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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emin Park Jun 04. 2019

블록체인의 거버넌스 문제

블록체인 생태계의 구성 (2)

블록체인의 거버넌스는 왜 중요한가


거버넌스는 블록체인의 채굴과 보상에 관련된 합의 알고리즘, 크립토이코노미, 개발 방향 등에 관한 다양한 안건을 결정하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하다. 특히 이를 탈중앙화된 방식으로 구성해야 하기 때문에 까다롭다. 블록체인의 거버넌스는 크게 블록체인 상에서 합의 알고리즘을 비롯한 규약인 프로토콜(protocol)에 의해 이루어지는 온체인 거버넌스와 블록체인 외부에서 이루어지는 오프체인 거버넌스로 구성된다. 오프체인 거버넌스는 해당 블록체인 생태계 내의 행위자, 예컨대 개발자나 사용자, 투자자 등 각종 기여자의 거버넌스와 정부의 규제 기관이나 사법 기구 등 해당 블록체인 생태계 밖에서 영향을 주는 거버넌스로 다시 나눌 수 있다. 


블록체인은 기본적으로 합의에 의해 거래 내역을 기록한 블록을 생성한다. 따라서 거래 내역을 조작하지 않으면서 빠르게 기록할 수 있는 합의 알고리즘이 필요하다. 널리 활용되는 퍼블릭 블록체인 합의 알고리즘으로는 크게 작업 증명(PoW, Proof of Work), 지분증명(PoS, Proof of Stake), 위임된 지분증명(DPoS, Delegated Proof of Stake) 등이 있다. 각각의 합의 알고리즘을 사용하는 대표적인 블록체인 프로젝트로는 PoW는 비트코인, PoS는 미래의 이더리움, DPoS는 이오스와 스팀이 있다. 


완전한 온체인 거버넌스는 보다 완전한 탈중앙화된 자율 조직(DAO, 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에 가깝게 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온체인 거버넌스와 오프체인 거버넌스가 혼합된 형태로 블록체인 거버넌스가 구성된다. 예컨대 개발자와 투자자, 거래소가 오프라인에서 모여서 블록체인의 업그레이드나 포크(fork), 계정 동결 같은 의사 결정을 내린다면 이는 오프체인 거버넌스를 활용한 것이 된다. 기존의 사법 기구나 정보기술 국제 기구에 의존하는 것 역시 오프체인 거버넌스라고 할 수 있다. 


퍼블릭 블록체인은 온체인 거버넌스를 중심으로 오프체인 거버넌스가 보완하는 형태로 거버넌스가 구성된다. 반면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합의 알고리즘이 있기는 하지만 사실상 소수 중심의 오프체인 거버넌스 안에서 합의 알고리즘을 변경할 수도 있다. 



비트코인의 거버넌스 문제


최초의 암호화폐이자 암호화폐의 기축통화, 디지털 금으로도 불리는 비트코인은 가장 탈중앙화된 암호화폐로 알려져 있다. 비트코인의 창시자인 나카모토 사토시는 논문을 쓰고, 비트코인을 개발한 뒤, 제네시스 블록을 생성하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활동하다가, 2010년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비트코인 개발자를 모으지도 재단을 설립하지도 않았다. 비록 제네시스 블록을 생성한 컴퓨터는 한동안 상당량의 비트코인을 채굴했지만, 해당 물량은 단 한 번도 시장에 나온 적이 없다. 

그래서 “나카모토 사토시가 한 가장 위대한 일 중 하나는 그가 사라져버렸다는 점”이라는 말도 나온다.

2018년 현재 비트코인 블록 생성에 기여하고 있는 노드는 1만개 안팎에 달한다. 비트코인의 합의 알고리즘인 작업 증명은 지분 증명이나 위임된 지분 증명 등 다른 알고리즘에 비해 가장 탈중앙화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비트코인에서도 거버넌스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거버넌스가 중앙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세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비트코인 블록 생성에 필요한 해시파워의 51% 이상을 상위 4개 업체가 갖고 있다. 이는 과반수가 담합해 조작된 블록을 생성하는 51% 공격(51% attack)이 이론적으로는 가능해졌음을 의미한다. 물론 사토시가 비트코인 논문에서 지적한 것처럼, 채굴 업체가 스스로에게 위해를 가하는 이런 행동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예컨대 정부가 암호화폐를 강력히 규제하기로 하고 주요 채굴 업체를 통제해 비트코인 생태계를 파괴할 수도 있다. 

둘째, 주문형 반도체(ASIC: application-specific integrated circuit)를 이용한 비트코인 전문 채굴기를 비롯한 채굴 장비가 고가이며 소수 업체가 독점 생산하고 있다. 

셋째, 작업 증명 방식의 채굴은 규모의 경제가 가능해 독과점화 경향이 있다 . 



이더리움의 거버넌스 문제


다른 암호화폐도 마찬가지다. 이더리움의 지분 증명은 더 많은 이더리움을 가진 이들에게 더 많은 보상을 준다. 즉 빈익빈 부익부 방식이다 . DAO 해킹 사태 처리 와 같이 이더리움을 많이 보유한 이들이 이더리움의 하드포크(hard fork) 같은 중요한 의사결정을 한 전례가 있다. 


이더리움과 경쟁 관계인 이오스(EOS)의 창시자 다니엘 라이머(Daniel Larimer)는 이더리움 재단과 이에 협력하는 ‘굿 올드 보이 네트워크’(good old boy network)라고 비꼰다. 즉 이 네트워크에 속한 이들이 이더리움을 중앙화된 방식으로 블록체인을 변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네트워크의 구성원이 최소한으로 개입해 불가피한 선한 결정을 할 것이라는 가정을 바탕으로 이더리움이 탈중앙화됐다는 근거 없는 믿음을 갖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EOS의 거버넌스 문제


그러나 이오스는 더 큰 문제에 봉착한 적이 있다. 메인넷을 공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해킹 사건이 발생했다. 가짜 사이트에 속아 자신의 암호화폐를 보관하는 지갑을 등록하는 과정에서 지갑의 비밀번호 격인 개인키를 제 3자에게 넘겨 준 것이다. 

이를 처리하는 과정이 이오스 거버넌스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피해자들은 해킹 문제 해결을 요청했다. 블록체인이 데이터의 비가역성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해킹 등에 의한 피해 복구나 알고리즘 변경과 같은 중요한 업데이트가 불가피하다. 때문에 이오스 커뮤니티는 중재기구인 EOS 중재 포럼(ECAF, EOS Core Arbitration Forum)을 두어 합리적이고 투명한 방식으로 블록체인 데이터를 변경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ECAF는 문제 해결을 거부했다. ECAF의 권한이 당시의 EOS 헌법(constitution) 에 명시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선거를 통해 블록을 생성할 권리를 갖고 있는 21개 BP(block producer)가 해커들의 인출을 막기 위해 자체 결정에 따라 피해 계정 7개를 동결했다. 이후 ECAF가 충분한 설명 없이 27개 계정을 추가 동결했다. 


이후 이오스 창시자인 라이머와 그가 속한 이오스 개발사이자, 사전 채굴을 통해 이오스 코인을 10% 가진 블록원(Block.one)이 ECAF의 역할과 BP의 임의적인 계정 동결 금지, 분쟁 해결 방법 등을 명시한 헌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과거 블록원은 중앙화 논란을 우려해 BP 투표 등에서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했다가 이후 BP 투표를 비롯해 헌법 개정 여부 관련 투표에 참여하기로 했다. 이는 한편으로는 BP 선거에서 소위 고래로 불리는 암호화폐를 대거 보유한 이들, 특히 중국 고래의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해서 였다. 그러나 이오스의 투표율이 낮기 때문에 블록원이 10% 지분으로 21개 BP를 모두 원하는데로 선출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 


이오스는 창시자인 라이머와 주요 개발사인 블록원, 블록을 생성하는 21개의 BP와 100여 개의 백업 BP, 중재기구인 ECAF, 이오스를 대거 보유한 고래가 중앙화된 의사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있는 거버넌스 구조를 갖고 있다. 


때문에 이더리움의 창시자인 비탈릭 부테린(Vitalik Buterin)은 이오스의 위임된 지분 증명을 중앙화된 방식이라고 맹비난한다 .

다른 한편으로 그는 DAO나 이오스처럼 모든 의사결정을 블록체인 위에서 진행하는 이른바 온체인(on-chain) 거버넌스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닌가 하는 회의를 내비치기도 했다. 지분 증명이나 위임된 지분 증명 방식의 블록체인에서는 뇌물을 통해 BP간 담합을 유도하거나, 부유한 자가 많은 코인을 사들여 의사결정에 개입하는 금권주의 위험에도 노출돼 있다는 것이다.



스팀의 거버넌스 문제


스팀의 합의 알고리즘 및 채굴 방식은 위임된 지분 증명과 창작 증명(Proof of Brain)이 결합한 형태다. 스팀은 간단히 말해 작가가 글을 쓰면 증인이 채굴하고 구성원들에게 보상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작가가 글을 써야 암호화폐가 채굴이 일어나는 것은 창작 증명의 측면이다. 증인을 소수인 20명으로 한정하고, 증인을 투표에 의해 선출하며, 당선자는 투표로 모은 스팀파워 보유량에 따라 결정하고, 이들에게 채굴을 위임하는 것은 위임된 지분 증명의 특성을 보여준다. 


스팀 생태계에는 3종의 암호화폐가 있다. 스팀파워(SP), 스팀달러(SBD), 스팀(STEEM)이다. 스팀파워는 일종의 지분과 같다. 스팀파워가 많으면 더 많이 채굴할 수 있다. 스팀달러는 법정화폐와의 환율이 고정된 스테이블 코인(stable coin)이다. 1SBD의 가치는 미화 1달러에 해당하는 스팀의 양으로 보장된다. 스팀은 스팀 생태계의 기본 통화이다. 스팀은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현금으로 즉시 바꿀 수 있다. 스팀은 스팀달러와 교환된다. 스팀은 스팀파워와도 교환되는데 1STEEM은 1SP에 해당한다. 스팀을 스팀파워로 교환하는 것을 파워업, 스팀파워를 스팀으로 교환하는 것을 파워다운이라고 한다. 파워업은 즉시 할 수 있다. 그러나 파워다운은 13주에 걸쳐 매주 1/13만큼만 스팀으로 전환된다. 


스팀 생태계의 행위자 유형과 3종 암호화폐 구조, 그리고 보상 체계는 서로 맞물린다. 스팀 생태계의 거버넌스와 합의 알고리즘, 3중 암호화폐 구조, 보상 체계 등은 원칙적으로 스팀 생태계 내에 좋은 콘텐츠가 생산되고 유통되도록 설계돼 있다. 우선 작가와 추천자에 대한 보상을 강화함으로써 작가는 자율성을 갖고 콘텐츠를 만들 수 있게 됐다. 작가는 광고에 의존하지 않을뿐만 아니라, 많은 사용자를 모으기 위해 과도하게 콘텐츠 내용을 일반적 취향에 맞출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콘텐츠를 추천하는 소수의 팬만 있다면 자신만의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작가에게 가장 많은 보상을 주는 지능 증명 방식은 작가가 스팀에 좋은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해준다. 콘텐츠에 대한 보상은 스팀파워를 많이 가진 사람이 더 많이 추천해야 커지는데, 스팀파워를 많이 가진 사람은 스팀 생태계에서 더 많이 활동하거나 스팀 구매로 스팀에 투자한 사람이다. 따라서 많은 보상을 받은 콘텐츠는 더 좋은 콘텐츠일 가능성이 높다. 추천자 역시 보상이 많은 글을 추천해야 더 큰 보상을 받기 때문에, 좋은 콘텐츠라고 생각되는 콘텐츠를 추천할 것이다. 스팀 생태계에 더 좋은 콘텐츠가 쌓이고 많은 사용자가 모이면 스팀의 달러 표시 가격도 오른다. 따라서 스팀 보유자는 스팀 생태계가 커지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에도 불구하고 스팀 생태계는 작가보다는 자본가에게 유리한 거버넌스 구조를 갖고 있다. 만일 스팀 생태계가 활성화되어 가치가 커지면, 1SBD는 시장에서 미화 1달러 이상으로 거래될 것이다. 작가가 작가 보상을 스팀파워로 100% 받는 것보다 스팀파워를 최소한으로 받고 스팀달러를 최대한 받는 것, 즉 스팀파워 50%, 스팀달러 50%로 받는 것이 유리하다. 시장에서 1STEEM이 미화 1달러이고 1SBD가 미화 2달러라고 하자. 이 경우 1SBD는 2STEEM이 된다. 만일 100SBD를 보상으로 받았다고 하면, 1SP는 1STEEM이기 때문에 보상을 스팀파워로 100% 받으면 100STEEM이고 미화 100달러가 된다. 그러나 보상을 절반만 스팀파워로 받고 나머지 절반은 스팀달러로 받았다고 하면 총 보상은 50SP+50SBD이고 이를 스팀으로 환전하면 150STEEM, 미화로 환전하면 150달러가 된다. 이를 다시 스팀파워로 파워업하면 150SP가 되어 100% 스팀파워로 받았을 때보다 50% 많아지게 된다. 


결국 스팀 생태계가 활성화되면 작가는 스팀파워보다 스팀달러를 선호하게 된다. 이는 근본적으로는 글을 써서 온전히 스팀파워를 얻는 것보다, 시장에서 스팀을 사서 스팀파워를 얻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스팀 생태계가 활성화될수록 작가보다는 자본가가 유리해지는 셈이다. 고래는 작가가 아니라 자본가다. 게다가 그냥 자본가가 아니라 많은 돈을 13주간 묶어 놓을 수 있는 자본가다. 자본가가 스팀을 사서 파워업해 스팀파워를 갖고 고래가 되어, 자신의 입맛에 맛는 작가의 글에 더 많은 보상이 가도록 투표하고, 원하는대로 증인도 뽑을 수가 있는 것이다.

   


이 글은 "박대민, 명승은(2018). <플랫폼리스 미디어 블록체인>"에서 분량 문제로 빠진 부분 등을 보완한 것이다. 아래는 링크. 

http://www.kpf.or.kr/synap/skin/doc.html?fn=BASE_201812100208347330.pdf&rs=/synap/result/mediap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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