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홍련전.
0. 장화홍련. 영화로도 만들어진 우리나라의 전래 동화. 물론 영화 내용은 원판의 내용과는 뭔가 엄청난 거리감이 있는 사이코 (근친) 불륜 드라마가 되어버렸지만, 덕분에 장화홍련전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 싶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용을 요약해 보자면, 장화와 홍련이라는 자매가 누명을 쓰고 억울한 죽음을 당했는데, 그 귀신이 밤마다 나타나 고을의 원님에게 하소연하니 슬기로운 원님이 누명을 벗겨주었다...라는 뭐 그런 전형적인 조선시대의 이야기인 것이다. 세세한 부분에서 어린이 전래동화로 소개되는 판본마다 약간씩 내용은 다르지만 내가 본 내용중 아직도 기억나는 부분은 "사또가 장화홍련이 죽은 연못에 가니 죽은 자매의 시체가 둥실 떠올라 사또에게 다가왔는데, 마치 잠자는 듯 하였다"라는 부분.
...잠깐. 뭔가 위화감이 느껴지는데??
1. "시체가 물위로 떠올랐다"라는 부분부터 보자. 인체는 물보다 비중이 크기에 일단 물에 던져지면 가라앉지만, 부패가 진행되며 발생하는 가스로 인해 물 위로 떠오르게 된다. 돼지를 이용한 실험을 참고해 보자면 물에 가라앉은 후 48~60시간안에 떠오르는듯. 그렇다면 사또는 두 자매가 죽은지 사흘도 안되서 현장에 출동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조선시대라 하지만 사건 현장을 중시하는 수사관의 마음은 시대를 초월하는 것인가.
하지만, 이런 감동적인 장면역시 허점이 있다. 동화에 따르면, 원래 부임해 있던 첫 원님앞에 자매의 귀신이 나타나자 놀라서 죽어버리고, 그 다음에 부임한 원님도 똑같은 신세. 결국 현장에 출동한것은 그 다음에 부임한 원님이니 3번타자쯤 된다. 말로만 써놓으면 투아웃 이후 솔로역전포가 터진거 같은 느낌이지만 그렇게까지 간단한 이야기일리 있나.
2. 뭐든지 서류처리를 중시하는 조선시대의 행정력을 배경에 놓고 생각해보자. 아마도 첫 원님의 사망이 보고되면, 조정에서 사건을 접수한 후 그 다음 수령을 물색하는 과정이 따를것이다. 새로 파견할 관리가 선정되면 새로이 임명장을 내리고, 그럼 그 임명장을 받은 원님이 현장에 부임하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이 최소 두번은 일어났다는 것. 게다가 이게 요즘처럼 전산망을 통해 이뤄진것도 아니다. 일일히 사람이 손으로 쓴 장계가 역시 사람이 직접 걸어서 조정으로 전달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장화홍련의 배경이 평안북도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 기반이라고 하니, 물류처리 및 파견을 위해 따라간 길이 당시 명나라 사신이 다니던 교통로를 그대로 따른다 쳐도 최소 편도 10일거리. 당장 이런저런 행정처리에 소모된 시간을 빼도 이동시간만 40일이란 시간이 소비된다. 사흘도 안되서 부풀어오르기 마련인데 이대로는 장화홍련의 시신 상태가.....물론 북쪽지방이라 부패가 늦었을수 있다라는 반론이 제기될수 있겠지만 그게 통하려면 연못이 꽁꽁 얼어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하지만 동화속에 나오는 장면은 썩지않은 시체가 마치 사또를 마중이라도 나오는 듯 둥실 떠오르는 그야말로 비극적이고 슬픈 광경. 어디에도 얼어붙은 연못따위는 없다. 그야말로 가혹힌 자연과 미생물의 세계에서 장화홍련을 구할 방법은 없는건가...
있다. 단하나. 그것은 포르말린.
3. 액침표본을 만드는 포르말린은 지금은 잘 보이지 않지만, 옛날엔 학교 과학실에 한두개정도는 늘 존재했다. 그 방부성능은 그야말로 발군. 사실상 액침표본이라는것이 방부제에 담궈버리는 수준인지라 100년이 지난 표본이 원형을 유지하는 일도 있다고 한다.
결국 장화홍련자매가 잠든곳이 일반적인 연못이 아닌 포르말린 연못이라고 하면, 서류와 사람이 오가는 시간뿐만 아니라 행정처리에 필요한 시간 속에서도 자매의 시신을 보존하는게 가능하다. 심지어 방부성능만 놓고보면 임금이 격무에 시달려 서류검토에 늦어진다거나 파견된 지방관의 수상한 죽음때문에 기피지역으로 낙인, 덕택에 인재등용에 차질이 빚어진다라거나 하는 시간지연에도 걱정이 없을 지경. 다만 포르말린의 특성상 현장을 방문한 지방관이 유독한 냄새로 인해 고충을 겪는다라거나, 당분간 새집증후군에 시달린다 하는건 어쩔수 없는 일이라 하겠다. 포름알데히드 수용액의 이름이 바로 포르말린인데, 포름알데히드가 새집증후군의 원인물질인것.
그래도 생각해보면 죽은 영혼이 눈앞에 나타났는데도 기절하거나 죽지 않고 업무시간외 민원처리를 성실하게 해낼정도의 원님이라면 저런 고충은 사소한것 취급할수도 있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