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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eHyun Kim Dec 27. 2022

제목 없는 소설(3)

실외우주복을 벗고, 가장 먼저 식수주머니에 물을 채운다. 우주복을 입고 있는 상태에서 땀은 많이 나지 않는다. 체온을 유지해주기 위해 우주복 내를 순환하는 물의 온도가 계속 변하기때문에 몸이 약간 축축해지는 정도는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주라는 환경이 주는 긴장감 탓인지 나갔다 돌아오면 늘 목이 탄다.

입에 식수주머니의 튜브를 문채로 전체 회의실로 발길을 옮긴다. 회의실로 가는 복도의 모퉁이를 돌자 저 반대편에 오늘의 작업감독관인 위다야의 모습이 보인다.

"여~ 오늘은 고생했네"

인도네시아 출신의 위다야가 특유의 사람좋은 미소를 지어보인다. 이제 60대에 접어들기 시작한 위다야의 인상은 인심좋은 식료품점 주인이라 해도 믿을정도이다. 하지만 그는 나이에 무색하게도 젊은 사람들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나이 많은 사람이 더 고생해야 한다며 가장 어려운 현장만을 담당하는 사람이다. 기지 안에서는 사람좋은 관리자이지만, 기지밖 캠프에서는 엔지니어들을 휘어잡고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으로 평이 좋다.

복도 중간의 회의실로 갈수록 위다야의 얼굴이 점점 커진다. 그와 동시에 회의실 안의 왁자한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었다. 아니, 왁자한 소리가 아니라 당장이라도 멱살을 잡을듯 으르렁 대는 소리랄까.

나보다 먼저 회의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며 위다야가 중얼거린다.

"휴, 오늘도 시작이군"


회의실 벽에는 작업공정을 그려둔 도표로 가득하다. 자원이 부족해 칠하지도 못하여 금속면이 그대로 노출된 회의실 벽은 좋은 칠판이 된다. 벽에는 작업과 관련된 아이디어와 논의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중간중간 보이는 "지우지 마시오!", "5. 25 합의됨", "주의! 완결되지 않은 아이디어. 실행금지"따위의 말들은 그중에서도 붉은색 마커로 누가 봐도 잘 보이도록 크고 굵게 써져있었다.

그 반대편 벽에는 작업진행도의 표가 그려져있다. 표 안에도 여러가지 많은 메모들이 빈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 수많은 메모들의 공통점이라면 하나같이 "일정 지연"을 의미하는 것이랄까. 그만큼 우주는 예상할수 없는 공간이다. 지구에서 일주일이면 해결될 작업이 여기서 한달동안 머리를 싸매게 만드는것은 너무 흔해서 이야기거리도 못된다.


바로 그 벽 앞에서 두 팀이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에너지 팀을 이끌고 있는 프랑스 출신의 앙리. 그리고 기계팀을 이끌고 있는 러시아 출신의 니콜라이.

"말을 못알아 듣겠어? 에너지 공급이 불충분하다니까! 다른 기지에서 이끌고 오는건 한계가 있어. 현장에서 가까운곳에 임시로 발전소를 만드는게 낫다고!"

"나도 말을 했을텐데? 지금 이 캠프 주변의 지형에 발전소까지 지으려면 채굴팀까지 달라붙어서 공간을 만들어야해. 매일같이 작업만으로도 망가져서 돌아오는 장비와 차량이 수리를 기다리고 있는데 발전소까지 지어대면 우리팀의 작업량을 아득히 뛰어넘게 될거야. 그리고 그런일이 안일어 난다 한들, 발전소를 짓기 위한 자원이 부족해!"

"이봐. 잘들어. 자네팀이 장비를 수리하는것도, 그리고 이 캠프를 유지하는데도 에너지가 필요해. 에너지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한다고."

"그래서 자네가 다른기지에서 이끌고 온다고 하지 않았나! 단지 기지에서 여분의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로 하는건데 그때까지만 버티면 된다고!"

"그래! 하지만 거기서 여기까지 에너지를 끌고 온다한들, 에너지라인을 관리하는데 또 자원이 소모될거야. 그럴바에야 발전기를 만드는게 낫지!"

"아~ 그러니까 자네들이 저 밖에서 관리작업을 하기 싫으니 발전소를 지어달라는 소리로군 그래"

"뭐라는거야 이 망할자식이! 캠프에 처박혀서 정비만 하고 있는 놈들은 네놈들이지!"


예견된 대로의 감정싸움. 달려드는 앙리의 턱에 니콜라이가 어퍼컷을 날리기 위해 상체를 숙이는 순간, 벼락같이 내입에 물린 식수주머니를 위다야가 낚아채어 두사람에게 물을 뿌렸다.


"지금이 서로 싸우고 있을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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