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 제니퍼 로렌스/하비에르 바르뎀 <마더>
이 글은 대런 아로노프스키 마더와 블랙 스완, 노아에 대한 감상을 다루고 있습니다. 스토리 전반을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각각 장면에 대한 해석이 포함됩니다. 스포일러에 민감하신 분은 관람 후에 읽으시길 바랍니다.
놀랍게도 이 영화에는 캐릭터의 이름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극을 이해하고 흐름을 따라가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영화 제목 <마더>에 중의적 의미를 담았다. mother earth, 그리고 그리스도를 잉태하는 동정녀 마리아. <마더>의 홍보 포스터를 보면 마더의 얼굴을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시선이다. 사람들이 성당에 갔을 때 성모 마리아 성물을 바라보는 시선과 비슷하다. 엔드 크레디트에는 재밌는 요소가 있는데 Him(이하 창조주)을 제외하고 모두 소문자로 표기되어 있다.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블랙 스완>에서 니나(나탈리 포트만 분)의 심리 변화를 깊고 날카롭게 묘사했다. 인물을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연출 스타일이 관객의 마음을 끊임없이 괴롭히고 긴장하게 만든다. 감독은 <마더>에서도 그 장기를 잘 살린다. 제니퍼 로렌스 시점을 통해 관객의 긴장감을 가중시킨다. 관객은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상영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감독이 숨겨놓은 퍼즐을 하나씩 풀게 된다. <마더>는 개인적 서사보다는 더 커다란 담론에 초점을 두고 있다. 성경 속 이야기를 그려낸 <노아>에서 감독이 풀어놓았던 담론의 연장선처럼 보이기도 한다. <블랙 스완>과 <마더>는 시작과 끝에 유사점이 있는데, 두 작품 모두 주인공이 침대에서 일어나면서 도입부가 시작되고, 마지막에는 죽음을 맞이한다. <블랙 스완>에서 니나가 자신을 죽음으로 내몰면서까지 연기를 하고서 마지막에 하는 대사가 "Perfect."이고 <마더>에서는 창조주가 시를 완성했을 때 마더가 "It's Perfect."라는 대사를 한다. 감독 스스로가 창작자와 예술가로서 고통을 너무 잘 알고 있고, 작품을 완성했을 때 성취감과 자신감, 희열을 표현하는 대사처럼 들린다.
제니퍼 로렌스는 <마더>에서 리액션 연기의 끝을 보여준다. 관객은 그녀를 쫓아가는 핸드 헬드 카메라에 시종일관 몰입하게 된다. 불청객으로 인해 속수무책으로 파괴되는 집(대자연, 지구를 의미)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고구마를 입 안 가득 먹고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한 것처럼 답답해진다. 창조주는(하비에르 바르뎀 분) 마더의 관점(관객의 관점)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자신만의 거대한 계획이 있고 다른 존재는 장기 말에 불과하다. 미소를 짓고 있는 이면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고뇌가 있는 듯한 복잡한 내면 연기를 보여준다. 에드 해리스는 등장부터 수상한 기운을 물씬 풍기며, 초반부에 몰입에 지대한 역할을 한다. 미셸 파이퍼는 중반까지 마더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극의 또 다른 축을 담당한다. 미셸 파이퍼의 뛰어난 연기로 인해, 사람의 말 한마디가 어디까지 몰상식하고 무례할 수 있는지 실감한다.
영화가 내포한 여러 기독교적 상징에 대해서는 시사회 첫날부터 논란과 함께 많은 분석이 나왔다. 아담과 이브부터 카인과 아벨, 선악과를 묘사하는 크리스털, 성찬식, 여러 죄악들, 대홍수, 종말 등... 많은 비유가 나온다. 어디까지가 창조주의 뜻이고 어디부터 인간의 자유의지인지 명확하게 구분되지는 않는다. 나는 수많은 비유에 대한 해석을 그대로 전제하면서 재관람 후 느낀 새로운 관점을 더하고 싶다. 시사회 관람 시에는, 첫 장면이 마더가 꿈을 꾸고 아침에 깨어나는 장면처럼 보였다면 재관람부터는 이것이 여러 번 반복되는 (루프 물) 이야기인 것을 알게 된다. 창조주의 대사에서도 기억, 원고 모든 것을 화재로 잃었다는 대사가 나오는데. 아무리 창조주라고 할지라도 만물을 다시 재건하려면 자신조차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마더는 인간의 만행을 참다못해 창조주를 독촉하지만, 창조주는 인간을 용서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대답한다. 인간이 자유의지를 갖고 세상을 엉망으로 만들 때조차 창조주는 인간을 용서할 방법을 찾고 있는 것이다.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8자 모양은 뫼비우스의 띠, 부활, 무한으로 반복되는 것을 의미한다. 감독과 미술팀은 액자, 집의 구조 심지어 바닥 타일까지 세심하게 8 각형으로 꾸며놨다. 마더가 세상을 종말로 인도하고 천국과 지옥과 같은 내세가 묘사되지 않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된다. 이러한 연출은 니체의 영원 회귀 사상에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인다. 영원 회귀에 대해 다룬 설명을 인용하자면, '인생이란 카세트 데이프와 같이 만일 다시 태어났다고 해도 그 해 그때 그 순간까지, 완전히 같이 다시 반복하는 것'이다. 영화 시작과 끝에서 보여주는 순환 구조와 일치한다. 감독은 어떻게 하면 관객의 관심을 끌어내는 지를 잘 알고 있다. 감독은 인터뷰에서 관객이 자신의 영화를 아주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했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누군가가 이 영화를 두고 기독교적, 혹은 반기독교적인 영화인지 묻는다면, 둘 다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것이다. 감독은 마더의 고통을 통해 묻는다. 자기반성은 하지 않고 오직 신을 추종하며 신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는 인간, 그리고 그런 인간을 조건 없는 사랑으로 대하는 창조주. 이런 관계가 이대로 괜찮은가 묻는다. 맹목적인 신앙, 종교 분쟁, 전쟁, 빈부의 격차, 모든 이기심과 탐욕을 경계하라 외치는 것은 아닐까? 영화에 대한 해석은 관객마다 다를 것이다. 이 영화는 메타포 때문에 논란이 될 수 있겠지만 사실은 메시지가 중요한 영화다. 유쾌하게 볼 영화는 아닐지 모른다. 다만 인간 사회의 이기심과 종교 극단주의에 대한 화두를 던져주는 것만으로도 한 번쯤은 볼만한 영화임에 틀림없다.
나에게 영원 회귀처럼 삶이 다시 주어진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 상영관을 걸어 나오며 밝은 빛을 마주한다. '지금은 나에게 몇 번째 주어진 삶이었을까' 하는 재밌는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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