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겨울나무 Jan 25. 2022

성급한 국민성

[그렇다고 모든 일의 추진력이 빨라지는 것은 아니더라]

잠깐 국문학사를 살펴보면 우리 민족의 국민성을 일찍이 ‘은근과 끈기’라고 밝혀 놓은 바 있다. 우리 민족은 그와 같은 국민성을 자랑스럽게 여김은 물론 자부심을 간직한 채 오랫동안 살아온 것이 사실이다.   

    

은근과 끈기 와는 좀 결이 다른 이야기가 될는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조상인 옛 선비들은 그 어떤 경우에도 급한 것이 없었다고 한다. 그 어떤 급한 경우에도 느긋했으며 아무리 가난해도 가난한 척하지 않으며 평생 느긋하고 여유로운 삶을 살아갔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만일 길을 가던 중에 갑자기 아무리 큰 소나기가 쏟아져 내려도 절대로 급히 뛰어가는 일이 없이 그대로 비를 흠뻑 맞으며 여유롭게 양반 걸음을 유지하며 걸어갔다고 한다.   

  

또한, 며칠을 양식이 바닥이 나서 비록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지언정 금방 고기를 실컷 뜯어 먹은 것처럼 보이기 위해 이를 쑤시고 다니기도 하였다는 것이다.


그만큼 체통과 체면을 중시한 것이 우리 조상들의 삶이 아니었나 생각해 보게 된다.   

    

혹자는 체통이나 체면이 밥을 먹여 주느냐고 어리석은 짓이라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역시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어쨌거나 이와 같은 예들 모두가 바로 우리 민족의 국민성인 은근과 끈기와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우리 조상들의 그런 풍습들은 이미 오래전의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체통과 체면을 무시한 채 세월이 갈수록 성급하고 공격적이면서도 저돌적인 성급한 성격으로 급속히 변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해볼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물론 우리 조상들의 국민성이 무조건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왜, 그리고 무슨 까닭으로 언제부터 그렇게 성급하게 변해버리고 만 것일까?      


우리 국민들의 성급한 성격은 우선 음식을 먹을 때에도 흔히 나타나고 있다고 그 누군가는 다음과 같은 실례를 들기도 하였다.        


성급한 우리의 음식 문화     


언젠가 어느 유명 강사의 강의를 매우 흥미진진하게 들어본 적이 있다.      


강사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음식을 먹는 모습을 외국인들이 보고 몇 가지 놀란 우스운 예를 들려주었다.  

      

그는 현재 우리나라 국민들의 성격은 세계 그 어느 나라 국민들보다 가장 급하기로 유명하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먼저 중국인들이 본 우리나라 사람들의 음식 문화에 대한 일화를 재미있i고 흥미롭게 들려주고 있었다.   

       

중국인들은 원래 음식을 먹을 때 특히 천천히, 그리고 느긋하게 즐기며 먹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러기에 코스 음식으로 한 끼 식사를 할 때 짧게는 한 시간, 길게는 두 시간 이상 여유를 가지고 음식을 천천히 음미하며 하루의 피로를 풀기 위해 즐기는 시간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들과는 달라도 너무나 다름을 알 수 있었다.  

    

중국요리 중에 코스 요리의 예를 들자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요리가 나오기가 무섭게 시장하고 배가 고프다며 처음부터 허겁지겁 쫓기듯 단번에 배불리 먹어치운다는 것이다.      


코스 요리의 특징은 대부분 처음에는 맛이 적은 값싼 음식으로부터 시작해서 나중에는 점점 더 맛있는 고급 요리가 나오게 마련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음식이 나오는 대로 누가 빼앗아 먹기라도 한다는 듯 허겁지겁 배불리 먹어치웠기에 나중에 고급으로 나오는 값진 요리는 아깝긴 하지만 배가 불러서 더이상 못 먹고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 국민들의 성급한 성격은 중국의 어느 식당에서도 쉽게 엿볼 수 있었다고 하였다.      


우리나라 사람 중에 누군가가 식사를 하기 위해 어느 식당으로 급히 들어왔다. 아마 펄펄 끓는 음식이 뚝배기에 나오는 설렁탕이나 순댓국집이 아닌가 짐작케 한다. 그는 음식을 주문할 때부터 음식을 빨리 해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서도 언제 음식이 나오냐고 계속 재촉하고 있었다. 그가 재촉을 할 때마다 옆에 있던 사람들 역시 불안한 마음에 그가 몹시 바쁘고 급한 일이 있나 보다 하고 생각하며 그를 흘금흘금 곁눈질로 바라보고만 있었다.     

   

드디어 그토록 재촉을 하던 펄펄 끓는 음식이 나왔다.   

  

그는 음식이 나오자마자 수저로 음식을 한번 휘휘 젓고 나서 그 뜨거운 음식을 ‘후루룩, 후루륵’ 소리를 내며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음식이 너무 뜨거워서 땀을 뻘뻘 흘려가며 다 먹고나서는 급히 음식점 문을 열고 밖으로 쫓겨나듯 성큼성큼 걸어나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무슨 일이 그렇게 바빴던 것일까?     


지금까지 급히 서두르며 그 뜨거운 음식을 삽시간에 먹어치우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주변 사람들이 그제야 불안하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입을 열고 수군거리게 되었다.       


혹시 어디서 전쟁이 난 거 아닐까?“     


그러게나 말이야. 아마 몹시 급한 일이 있나 봐.“     


그리고 강사의 말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성급한 성격은 사탕을 먹을 때도 쉽게 알아볼 수 있다고 하였다.      


사탕이란 원래 입안에 넣고 오랫동안 녹여 먹어야 제맛이 나게 마련이다. 하지만, 불과 5분을 참지 못하고 ‘오도독’ 소리를 내며 깨물어 먹는 국민은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뿐이라고도 하였다.    

  

그야말로 우물에 가서 숭늉을 찾고 돼지 꼬리 붙잡고 순댓국 달라고 할 정도로 급한 성격으로 변한 것이다.      

과거 한때는 도급(都給)이란 제도가 성행한 적도 있었다      


도급이란 어떤 일을 완성해 줄 것을 약속하고 그 일의 결과에 대해 일정한 보수를 지급하기로 하는 계약이다. 이 도급은 과거 새마을 운동 때 특히 많이 쓰였던 제도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데 이 도급제도를 가장 좋아하는 것도 한국 사람들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다리 하나를 놓는데 1년 이상 걸릴 공사를 도급을 주고 맡기면 횃불을 밝히고 밤을 새워서라도 불과 몇 달 만에 뚝딱 완공해 놓는 특별한 재주를 가진 것이 한국 사람들이라 하였다.    

  

그러기에 외국에서도 어떤 공사를 빨리 진행하고 싶을 때는 주로 한국 사람들을 많이 불러서 썼다고 한다. 이 역시 한마디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성급한 성격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하나의 예라 하겠다.       


또한 지하철과 버스를 탈 때에도 항상 느끼는 바가 있다.     


지하철 또는 버스를 탈 때마다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라 하겠다. 만일 자리가 한 군데 비어 있다 하면 마치 맹수가 먹잇감을 향해 전속력을 다해 질주하듯 그 자리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가서 궁둥이부터 갖다 대며 자리를 차지하곤 한다.      

평상시에는 동작이 마냥 느리기 짝이 없던 사람들도 그런 때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 그렇게 동작이 빠를 수가 없다.


만일 그런 사람들이 단거리 경주에 나가면 그들 모두가 2등을 하라면 서러워할 것은 두 말할 필요조차 없는 사람들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동작이 느린 나 같은 사람들은 이제 뭐 하나 얻어먹기조차 어렵고 힘든 세상이 되고 말았다.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줄임말과 신조어들    

 

요즈음 날마다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신조어와 줄임말만 해도 그렇다.    

  

무엇이 그렇게 바빠서 얼른 이해하기도 어려운 줄임말을 너도나도 앞다투어 즐겨 사용하고 있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마치 신조어를 많이 알고 많이 사용하는 것이 큰 자랑거리이며 또한 그래야만 무시당하지 않고 함께 어울릴 수 있다는 것처럼…….     


여간해서는 알아들을 수도 없다. 새록새록 나오는 신조어를 좀 따라가보려고 노력을 해도 좀처럼 따라갈 수도 없고 그래서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가 어려울 때가 너무 많아 불편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신조어를 모른다면 요즘 젊은 세대와 말도 잘 안 통한다. 그러기에 구세대로 낙인을 찍히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된지 이미 오래이다.   

   

뭐가 그리 급해서, 그리고 뭐거 그리 바빠서 줄임말을 그토록 즐겨 쓰게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분명한 것은 줄임말을 쓴다고 해서 어떤 일을 더 많이 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어느 정도의 줄임말과 신조어, 그리고 외래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말의 품격도 있고 이해가 빠를 경우도 많다는 것은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런데 세계적으로도 그 자랑스럽고도 훌륭한 우리말을 송두리째 버리고 그런 줄임말과 신조어만 찾아서 사용한다는 것은 그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건 차라리 신조어와 줄임말, 그리고 외래어의 홍수가 아니라 언젠가 오래전에 일본 열도를 삽시간에 휩쓸어 버린 쓰나미의 위력보다 더 무서울 정도로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기에 이대로 나가다가는 조만간 우리의 아름다운 한글과 말이 모두 쓰나미처럼 휩쓸려 사라져버리는 것은 아닌지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문득 나랏말이 없어서 백성들을 불쌍하게 여긴 끝에 한글을 창조해 주신 세종대왕께서 아시면 땅을 치며 통탄하실 것만 같기도 하다.  

           

성급한 것은 대중가요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것 같다. 바로 랩(rap)이라는 노래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노래 가사도 너무나 빠르고 곡의 템포가 어찌나 빠른지, 그리고 가사의 발음도 명확하지 않아 가사를 알아들을 수도 없거니와 그것을 즐기지 못하는 구세대들은 듣기만 해도 숨이 차서 왠지 불안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요즈음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그런 숨이 차는 노래를 자동차에까지 성능 좋은 스피커를 달고 다니며 즐겨듣기도 하고 즐겨 부르고 있으니 나 자신은 그만큼 구세대이며 나이를 너무 먹었다는 생각에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음악이 싫으면 듣지 않으면 될 일이겠지만 어쩌다 그런 노래가 들려오게 되면 나도 모르게 낯이 일그러지고 만다. 너무 불안하기도 하다.

     

음악이란 말 그대로 ‘즐거운 소리’ 라는 뜻임에도 불구하고 즐겁기는커녕 귀가 아프고 곧 짜증이 나는 걸 보면 이를 어쩌면 좋으랴. 그러기에 완전히 격세지감도 대단한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건 젊은 세대들의 생각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어쩌다 TV에서 흘러간 노래(특히 KBS의 ‘가요무대’) 소리가 흘러나오기만 하면 왠지 졸립고 맥이 빠져서 들을 수가 없다며 얼른 꺼버리라고 강요를 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열 곡이면 열 곡 모두 사랑에 실패하고 실연을 당한 나머지 울고 짜고 하는 가사이며 목소리여서 듣기만 해도 맥이 빠져서 도무지 들을 수가 없단다.     

 

그렇다는 걸 나는 어쩌랴. 마음속에 있는 넋두리를 하려면 아직도 멀었다. 어느 나라든 세월이 갈수록 그 나라 문화와 생활 풍습은 변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싫든 좋든 세상 변화에 순응해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공연히 나만의 쓸데없는 시시콜콜하기 그지없는 넋두리가 너무 길어진 것은 아닌지 또한 걱정이 앞선다.

 ( *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