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미디어 블록체인인가 (2)
몇몇 플랫폼에 대한 독점 논란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플랫폼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플랫폼은 독과점 경향이 있는데 어떻게 동시에 플랫폼 경쟁이 일어날 수 있을까? 플랫폼에서 유통되는 콘텐츠의 복합된 양식, 즉 양식(mode)은 한 단계 더 분화된다. 분화된 양식에서 플랫폼 독점이 일어난다. 이 플랫폼들 간에 경쟁이 일어난다. 즉 양식 내 독점과 양식 간 경쟁이 일어난다.
이는 플랫폼 경제학의 멀티 호밍(multi-homing)과는 다소 다른 개념이다. 멀티 호밍은 거의 비슷한 양식을 가진 두 플랫폼을 쓰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예컨대 게임기를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playstation)과 엑스박스(X Box)를 함께 쓰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이는 검색엔진은 구글, 앱스토어는 애플 앱스토어, 온라인 쇼핑은 아마존을 쓰는 것과는 다르다.
과거에는 모든 사람이 검색엔진이 부착된 포털을 이용했으며 포털에서 모든 양식의 콘텐츠가 유통됐다. 지금은 PC 검색은 네이버, 모바일 검색은 구글, 동영상은 유튜브(YouTube), 사진은 인스타그램(Instagram), 소셜 미디어는 페이스북, 메신저는 카카오톡, 인공지능 스피커는 아마존 알렉사(Alexa)와 같이 양식별로 분화됐다.
플랫폼의 양식은 한 단계 더 세분화되고 있다. 동영상은 유튜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네이버 동영상이나 카카오TV, 페이스북 동영상도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특정 양식을 독점하고 있는 플랫폼 사업자와 같은 양식으로 경쟁하면 아무리 큰 사업자도 이기기 힘들다는 것이다. 예컨대 페이스북은 세계적으로, 네이버는 국내에서 사업 규모가 유튜브의 단일 사업 규모보다 훨씬 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튜브가 독점한 동영상이라는 양식에서 후발 주자로 경쟁하면 페이스북은 세계에서, 네이버는 국내에서 이길 수 없다. 한 양식 내에서 독점이 이뤄진 것이다.
그러나 동영상은 동영상이지만 세부적으로 다른 양식이 분화되어 독점이 이뤄질 수는 있다. 예컨대 영화와 드라마의 구독 모델인 넷플릭스는 동영상이지만 성장한다. 오히려 유튜브의 구독 모델이 성장하고 있지만 특화된 넷플릭스를 이기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훨씬 더 유사하지만 조금만 양식을 달리해서 성장하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아마존이 인수한 게임 동영상 플랫폼 트위치(Twitch)를 생각해보자. 게임 동영상은 원래 유튜브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게임 동영상만을 특화함으로써 트위치는 유니콘이 됐다. 지금은 게임 동영상만 놓고 보면 유튜브보다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게임의 중 이용자(heavy user)들은 유튜브보다 트위치를 봄으로써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할지도 모른다.
또 한국 시장만 놓고 보면 1인 라이브 동영상은 유튜브보다 아프리카 TV가 더 경쟁력이 있다. 그러나 15초짜리 1인 라이브 동영상 분야에서는 중국의 틱톡(TikTalk)이 성장하고 있다. 틱톡을 보유한 바이트댄스는 750억 달러의 가치로 소프트뱅크 투자를 받은 세계 최대의 유니콘 기업이다.
플랫폼 사업은 어렵다. 독과점 경향이 있어서 후발 주자가 뛰어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즉 플랫폼 사업은 초기에 유리한 고지를 점한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보다 훨씬 유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콘텐츠의 형식(예컨대 텍스트인가 동영상인가 PPT인가), 내용(예컨대 영화인가 게임인가), 시간 또는 길이(시간 제한이 있는가 15초인가), 공간(미국인가 중국인가), 사업 모형(저작권인가 광고인가), 인구통계학적 속성(남자인가 여자인가 동성애자인가, 밀레니얼인가 베이비부머인가), 사회경제적 지위 등에 따라 양식을 특화해 고유의 틈새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 국내에서도 창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미디어 스타트업들이 약진하고 있다. 예컨대 마이쿤의 스푼 라디오는 소셜 라디오 분야를 개척했다. 카카오톡 채팅창 같은 인터페이스에 BJ(Broadcasting Jockey)가 음성으로 라디오처럼 진행하면 사용자들이 아프리카 TV처럼 댓글을 달고 후원금을 보낼 수 있다. 음성이란 양식을 공략했지만 인공지능 스피커는 아니다.
텍스트도 살펴보자. 신문과 포탈이 제공하는 뉴스, 그리고 포탈이 제공하는 카페나 블로그가 있다. 여기에 트위터의 단문 트윗과 페이스북의 뉴스피드가 가세한다. 카카오의 브런치는 모바일에 특화하고 소셜 기능을 강화한 블로그이면서, 작가로 선정된 블로거들의 글만 공유된다. 브런치는 반대로 온라인상에 블로그 형식으로 공유된 글을 모아 종이책으로 출간한다. 퍼블리는 아직 출간 안된 책을 e북으로 만든 뒤에 공유한다. 리디북스는 종이책으로 출간된 책을 e북으로 보는데 특화돼 있다. 또한 퍼블리는 e북 출판과 함께 작가와의 유료 오프라인 모임을 갖는다. 반면 트레바리는 종이책을 놓고 클럽장과 유료 회원들이 독서하고 토론하는 것이 중심에 있다. 형식은 물론, 내용, 출판 방식, 오프라인과의 연계 등 다양한 측면에서 고유한 양식을 만들어낸다.
양식 내 독점인 플랫폼이 성장하게 되면, 양식 간 경쟁에 뛰어들게 된다. 각 플랫폼은 자신의 양식 독점을 유지한 채 타 플랫폼의 양식을 자사 플랫폼에 도입한다. 다른 양식의 콘텐츠를 자신의 플랫폼에도 제공하는 것이다. 텍스트 콘텐츠가 주였고 동영상 콘텐츠는 유튜브에서 공유해오는 식으로 가져오던 페이스북이 유튜브로 클릭해 넘어가지 않고도 동영상을 재생하게 만들더니 동영상을 업로드할 수 있게 바뀌고 라이브 동영상 기능을 추가한다. 유튜브는 아프리카TV처럼 사용자가 콘텐츠 생산자에게 직접 후원금을 줄 수 있는 기능을 도입한다. 트위치는 유명 유튜버를 거액을 주고 데려온다
스트리밍 서비스였던 넷플릭스가 구글 플레이스토어처럼 다운로드 기능을 도입하는가 하면, 유튜브가 넷플릭스처럼 구독 모델을 도입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기존의 양식 독점 플랫폼 사업자를 후발 주자가 넘어서거나, 아니면 후발 주자 사업자의 주 사업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즉 유튜브는 여전히 구독보다는 스트리밍, 후원금보다는 광고가 더 중요할 것이다. 자신의 플랫폼 내에 다른 양식을 넣는 것은 일종의 양동작전 정도로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비록 기존 플랫폼의 독점을 깰 수는 없지만 충성 고객 이탈을 막을 수는 있다. 그러나 모든 양식을 공급하는 포털로 회귀하는 것은 아니다.
진정 한 판 붙고 싶다면 다른 양식의 플랫폼을 인수하는 것이 맞다. 예컨대 페이스북은 인스타그램, 오큘러스 등 당시에는 미개척이었던 양식에서 독점적 지위를 가질 가능성이 있는 1등 업체를 막대한 돈을 주고 인수했다. 소위 CNDP(content, network, device, platform)의 분화도 해체되고 수직계열화가 이뤄지기도 한다. 페이스북은 미디어 플랫폼만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오리지널 콘텐츠를 생산하는가 하면, 아퀼라(Aquila) 프로젝트로 망 구축에도 뛰어들고, 오큘러스를 통해 가상현실 디바이스를 만들고 있다.
특히 주목할 것이 오리지널 콘텐츠의 생산이다. 플랫폼 간에 경쟁이 일어나면 콘텐츠 생산자의 몸값은 수요 공급 법칙에 따라 오르게 된다. 그런데 플랫폼 사업자들이 오리지널 콘텐츠를 직접 생산하는 단계까지 이르면 셈법이 복잡해진다. 막강한 자본력과 유통망까지 구축한 플랫폼 사업자들이 콘텐츠 생산자가 돼서 기존 콘텐츠 생산자들의 경쟁자가 되는 것 아닌가? 넷플릭스와 디즈니 간의 경쟁을 플랫폼 사업자와 콘텐츠 사업자 간의 경쟁이 아니라, 플랫폼 사업자 출신 콘텐츠 사업자와 전통적인 콘텐츠 사업자 간의 경쟁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이러한 예가 된다. 그러나 플랫폼 사업자가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든다고 해서, 그들이 콘텐츠 공급자로 전면에 나선다는 뜻은 아니다. 즉 넷플릭스가 자신들이 만든 오리지널 콘텐츠를 디즈니처럼 다른 플랫폼에 공급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츠는 넷플릭스에서만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츠는 넷플릭스 플랫폼에 가장 잘 볼 수 있다. 콘텐츠가 플랫폼에 최적화된 것이다.
콘텐츠 생산자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양식이 분화된 상태에서 콘텐츠 생산자는 콘텐츠를 그냥 만들면 안 된다. 기획 단계부터 목표 플랫폼을 정하고 그 플랫폼에 최적화된 양식의 콘텐츠를 생산해야 성공할 수 있다. 플랫폼 사업자가 콘텐츠 생산자를 지원하는 이유는 그냥 콘텐츠가 아니라 자사 플랫폼에 최적화된 양식의 콘텐츠 생산을 촉진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플랫폼 경쟁은 콘텐츠 생산자에게 더 많은 보상을 주기는 하지만, 콘텐츠 생산자가 여전히 특정 양식의 플랫폼에 종속된 상태는 지속된다. 플랫폼 경쟁 과정에서 한 플랫폼이 다른 양식을 도입함으로써 콘텐츠 생산자도 여러 플랫폼에 콘텐츠를 공급할 수 있게 되긴 하겠지만, 전면적인 원소스 멀티유즈 전략이 가능해지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유튜버가 유튜브 콘텐츠를 페이스북 동영상으로도 올릴 수도 있겠지만, 유튜브에서 얻는 수익에 비하면 미미할 것이다. 설사 유튜브와 페이스북 두 군데서 모두 성공한다고 해도, 넷플릭스와 계약하려면 새로운 포맷의 동영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글은 "박대민, 명승은(2018). <플랫폼리스 미디어 블록체인>"에서 분량 문제로 빠진 부분 등을 보완한 것이다. 아래는 링크.
http://www.kpf.or.kr/synap/skin/doc.html?fn=BASE_201812100208347330.pdf&rs=/synap/result/mediap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