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블록체인의 크립토이코노미 (2)
스팀잇은 암호화폐인 스팀의 기반 위에 운영되는 블록체인 기반 소셜미디어이다. 2016년 7월 서비스를 시작했으며 스팀의 창시자인 네드 스캇, 댄 라이머가 만들었다. 스팀의 문제의식과 목적은 스팀 백서 초록과 서론에 잘 나와있다. 기존 소셜 미디어 플랫폼 사업자들이 플랫폼에 기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투명하고 공정하게 보상하지 않는다는 것이 스팀의 문제의식이다. 스팀의 미션이나 비전이 명확하게 제시되지는 않았지만, 일단 스팀의 목적은 “소셜 미디어 및 온라인 커뮤니티 구성원들 중 기여도가 높은 사람들에게 암호화폐로 보상함으로써 해당 커뮤니티를 지원하는 것”이다.
스팀잇의 행위자로는 크게 증인(witness), 스팀파워 보유자, 저자(writer), 추천인(curator), 그리고 스팀잇 재단이 있다. 스팀잇 재단은 스팀잇을 개발하고 개선한다. 증인은 증인 중 2/3의 동의를 통해 블록을 생성하며,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데 기여한다. 스팀의 증인 수는 20명으로 사용자들의 투표로 선출된다. 사용자들은 대리인을 통해 투표를 할 수 있다. 스팀파워 보유자는 일종의 장기 투자자 역할을 한다. 스팀파워는 스팀의 토큰 이코노미를 설명할 때 다루도록 한다. 저자는 스팀잇에 글을 올리는 사람이다. 저자가 글을 올리면 스팀이 증인과 투자자, 추천인에 주어진다. 이 글에는 게시된 원문만이 아니라 그 아래 다는 댓글도 포함된다. 추천인은 글을 추천하는 사람이다.
보상 체계를 살펴보면 아래 표와 같다. 채굴된 암호화폐의 10%가 채굴자인 증인에게, 15%가 스팀파워 보유자에게, 75%가 저자와 추천인에게 배분된다. 원칙적으로 저자와 추천인 몫의 75% 중 저자 몫은 75%, 추천인 몫은 25%이다. 실제로는 몇 가지 변수에 따라 저자와 추천인 전체, 그리고 추천인 간의 배분이 달라진다. 보상은 저자는 스팀파워와 스팀달러로, 추천인은 스팀파워로, 증인은 스팀파워로, 스팀파워 보유자는 스팀으로 받게 된다.
출처: SteemDB.com
*2018년 9월 13일 기준
기존 미디어 플랫폼 사업자 역할을 하는 이들이 증인이고, 주주 역할을 하는 이들이 스팀파워 보유자다. 이들이 가져가는 이익은 실제적으로 27% 정도를 가져간다. 추천인은 사용자 역할을 하지만, 보상을 챙기는 것을 기준으로 하면 실제로는 스팀파워를 가진 주주에 해당하는 셈인데 14% 정도를 가져간다. 저자 몫은 55% 정도다. 댓글 작성자는 사용자로 4%를 챙긴다.
스팀잇 재단은 스팀잇으로부터 직접적인 보상을 받는 것은 아니다. 대신 이들은 스팀 개발 당시 초기 채굴한 상당량의 스팀을 갖고 있다. 이들은 보유한 스팀의 거래와 가격 상승으로 돈을 번다. 또 스팀을 스팀 파워로 전환해 이자를 가져간다.
스팀잇에서는 다양한 일탈 행위가 벌어지고 있고 그에 대한 대응법도 여러 가지지만, 여기서는 스팀 백서에 나온 시빌 공격, 즉 가짜 계정에 대한 대응을 주로 살펴보자. 스팀잇에서도 가짜 계정을 만들 수는 있지만, 특정 글의 순위를 올리거나, 더 많은 저자 보상을 받거나, 선거에 영향을 주려면 여러 제약이 있다. 즉 가짜 계정으로 효과를 보려면 ① 꾸준히 저자나 추천인으로 활동하면서 가짜 계정에서도 실제로 지속적인 기여를 하거나 ② 스팀을 사서 파워 업해서 스팀파워를 확보해야 하는데 이 경우 그만큼 돈이 묶이게 된다. 이를 감수하더라도 스팀잇에서는 피로도 개념을 도입해 스팀 파워가 높은 고래의 영향력이 과도하게 커지지 않게 추천, 즉 보팅할 때마다 보팅 파워(voting power)도 줄어들고 보팅 횟수도 제한했다. 또 보팅 시간별 보상 차등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담은 속보성 콘텐츠는 저자에게, 사용자 간에 활발한 의견이 개진되는 콘텐츠에는 사용자에게 더 큰 보상을 지급한다. 즉 저자가 글을 올린 뒤 30분 이내 보팅한 경우에는 저자가 상대적으로 더 많은 보상을 받고, 30분 이후에는 추천인만 보상을 받게 해 사용자 간의 의견 교환과 숙의가 활성화되도록 유인했다.
이밖에도 스팀은 허위 정보 제공, 타이밍 어택, 전환 악용, 스팀 가격 급변, 부적절한 투표, 검열, 저작권 침해, 계정/사진 도용, 악의적 댓글/비방, 사기/스팸, 허위 태그, 어뷰징 등에 대한 예방 조치와 처벌 방안 등을 마련해놓고 있다. 예컨대 나쁜 콘텐츠는 다운 보팅(down voting)을 통해 단기적으로는 보상을, 장기적으로는 명성(reputation)을 잃게 만들었다.
스팀잇에서 통용되는 암호화폐는 스팀, 스팀 파워, 스팀달러 등 3종(Steem Dollar)이다. 스팀은 스팀 생태계의 기본 통화이다. 스팀은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현금으로 즉시 바꿀 수 있다.
스팀파워는 일종의 지분과 같다. 스팀파워가 많으면 더 많이 채굴할 수 있다. 즉 저자와 추천인에게 더 많은 보상을 줄 수 있다. 추천인이 받는 보상에서 가져가는 몫도 스팀파워 양에 비례해 많아진다. 증인도 증인 후보에게 투표한 투표자의 누적된 스팀파워 양으로 선발된다. 스팀파워 보유자에게는 배당 명목의 이자도 지급된다. 스팀파워는 직접 구매할 수 없고 글을 올리거나 추천을 해서 보상을 받거나 스팀을 구매해 스팀파워로 바꾸는 방식으로만 얻을 수 있다.
스팀달러는 법정화폐와의 환율이 고정된 스테이블 코인(stable coin)이다. 1SBD의 가치는 미화 1달러에 해당하는 스팀의 양으로 보장된다. 예컨대 1 스팀이 미화 2달러라면, 1 SBD는 0.5 스팀이다. 그런데 스팀 달러도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거래된다. 따라서 1 SBD를 스팀의 환전 기능(convert 메뉴)을 이용하는 것보다 직접 시장에서 거래하는 것이 유리하다.
스팀은 스팀달러 외에도 스팀파워와도 교환된다. 1 스팀은 1SP에 해당한다. 스팀을 스팀파워로 교환하는 것을 파워 업(power‐up), 스팀파워를 스팀으로 교환하는 것을 파워 다운(power‐down)이라고 한다. 파워 업은 즉시 할 수 있다. 그러나 파워 다운은 13주에 걸쳐 매주 1/13만큼만 스팀으로 전환된다. 이는 현금으로 스팀을 대거 사서 스팀을 스팀파워로 파워 업한 뒤 글을 추천해 보상을 키우고 곧바로 스팀파워를 스팀으로 파워 다운해 다시 현금으로 교환하는 방식으로 보상액을 조작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스팀의 발행량은 스팀의 가치를 보전하기 위해 제한된다. 스팀의 연간 추가 발행량은 이전 해 스팀 발행량에 인플레이션율이라고 하는 것을 곱한 만큼이다. 인플레이션율은 매년 0.5%씩 줄어들어 1%가 되면 유지된다. 하루 발행량은 연간 발행량을 연간 날짜 수로 나눈 만큼이다. 글이 많아지거나 추천인이 많아지면 스팀 기준의 보상액은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스팀 생태계가 그만큼 커지면서 스팀의 가치가 오르기 때문에 현금 기준의 보상액은 늘어날 수 있다. 또한 콘텐츠 노출을 늘리기 위해 일종의 광고인 ‘promoted’ 기능을 사용할 수 있는데 이때 광고료로 사용된 스팀달러는 전액 소각돼 전체 발행량을 줄이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스팀은 액면분할된 유동자산, 스팀파워는 액면병합된 고정자산, 스팀달러는 부채의 일종인 전환사채와 같다. 즉 스팀은 투자자들이 손쉽게 거래할 수 있어 스팀 생태계의 경제적 가치를 높이는데 기여한다. 스팀파워는 좋은 콘텐츠가 ‘장기적’으로 생산될 수 있도록 한다. 스팀달러는 스팀의 변동성을 줄여서 스팀 생태계를 안정화한다.
한편 암호자산은 저자가 생성한 텍스트 콘텐츠이다. 스팀잇의 콘텐츠는 1주일 뒤에 온체인화되기 때문에 이후에는 내용 수정이 불가능하다. 영상이나 음성 콘텐츠처럼 용량이 큰 콘텐츠 파일은 온체인화가 어렵기 때문에 오프체인에 저장되어 링크만 끌어온다.
투자자들은 스팀을 구매함으로써 스팀잇의 행위자들에게 경제적 보상을 제공한다. 스팀잇에 더 좋은 콘텐츠가 쌓이고 많은 사용자가 모이면 재화도 늘어나고 네트워크 효과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스팀잇의 가치가 올라가서 스팀의 법정통화 환산 가격도 오르게 된다. 스팀 구매자는 단기 투자자 역할을, 이들 중에 보유한 스팀을 스팀파워로 전환한 이들은 장기 투자자 역할을 한다. 스팀잇 재단은 주식을 발행하지 않았지만, 스팀파워 보유자는 보통주 보유자처럼 거버넌스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스팀파워 보유자는 주식의 배당처럼 이자도 지급받을 수 있다.
블록체인 생태계에서는 자금을 주로 코인 공개(ICO, initial coin offering)를 통해 모집한다. 개발을 담당하는 비영리 조직 성격의 재단이 사업계획서 성격인 백서(white paper)만으로 수백억 원 규모의 자금을 모은 사례가 적지 않다. 스타트업과 비교하면 시드 투자 단계에서 IPO를 하는 셈이나 다름없다.
일반적으로 ICO의 절차는 백서 발표, 홍보, 백서 검증, KYC(know your customer) 인증, 판매로 이루어진다. 판매는 소수의 초기 투자자를 대상으로 하는 프라이빗 세일(private sale)과 크립토펀드와 같은 기관이나 얼리어답터를 대상으로 하는 선판매(pre‐sale)를 거쳐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크라우드 세일(crowd sale)로 진행된다. 규제로 ICO가 금지됨에 따라 프라이빗 세일까지만 진행하고 암호화폐 거래소에 바로 상장하는 IEO(Initial Exchange Offering) 방식도 있다. 기존 기업이 ICO를 진행하는 리버스 ICO(reverse ICO)도 있다. ICO를 탈중앙화된 조직(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 DAO)을 통해 투표와 함께 진행하는 DAICO도 거론된다.
스팀잇 재단은 ICO를 하지 않았다. 대신 선 채굴한 스팀의 일부를 소수 투자자에게 프리 세일(pre‐sale) 방식으로 매각하고, 스팀을 거래소에 상장한 뒤 일부를 매각해 자금을 확보했다.
스팀잇은 탈중앙화된 서비스이기 때문에 스팀잇 자체의 비즈니스 모델이라는 개념은 엄밀한 의미에서 성립하지 않는다. 다만 행위자별로 비즈니스 모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각 행위자는 비용을 들여 기여하고 암호화폐로 보상을 받는다. 그리고 보상받은 암호화폐를 거래소에서 투자자에게 판매해 비용을 충당하고 이익을 가져간다. 즉 기본적인 비즈니스 모델은 스팀잇에 더 좋은 콘텐츠를 올리고 더 많은 사용자를 모음으로써 스팀잇의 가치를 높여 암호화폐 투자를 활성화하는 것이다. 행위자별로 보면 저자는 저작권료를, 증인과 추천인은 수수료를, 스팀파워 보유자인 투자자는 이자와 암호화폐 시세차익을 얻는 모델이다. 단 이 때 수수료는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처럼 블록체인 생성에 드는 수수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한편 스팀잇 재단은 이더리움과 같은 분명한 로드맵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스팀 백서에서는 암호화폐 분배 방식을 초기와 현재를 나눠 설명하고 있다. 또 스팀 기반 토큰인 스마트 미디어 토큰(smart media token, SMT)을 2019년 출시할 예정이다.
스팀의 합의 알고리즘 및 채굴 방식은 위임된 지분 증명과 창작 증명(Proof of Brain)이 결합한 형태다. 작가가 글을 써야 암호화폐가 채굴이 일어나는 것은 창작 증명의 측면이다. 반면 증인을 소수로 한정하고, 증인을 투표에 의해 선출하며, 당선자는 투표로 모은 스팀파워 보유량에 따라 결정하고, 이들에게 채굴을 위임하는 것은 위임된 지분 증명의 특성을 보여준다.
작가에게 가장 많은 보상을 주는 창작 증명 방식은 작가가 스팀에 좋은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해준다. 콘텐츠에 대한 보상은 스팀파워를 많이 가진 사람이 더 많이 추천해야 커지는데, 스팀파워를 많이 가진 사람은 스팀 생태계에서 더 많이 활동하거나 스팀 구매로 스팀에 투자한 사람이다. 따라서 많은 보상을 받은 콘텐츠는 더 좋은 콘텐츠일 가능성이 높다. 추천인 역시 보상이 많은 글을 추천해야 더 큰 보상을 받기 때문에, 좋은 콘텐츠라고 생각되는 콘텐츠를 추천할 것이다.
언뜻 보면 스팀의 핵심 행위자는 저자처럼 보인다. 예컨대 스팀잇에서 암호화폐는 저자가 좋은 글을 올리고 추천을 받아야만 발행된다. 보상 체계를 봐도 가장 많은 몫을 가져가는 이들은 저자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글 하나 당 저자 몫은 실제적으로 55% 정도다. 반면 증인과 스팀파워 보유자가 가져가는 비중은 27%밖에 안 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저자는 다수다. 반면 증인은 20명밖에 없다. 비록 3초마다 재선발되기는 하지만, 15위권 안의 증인이 바뀌는 경우는 많지 않다. 100위권 내의 증인 후보 중 상당수도 지위를 유지한다. 게다가 증인으로 활동하기 위한 컴퓨팅 자원이나 개발 능력도 상당히 필요하다. 반면 저자는 100만 명에 달한다. 이들이 글만 써서는 거버넌스에 의미 있는 영향력을 행사할 만큼의 스팀파워를 갖기는 어렵다. 거버넌스에 참여할 정도의 스팀파워를 얻기 위해서는 사실상 스팀을 대거 구입해 파워업을 하는 수밖에 없다.
게다가 스팀 생태계가 활성화되어 가치가 커지면, 작가가 작가 보상을 스팀파워로 100% 받는 것보다 스팀파워를 최소한으로 받고 스팀달러를 최대한 받는 것, 즉 스팀파워 50%, 스팀달러 50%로 받는 것이 유리해진다. 왜냐하면 1 SBD는 시장에서 미화 1달러 이상으로 거래되기 때문에, 보상의 50%를 스팀달러로 받아서 스팀을 산 뒤 파워업하는 것이 100%를 스팀파워로 받는 것보다 더 많은 스팀파워를 얻을 수 있다.
물론 스팀파워 보유자의 영향력을 제한하기 위해서 파워 다운에 걸리는 시간을 13주로 길게 잡았다. 그러나 만일 스팀잇의 가치가 매우 커질 경우, 충분히 많은 자본을 동원할 수 있는 이들은 이렇게 돈을 묶어 두기를 마다 하지 않을 수 있다. 즉 스팀파워가 큰 소위 고래는 작가가 아니라 자본가, 그것도 많은 돈을 13주간 묶어 놓을 수 있는 자본가다. 자본가가 스팀을 사서 파워업해 스팀파워를 갖고 고래가 되어, 자신의 입맛에 맞는 작가의 글에 더 많은 보상이 가도록 투표하고, 원하는 대로 증인도 뽑을 수가 있는 것이다. 자본가들은 거버넌스에 참여할 뿐만 아니라 스팀잇 내 여론을 조작할 수도 있다.
요컨대 스팀의 거버넌스에 유의미하게 참여할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판단하면, 핵심 행위자는 증인과 스팀 파워를 많이 보유한 투자자다. 이들은 기존 미디어 플랫폼의 개발자와 대주주에 비견할만하다. 언뜻 보면 핵심 기여는 창작 증명으로 뒷받침되는 저자의 창작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위임된 지분증명으로 뒷받침되는 증인과 고래의 개발 및 운영, 그리고 투자이다. 스팀잇은 활성화될수록 저자보다는 투자자에게 유리한 자본가 중심 거버넌스 구조를 갖고 있다.
출처: 박대민(2018). 미디어 블록체인의 크립토이코노믹스 : 스팀잇 비판과 대안 모형. <사이버커뮤니케이션학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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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정보 공유를 목적으로 연구용으로 작성됐으며 투자 권유 등을 목적으로 쓴 글이 아닙니다. 모든 투자는 전적으로 투자자 자신의 판단과 책임에 따라 스스로 투자에 관한 의사결정을 하여야 하고, 그에 대한 결과는 투자자 본인에게 귀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