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흐르지 않는다_가능성 위를 걷는 나
사람들은 묻는다.
"이게 내 운명일까?"
그 물음에 대개 어떤 힘든 선택의 끝에서,
혹은 우연처럼 보이는 만남 앞에서 떠오른다.
나는 오래도록 그 물음 앞에서 맴돌았다.
내가 걷는 길은 정해진 것인지,
아니면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는 것인지,
돌이켜보면,
우리는 우리가 이미 지나온 결과를 '운명'이라 부르곤 했다.
ㆍ어릴 적 다니던 학교,
ㆍ우연히 앉은자리에서 만난 사람,
ㆍ놓친 기회,
ㆍ지나간 사랑.
그 순간엔 우연처럼 느껴졌지만,
나중엔 꼭 필연이었던 것처럼 기억된다.
"아, 그건 운명이었지."
하지만 그건 기억이 만든 서사일지도 모른다.
운명은 때때로,
**이미 지나간 선택의 '정당화된 이름'**에 불과하다.
나는 점점 그렇게 느끼게 되었다.
운명이란,
아직 쓰이지 않은 공간이고,
그 위에 나는
하루하루 내 삶을 적어 내려 가는 필사자다.
정해진 미래라는 개념은
우리에게 때로는 위로가 되지만
실제로는 가능성의 다양성을 지워버린다.
나는 그 '지워진 가능성들'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한 걸음만 달랐다면,
한 사람만 달랐다면,
내 삶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렀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흔히 삶을
하나의 길, 하나의 줄기처럼 여긴다.
그러나 실상 삶은
수많은 가능성이 매 순간 겹쳐진 다발 속을
자아의식이 지나가는 행위에 가깝다.
삶은 하나의 이야기이지만,
그 아래엔 수십 개의 다른 이야기가 흐르고 있다.
다만, 우리는 그중 단 하나를 '살아냈기 때문에'
그것만이 현실처럼 느껴질 뿐이다.
그러니 운명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가능성 위를 지나간 흔적이다.
나는 때때로
선택하지 않은 길 위에 있었을 수도 있는
'다른 나'를 상상한다.
ㆍ포기한 꿈을 붙들었을 나
ㆍ말하지 못한 감정을 전했던 나
ㆍ어느 날 돌아서지 않았다면 만나지 않았을 사람들
그 모든 가능성은
지금 이 세계 어딘가에서
조용히 살아 있는 듯 느껴진다.
그리고 나는
그 모든 나를 통과하며
지금의 나로 결정되었다.
어쩌면 운명이란,
단 하나의 결과가 아니라
내가 떠나온 모든 가능성에 대한 애도일지도 모른다.
그 애도를 품은 채,
나는 나를 택한다.
지금의 나, 이 경로, 이 세계.
그러니 운명은
과거가 만든 결과가 아니라,
지금 이 선택이 만들어가는 미래다.
나는 그 위를 걷는다.
운명은 시간처럼 흐르지 않는다.
그건 움직이지 않는 가능성의 숲이다.
그 안에서 내가
한 가지 길을 따라 걷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길은, 나의 발자국이 찍히기 전까지는 아무 이름도 가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