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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emin Park Jun 14. 2019

크립토이코노미는 어떻게 구성되는가

미디어 블록체인의 크립토이코노미 (1)

크립토이코노믹스, 메커니즘 설계를 넘어서


나카모시 사토시(中本哲史)가 최초의 블록체인(blockchain) 기반 암호화폐인 비트코인(bitcoin) 논문을 공개한 것은 리만 브라더스가 파산하고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진 직후였던 2008년 10월이었다. 이후 10년 만에 전 세계 암호화폐 시가 총액은 350조 원에 육박할 정도 성장했다(한국은행, 2018.7.).


이 중에는 미디어와 관련된 프로젝트도 적지 않다. 심지어 암호화폐 시가 총액 기준으로 최상위권에 속한 프로젝트도 적지 않다. 냅스터(Napster), 그누텔라(Gnutella), 오버넷(Overnet), 비트토렌트(BitTorrent) 등 P2P 파일 공유 프로그램의 계보를 잇는 트론(TRON)은 2018년 10월 22일 기준 시가 총액이 16억 달러에 달한다.


스팀은 현재 100만 명 넘는 사용자가 있는 블록체인 기반 소셜 미디어인 스팀잇(Steemit)의 암호화폐다. 탈중앙화된 광고 플랫폼인 BAT(Basic Attention Token)도 있다. 이를 미디어 블록체인(media blockchain)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암호화폐 투자 열풍이 불었던 2018년 초만 해도 블록체인에 대한 논의는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이해와 암호화폐에 대한 설명 정도가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특히 일반인 대상 암호화폐 투자자 모집 절차인 ICO(initial coin offering)를 거친 퍼블릭 블록체인(public blockchain) 프로젝트들이 구체적인 서비스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거버넌스(governance)를 넘어서 크립토이코노미(cryptoeconomy)를 고민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암호화폐가 실제 시장에서 통용될 수 있도록 설계하고, 이를 바탕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확장 가능하고 지속 가능한 형태로 만드는 방법을 고민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크립토이코노미를 체계적으로 연구하려는 시도가 크립토이코노믹스(cryptoeconomics)다. 크립토이코노믹스는 특히 미디어 블록체인과 같은 전면적인 B2C(business to consumer) 서비스에서 특히 중요하다.


크립토이코노믹스는 아직 정립된 이론틀이 있는 것은 아니며 주로 게임이론(game theory)의 메커니즘 설계(mechanism design)의 관점에서 탐색되고 있다. 이는 우선 메커니즘 설계가 주어진 경제 현상을 단지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하게 새로운 게임을 설계하는데 방점을 두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메커니즘 설계는 이미 컴퓨터공학에서 알고리즘 메커니즘 설계(algorithmic mechanism design)라는 이름으로 활용되기도 했다(Nisan & Ronen, 2001; Nisan et al., 2007).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아이러니한 점이 있다. 메커니즘 설계나 게임이론이 기초한 주류 경제학적 관점은 금융위기 이전 신자유주의 시대의 이론적 기반이었다. 그런데 암호화폐의 기원인 비트코인은 바로 이 이론적 토대 위에 있는 시대를 종식시키기 위해 등장했다. 즉 블록체인 기술은 중앙화된 화폐 발행 권력 자체에 도전함으로써 금융통치성(financial governmentality)의 시대를 끝내고 정보통치성(informational governmentality)으로 부를 수 있는 정보 기술 기반 합리성의 시대를 열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블록체인의 크립토이코노미가 다시 메커니즘 설계로 돌아가려 한다.


크립토이코노믹스에서 메커니즘 설계의 유용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메커니즘 설계는 수많은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경제에 대한 주류 경제학적 관점 외에도,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 정치경제학, 사회학, 문화연구 등의 관점들이 발전해왔다. 사회과학의 총체적 관점은 실재 세계 전체는 물론 가상세계의 구성에 대해서도 분석틀을 제공해주기도 한다. 스타트업의 고객 개발이나 단계별 자금 조달 방식에 비하면 암호화폐의 방식은 너무 무겁고 거대한 면도 있다.     


크립토이코노믹스의 개념


암호화폐를 기존의 실물 경제나 금융 시장의 관점에서 구성하려는 다양한 노력이 있다. 한편으로는 거래소에서 암호화폐를 현금으로 사고팔고 ICO로 자금을 조달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정부 규제를 받고 상장지수펀드(ETF, Exchange‐traded fund) 같은 핵심 금융상품 승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호화폐를 기존의 경제학적 관점에서 이해하고 구성하려는 시도는 끊이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암호화폐 경제학, 즉 크립토이코노믹스(cryptoeconomics)이다.

블록체인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블록체인 기술 외에도 거버넌스(governance)와 크립토이코노미(cryptoeconomy)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Böhme et al., 2015). 크립토이코노믹스는 크립토이코노미를 체계적으로 구성하기 위한 연구다.


크립토이코노믹스는 블록체인 기반으로 탈중앙화된 디지털 경제에서 재화와 용역의 생산, 유통 및 소비를 규율하는 프로토콜을 설계하는 실용적인 과학으로 정의된다(Zamfir, 2015). 크립토이코믹스는 크게 암호학(cryptography)과 경제학(economics)을 이용한다(Buterin, 2017). 암호학은 과거의 거래를 증명하는 데에, 경제학은 미래의 거래를 발생시키는 데에 활용된다(Buterin, 2017). 즉 블록체인 시스템 내에서 사전 정의된 경제적 보상(incentive)을 이용해 원하는 재화와 용역을 생산하고 화폐를 적정량만큼 발행하는 등의 일이 자동으로 일어나게 하기 위해서 활용된다.


크립토이코노믹스는 다음과 같은 영역을 다룬다(Ray, 2018).

토큰이나 암호화폐, 더 일반화하면 디지털 자산

사회 복지, 공제, 또는 기본소득을 위한 탈중앙화 시스템

컴퓨팅 자원을 얻기 위한 보상 제공 시장

자동화된 스마트 콘트랙트

온라인 상의 신뢰 및 평판 시스템

안티 스팸(spam) 및 안티‐시빌 공격(Sybil attack) 알고리즘

탈중앙화된 거버넌스

합의 알고리즘


이는 크게 세 유형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토큰 이코노미와 인센티브 등 경제 영역이다. 암호화폐는 블록체인으로 공급된 통화에 암호화된 자산은 재화에 해당한다. 사용자들에 대한 보상은 기본소득의 성격을 갖는다. 한편 플랫폼 운영자를 탈중앙화된 방식으로 모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최소한 운영 비용은 제공해야 할 뿐만 아니라 경제인으로서의 이익은 가져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충분히 탈중앙화된 방식으로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면, 보상의 규모는 현재의 플랫폼 사업자가 얻는 수준의 초과 이익보다 훨씬 적을 것이다. 스마트 콘트랙트는 사용자가 다양한 재화와 용역을 암호화폐를 지불하면서 직거래할 수 있도록 한다. 암호화폐와 자동화된 스마트 콘트랙트를 통해 플랫폼은 플랫폼 사업자 없이 P2P 거래를 수행할 수 있다.

둘째, 블록체인 기반 기술이다. 신뢰, 평판, 보안을 얻는 것은 암호학을 바탕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셋째, 거버넌스다. 거버넌스는 탈중앙화된 형태로 구조화돼야 한다. 합의 알고리즘은 거버넌스를 뒷받침한다. 물론 합의 알고리즘은 토큰 이코노미나 보상 체계와도 연관된다. 사실 크립토이코노믹스는 토큰 이코노미와 보상체계, 암호학 기술, 거버넌스 등을 모두 포괄한다.      


크립토이코믹스와 메커니즘 설계


현재 크립토이코노믹스는 주로 메커니즘 설계와 접목되어 연구되고 있다(Zamfir, 2015). 메커니즘 설계는 큰 틀에서는 게임 이론(game theory) 범주 안에 들지만 좀 더 세분화시켜 보면 상반된 목적을 갖고 있다. 게임 이론은 게임이 주어져 있는 반면, 메커니즘 설계는 게임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김영세, 2018). 게임이론이나 메커니즘 설계나 행위자는 이윤 극대화(profit maximization)를 추구하는 합리적 개인으로 가정한다. 여기서 합리적이라는 것은 이들이 게임 이론에서 제시하는 전략적 상호작용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메커니즘 설계에서는 두 종류의 참여자가 있다. 주인(principle)과 대리인(agent)이다. 주인은 정보 비보유자(uninformed player)이고 대리인은 정보 보유자(informed player)이다. 메커니즘 설계는 참여자들 간에 비대칭적 미비 정보가 존재할 때 주인은 대리인들의 행위를 유도해 최선의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 어떤 보상 메커니즘을 만들 것인지를 연구한다(김영세, 2018).


메커니즘 설계는 제약 조건(constraint)을 만족시키면서 목적(objective)을 최대한 달성하는 최적해(optimal solution)를 찾는 최적화 문제(optimal problem)이다. 


메커니즘 설계는 다음 요소로 구성된다. 

대리인 또는 행위자(agent): 전략적 상호작용을 하는 주체 

유형(type): 개별 행위자가 갖고 있는 자신의 선호와 효용에 대한 정보

결정(decision): 행위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사회적 결과들 (예컨대, 찬성할 것인가 말 것인가). 

효용 함수(utility function): 결정에 따라 개별 행위자가 얻는 효용을 계산하는 함수 

결정 함수(decision function): 각 행위자들이 어떤 상황이 주어지면 어떤 행동을 할지 정해 놓은 함수 (예컨대 효용이 비용보다 크면 찬성한다.) 

이전 함수(transfer function): 행위에 따라 행위자가 갖는 보상 또는 처벌을 계산하는 함수 

사회적 선택 함수(social choice function): 결정 함수와 이전 함수의 결과에 따라 사회가 내리는 결정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함수 (송범근, 2018a). 


메커니즘(mechanism)은 결정 함수와 이전 함수로 이뤄지며 각 행위자들의 전략적 상호작용 결과가 사회적 선택으로 나타나는 방식을 의미한다. 메커니즘 최적화 과정은 설정, 추론, 변경을 반복하는 것이다. 즉 메커니즘 설계자는 결정 함수와 이전 함수를 설정하고, 메커니즘에 따라 행위자의 행동과 사회적 선택을 추론한 뒤, 목적 달성 여부에 따라 메커니즘을 변경한다(송범근, 2018b).


메커니즘 설계를 비롯한 게임이론은 컴퓨터 공학에서 알고리즘 메커니즘 설계 또는 더 넓은 의미에서 알고리즘 게임 이론(algorithmic game theory)이라는 이름으로 발전되어왔다(Nisan & Ronen, 2001; Nisan et al., 2007). 서로에 대해 알지 못하는 다양한 선호를 가진 서로 다른 집단들이 인터넷 환경에서 적절한 사회적 선택(social choice)을 하도록 알고리즘, 프로토콜, 시스템을 만드는 문제는 알고리즘 메커니즘 설계의 대표적인 문제이다. 이는 인터넷 서비스 설계를 시장 메커니즘으로 푸는 접근이다. 인터넷 환경에서 시장을 알고리즘으로 구현하는 문제 역시 중요한 문제이다. 이는 시장의 구현을 알고리즘으로 푸는 접근이다.


크립토이코노미는 인터넷 이상으로 메커니즘 설계에 적합한 특성을 갖고 있다. 우선 비대칭적 미비 정보가 존재한다. 창작자든 개발자든 사용자든 이들은 상대의 의도를 알지 못한다. 이들은 서로 멀리 떨어진 익명의 컴퓨터 노드로 존재한다. 블록체인 프로젝트를 만드는 재단(foundation)은 정보 비보유자인 주인이고 사용자는 정보 보유자인 대리인이다. 재단은 사용자가 선의를 갖고 있는지, 이기적인지 이타적인지, 거버넌스 협력자인지 공격자인지 알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재단은 탈중앙화된 방식의 알고리즘에 기초해 다수의 사용자를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방향으로 유인하면서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성장시켜야 한다. 플랫폼이 성장하고 탈중앙화가 진행되면 모든 이들이 주인이자 대리인이 될 수 있는 상황이 되기도 한다.


메커니즘 설계를 활용한 크립토이코노미 설계 절차는 다음과 같다(송범근, 2018b). ① (행위자의 목표 행동 정의) 블록체인 생태계의 행위자와 목표 행동(targeted behavior)을 정의한다. ② (최적화 문제 설정) 블록체인 서비스의 목적을 정의하고,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지켜야 할 제약 조건을 파악한다. 예컨대 블록체인의 기술적 특성인 탈중앙화나 데이터의 비가역성, 기술적 한계 등은 기본적인 제약조건이 될 수 있다. ③ (메커니즘 설정) 상황과 행동을 연결한 결정 함수와 보상 및 처벌을 정의한 이전 함수를 만든다. 블록 생성, 암호화폐의 채굴, 보상 등의 내용을 담은 합의 알고리즘이 대표적이다. ④ (결과 추론) 제약 조건을 충족시킨 채로 메커니즘을 작동시켰을 때 목적을 달성하는지 추론한다. 목적 달성에 실패하면 메커니즘이나 제약 조건을 변경한다.      


경제 구성에 대한 이론들: 효율시장가설에서 금융문화연구까지


메커니즘 설계나 게임이론은 경제학의 주류인 신고전학파 미시경제학의 전통에 서 있다. 그러나 수학적 모형을 만드는데 집중한 기존 경제학의 많은 이론들이 실험 경제학(experimental economics) 등 행동경제학의 연구를 통해 실증적으로 반증되어 왔다. 비단 행동경제학만이 아니라 경제에 관한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접근은 경제를 보는 시야를 크게 넓혀왔다. 여기서는 이를 검토하고 크립토이코노믹스를 메커니즘 설계를 넘어서 재구성하고자 한다.     

전통적인 경제학에서 금융시장은 완전 시장(perfect market)에 가까운 효율시장으로 취급된다. 효율시장은 가격이 정보를 완전히 반영하고 있는 시장이다. 완전 시장은 현실적으로 존재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자본 배분과 거래비용에 관한 정보 비대칭성(information asymmetries)을 배제하고 정보효율성(informational efficiency)만 달성한다면 효율시장은 가능하다(Fama, 1970).


반면 행동금융학자들은 금융시장에 심리적 요인이 미치는 영향에 주목한다. 이들은 현재의 가격이 과거 가격의 영향을 받는다고 본다. 미디어는 이러한 영향력을 강화해 경제의 거품(bubble)과 공황(panic)을 심화한다(Schuster, 2006; Shiller, 2002).


경제 현상에 대해서는 효율시장이론이나 행동경제학 등 경제학적 관점 외에도 정치경제학, 경제인류학, 경제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논의해왔다. 정치경제학들은 초기에 권력과 자본 간의 관계에 주목한 단계를 넘어서 제도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후기 제도주의적 관점에서는 특히 구성주의적 관점에서 사회문화적 측면에 주목한다. 이러한 경제구성주의(economic constructivism)에서는 제도를 구성하는 규범과 규범의 사회적 자원으로서 이념(idea)이나 정당성(legitimacy)에 주목한다(Blyth, 2002; Seabrook, 2006).


금융사회연구(social studies of finance)는 과학기술사회학(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 특히 행위자 연결망 이론(actor‐network theory, ANT)에 경제사회학(economic sociology)을 접목한 연구이다(Pinch & Swedberg, 2008). 여기서는 경제학을 경제 현상을 단지 기술하고 설명하는 투명한 과학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대신 구성주의 관점에서 경제학이 실제로는 시장과 시장 주체, 시장의 규범과 제도, 시장을 관리 감독하는 당국을 끊임없이 재구성하는 힘, 즉 수행성(performativity)을 가진 것으로 이해한다(MacKenzie, 2007).


금융사회연구는 주로 경제학과 경제학자, 그리고 금융계 전문직과 그들이 가진 전문 지식, 관행, 그들의 복잡한 도구들의 수행성에만 주목하는 상층 연구의 성격이 강한 편이다(Ho, 2009/2013). 이에 반해 금융문화연구(cultural studies of finance)는 대중과 그들의 일상적 삶에 주목한다. 대중이 금융체계에 대거 참여하는 금융 민주화(democratization of finance), 금융 메커니즘이 일상에 침투하고 주체를 금융 자아(financial self)로 재구성하는 일상의 금융화(finacialization of daily life), 금융화를 경제적 본성에 대한 과학적 이해가 아니라 역사적 구성물로 이해하고 역사 속에서 대안적 분기점을 찾는 금융역사문화연구(historical cultural studies of finance) 등이 금융문화연구로 통칭될 수 있다(Grossberg, 2010b; Martin, 2002; Nocera, 1994).


금융통치성 연구(financial governmentality studies)는 이러한 연구 동향을 더욱 심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금융 자본주의는 금융권력이 시장과 사회, 주체와 정부, 심지어 시간과 공간까지 재구성해야 한다. 여기에는 전문 지식은 물론 미디어 담론이 활용된다. 이 과정은 일방적인 것은 아니며 개인의 수행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끊임없는 균열을 내재하고 있다. 담론의 모순과 수행의 균열은 한편으로는 통치성이 다양한 문제에 적응할 수 있는 영토화의 힘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대안을 생성해내는 탈영토화의 힘이 되기도 한다(박대민, 2014; Langley, 2008).      


가상사회체계론


효율시장가설에서 금융문화연구까지의 논의는 경제 현상의 분석이 경제만으로는 완전히 분석될 수 없고,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관점에서 분석되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여기에 역사적 관점도 더해져야 한다. 더 나아가 수행성에 대한 이론은 경제는 기술적으로만 파악되는 것이 아니라, 구성적으로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즉 경제에 관한 이론은 경제 현상을 기술하고 설명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되며, 더 나아가 경제 현상을 구성한다. 사실 사회과학은 비록 분과학문적으로 발전되어오기는 했지만 결국 전체적으로는 사회 전체를 대상으로 이러한 연구를 수행해왔다.


파슨스, 루만 등이 발전시켜온 사회체계론(social system theory)은 총체적 관점에서 세계와 사회를 이해하는 시도다. 동물적 행동(behavior), 의미를 갖는 행위(action), 행위 간의 상호작용(interaction), 상호작용이 만들어내는 사회체계(social system)와 행위 영역 밖에 있는 환경(environment), 사회의 기초인 생활세계(life world)와 생활세계로부터 기능 분화된 기능 체계로서 정치체계(political system), 경제체계(economic system), 문화체계(cultural system), 그리고 이러한 사회체계 안에서 또다시 기능 분화된 추가적인 하위 체계들이 있다. 예컨대 문화체계는 학계, 종교계, 예술계 등으로, 예술계는 고급예술계와 대중문화계로 분화될 수 있다. 근대는 기능 분화가 심화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그러나 체계들은 자체적으로 자기 재생산(auto‐production)하지만 서로는 상호 침투(interpenetration)한다(박대민, 2014; Habermas, 1981/2006; Parsons, 1951). 이밖에도 사회 현상 분석에서는 행위(action)와 구조(structure) 간의 교차(cross) 문제, 미시(micro)와 거시(macro) 간의 연계(link) 등을 함께 고려하는 교차 연계(cross‐link) 측면도 고려한다 (정태석, 2002; Giddens, 1991). 정리하면 하나의 경제 현상을 완전히 분석하고, 새로운 경제를 완전히 구성하는 문제는 굉장히 다면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해법이 있다.

첫째, 하위 체계 내의 고유 기능에 대한 분석에 집중하고 다른 하위 체계의 영향을 외생변수로 취급하는 것이다. 문제를 더 간단히 하기 위해서 이 외생변수를 불변의 상수로 정의할 수도 있다. 이는 이론화 내지 현상의 기술에는 도움이 되지만, 실용적이지 않다.

둘째, 처음에는 행위나 미시, 하위 체계 하나에서 시작하여 점차 규모를 키워나가는 것이다. 사실 한 경제체계는 모든 환경에 영향을 받지만, 처음에는 체계 내의 규칙에 따라 자기 재생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할 수 있다. 그러나 경제체계가 성장함에 따라 환경의 영향은 점점 더 중요해질 수 있다. 이런 점진적 접근은 실용적이고 현실의 구성에 무게를 둔다.


사회체계론적 총체성을 고려해 프로그래밍하는 것은 어려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동안 인터넷을 통해서, 예컨대 소셜 미디어나 다중접속 온라인 역할 수행 게임(massively multiplayer online role‐playing game, MMORPG)을 통해서 다양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상호작용을 온라인 상에서 한꺼번에 구현해본 경험이 있다. MMORGP에서는 가상 환경과 가상 사회를 프로그래밍한다. 즉 환경에 해당하는 가상 시간과 가상공간, 행위자에 해당하는 사용자가 조작하는 PC(player character)와 NPC(non‐player character)를 프로그래밍한다. 또 행위와 연동된 재화와 용역 및 통화, 행위에서 발전하는 체계를 설계한다. 우선 기본 행동, 행동의 조합으로 이루어지는 행위 유형, 행위 유형에 따라 산출되는 아이템(item), 즉 재화와 화폐인 가상 상품 아이템과 가상 화폐 아이템이 있다. 다음으로 자유로운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생활세계, 행위 유형의 조합으로 이루어지는 기능적인 역할, 역할 수행을 통해 유지되는 정치체계 및 경제체계, 그리고 생활세계와 기능체계를 유지하는 생활 집단과 기능 집단이 정의된다. 또 환경을 유지하는 물리적 메커니즘과 체계를 작동시키는 시장 메커니즘과 사회 메커니즘을 설계한다. 가상세계를 이해하는 서사적 관계도 만든다. 가상 사회체계와 실재 사회체계의 관계도 고려해야 한다.


예컨대 <리니지 2>에서는 농사, 상점 구입 등을 통해 가상 재화의 양을 늘리고 소모품 사용이나 상점 판매 등을 통해 가상재화를 소모하며, 제작 등을 통해 가상 재화를 변화시키면서 재화를 공급한다. 다른 한편으로 사냥이나 퀘스트(quest) 수행, 상점 판매 등을 통해 가상 화폐를 공급한다. 현금으로 아이템을 구입해 사용하는 경우 가상 경제체계 내 통화의 유통 속도나 재화의 실제 유통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게임사는 아이템의 드롭 확률을 변화시키거나 아이템 거래 등을 규제하는 방식으로 가상 경제체계를 조정하는 등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총 통화량과 총 재화량을 맞춰 균형을 달성해야 가상경제체계가 붕괴하지 않는다(박대민, 2006). 이러한 MMORPG의 개발은 현실과 마찬가지로 한 번에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개선되며 적절하게 개발된 게임은 성장하고 지속된다.     


크립토이코노믹스의 확장


크립토이코노믹스를 알고리즘 메커니즘 설계의 관점으로 접근하면 체계적인 설계도 가능할뿐더러 프로그래밍도 가능하다는 면에서 장점이 있다. 그러나 단점도 있다. 우선 알고리즘 메커니즘 설계가 너무 어렵다. 설계 자체에 너무 많은 공이 들 수도 있다. 사실 기존의 많은 인터넷 서비스는 알고리즘 메커니즘 설계를 활용하지 않고도 성공했다. 유독 블록체인 서비스만 메커니즘 설계를 써야 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메커니즘 설계의 토대인 게임 이론 내지 주류 경제학 전반에 대한 비판에서 보듯이, 경제는 실제로 메커니즘 설계가 가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영향력을 고려해야 한다. 개인들도 게임 이론의 합리성을 따르기보다는 심리적 요인은 물론이고 다른 하위 체계의 영향을 받는다. 여기서는 앞선 논의들을 바탕으로 사회체계론적 관점에서 총체적인 크립토이코노미 분석 모형을 제안하고자 한다.


크립토이코노미는 우선 다음 차원이나 수준들을 고려해야 한다.

첫째, 블록체인의 사회체계 차원이다. 블록체인의 사회체계는 생태계로 부를 수도 있다. 생태계 안의 차원과 밖의 차원이 있다. 한 블록체인 생태계는 그 블록체인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행위자들로 구성된다. 미디어 블록체인의 경우 창작자, 개발자, 사용자, 투자자, 광고주 등이다. 해당 블록체인의 행위자가 아니면 모두 생태계 밖에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예컨대 규제 당국은 생태계 밖에 있다고 본다.

둘째, 온라인 여부의 차원이다. 오프라인 수준과 온라인 수준이 있다. 블록체인 생태계의 요소 중에는 온라인 상에 구현된 것과 오프라인에서 작동하는 것이 있다.

셋째, 블록체인 상에 구현되는지 여부에 따른 차원이다. 블록체인 상의 온체인 수준과 블록체인과 분리된 오프체인 수준을 구분해야 한다. 

세 차원은 서로 중첩된다. 온라인 수준 중에는 온체인 수준과 오프체인 수준이 있지만, 오프라인 수준은 전부 오프체인이다. 모든 온체인 수준은 생태계 안에 있지만, 오프체인 중에는 생태계 안에 있는 것과 밖에 있는 것이 있다. 


크립토이코노믹스는 일단 블록체인 생태계 안을 주로 다룬다. 크립토이코노미는 다음과 같은 요소들로 구성된다.


첫째, 문제의식, 비전(vision), 미션(mission)이다. 어떤 문제가 있는지, 그 문제를 해결해 무엇을 달성할 것인지, 그 문제를 블록체인의 특성, 즉 비가역성, 탈중앙화, 탈중개화 등을 통해 해결할 것인지를 정해야 한다.


둘째, 행위자와 행위이다. 행위자는 고유한 행위로 정의된다. 즉 실체적인 사람은 복수의 행위자로서 복수의 행위를 할 수 있지만, 생태계에 안에서는 한 종류의 행위자이자 행위로 간주된다. 예컨대 어떤 사람은 창작자이자 개발자, 또는 사용자나 투자자가 동시에 될 수 있지만, 생태계 관점에서는 각각 독립된 행위자로 독립된 행위를 한다고 간주한다.


셋째, 기여와 기여의 산물이다. 블록체인 생태계 내의 바람직한 행위는 기여로 정의한다. 행위자는 기여와 쌍을 이룬다. 기여는 온체인 상에서 일어나는 것과 오프체인 상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나눠질 수 있다. 온체인 상의 기여로는 생산, 유통, 소비가 있다. 생산은 크게 생산물에 따라 나눠진다. 암호화폐의 생산과 암호자산의 생산이다. 채굴은 암호화폐의 생산이다. 암호자산의 생산은 블록체인 특성에 따라 다양할 수 있다. 유통은 암호화폐의 유통과 암호자산의 유통으로 나눠진다. 거래(transaction)는 암호화폐의 유통이다. 암호자산의 유통 역시 블록체인 특성에 따라 다양하다. 소비는 암호화폐의 소비와 암호자산의 소비로 분류된다. 암호화폐의 소비는 투자이다. 투자는 판매 행위와 쌍을 이룬다. 암호자산의 소비는 사용이다. 사용은 사용자 행동 데이터를 생산한다. 암호화폐와 암호자산의 생산과 유통은 최대한 온체인상에서 일어나는 반면, 소비는 현재로서는 대부분 오프체인과 온체인 간에 일어난다. 한편 오프체인 상의 기여로는 가장 중요한 것이 블록체인 네트워크의 개발과 운영 등이다. 이는 개발자의 기여 행위이다. 한편 바람직하지 않은 행위는 일탈이다. 일탈의 유형은 해킹이나 저작권 침해, 가짜 계정 생성 등을 포함해 다양하게 있을 수 있다.


넷째, 기여에 대한 보상이다. 모든 보상은 원칙적으로 암호화폐로 주어진다. 즉 암호화폐와 암호자산의 생산과 유통에 대한 보상은 암호화폐로 지급된다. 반면 암호화폐와 암호자산의 소비, 즉 투자와 사용에 대한 보상은 비록 그것이 암호화폐로 지급될 수 있기는 하지만, 법정통화나 현실의 효용과 연계된다. 즉 투자 수익을 암호화폐로 돌려받을 수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법정통화 수익이 되어야 한다. 사용 역시 사용자 생성 데이터에 대한 암호화폐 보상도 있지만 결국 사용자의 효용으로 돌아온다. 개발자에 대한 보상도 필요하다. 이는 수수료이다. 원칙적으로 수수료는 사용자가 아니라 생산자에게 부과되어야 한다. 한편 일탈에는 처벌을 가할 수 있다. 일단은 처벌보다는 일탈 행위가 처음부터 무의미하도록 예방적으로 설계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만 완벽한 예방은 불가능하다.


다섯째, 유형화된 암호화폐다. 한 종류의 화폐를 발행할 수도 있지만 몇 가지 이유에서 복수 통화제도를 운영할 수 있다. 우선 서로 다른 행위에 따라 서로 다른 암호화폐를 정의할 수 있다. 다음으로 권리를 특정한 방식으로 제한하기 위해 암호화폐를 복수로 만들고 그 암호화폐 간 교환 방식을 조정할 수 있다.


여섯째, 거버넌스다. 생태계의 고유 목적, 거버넌스에 참여하는 핵심 행위자, 핵심 기여, 핵심 기여를 할 책임, 책임을 수행하기 위한 권한, 책임 이행에 따른 보상 등을 정의한다. 책임이란 의무화된 기여로 볼 수 있다. 권한은 책임을 수행하기 위해 주어진다. 책임은 생태계에 안정된 기여를 제공함으로써 생태계를 지속시킨다. 권한은 책임과, 책임은 필수적 기여와, 기여는 보상과 연관된다. 권한을 가진 핵심 행위자는 많은 보상을 받지만 책임을 수행해야 하며 책임을 수행하지 않으면 보상과 권한을 잃게 된다. 이러한 거버넌스의 요소들이 작동하도록 토큰 이코노미가 뒷받침해줘야 한다. 거버넌스는 세 차원에서 고려될 수 있다. 첫째, 온체인화된 거버넌스다. 이는 특히 합의 알고리즘이나 투표 등으로 구현된다. 완전히 온체인화된 거버넌스를 가진 조직은 완전히 탈중앙화된 자율 조직(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 DAO)에 가깝게 된다. 둘째, 오프체인이면서 생태계 내의 거버넌스다. 이더리움 재단이나 이오스 중재 포럼(EOS Core Arbitration Forum)과 같은 오프라인 조직을 통한 거버넌스가 대표적이다. 이 거버넌스는 핵심 개발자 집단이나 거래소 등이 주도하는 경향이 강한 만큼 중앙화될 가능성이 높다. 셋째, 오프체인이면서 생태계 밖의 거버넌스다. 규제 당국인 정부가 대표적이다. 이 거버넌스 역시 중앙화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일곱째, 기술이다. 토큰 이코노미와 거버넌스는 기술적으로 구현 가능해야 한다. 즉 프로그래밍 가능해야 한다(programmability). 블록체인을 사용하지 않는 기술, 블록체인의 기본적인 기술, 서비스의 목적과 관련된 스마트 콘트랙트도 중요하지만 토큰 이코노미와 거버넌스에 특히 중요한 것이 합의 알고리즘이다. 합의 알고리즘은 탈중앙화 정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여덟째, 동적 균형이다. 경제적 지속가능성은 기본적으로 총통화량과 총 재화량의 동적 균형으로 확보된다. 여기에는 앞서 말한 다양한 차원이 총체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즉 암호화폐와 암호자산 간의 균형 외에도, 암호자산과 법정통화 간 균형, 암호화폐와 법정통화 간 균형이 달성되어야 한다. 암호화폐로 실물자산을 구입한다고 했을 때는 암호화폐와 실물자산 간의 균형도 달성될 필요가 있다. 균형 달성 자체는 서비스가 시작된 이후에 판단할 수 있다. 설계 단계에서는 토큰 이코노미나 댑(decentralized application, dApp) 생태계의 단계별 성장 로드맵(roadmap), ICO(initial coin offering) 등 자금 조달 방법, 비즈니스 모델(business model) 등이 고려될 수 있다. 균형을 달성하게 되면 행위자, 행위, 기여, 화폐와 자산, 보상, 토큰이코노미, 거버넌스, 기술가 서로 일관성 있게 연동된다.


크립토이코노미의 분석틀


이상의 이론적 논의에 따라 크립토이코노미의 요소들은 행위 요소와 체계 요소로 구분해 분석할 수 있다. 행위 요소는 행위자와 행위로 나눠진다. 체계 요소는 크게 토큰 이코노미와 거버넌스로 유형화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크립토이코노미의 분석틀을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첫째, 문제의식, 미션, 비전. 크립토이코노미의 존재 이유이자 방향성을 제시한다.

둘째, 행위 요소의 측면이다. 우선 핵심 행위자를 정의한다. 다음으로 행위자의 행위를 살펴본다. 행위는 거래로 기록되며, 그 효과가 크립토이코노미에 도움을 주는지 여부에 따라 기여와 일탈로 나누어진다. 기여는 암호화폐 채굴, 암호자산 생산 및 유통이 대표적이다. 투자도 기여이지만 토큰 이코노미에서 다룬다. 기여에 대해서는 보상이 주어지며, 일탈에 대해서는 예방 조치가 마련되고 처벌이 가해진다.

셋째, 체계 요소 중 경제적 측면인 토큰 이코노미의 측면. 토큰 이코노미는 암호화폐, 암호자산, 투자 또는 자금 조달, 비즈니스 모델, 성장 로드맵 등으로 살펴볼 수 있다.

넷째, 체계 요소 중 정치적 측면인 거버넌스의 측면. 거버넌스는 거버넌스 참여 권한을 가진 핵심 행위자, 핵심 행위자의 핵심 기여, 합의 알고리즘으로 살펴볼 수 있다.      



출처: 박대민(2018). 미디어 블록체인의 크립토이코노믹스 : 스팀잇 비판과 대안 모형.  <사이버커뮤니케이션학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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