오징어게임’이란 드라마가 대단한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 각지에서 그 드라마를 보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너도나도 열광하며 실제로 드라마에서 나오는 놀이를 따라하며 즐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드라마의 인기가 그토록 대단하다는 소문을 듣고 과연 어떤 이야기이기에 그토록 열광하고 있는지 은근히 궁금한 마음에 시간을 잡아 종편까지 모두 시청하게 되었다. 

매회 박진감 넘치는 스릴과 흥미진진한 잔인한 스토리이긴 하지만, 다음 이야기의 전개가 궁금하여 끝까지 시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쨌거나 이토록 전 세계인들이 열광할 정도로 훌륭한 작품을 제작 방영했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대단한 수확이며 쾌거가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오징어게임’의 인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게 되자 북한에서는 ‘남한 국민들의 현 사회 실상을 그대로 보여준 드라마라는 어처구니 없는 혹평을 하기도 하였다.      

일본에서는 드라마에 나온 게임들의 대부분이 자기 나라의 놀이였었는데 과거 한국 아이들이 그대로 모방해서 즐겼던 놀이, 즉 자기 나라의 놀이를 한국에서 빼앗아 갔다는 식의 평을 내놓기도 하였다.   

옛날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다. 이 역시 우리나라가 잘 되는 꼴을 보다 못해 배가 아파서 내뱉는 소리들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처럼 드라마가 인기가 높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개인적으로 왠지 아쉬운 감도 없지 않았다. 천진난만하고 순수했던 어린 시절에 즐기던 우리 고유의 놀이들을 그토록 잔인한 드라마에 이용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었다.  

6.25 동란 중에 어렸던 시절, ’오징어게임‘을 비롯해서 오징어 게임에 나오는 각종 놀이들 모두가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 밖에도 오재미 놀이, 산가지 놀이 실뜨기 놀이 등 많은 놀이들을 즐기고 놀았지만, 뭐니뭐니해도 그중에서도 특히 남자아이들의 ’병정놀이‘는 단연 인기가 높았던 놀이였다.     

다른 지방에서는 어쩐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태어난 곳이 바로 휴전선에서 비교적 가까운 경기 북부의 시골 마을이었기 때문에 병정놀이가 더욱 왕성했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헤 보게 된다.       






5,60호 정도 되는 초가집이 옹기종기 모여 살던 내가 어렸을 때의 우리 고향 마을은 아랫마을과 윗마을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리고 6.25 전쟁 중에는 아랫마을과 윗마을에서는 누군가가 나서서 어린 병정들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병정들은 모두가 강제가 아닌 자원병이었으며 나 역시 호기심에 얼른 용기를 내서 자원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모인 병정들의 수효는 아랫마을과 윗마을에 각각 열댓 명 안팎이었다. 그 모두가 열살 안팎의 어린 병정들이었다.      


어린 병정들을 지휘하고 명령하는 대장도 아랫마을과 윗마을에 각각 서너 명씩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은 번갈아 가며 대장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들이 어떤 절차를 밟아서 대장이 되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동네에서 기운깨나 쓰는 청년이 나서서 스스로 대장이 되지 않았나 짐작하고 있을 뿐이다.  

    

대장들의 나이는 어린 병정들보다 네댓 살 위인 열대여섯 살 안팎이었다. 그리고 대장들의 명령과 지시는 절대로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장이 보기에 명령에 잘 따르지 않는다는 판단이 서는 병정에게는 그때마다 대장 마음대로 간단한 체벌을 주곤 하였다. 그래도 명령에 잘 따르지 않을 경우에는 여러 병정들이 보는 앞에서 가차없이 계급을 강등시키기도 하였다.    

 

이와 반대로 명령에 순종하고 훈련을 잘 받는다고 여겨지면 승진을 시켜주기도 하였다. 병정들은 다른 병사들이 계급이 올라가는 것을 보며 누구나 부러워하였다. 그리고 누구나 자신의 계급이 올려주기를 소망하고 있기에 대장의 명을 절대적으로 복종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병사들이나 대장의 계급장은 머리에 쓴 일명 ’할로 모자‘(미군부대에서 구해온 신문지로 만들었음)에 어디서 구했는지는 모르지만 밥풀로 별표 모양으로 된 색종이를 하나씩 모자에 붙여주곤 하였다.    

  

복장도 우스꽝스럽기 그지 없었다. 누구나 바지저고리 차림에 신문지로 만든 할로 모자, 그리고 검정 고무신을 신고 훈련을 받곤 하였다(그 시절엔 별 도리없이 바지저고리와 조끼 차림의 단벌이긴 하였지만) 그리고 작대기보다 조금 짧은 막대기를 총 대신 하나씩 메고 다니는 것이 전부였다.        


병정들이 훈련을 받는 장소는 주로 마을 뒷동산에 있는 제법 널따란 잔디밭이었다.      


훈련은 대부분 제식 훈련과 군가에 맞추어 걷는 행군, 그리고 번호에 맞추어 걷거나 뛰는 행군이었다.      


그 밖에도 잡자기 적군의 공습에 대처하기 위한 위험 상황에 처했을 때 자신의 몸을 보호하고 적을 무찌르기 위한 공격 훈련 등이었다. 실제로 전투기가 갑자기 공습을 하기 위해 나타났을 경우에는 산기슭에 파놓은 방공호로 급히 뛰어들어가서 몸을 숨기지 않으면 안되는 위험한 일도 잦았다.     


그러기에 병정들이 훈련을 받는 날은 하루종일 ’우향 우!‘. 좌향 좌!’, 뒤로 돌앗!‘ 엎드려 뻗쳐!’ ’일어섯!‘ ’뒤로 돌아 갓!‘, ’앞으로 갓!‘……등, 대장의 명령 소리가 온 동네가 시끄럽게 울려퍼지곤 하였다.      

 

제식 훈련이 어느 정도 끝난 다음에는 으레 행진 훈련을 받게 된다.    

  

행군은 주로 잔디밭에서 동네로 내려가서 동네 앞 큰 행길을 따라 저 멀리 언덕배기에 있는 성황당 앞까지 갔다가 되돌아 오는 게 단골 코스였다.  

    

”하낫! 둘! 셋! 넷! 하낫둘! 셋넷! 하낫둘 셋넷!“     


병사들은 대장의 구령에 맞추어 절도 있는 동작으로 행진을 하게 된다. 번호만 맞추며 행진만 하는 것이 아니다. 목청껏 소리소리 지르며 군가에 맞추어 행진을 하기도 한다. 그들이 부르는 군가 소리는 귀청이 떨어져나갈 것처럼 온 마을이 온통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져나가곤 하였다.     

 

일렬 종대로 보무도 당당하게 행진을 하고 있는 열댓 명의 어린 소년병들, 그 대열 옆으로는 대장 한 명이 부지런히 따라다니며 씩씩한 목소리로 연신 명령을 하고 있다.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보무도 당당했다.   

   

간간이 대장의 씩씩한 명령소리도 울려펴진다.       


“자, 이번에는 군가를 부르기로 하겠다. 알아들었나?”         


“넵! 알겠습니다!”     


“그럼 이번 군가는 ‘양양가’다. ‘양양가’ 시이자악!”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소년병들은 우렁찬 군가를 부르기 시작한다. 오른쪽 어깨마다에는 하나같이 막대기로 된 총을 하나씩 메고 행진하며 군가를 부르고 있는 그들의 눈이 서릿발처럼 이글거리며 타오른다.    

  

    ♬ 인생의 목숨은 초로와 같고 

        이씨조선 오백년 양양하도다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 

       ~이슬 같이 죽-겠노라--♬      


씩씩한 군가가 끝나기가 무섭게 대장의 명령이 다시 떨어진다.     

 

“자 이번에는 구보다! 구보와 동시에 번호를 맞추어 가도록 한다. 번호 맞춰 갓!”     


병정들은 이번에도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앞에 총’을 한 자세로 목청껏 번호를 맞춰가며 구보를 하기 시작한다. 비록 어린 병정들이기는 하지만 그처럼 절도있고 씩씩해 보일 수가 없다.  너도나도 배고프고 허기진 시절에 어디서 그런 힘이 샘솟았는지 모를 일이다. 그야말로 천하무적이며 보무가 당당하다.      


“하낫 둘 셋 넷, 하나 둘 셋 넷!”     


“자, 이번에는 별명이 있을 때까지 연속해서 번호에 맞춰 행진하도록 한다. 번호 맞춰 갓!”     


어린 소년병들은 다시 구보를 하면서 연신 번호에 맞춰 행군을 하고 있다. 그렇게 행군을 하다 보니 소년병들의 이마에는 어느 새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있다.      


그러나 누구나 힘이 들어도 힘들어 하거나 작은 불만의 목소리조차 내지 않는다. 오직 어떻게 해서라도 대장의 눈에 들게 하기 위해 충성심을 발휘하기에 여념이 없을 뿐이다.     

    

“자, 이번에는 군가 ‘무명지’이다! 무명지 시이자악!”       

  

    ♬ 무명지 깨물어서 붉은 피를 흘려서 

        손꼽아 기다리던 이 소식이 꿈인가

        감격에 못 이겨서 손끝을 깨물어서 

        대한민국 병정 되기 지원합니다     


       무명지 깨물어서 붉은 피를 흘려서 

       태극기 그려놓고 천세 만세 부르자 

       한 글자 쓰는 사연 두 글자 

       나라님께 병정되기 소원합니다.     


군가 ‘무명지’끝나면 바로 다음 군가가 기다리고 있다.      


“자! 이번에는 ’신대한‘이다! 신대한 시이자악!!”       


병정들의 ’신대한‘노래가 다시 울려퍼지기 시작한다.      


   ♬ 신대한 국방군을 뽑는다는 이 소식

       손꼽아 기다리던 이 소식이 꿈인가

       감격에 못 이겨서 손끝을 깨물어서 

       대한민국 병정 되기 지원합니다. ♬          


그 당시에 그런 군가들을 누가 어디에서 배우게 되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리고 군가의 제목을 몰라 주로 군가의 맨 앞 소절에 나오는 낱말을 제목 대신 사용하였다. 나중에야 알게 된 일이지만 ‘무명지’란 ‘충성가’, ‘혈청지원가’, ‘혈서지원가’였다.       


지금도 그때의 병정놀이들 하던 모습과 군가를 부르던 노랫소리가 마치 엊그제 일처럼 귓가에 생생하기만 하다. 그러나 지금은 그 모두가 이미 70년이란 세월이 흐른 지난 날의 아련한 추억이 되고 말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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