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다가 뜻을 찾아보던 중에,
행복의 정의를 보게 되었다.
표준 국어 대사전에 따르면 행복이란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하다'
라는데
만족과 기쁨, 이를 수식하는 충분한 이라는 관형어.
하나 같이 추상적이고, 확실하지 않은 우리의 직관과 감정에 기대는 단어이다.
'행복하기 위해서 산다'라는 말이 진부하다고 느낄 만큼
누구나 행복하기 바란다.
그러나 무엇을 바라는 것인가?
만족? 기쁨?
그렇다면 본인에게 만족을 주는 행위는 무엇이며
기쁨을 주는 행위는 무엇인가.
만족이란 무엇이며, 기쁨이란 무엇인가.
행복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은
내 삶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했는지, 나는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이에 답을 부여했다면,
더 대답이 구체적이지 않을까.
여러 관점들을 통해 행복을 고찰해보고자 한다.
먼저, 극단적 쾌락주의의 관점이다.
쾌락 = 행복이라 생각한다면?
쾌락은 결국 몸의 반응과 관련이 있다.
여러 호르몬들이 관련되어 있고.
하지만 항상성이란 게 존재하지 않은가?
우리는 항상 쾌락을 유지할 수 없는 상태다.
그렇기에 지속적으로 추구할만한 관점은 아니다.
공리주의를 보자.
행복을 '양적 관계'로 생각한다면?
먼저, 감정을 수치화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직면하지만
이를 떠나서
우리의 삶은, 고통이 만연해있다.
그러면 우리는 (-)에 있는 시점이, (+)에 있는 경우보다 많을 것이라는 건 자명하다.
이는 결국 회의주의로 귀결된다.
고대 철학자들, 에피쿠로스, 스토아학파들을 보자.
에피쿠로스는 쾌락주의와 결이 비슷하다 생각한다.
추구할 수 있는 통제된 쾌락만 추구하자는 것인데,
외적 쾌락은 감당하기 어렵기에 내적 쾌락을 중시한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을 스스로 쉽게 다스릴 수 있는가?
아니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살고 있지 않을까.
스토아학파도 마찬가지다.
결국 이성을 관철함을 통해서,
행복을 이루겠다는 그 이념은
중세 시대 유일신 사상인 기독교에 잡아먹히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내가 생각한 행복에 가까운 사상은 무엇인가?
칸트의 답이다.
나는 칸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삶의 답에 진리, 선, 아름다움을 제시한 그에 주장에 공감한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예를 들어보자.
자신의 신념을 위해 죽는다.
이는,
신념이, 자신의 삶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삶을 마무리한 사람들이 행복했을까?
모른다. 당연하게도.
그럼 그러한 죽음은 당사자에게 의미 있는 죽음이었을까?
이는 당연하게도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 거 같다.
삶의 의미를 위해, 신념을 위해, 오히려 죽음을 택한
결과가 말해주지 않은가?
그렇다면 행복이란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삶에,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다채롭게 피워내는 것이 행복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피워내는 것, 발아.
데미안의 알처럼,
꽃봉오리의 꽃처럼,
니체의 위버멘시와 같이,
스스로의 틀을 깨고
세상에 나만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분명, 엄청난 고통을 수반한다.
그러나 그 자체로 아름답지 않은가?
자기 초월.
자아실현의 욕구.
그게 내 행복에 대한 답이다.
계속 나아가며,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느끼고,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다양한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보고,
공감하며, 아파하고,
또 서로 사랑하고,
예술 작품을 보며 몰아치는 감정을 느껴보고
이에 느껴지는 수많은 아름다움 들을 만끽하고 예찬하는 것이
행복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