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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emin Park Jun 08. 2019

미디어 블록체인의 서막,
스팀잇의 충격

왜 미디어 블록체인인가 (4)


"30일 동안 총 22편의 글을 써서 731개의 업보트와 413개의 코멘트를 받고, 보상으로는 350.29 STU를 받았다. 이를 USD로 환산하면 $499.16달러, 원화로는 ₩531,356원을 벌었다. 글 1편당 33개의 업보트, 19개의 코멘트와 24,153원의 보상을 받았다. 스팀잇 알기 전 브런치(brunch.co.kr/@heewoo7)에 120개의 글을 0원 받으며 쓴 거 생각하면 화부터 난다. "


국내에 불었던 암호화폐 투자 열풍이 잠잠해진 지난 2018년 3월, 이희우 현 언블락 대표가 스팀잇(Steemit)에 올린 글이다. 스팀잇은 2016년 출시된 블록체인 기반 소셜 미디어로 콘텐츠를 보는 것만 놓고 보면 미국의 소셜 뉴스 웹사이트인 레딧(Reddit)과 유사한 인터페이스를 갖고 있다. 무엇보다 스팀잇에 글을 올린 ‘작가’(즉 블로거)는 물론 ‘좋아요’를 누르거나 공유한 ‘큐레이터’(즉 사용자)도 스팀(steem)이라는 암호화폐로 보상받는다. 스팀은 시가총액 기준 50위권에 드는 상위권 암호화폐로 국내외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즉각 환전할 수 있다. 많은 돈은 아니지만 사실상 현금을 받는 것과 동일한 셈이다. 


플랫폼이 콘텐츠 생산자와 사용자에게 즉시 현금화 가능한 암호화폐를 제공하는 스팀잇의 모형은 크게 네 가지 면에서 혁신적이다. 


첫째, 텍스트 콘텐츠에 후원금 모델을 도입했다. 스팀잇의 작가 보상은 결국 아프리카TV의 별풍선 시스템, 즉 창작자에게 ‘좋아요’를 누르는 것처럼 쉽게 후원금을 주는 방식을 블로그에 도입한 것과 같다. 후원금 방식은 아프리카TV와 같은 일부 동영상 플랫폼에서는 자리 잡았고 스푼라디오 등 오디오 플랫폼에서도 성공적으로 개척되고 있지만, 텍스트 플랫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모형이었다. 후원금 모델은 기존의 전형적인 텍스트 콘텐츠 수익화 방식에 비해 두 가지 장점이 있다. 우선 기존의 블로그 배너광고에 비해 보상이 크다. 훨씬 적은 수의 독자만 모아도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다음으로 크라우드 펀딩이나 주문형 출판(POD, Publish on Demand) 방식에 비하면 보상 자체는 적다. 하지만 훨씬 빠르고 간편하게 수익을 낼 수 있다. 


둘째, 광고가 필요 없다. 요즘에는 스팀잇에 광고가 있지만, 스팀잇은 암호화폐가 보상으로 지급되는 미디어 블록체인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콘텐츠 생산자 입장에서는 광고 수익에 의존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광고를 붙일 이유가 없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사용자 경험을 해치는 광고를 보려 하지 않을 것이다. 플랫폼 입장에서는 광고 없앰으로써 사용자 경험을 높여 사용자들을 더 빠르게 모을 수 있다. 또한 암호화폐 발행을 통해 광고 없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결국 광고주가 직접 만드는 브랜드 저널리즘(brand journalism)이나 작가가 광고를 협찬받아 작성하는 브랜디드 콘텐츠(branded content)만 남게 될 것이다. 플랫폼의 정책에 따라 다르겠지만, 스팀잇의 경우라면 심지어 잘 만든 네이티브 광고는 사용자들로부터 보상을 받을 수도 있다. 광고 영역을 굳이 만든다면 사용자 경험에 철저하게 부합하는 네이티브 광고(native ad)만 남게 될 것이다. 


셋째, 콘텐츠 생산자의 자율성을 높였다. 이 절 서두에 인용한 이희우 대표의 사례를 살펴보자. 유튜브의 경우 특별한 계약이 없으면 크리에이터는 광고로 클릭당 1원을 가져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하나의 콘텐츠로 이희우 대표의 글 1편당 평균 수익인 2만 4153원을 벌기 위해서는 2만 4153번의 클릭이 발생해야 한다. 그러나 이 대표의 글은 스팀잇에서 사용자들로부터 평균적으로 33번의 보팅만으로 이 수익을 달성했다. 한 사람이 클릭을 평균 10번씩 한다고 해도 광고로는 2,415명의 독자가 필요하지만, 후원금 모델에서는 33명의 충성 독자만 있으면 된다. 일반 독자에게 어필해서 떼돈을 벌면 좋겠지만, 콘텐츠 생산자가 이들에게 어필하고자 자신의 색깔을 퇴색시킬 필요가 없다. 수는 적더라도 일정 수의 충성 독자에 소구하는 한 자신만의 콘텐츠를 계속해 만들 수 있다. 이는 전체적으로는 콘텐츠가 훨씬 다양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넷째, 사용자의 그림자 노동에 보상을 제공한다. 기존 플랫폼에서는 내부에 콘텐츠 편집자를 두는 대신, 사용자가 공유나 좋아요, 댓글 달기 등을 통해 콘텐츠를 큐레이션하도록 유도했다. 사용자에게 주어진 보상은 다양한 콘텐츠를 광고와 함께 무료로 보거나, 온라인 상에서 이메일이나 메신저, 친구 맺기 등의 서비스를 무료로 사용하는 것 정도였다. 물론 매우 가치 있는 일이지만, 광고 수익의 대부분은 사용자나 콘텐츠 생산자가 아닌 플랫폼이 가져갔다. 플랫폼이 너무 많은 수수료를 떼어간 셈이다. 즉 사용자가 돈을 낸 것은 아니지만 플랫폼이 너무 비쌌다. 플랫폼이 성장하고 기업가치가 높아짐에 따라 늘어나는 이익 역시 주주에게만 돌아갔다. 스팀잇은 이 부분을 사용자에게 돌려준다. 그런데 현금을 직접 돌려주면 스팀잇이 갖고 있는 현금이 쉽게 고갈될 수도 있다. 스팀잇은 적절히 설계된 암호화폐를 통해 이 부담을 줄이고 작가, 사용자, 투자자가 스팀잇 성장에 함께 기여하도록 유인했다. 


요컨대 스팀잇은 콘텐츠 생산자와 사용자의 이익을 늘리고, 플랫폼과 주주의 이익을 줄이는 구조를 블록체인 기반으로 만들어냈다. 이를 통해 광고주의 영향력을 사실상 무력화하고 콘텐츠 생산자의 자율성을 높이고 콘텐츠의 다양성을 확보했다. 더 나아가 사용자의 그림자 노동 문제도 해결했다. 이러한 구조에서 현금으로 거래할 수 있는 암호화폐의 역할은 핵심적이다. 암호화폐가 법정화폐를 대체하지 않는 한, 즉 암호화폐로 직접 세상의 다양한 상품을 살 수 없는 한 암호화폐로 받는 보상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성장 단계의 플랫폼은 현금이 없기 때문에 현금으로 직접 보상할 수 없고 암호화폐를 통해 보상해야 한다. 구글이나 페이스북처럼 완전히 성장한 플랫폼은 자선 사업이 아닌 한 사용자에게 현금을 나눠주면서까지 보상할 유인이 없다. 따라서 미디어 블록체인에서 암호화폐는 핵심적이다. 

 


이 글은 "박대민, 명승은(2018). <플랫폼리스 미디어 블록체인>"에서 분량 문제로 빠진 부분 등을 보완한 것이다. 아래는 링크. 

http://www.kpf.or.kr/synap/skin/doc.html?fn=BASE_201812100208347330.pdf&rs=/synap/result/mediap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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