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회의 구성원일까. 구성품일까.
신호등 앞에 멈춰 선다.
경적 소리와 차가 움직이면서 흘리는 불빛들이 규칙 없이 사방으로 흩뿌려진다.
의도 없는 산란에 목격자 없는 피해자가 되고 싶지 않다.
필사적으로 휴대폰으로 시선을 돌리고 귀를 이어폰으로 막는다.
그러나, 눈가에 빨갛게 서려있는 빛은 바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고작 신호등 하나에 멈춰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발은 더욱이 땅에 파고든다.
내가 저 빨간빛을 보고 멈춤이란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던 시기는 질서라는 이름의 족쇄를 물려받았을 때부터이다.
그 대물림은 어디에서부터 왔을까.
갑자기 학교에서 배웠던 내용이 떠오른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사회계약의 결과로, 우리는 안전을 보장받고, 자기실현의 기회를 배운다.
교과서는 우리에게 그렇게 가르쳐줬다.
나는 그것이 틀리지 않는 진리라 알고 있다.
그러나,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듯한 이 갑갑한 마음은 무엇인가.
눈꺼풀에 틈사이로 비쳐 나오는 빨간 불빛을 응시한다.
시야가 눈꺼풀에 의해 여러 갈래로 나뉜다.
신호등의 빛은 눈꺼풀 사이사이로 들어와 흩어진다.
눈썹으로 구분된 장면들 중 하나를 본다.
투쟁에 패배해 무릎이 꿇려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이 흘린 피를 손으로 쓸어 계약서에 사인한다.
들여다보니, 계약서에 적혀있는 글씨가 보였다. 자유를 내놓아라. 안전을 줄 테니. 그 틈 사이로 보이는 흰색 빛은 가로등의 빛일까, 계약자의 눈물일까.
더는 보고 싶지 않아 옆의 장면으로 넘어간다.
앞에서부터 이어져오는 빨간빛의 줄기와 그 줄기를 와인으로 빚어 마시는 사람들이 보인다.
흰 빛은 와인잔을 빛내고 있다.
그런데 왜 와인을 만드는 사람들과 마시는 사람들은 함께 섞여있지 않는 걸까 의구심이 든다.
바로 다음 장면에는, 학교가 보인다.
교수는 웃고 있고, 학생들은 그 웃음 앞에 엄숙하다.
"앞에 앉아서, 뭘 잘못했는지 반성문을 쓰고 검사받도록.” 교수는 학생들을 보지고 않고 말한다.
손에 들고 있는 빨간색 도장만을 흔들거릴 뿐이다.
학생들은 자리에 앉아 펜을 잡지만 눈은 도장만을 향하고 있다.
눈동자를 움직여 다음 정면으로 넘어가려 했다. 그러나 곧 초록불이 켜질 것이라는 신호음이 울리고 나는
정신을 차린다.
이윽고 신호등이 초록빛으로 바뀌고 주변 사람들이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한다.
그러나 나는 초록 사람 밑에 숫자로 표시된, 누군가 허락해 준 잠깐의 유예를 말없이 바라만 보고 있다.
발을 누가 땅에서 잡고있는 것 마냥 나아갈 수가 없다.
유예된 시간조차 내 것이 아니란 걸 알기에 나는 섞이지 못한다. 이 신호등의 질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