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삼, 니체, 영원회귀
1947년 봄
深夜
黃海道 海州의 앞바다
以南과 以北의 境界線 용당浦
사공은 조심 조심 노를 저어가고 있었다.
울음을 터뜨린 한 嬰兒를 삼킨 곳.
스무 몇 해나 지나서도 누구나 그 水深을 모른다.
-김종삼, 「민간인」 전문(김종삼, 장석주 편, <<김종삼 전집>>, 청하, 1988)
아주 오래전 십 대 후반에 국어 문제집에서 읽었던 시다. 이 시를 읽은 후의 충격은 굳이 말할 필요는 없으리라. 다만 황해도 해주 용당포는 당시의 내게는 추상적인 공간에 불과했다. 해주 용당포에 대한 지리적 감각을 확보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나의 친구가 그 지역의 지도를 사진으로 보내왔을 때에야 비로소 해주 용당포가 인천의 연평도에서 겨우 40Km 정도 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리적 감각이 구체화되자마자 십 대 시절의 충격은 새삼 배가되었다. 해주 용당포는 앞으로 김종삼의 시에 등장하는 아이가 익사한 장소로만 기억될 것이다. 김종삼이 나에게 오랫동안 「민간인」의 시인으로 남아 있었던 것처럼.
김종삼의 면모를 보다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은 장석주가 쓴 <<김종삼 전집>>(청하,1988)을 발견하면서부터다. 장석주는 김종삼의 기행을 추억하면서 이 책의 서문을 연다.
내가 처음으로 시인 김종삼을 만난 것은 1979년 여름이었다. 내게는 그의 머리에 얹어진 베레모와 독특한 걸음걸이와 함께 잊을 수 없는 하나의 추억이 있다. 어느날 광화문 어디쯤의 거리에서 나와 마주친 선생은 내게 다짜고짜 손을 내미셨다. 돈을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몹시 당황했었다. 호주머니에 있던 이 천 원인가를 ─ 그때 나는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고 있던 출판사의 말단 직원이었다 ─ 너무 적어서 부끄러워하며 드리고나서, 그후 그것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쯤 지난 뒤 선생은 내가 근무하고 있는 출판사에 모습을 나타내셨다. 그리고 선생의 그 획을 직선으로 내리긋듯 쓰신, 글자 하나가 어린애 주먹만큼이나 커다란 시원고 ─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 시는 「추모합니다」였을 것이다 ─ 를 내 놓으시고, 그것을 다른 원고지에 베끼라고 하셨다. 내가 그것을 다 베끼고 나자 선생은 그 원본을 내게 남겨주시고는 또다시 사무실을 휑하니 나가셨다. 전셋방을 열 몇 번이나 옮겨 다니는 이사의 와중에서 그 원고는 잃어 버리고 말았지만, 그 추억은 잘 잊혀지지 않는다.
-장석주, 「한 미학주의자의 상상세계-김종삼론」, <<김종삼 전집>>, 청하, 1988, 17쪽.
김종삼이 주었던 시 원고는 ‘채무 변제용’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육필 시 원고를 통해 채무를 탕감한다는 발상은 다소 안쓰러운 당대 시인의 풍모를 보여준다. 자신의 육필 시 원고가 언젠가는 ‘이 천 원’ 이상의 가치를 가지게 되리라는 믿음도 있었을 터였다. 시인으로서 가지는 최소한의 자부심이다. 장석주가 육필 시 원고를 잃어버리고 만 것은 못내 안타까운 일이지만, 김종삼의 풍모를 일부나마 짐작하게 하는 일화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김종삼은 빌린 돈으로 무엇을 했을까. 아마도 술을 사 마셨을 것이다. 그는 알콜 중독자였다. “소주 한 병을 도둑질했다/ 마누라한테 덜미를 잡혔다/ 주머니에 들어 있던 토큰 몇 개와/ 반쯤 남은 술병도 몰수당했다”(「극형」,<<김종삼 전집>>,청하,1988)는 시의 문장을 남길 정도니 말이다. 그는 “술이 있는 한 일체 곡기를 끊은 채 열흘이고 보름이고 깨고 마시기를 거듭”(권명옥, 「적막과 환영(幻影)」, <<김종삼 전집>>, 나남, 2011, 329쪽)하는 인간 유형이었다. 술을 먹으면 현실을 잊고 그가 꿈꾸는 다른 세계로 갈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인 김종삼은 말년에 간경화로 고통을 받는다. 간경화의 극심한 고통 속에서 시를 몇 편 남긴다.
또 죽음의 발동이 걸렸다.
술 먹으면 죽는다는 지병이 악화되었다 날짜 가는 줄 모르고 폭주를 계속하다가 중환자실에 幽閉되었다 무시무시한 육신의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고통스러워 한사바삐 죽기를 바랄 뿐이다.
희미한 전깃불도 자꾸만 고통스럽게 보이곤
했다
해괴한 팔짜이다 또 죽지 않았다
뭔가 그적거려 보았자 아무 이치도 없는
-김종삼, 「죽음을 향하여」 전문(<<김종삼 전집>>, 청하, 1988)
김종삼은 간경화가 악화하는 와중에도 술을 마신다. 평생 알코올을 즐겼으니 병 중에도 술을 아니 마실 리 없다. 알코올 중독이란 그런 것이다. 정말 죽기 직전에라야 음주를 멈춘다. “고통스러워 한시바삐 죽기”를 바란다는 말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고통스러워 죽고 싶다는 말은 고통에서 헤어나고 싶다는 뜻일 터. 고통 앞에서 삶은 아무 의미가 없다. 고통 속에서는 고통만이 절대악이 된다. 그러니 죽음이 김종삼의 신’일 수밖에. 하지만 그날 죽음의 신은 시인을 외면한다. “해괴한 팔짜이다 또 죽지 않았다”. 시를 써 보려 “뭔가 그적거려 보았자 아무 이치도 없”다.
이 시는 죽음의 신이 시인을 외면한 날에 쓰여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다행스럽게도 그해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사망한 해가 1984년이므로 이 시 역시 그해의 작품일 것이다.(권명옥이 엮은 <<김종삼 전집>>(나남,2011)의 작품 연보에 따르면, 「죽음을 향하여」는 ‘미상’으로 처리되어 있으나, 시의 내용으로 보아 죽기 직전에 쓴 시로 추정할 수 있다.)
죽음을 앞두고 많은 기억이 떠올랐을 것이다. 사지가 멀쩡했던 순간들. 마음껏 걸어 다녔던 시간들. 어린 시절 다니다 중퇴했던 평양의 숭실중학교도 떠올랐을 것이다. 십 대와 이십 대의 찬란했던 날들. 그리고 어디든지 쏘다니곤 했을 그 시절의 날들.
걷고 있다 어느 古宮 담장옆을
옛 고향땅
녹음이 짙어가던 崇實中學과
崇實專門 校庭과
崇義女高 뜨락
흰 구름 떠 있던
光成高普
正義女高 담장옆을
酒岩山 그림자가 드리워진
대동강 상류쪽을
또 어디였던가.
-김종삼, 「또 어디였던가」 전문(<<김종삼 전집>>, 청하, 1988)
역시 1984년의 시다.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는 시절의 시들은 서늘하다. 김종삼의 경우는 예감이 아니라 확실성의 차원이다. 1980년대 초 말기 간경화에서 살아나는 경우란 드물다. 간이식술이 없던 시절이었고 설령 있었다 하더라도 가난한 그가 수술을 받았을 리도 없다.
간경화 말기에 이르면 복수(腹水)가 차오르고 종내는 섬망(delirium)에 시달린다. 심한 경우 복수가 폐 쪽으로 스며들어 죽는다.(이런 경우 물 밖에서의 익사다) 그는 스스로가 죽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전부터 그는 스스로의 죽음을 예감했다. 1980년 1월에 “나는 이 세상엔 맞지 아니하므로/ 병들어 있으므로/ 머지 않아 나는 죽을 거야”(「그날이 오며는」(<<시문학>>, 1980.1)라는 문장을 남겼다. 그즈음일 것이다.
그는 죽음을 예감하던 어느 날, 이 삶에 대한 생각, 혹은 이 삶을 둘러싼 우주의 섭리 같은 것이 번득이며 그의 뇌리를 스쳐가던 순간의 그 무엇을 붙잡았을 것이다.
그 언제부터인가
나는 죄인
수억 년간
주검의 연쇄에서
악령들과 곤충들에게 시달려 왔다
다시 계속된다는 것이다
-김종삼, 「꿈이었던가」 전문(<<김종삼 전집>>, 청하, 1988)
시의 제목이 ‘꿈이었던가’다. 누구나 삶의 끝자락에서 살아온 모든 삶이 꿈처럼 느껴지리라. 김종삼 역시 지나간 삶을 ‘꿈이었던가’로 자문한다. 그런데 왜 ‘죄인’인가?
시인은 스스로가 ‘죄인’이며, “수억 년간/ 주검의 연쇄에서/ 악령들과 곤충들에게 시달려 왔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삶이 다시 계속되는 것이다. 정말이지 끔찍한 일이지 않은가? 이 삶은 지속적으로 반복된다. 주검의 연쇄가 펼쳐진다. “태어나지 말지어다. 죽는 것이 괴롭다. 죽지 말지어다. 태어나는 것이 괴롭다.”(莫生兮其死也苦 莫死兮其生也苦)라는 원효대사의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은 수억 년간 생사의 과정이 반복되는 주검의 연쇄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죽음을 불러오는 악령과 시신을 뜯어먹는 곤충들에게 무한반복으로 시달려야 한다. 삶은 죽음에 둘러싸인 감옥이자 죄인에게 내려지는 형벌이다.
그런데 시의 제목이 ‘꿈이었던가’다. 잠에서 이제 막 깬 듯한 정신의 감각 속에서 불현듯이 스쳐지나간 생사의 영원한 반복에 대한 직관에는 확신이 없다. 느닷없이 찾아온 영원회귀의 불길한 직관을 서술한 것이리라.
이런 종류의 직관을 두고 터무니없는 것으로 치부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진리는 전달되지 않고 누설된다”(질 들뢰즈, 서동욱 역, <<프루스트와 기호들>>, 민음사, 1997, 143쪽.)는 질 들뢰즈의 말을 떠올려보자.
진리는 여전히 감추어져 있고, 그것은 설명되지 않은 채로 우리의 직관 주변을 떠돈다. 그중에는 거짓도 있을 테지만, 진리도 있을 것이다. 다만 당장 증명이 불가능할 뿐이다. 시인은 죽음 앞에 이르러 무언가를 깨닫는다. 이 삶이 단 한 번으로 끝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그것은 직관에 가까운 깨달음이다.
‘나’라는 존재가, ‘나’를 둘러싼 이 세계가 단 한 번만 존재할 리는 없다. 수없이 존재했고 앞으로도 수없이 존재할 것이라는 직관적 깨달음. 이것은 진리의 누설이다. 진리인지 아닌지 확인이 불가능하므로, 대개의 경우 누설된 진리는 그냥 어디론가 흘러가서 말라버리고 희미한 흔적만 남을 뿐이다.
하지만 진리의 누설에도 장대한 역사가 있다. 그 장대한 역사의 물줄기를 따라 우리는 그것을 영원회귀(eternal recurrence)라 부른다.
영원회귀는 그리스 고대 철학에서부터 반복되어 온 주제다. 힌두교의 윤회 역시 영원회귀의 변형으로 볼 수 있다. 영원회귀와 관련하여 가장 인상적인 인물이 프랑스 혁명가 블랑키다. 그는 비교적 근대의 인물로 영원회귀를 보다 과학적으로 사고하고자 했다. 19세기에 확립된 에너지 보존 법칙을 토대로 무한한 우주 속에서 유한한 종류를 가진 원소들의 조합은 결국 동일한 세계를 반복적으로 생성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영원회귀를 주장하였다.
블랑키는 칠십 평생의 절반 이상을 감옥에서 보냈으며, 사망 10년 전인 1871년에 ‘황소의 요새(Port of the Bull)’로 불리는, 전체가 감옥인 작은 섬에 수감된다. 이 섬에 수감된 단 한 명의 수인(囚人)이 블랑키였다. 그는 창밖 풍경을 볼 수 없었는데, 창문 근처에 다가가면 경비병이 총을 쏘았기 때문이다. 바깥 풍경을 볼 권리마저 박탈당한 것이다.
그는 바다의 밀물과 썰물, 그리고 반복되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무한한 우주와 유한한 원소의 조합을 근거로 이 우주에서의 삶이 영원히 반복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감옥 안에서 <<천체에 의한 영원(Eternity by the Stars)>>를 집필한다. 그리고 이 책은 영원회귀의 철학자 니체에게 영향을 준다.(박대현, <<시와 다세계>>, Pubple, 2024, 356-357쪽 참조)
루 살로메는 영원회귀를 언급하던 니체에 대해 다음과 같은 문장을 남긴 바 있다.
그는 나직한 목소리로, 소스라치게 놀랐음을 표시하면서 말했다. 실로 그는 삶에 깊이 고통스러워했으며, 삶의 영원한 회귀의 확실성은 그에게는 섬뜩한 무엇이었음이 틀림없었다. 영원회귀설의 정수, 니체가 다시 한 번 빛을 비추는 삶의 찬미는 자신의 고통스러운 삶의 감각과는 아주 반대되는 것이기에, 우리에게 이 감각은 마치 엄청난 가면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 김정현 역, <<살로메, 니체를 말하다>>, 책세상, 2023, 274쪽.
니체는 무엇에 소스라치며 놀랐을까. 그것은 영원회귀의 삶이다. 살로메는 니체의 속삭임으로부터 영원회귀라는 삶의 비밀을 듣는다. 모든 삶은 영원히 반복한다. 우리의 삶은 영원히 회귀한다. 상징이나 비유가 아니다. 곧이곧대로 들어야 한다. 정말 우리의 이 삶은 영원히 반복된다. 영원회귀에 대한 열망, 아니 절망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영원회귀는 열망의 형태로든 절망의 형태로든 고대로부터 지속적으로 사유되어 왔으며, 니체는 그것의 확실성을 받아들인다.
자 이제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내력을 이야기 해 보자./ 이 작품의 기본적 개념인 영원회귀의 사상과 무릇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긍정의 형식은 1881년 8월에 씌어진 것이다. 그것은 밑에 <인간과 시간을 초월한 육천 피트>라는 주석을 달아놓고 한장의 종이 위에 기록된 것이다. 그날 나는 실바플라나의 호수를 따라서 숲 속에서 걷고 있었다. 수를레이로부터 멀지 않은 거대한 피라미드 형의 바위 앞에서 나는 우뚝 멈춰섰다. 바로 그때 나에게 이 사상이 떠오른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김태현 역, <<니체전집·8-도덕의 계보/이 사람을 보라>>, 청하, 1992, 267쪽.
니체는 1881년 8월 스위스 실스마리아에서 실봐플라나 호수를 거닐다 영원회귀의 진리가 누설되는 끔찍한 순간을 체험한다.
그리고 김종삼이 그러했듯, 니체 역시 영원회귀의 누설된 진리 앞에서 충격적인 전율을 토로한다.
그리고 달빛 속에 기어다니는 이 느린 거미, 달빛 자체, 그리고 함께 속삭이는, 영원한 것들에 대해 속삭이는 출입구의 나와 너─우리 모두가 이미 있었음이 틀림없지 않은가?
─그리고 우리는 회귀하고, 저 다른 길을 앞으로 달려가고, 우리들 앞에 있는 이 기나긴 소름끼치는 길을 달려 나아가고─우리는 영원히 회귀해야만 하는 게 아닐까?─
(중략)
그리고, 진실로, 내가 본 것과 같은 것을, 나는 결코 본 적이 없었다. 나는 한 젊은 목자(牧者)가 킹킹 신음하고 헐떡거리고 경련하는 것을, 입에서부터 검고 무거운 뱀이 늘어뜨려져 있는 뒤틀린 얼굴을 보았다.
한 얼굴에서 이토록 큰 구역질과 창백한 공포를 본 적이 있었던가? 그는 아마도 잠들어 있었겠지? 그때에 뱀이 그의 목구멍 속으로 기어들어가─스스로 꽉 물려버렸던 것이다.
내 두 손은 그 뱀을 잡아당기고 잡아당겼다. ─헛되이! 내 두 손은 목자의 목구멍에서 뱀을 잡아당겨 빼낼 수 없었다. 그때 내 속에서 절규가 터져 나왔다. 「물어라! 물어라! 뱀의 머리를 물어 떼내라! 물어라!」 내 속에서 이렇게 절규가 터져나왔고, 나의 공포, 나의 증오, 나의 혐오, 나의 연민, 나의 모든 선과 악이 내 속으로부터 똑같은 한 절규로써 절규했다.─
-프리드리히 니체, 최승자 역, <<니체전집·6-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청하, 1992, 199-200쪽.
니체는 달빛 속의 거미(이 표현은 블랑키로부터 빌려온 것이 확실하다)조차도 영원히 회귀한다는 사실에 대한 충격에 대해 말하고 있다. 영원회귀는 젊은 목자(牧者)의 목구멍을 틀어막아버린 ‘뱀의 머리’로 형상화되고 있다. “입에서부터 검고 무거운 뱀이 늘어뜨려져 있는 뒤틀린 얼굴”이란, 영원회귀를 깨달아버린 니체 자신의 얼굴이 아닌가. 그 순간의 니체는 공포, 증오, 혐오, 연민, 모든 선과 모든 악이 뒤얽힌 절규와 같은 전율에 휩싸인 것이다. 바로 이 삶이, 지금까지의 모든 삶이 반복되면서 영원히 회귀한다는 것은 니체에게 끔찍한 공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절규의 절규가 터져 나오는 것이다. 이 절규는 영원회귀의 사상에 대한 니체의 태도를 함축한다.
이것은 김종삼 시인이 말년에 이르러 어렴풋이 직관한 영원회귀와도 닿아 있다. 김종삼 시인뿐이겠는가. 영원회귀의 사상은 ‘윤회’와도 같은 대중적인 개념으로 이미 널리 유포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니체가 영원회귀라는 진리의 체험 이후 과학적으로 이를 증명하고 싶어 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니체는 빈 대학이나 파리 대학에서 10년 동안 오로지 자연과학만을 공부하려고 결심하기도 했으나, 여러 이유로 그것을 실천하지 못했다. 의도치 않게 니체는 영원회귀라는 운명적인 사상이 옳은 것으로 증명되리라는 자신의 두려움을 유예할 수 있었지만, 종내 그것을 받아들이고 말았다.(루 안드레아스 살로메, 앞의 책, 276-277쪽.) 그것은 체념이 아니라 영원회귀를 긍정적으로 껴안는 사유에 해당한다.
영원회귀의 사슬 감옥에 갇힌 죄인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운명애(Amor Fati)로의 전환. 이러한 니체의 운명애를 두고 피에르 클로소프스키는 “윤회의 갱신된 판본”(피에르 클로소프스키, 조성천 역, <<니체와 악순환>>, 그린비, 2009, 103쪽.)이라 말한다. 니체의 운명애는 윤회의 고통을 넘어선 것이다.
그렇다면 김종삼이 영원회귀를 직관했을 때 느꼈던 당혹감, “수억 년간/ 주검의 연쇄에서/ 악령들과 곤충들에게 시달려”야 하는 “죄인”으로서의 불안과 공포는 운명애를 향한 의지로 전환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영원회귀는 진리가 맞는가. 고대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 피타고라스 학파, 스토아 학파, 루크레티우스 등에서 블랑키와 니체로 이어지는 영원회귀는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못한 채로 직관적 진리의 형태로 누설되고 있을 뿐이다. 이 진리의 누설은 블록 우주론(Block Universe)과 인플레이션 이론(Inflation Theory) 속에서 해석이 가능하지만, 가설에 기초한 재해석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어쩌면 ‘진리의 누설’이라는 말 그대로, 이 영원회귀는 증명이나 확신의 대상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은 다만 김종삼의 시처럼, 니체의 절규처럼, 삶의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불현듯이 스며들어 우리를 ‘죄인’으로 만들거나 혹은 ‘운명애’로 이끄는, 우리가 감당해야 할 실존의 조건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언젠가 현대 물리학에 의해 진리의 누설이 더 이상 누설이 아닌 순간에 도달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시인과 철학자란, 과학의 언어가 아직 포착하지 못한 진리가 누설되는 삶의 가장 고통스러운 지점에서, 그것을 가장 먼저 감지해 내는 존재가 아닌가.
<<부산가톨릭문학>> 2025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