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FT 아트의 심미적 경험으로서 어떤 아우라
NFT 아트에서는 탈중앙화된 방식으로 다양한 규모의 공동체가 공유하는 심미적 경험을 제공하는 인공품에 예술의 자격을 기술적으로 부여할 수 있다. 또한 NFT 아트는 미디어 블록체인으로서 탈중개화를 구현한다. 즉 P2P 방식을 통해 미디어 플랫폼을 통한 중개를 최소화하여 수수료를 낮추고 창작자의 경제적 기반을 마련해줌으로써 더욱 세밀한 취향 공동체가 경제적으로 지속가능할 수 있게 한다.
그렇다면 NFT 아트가 내포하는 심미적 경험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듀이는 예술을 통해 얻는 심미적 경험을 완결된 하나의 경험의 감성적 질성을 체험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한다(Dewey, 1934/2016). 하지만 이러한 설명은 일상의 심미적 경험과 예술의 심미적 경험을 재통합하는 한편 지적 경험과 심미적 경험을 구분하기에는 적합하지만, 심미적 경험들 간의 차이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다.
이러한 차이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탐색할 수 있다. 첫째, 일상의 심미적 경험과 예술의 심미적 경험의 차이다. 즉 어떤 일상의 심미적 경험이 예술의 심미적 경험으로 승화되는가 하는 문제이다. 둘째, 예술의 심미적 경험들 간의 차이다. 예컨대 디지털 아트와 NFT 아트 간의 심미적 경험의 차이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들 수 있다.
적지 않은 비평가들은 NFT 아트에서는 NFT의 대체 불가능성을 통해 기존 디지털 이미지에서 사리진 아우라가 복원된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벤야민은 사실 기술복제 시대에 예술이 아우라를 상실함으로써 해방 가능성을 갖는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NFT 아트의 아우라는 반동적인가? 그렇지 않다. NFT 아트는 아우라가 귀환했다는 점에서 기존의 디지털 아트와 구분된다. 또한 NFT 아트에서는 아우라의 귀환을 통해 일상의 심미적 경험을 예술의 심미적 경험으로 승화시킨다. 이러한 아우라를 이 연구에서는 흔적의 아우라로 개념화할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NFT 아트의 아우라는 상업화된 의사 아우라가 아닌, 의미 있는 일상이 갖는 흔적의 아우라이다.
NFT 아트의 아우라에 대한 분석은 NFT 아트의 평가적 측면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아우라를 통해 NFT 아트를 등급화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하는데 보탬이 된다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어떤 감상자들이 어떤 NFT 아트에 열광하는 현상을 단지 투기적 목적으로만 치부하지 않고 실제 예술로 감상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음 글에서는 우선 기술 복제 시대의 탈아우라, 자본 논리에 따라 복원된 의사 아우라, 디지털 아트에서 나타나는 아우라 없는 아우라로 이어지는 아우라의 진화를 살펴볼 것이다. 이어 이러한 아우라가 NFT 아트가 복원하는 아우라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비교함으로써 흔적의 아우라 개념을 제안하고자 한다.
출처:
박대민(2021). NFT 아트 : 예술계의 탈중앙화와 흔적의 아우라. <한국언론정보학회>. 109호. 127-15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