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블록체인의 크립토이코노미 (5)
2019년 이후 뜸해졌지만, 많은 블록체인이 백서를 바탕으로 ICO를 통해 한 번에 모든 개발 단계의 자금을 조달해왔다. 하지만 이 방식은 리스크가 너무나 크다. 따라서 이 연구에서는 투자 라운드별 ICO 방식을 제안했다. 투자 라운드별 목표는 블록체인 프로젝트별로 다를 것이다. 여기서는 큰 틀에서 미디어 블록체인의 토큰 경제 성장 로드맵을 제시해본다.
첫 단계는 개별 토큰 발행이다. 각 미디어 스타트업인 창작자들이 자체 토큰을 발행하는 단계다. 서로 다른 토큰들이 고유의 토큰 경제를 발전시킨다. 창작자들은 액셀러레이터의 투자를 받은 상태일 것이다. 이 투자금은 대부분 콘텐츠 개발, 고객 개발, 웹/앱 개발에 투입된다.
이더리움 등 기존 암호화폐 플랫폼을 기반으로 토큰을 발행하기 때문에 발행 비용은 많지 않다. 발행한 토큰은 사용자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에어드롭(airdrop)으로 배포한다. 에어드롭 단계에서 발행한 토큰은 콘텐츠의 가치를 양적으로 가늠하는데 활용될 수 있다. 애초에 토큰 발행량을 얼마로 책정했든지 상관없이, 결국 에어드롭에 참여해 가져간만큼이 실제로 유통되는 토큰이 된다. 즉 이 단계에서는 환율만 정하면 되지 발행량을 한정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 가치 없는 콘텐츠를 생산할 경우, 아무리 공짜로 토큰을 준다고 해도 그 어떤 사용자도 에어드롭 받는 시간과 노력조차 들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 에어드롭 받은 토큰은 구독료로 사용할 수 있다. 예컨대 넷플릭스가 하는 것처럼 한 달간 구독료를 토큰으로 대신 지불할 수 있다. 만일 창작자가 자가 콘텐츠의 가치를 제대로 알리는데 한 달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면, 1인당 에어드롭으로 받을 수 있는 토큰의 양은 한 달 구독료에 해당해야 한다. 1년이라고 생각하면 1년 구독료로 책정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티코노미'라는 미디어가 '명조코인'이라는 이름의 토큰을 발행한다고 치자(실제 티코노미와 명조코인과는 무관하다. 여기서는 티코노미와 명조코인을 발행한 명승은 벤처스퀘어 대표의 양해 하에 설명을 위한 가상의 창작자와 암호화폐로 제시했다). 첫 발행 때 1억 명조코인을 10 이더리움으로 책정했다고 하자. 1이더리움이 25만원이라고 하면, 1억 명조코인은 250만원에 해당한다.
그러나 명조코인이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유통되지 않기 때문에 명조코인의 가치는 이더리움 가격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콘텐츠 가치에 의해 결정된다. 예컨대 티코노미 월 구독료를 1.1만원(부가세 10% 포함)으로 책정했다고 하자. 티코노미 구독료를 명조코인으로 낼 경우 1만 명조코인으로 낼 수 있다고 정할 수 있다. 이 경우 1 명조코인의 가치는 티코노미 구독에 쓰는 한 현금 1원에 상당한다. 처음 책정한 이더리움 가격에 따라 1/4000원에 해당하거나 이더리움 가격 변동에 따라 명조코인 가치가 변동하는 것이 아니다.
티코노미는 일단 손해는 거의 보지 않는다. 1억 명조코인 발행에 들어간 돈은 250만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1억 명조코인이 전부 에어드롭됐고 이를 사용자들이 전부 구독에 사용했다면, 일단 250만원으로 한 달간 1만 명의 독자를 확보한 셈이 된다. 이탈율이 95%라고 하면, 다음 달에 500명의 독자로부터 550만원의 월 매출을 얻게 된다.
티코노미 콘텐츠를 보려면 반드시 구독을 해야 하고, 구독을 하려고 하면 현금 결제를 하거나 명조코인으로 결제해야 한다고 하자. 만일 티코노미 콘텐츠가 아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면 사용자가 에어드롭에 참여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고객군 1).
사용자들이 현금만 안 쓴다고 하면 에어드롭에 참여하는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라도 티코노미 콘텐츠를 보고 싶다고 생각하면 에어드롭에 참여할 것이다. 이 경우 만일 티코노미 콘텐츠가 월 1.1만원의 구독료 가치는 없다고 생각하면 에어드롭 받은 토큰을 전부 첫 달 구독료를 사용한 뒤 구독을 끊을 것이다(고객군 2).
만일 티코노미 콘텐츠가 월 1.1만원의 구독료 가치 이상이라고 생각하면, 구독을 지속할 것이다(고객군 3).
즉 에어드롭을 한 토큰을 통해 고객군을 나누고, 각 고객군의 규모를 파악하고, 구독료의 가격 적절성을 판단할 수 있다. 이는 월 무료 체험 방식보다 나은 점이다. 물론 토큰은 쿠폰이 아니라 포인트처럼 월마다 나눠 사용할 수도 있고, 월 무료 체험 방식과 혼합해서 진행할 수도 있다.
제 4의 고객군이 있을 수 있다. 티코노미가 스타트업 창업자를 대상으로 짜장파티를 연다고 하고 참가비를 3만원씩 받았는데 이를 1만 명조코인을 받는 방식으로 바꿨다고 하자. 이 짜장파티에 참여하려는 사용자들은 보유한 1만 명조코인을 구독료 대신 짜장파티에 지불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번 짜장파티에 참여하지 못한 사용자들은 다음 짜장파티에 참여하기 위해 1만 명조코인을 보유하려 할 것이다. 이미 구독료로 1만 명조코인을 지불한 이들은 짜장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1만 명조코인을 구매하고자 할 것이다.
티코노미는 짜장파티 참석자에 한해 1만 명조코인을 최대 3만원에, 또는 약간 할인해서 판매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선금을 받게 되는 효과가 생긴다. 에어드롭을 받은 사람은 자신의 명조코인을 최대 3만원에 팔 수 있다. 즉 에어드롭 받은 이들은 가격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
정리하면 고객군 1은 티코노미 콘텐츠에 관심 없는 미고객이다. 고객군 2는 콘텐츠에 관심을 갖는 잠재 고객이다. 고객군 3은 구독료를 지불할 충성 고객이다. 고객군 4는 콘텐츠의 유료 구독자가 아니라 명조코인의 투자자다. 티코노미는 미래에 가치있는 재화와 공급을 꾸준히 추가함으로써 명조코인 자체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
개별 토큰 단계에서 개별 창작자는 자신의 콘텐츠와 토큰을 독자적인 노력으로 끌어올린다. 이러한 수많은 창작자들 중에서 성공한 창작자들이 나온다. 이들이 토큰 스왑(token swap)을 결정할 수 있다. 예컨대 ‘티코노미’와 ‘커뮤니케이션’이란 매체가 구독료를 상대 토큰으로 결제 받기로 결정하는 것이다. 즉 ‘커뮤니케이션’이 발행한 토큰을 컴토큰이라고 하면 ‘티코노미’ 월 구독료를 컴토큰으로 받고 ‘커뮤니케이션’의 월 구독료를 사이버토큰으로 받을 수 있도록 한다. 또 둘 중 어떤 코인으로도 상대 미디어의 파티에도 참석할 수 있다.
이러한 토큰 스왑에 별도의 인터체인 기술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저 법정통화의 통화 스왑을 생각하면 된다. 환율을 시장에 맡기지 않고 계약을 통해 정부나 중앙은행 간 고정 환율로 정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티코노미’와 ‘커뮤니케이션’는 자신의 재화에 대한 상대 토큰 기준 가격을 협상을 거쳐 정한 뒤 필요하면 기간이나 거래 규모를 제한해 스마트 콘트랙트로 확정할 수 있다. 각 토큰은 상장 전이라고 해도 개별 토큰 단계에서 조정된 구독료를 통해 현금가가 어느 정도 책정되어 있다. 따라서 각 토큰의 현금가를 기준으로 두 토큰 간 환율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마치 독일 통일 과정에서 서독이 동독을 지원하기 위해 마르크 가치를 1대 1로 교환한 것처럼 한 쪽이 다른 쪽을 지원하기 위해서 별도의 환율을 책정할 수도 있다.
스왑 계약이 타당하다면 재화의 교환과 토큰의 사용이 활발하게 이뤄질 것이다. 사용자가 명조코인을 보유하든 컴토큰을 보유하든 더 가치 있는 콘텐츠를 소비할 것이고 더 가치 있는 토큰을 보유할 것이다. 즉 ‘티코노미’ 콘텐츠와 컴토큰의 가치가 더 높다면, 사용자들은 명조코인을 사용해 ‘티코노미’ 콘텐츠를 구독하고 컴토큰은 갖고 ‘커뮤니케이션’의 콘텐츠는 구독하지 않을 것이다.
스왑 계약은 한편으로는 특성상 비슷한 동종 콘텐츠 창작자 간에 일어나기 보다는 차별화된 이종 콘텐츠 창작자 간에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동종 콘텐츠 창작자 간의 스왑이라면 어느 한쪽 창작자에 대한 구독이 끊길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완전히 다른 콘텐츠 창작자 간의 스왑은 아예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창작자끼리 서로 관심도 없고 사용자도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즉 스왑 계약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하나의 형식을 공유하는 다양한 내용의 콘텐츠, 또는 하나의 주제를 다룬 다양한 형식의 콘텐츠를 보유한, 다양성과 통일성의 조화를 달성한 미디어 블록체인의 토큰 경제와 생태계가 자연스럽게 더 높은 지속성을 갖게 될 것이다. 생태계에 더 풍부한 재화와 용역이 공급됨에 따라, 즉 총 재화량이 늘어남에 따라, 궁극적으로는 전체 토큰의 가치 상승도 기대할 수 있다.
바스켓(basket) 단계에서는 성장한 여러 토큰 경제가 하나의 바스켓을 만들어 독립된 코인을 만든다. 이더리움에서 시작한 토큰들을 운용하던 실력파 창작자들은 이제 자신들만의 블록체인 기반 미디어 플랫폼을 만들어 이주할 것이다. 바스켓 단계는 시리즈 B 이상의 투자를 유치한 어느 정도 검증된 미디어 스타트업이 주도할 것이다. 이 단계에서는 ICO를 통한 자금 조달이 필요하며 조달 자금은 자체 콘텐츠 개발이 아니라 메인넷 개발에 핵심적으로 활용된다. ICO는 18‐24개월 소요 자금만을 단계별로 조달한다.
새로운 미디어 블록체인 플랫폼은 충분히 많은 콘텐츠 창작자와 사용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통일성과 다양성의 조화를 이룬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는 저작권 중심의 미디어 블록체인이다. 그 결과로 선호적 연결이 진행되고 연결망이 지속가능한 형태로 성장한다.
인터체인 단계는 토큰, 스왑, 바스켓 등 다양한 수준의 이종 암호화폐들이 그 상태를 유지한 채로 서로 교환되면서 더 큰 미디어 블록체인 생태계를 만드는 상태를 의미한다. 다양한 발전 단계에 놓인 수많은 고유 양식 플랫폼들이 자신들만의 미디어 생태계를 일구어나가면서 인터체인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 경제적으로 지원한다.
플랫폼리스 단계는 개인이 다양한 단계의 미디어 블록체인 플랫폼을 이용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다만 이 단계에서는 개인이 플랫폼에 인증하는 것만이 아니라 플랫폼이 자신을 합당한 블록체인임을 개인으로부터 인증 받아야 한다. 플랫폼은 개인정보와 로그로 남겨진 사용자 행동 데이터를 갖고 있지 않다. 대신 플랫폼은 자산의 인증 정보를 제공하고, 어떤 사용자 데이터를 이용했고 어떤 기능을 제공했는지 그 이력을 사용자에게 제공한다.
시장의 측면인 토큰 경제와 사회의 측면인 생태계의 발전을 연계해보자. 개별 토큰 단계에서 창작자는 개별자로 존재한다. 고유의 토큰, 고유의 콘텐츠, 고유의 사용자로 이루어진 고유의 작은 세계를 갖는다. 이 세계는 아직 생태계로서의 자기재생산을 이뤄내지는 못한다. 생태계 발전 단계로는 개체(individual) 단계로 명명한다. 토큰 스왑 단계에서는 몇몇 창작자들이 서로 연합한다. 이를 연맹(union)이라고 부를 것이다. 바스켓 단계에서는 하나의 독립된 코인을 만든다. 이는 국가(nation)로 칭한다. 인터체인 단계는 이러한 국가들이 연합한 국제(global) 단계에 상응한다. 플랫폼리스는 개인 사용자가 세계의 지위를 갖게 된다. 어디든 갈 수 있다. 여권은 국민만 갖는 게 아니다. 국가도 갖는다. 이 단계의 생태계는 세계시민(cosmopolitan)의 생태계로 부른다.
출처: 이 글은 박대민, 명승은이 2018년 공저한 <미디어 블록체인, 플랫폼리스의 기술>에서 분량 문제로 빠진 부분 등을 보완한 것이다. 아래는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