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이 문장은 누구나 알고 있을 만큼 유명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다.
하지만 대전제가 될 수 있는 참인 명제인가 하면,
아니다.
내가 반론을 제기하고 싶은 부분은,
인간 -> 사회적 동물이라는 명제에 대해서
사회적 동물의 부분집합이 인간이 맞는가 이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인간은 단순히 사회적 동물이 아니다.
사회적 동물 + 그 무언가라고 생각한다.
사회적이라는 것은 교집합 정도인 거 같다.
물론 인간은 사회를 벗어날 수 없다.
사회에서의 역할, 사람과의 상호작용을 하면서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가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페르소나, 사회적 가면이라는 말을
왜 누구나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받아들이는가?
실제로, 가면 뒤의 '나'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흔히, 누구를 만나냐에 따라,
어떤 집단에 있느냐에 따라
나를 표출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진짜 '나'를 몰라 힘들어한다.
그렇다면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개인적인, 사회에서 독립된
자아의 일부분이 있다는 것을.
사회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자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살던 시기에는,
도시국가, 아직 국가가 시행되기도 전인
자본주의의 분업화는 꿈도 못 꿀 시기였다.
사회에서 맡는 역할을 통해
자아실현이 가능했고,
자신의 사회를 향한 행위에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분업화가 시작되고,
사회적 노동의
근본적인 의미가 사라졌다.
이때부터,
사회적 자아와 개인적 자아가 분리되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행위에 의미가 없음에 힘들어하고,
내가 누군지 몰라 혼란스러워하고,
그럼에도 사회의 부품으로써 일을 해나가야 하는 세상이 시작되었다.
개인적인 측면에서 고찰해 보자면,
나조차도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서,
대학을 다니면서,
모습이 달라지는 것을 느끼고,
진짜 '나'는 누구인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었다.
실제로 심리학에서도
기질과 성격을 나눈다.
기질은 내가 가지고 있는 선천적인 것.
성격은 기질을 가지고 밖에서 대응하는 부분
여러 가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여러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이는 기질과 구분되는 것이다.
근데 이 기질과
성격의 괴리감이 커질수록
정신적으로 힘이 많이 들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본연적 자아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내 생각을 말하자면
가면을 쓴 나도 나다.
굳이 이를 부인하고, 진짜 나는 누구인가를 따로 고민할 이유가 없다.
기질이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걸 찾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나도 기질은 있다고 생각한다.
Big5검사든, TCI검사든
기질을 알고자 하는 검사이지 않은가?
실제로 효용성도 있고.
그러나,
나는 감히 생각해 본다.
기질을 우리가 정확히 알 수 있는가?
그렇다면 기질은 무엇을 통해 알 수 있는가?
바로 성격을 통해서 연역적으로 유추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구분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사람과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고,
술 마시며 나누는 진솔한 대화들에 많은 감명을 받는다.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좋아할 때도 있고,
고즈넉한 분위기에 감성을 탈 때도 있다.
그러나,
혼자 책을 읽고
노래를 듣고
글을 쓰는 시간들도 소중하다.
이 모든 건 나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임을 부인할 수 없고,
이와 독립된 개인적 자아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결론적으로는
이 둘을 분리해서 진짜 나는 누구인가? 그렇다면 가면은 가짜 나인가?
가 아닌
모든 게 '나'라고 인정하는 게 맞지 않을까.
사실 졸려서
뭔 소리 하는지도 모르고 쓰고 있긴 한데,
무슨 글을 쓸까 하다가,
두서없이 썼습니다.
저한텐 이게 힐링이거든요.
너무 현실이 바빠서,
힘들어하던 찰나에,
이런 시간이 간절했달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