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

by 댑댑

작년 대학교 글 공모전에서 썼던 글인데,

객관적 평가를 받고 싶은 마음도 있고,

열심히 썼는데 누군가 봐줬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도 있어서 올립니다 ㅎㅎ

나름 상까지 받았다는...

개인적으로 글 자체에 대한 아쉬움이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어느 정도 저의 생각을 잘 녹여냈다고 느낍니다.

피드백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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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진다. 나의 하루도, 아니 어쩌면, 전부가.

저물어간다. 찬란하고, 아름다웠던, 슬픈.

이곳은 종착지. 그 누구도 모르는, 신조차도.

빛났다고 말할 수 있나.

필연, 운명, 황혼의 금빛.

누군가는 빛의 실타래를 엮어, 운명.

누군가는 흘려보내기에 바쁜,

날카로운, 그것조차도 아름다움이라. 필연.

피해 갈 수 없는

아 이것은 새로운 시작입니까

아니면, 그저.

혼의 잔사. 지금 휘날리는 벚꽃들은

잠깐 피다 지는

우리일까. 저 넋들은.

분홍의 잎들의, 흔들거림.

그저 땅으로 가지 않기 위한,

몸짓. 그 무엇도 아닌.

해에 비친 꽃잎들은.

밝다. 한없이, 그럼에도

땅으로 가라앉는다. 그 끝은.

색이 점점 바래 투명해지는,

그 뒤로 보이는 분홍빛의 세상,

아름답길 바랐다.

눈가림일 뿐이었을까.

생명 없는 땅을 녹이고 싶었다.

오만이었을까.

그럼에도 나는 왜,

연결되어 있다고

땅과 조우를 마친,

부조리에,

내려앉고 있는

그 모든 영혼의 울림.

믿고 싶다고

사랑, 허상

신, 희망의 피조물

정말로 그렇다면.

그렇다면.

나무 밑에서, 꽃의 향연을 노래하는 소녀는, 그렇다면.

그 앞에서

실타래로 엮여있는 기찻길과

희망의 도래를 알리는

역종의 부르짖음은…

기찻길

그 종착역은 어디일까.

실타래의,

운명의, 희망일까.

무상.

말해주십시오 소녀여.

우리의 인생은 무엇이었습니까.

무엇을 위한 발악이었습니까.

대의가 있었습니까.

저희는 신의 피조물이었습니까. 그저 우주의,

먼지였습니까.

저희의 등에 얹어 있는 이 십자가는, 번뇌는

그렇다면 무엇이었습니까.

당신은 무엇을 노래하고 있는 겁니까.



그는 소녀에게 다가선다. 그러자 소녀는 노래를 멈추고, 지긋이 그를 응시한다. 소녀의 주위에는 여전히 벚꽃 잎이 맴돌고 있고, 그녀의 파란색 눈은 그를 보는 건지, 아니면 다른 그 너머를 보는지는 몰라도 초점이 흐릿하다.

저 눈빛에서 동정심이 느껴진 건 기분 탓일까.

“당신은 누구십니까? 여기는 어딥니까?”

“기차가 오기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지금 이 공간은, 그래, 어쩌면 네가 말했던 것처럼 마지막일 수도, 아니면 새로운 시작일수도 있는 갈림길이야. 종착역이 어딘지는 나도 몰라. 아마 너네가 말하는 신이라는 존재도 모를 거야. 나에게 오는 것보단 혼자의 시간을 보내고, 온갖 부조리에 발버둥 쳤던 인간으로서, 삶을 숙고하고 너만의 진리를 찾아가는 게 좋을 수도 있어.”

“당신은 신이 아니십니까?”

“계속 대화할 생각인가 보네. 좋아. 어울려줄게. 일단 나는 신은 아니야. 인간은 모두 다 이곳에 도달하지만, 나를 보는 사람도, 못 보는 사람도 있어. 심지어 신을 믿는 사람들도 말이야. 그럼 나는 신이 아니지 않을까? 신이라는 개념이 어디서 오는 지를 생각해 보면, 신화, 그리고 그것의 기원은 인간이거든. 결국 너도, 단순한 햇빛에 황혼이란 이름을 붙이고 실타래를 엮어 운명으로 받아들이지만 누군가는 그저 지고 있는 햇빛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잖아”


“그러면, 지금까지 신을 믿고 따랐던 것은, 세상의 모든 종교는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었습니까?”

“음, 그건 또 아니긴 한데,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까. 이것부터 물어보자. 네가 나에게 꽃의 향연을 노래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무엇을 노래하고 있냐고 물었잖아. 네가 보기에, 나는 무엇을 노래하고 있는 것 같아?”

“모르겠습니다. 그저 아름답다고 느꼈을 뿐입니다.”

“너는, 나에게서 아름다움의 감정을 느꼈구나. 물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만날 수 있었던 거긴 하지만.

음, 그럼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왜 우리는 꽃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낄까? 왜 우리는 정말 관련 없는 누군가에게 측은지심을 느낄까?


‘미’에 대해 원초적으로 고민해 보자고. 고대의 인간부터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정의 내리려 한 많은 시도들이 있었지. 플라톤의 이데아, 피타고라스의 비례와 조화, 이집트의 대칭성부터, 중세의 영혼의 순수함, 르네상스 시절 다시 인체의 비율과 조화, 현대에서는 정의 내릴 수 없다며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이름을 붙였잖아. 지구라는 행성에서, 네가 있는 세계에선, 지금의 세상을 과학으로 해석하려 하잖아. 그래, 너네 그 누구야, 리처드 도킨스? 염세주의를 바라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한없이 염세적인 주장을 한 사람. 과학적으로 인간이 번식기계이고, 그 자체가 생물학적 목적이고, 생명은 한낱 우연의 결과에 불과하다면, 우리가 아름다움을 느끼는 이유가 무엇일 것 같아?”


“인간의 본능 아닐까요? 여자와 남자가 사랑하고, 자식을 낳고, 또 그렇게 세대가 거듭하는데 어떠한 이유도 없잖아요. 선천적인 것, 그 이상 이하도 아니라 생각합니다.”

“맞지 본능이야. 아무런 이유가 없지. 그렇다면 종교적인 측면에서 얘기해 보자고. 그래 하느님. 하느님이 자신을 본 따 만든 인간에게 숨을 불어넣었을 때, 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도록 창조하셨을까? 이것에 대해서는 한 번 깊게 생각해 봐. 정답은 없거든.

다시 본점으로 돌아가서, 종교는 말이야. 절대성을 기반으로 인과가 없는 어떠한 것에 개연성을 부여해 줘.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하나의 방법이지. 난 그 발악을 불필요했던 시도라 생각하지 않아.

네가 나에게 아름다움을 느꼈다는 건 너에게 인간의 연대를 느끼고, 세상을 아름답게 맞들고 싶은 욕망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거야.


나는 너의 내면의 투사이기도 하고, 모든 인간의 희망이 모여, 거기서부터 의미부여 된 하나의 ‘미(美)’거든. 그렇다면 너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믿고 희망하는 것도 필요 없는 일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걸? 종교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해.”

취임. 연기를 내뿜으며 기차가 정차했다. 여기는 ‘선택’, ‘선택’ 역입니다. 안내음을 들으며 소녀는 기차로 그를 안내한다.

“감정에 대해 깊게 고민해 봐. 사랑에 대해 고민해 봐. 희생에 대해 고민해 봐.

여기까지만 대답해 줄게. 시간이 다 됐거든. 대의가 과연 존재했을까. 너의 발버둥은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기차를 타고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생각해 봐. 벚꽃길은 지금까지 수많은 인간들이 지나온 역사이자, 앞으로 지나가게 될 무한한 가능성이거든. 기찻길은 네가 고민하는 시간만큼 충분한 시간을 기다려줄 거야. 그럼, 안녕”

기차는 빨리 타라고 재촉이라도 하듯 계속해서 경적을 울리고 있다. 그는 마지못해 소녀에게서 뒤돌아서 기차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가 문을 닫자마자 기차는 곧바로 출발한다.

그러고는, 저 멀리 지고 있는 태양에 한 점을 찍고는 소녀의 시야에서 점점 사라져 간다.



그는, 드디어

떠났구나. 스스로의 길로.

기차는 말이야. 앞으로만 나아갈 수 있어. 그런데, 그 방향은 본인이 정하는 거야.

나아가는 그 길은 외로울 거야. 슬플 거야. 하나의 결말을 받아들이는 것은 또 다른 체념을 이끌어내거든.

그럼에도. 밝을 거야. 꽃이 된다는 것은 봉우리를 부수고, 찬란함을 만개하는 것.

그러니, 너의 여정이 너무 외롭지 않기를 진심으로 소망해. 너의 주위에 수많은 운명의 실들을 믿어봐.

믿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도 있거든. 객관적으로 존재하지 않아 모든 것이 허상이라는 생각이 들지라도, 그걸 무(無)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없어.


너는 알까. 너라는 존재가, 인간 하나하나가 또 하나의 우주이고, 진리임을.

너는 실타래로 운명을 엮었지. 너와 나를 이어주었지. 연대감을 느끼고, 비애에 눈물 흘렸지. 그게 사랑인 줄 알기까지 시간은 걸리겠지만.

소녀는 자신의 몸이 점점 실에 이끌려 벚꽃으로 돌아감을 느낀다.



드디어 답을 냈구나. 봉우리를 부수어내고 또 하나의 세상이 개벽을 헀구나. 새로운 희망이 태동하는구나.

너. 새로운 하나의 벚꽃이 되었고, 그 본연의 아름다움으로, 찬란함에 하나의 분홍빛을 더해주기를. 그렇다면 언젠가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종착역 너머의 그 어딘가.

너의 염원이 저 태양에 닿기를. 저 갈라져 나오는 금빛의 실들이 모두를 어루만져 주기를.

나는 가끔 인간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한단다.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고통 안에서 세상을 살아가지만, 그럼에도 희망을 노래하고 있는 그 모습들이,

미치도록 마음이 아프다고, 그렇지만 아름답다고.


너를 통해 종종 인간의 미술관에 들러, 예술작품을 감상하고, 드넓은 광장에서 사람들의 노래를 들으며 생각했단다.

희로애락을 느끼며, 발버둥 치는 것. 그것이 인간성이라고.

어쩌면 신에 대한 반항이지. 그 고결함을 느낀단다. 죽을 만큼 슬프고, 끝없는 번뇌에 가득 차 있지만, 그게 신으로의 반항을 이끌 유일한 길이기도 해.

불멸하는 신이, 필멸의 존재인 인간을 이해할 수 있을까.

불완전함을 모르는 신이, 아름다움을 알까?

봄에는 생명의 빛이 꽃을 피우지만, 가을에는 다 떨어지고 벌거벗은 나무만이 남지. 하지만, 그것은 새로운 희망의 가능성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해. 봄은 다시 도래하거든. 그것이 순리자, 필연이야.

가족과의 사랑, 그리고 헤어짐. 고통과 아름다움, 계절의 변화, 일몰과 일출. 이 모든 게 절묘하게 이어져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니.

어쩌면 신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신으로부터의 반항, 하지만 그 반항조차도 정해진 안배일 수도 있다는.


실컷 만끽하도록. 그 안배를, 그 찬란함을. 인간이기에,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유희를.

이게 나의 노래. 네가 아름다웠다 말해주었던 그 노래의 뜻. 지금쯤이면, 너도 이해할 수 있겠지. 꽃의 향연을 노래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이것은 너의 답이자, 나의 답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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