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은 고통스럽지만 계속되는 삶이다
왜?
나는 항상 "왜?"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아이였다. 아빠 왜 자, 오빠 왜 소리 질러, 엄마 왜 밥 안 줘, 학교에 왜 가야 해, 내일은 왜 월요일이야! 등등.
어른이 되면 스스로 답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될 거로 생각했건만, 나는 여전히 아빠의 피곤함을 몰라주고 게임에서 진 오빠의 아쉬움을 이해하지 못하며 (사실 이건 굳이 이해하고 싶지 않긴 하다) 회사에서 엄마가 느꼈을 고충을 알 수 없다. 그리고 당연히 학교에 왜 가야 하는지 월요일은 왜 오는지 의뭉스럽다.
오히려 질문이 늘어난 것 같다. 내가 대학에 와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인간관계에서 지켜야 할 선은 무엇인지, 내가 좋아하는 건 무엇인지, 난 나중에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과거에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지금의 나는 어디에 있는 건지.... 답하지 못하는 질문들은 쌓여 가고 이제는 심지어 과거와 현재, 미래가 모두 불명확하다.
어릴 때는 순수한 궁금증에 기인한 질문을 했다면 지금의 나는 불투명하고 모호한 것들 사이에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질문을 내가 ‘던진다’고 할 수 있을까? 질문은 촉발한다.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의문들이 울컥 내뱉어진다.
살아간다는 건 답을 찾는 과정이 아닌 더 많은 질문을 향해 발을 내딛는 과정이었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나의 생각이 아직 충분히 자라지 못한 탓일 수도 있다. 사실 난 아직 제대로 된 질문을 하는 법도 익히지 못했다. 무언가 답답하고 잘 풀리지 않는 느낌이 드는데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뭐라고 질문해야 할까. 내가 지금 제대로 살아가고 있나? 이건 너무 방대한 질문 같다. 내가 지금 스트레스를 받고 있나? 스트레스는 현대인의 반려 질병 같은 거라 무의미하다. 이렇게 방황하다 보면 결국 '잠이나 자자.' 같이 흐지부지 끝나버린다. 이 형용할 수 없는 느낌은 계속 남아서 엉킨 실타래가 되어 버리고 정말로 어디가 시작이고 끝인지 알 수 없게 된다.
요즘 나에게 가장 많이 맴도는 의문들은 이런 것들이다. 하고 싶은 건 너무 많은데 인간의 삶은 왜 이리 짧을까? 이런 짧은 생 속에서 왜 이런 많은 고뇌를 하는 걸까? 이 짧은 생을 충분히 즐기기 위해서는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하는데 그건 언제 할 수 있는 걸까?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지금은 할 일을 해야 할 때'는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걸까? 분명 내가 성취해 내고 싶은 일인데도 시작하는 건 왜 어려울까? 해내고 싶은 것들은 너무 많다. 그러나 막상 시작하는 건 너무 어렵다. 나는 완벽한 때를 자꾸 기다리게 된다. 자기 개발에 몰입하고 취미 생활도 즐기며 건강도 챙길 수 있는 완벽한 시기가 오기를 기다린다. 지금은 학교에 다녀야 하고, 시험 기간이고 등등 핑계는 많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거다. 그런 시기는 언제 오지? 학교를 졸업하면 취업 준비를 할 거고 취업하면 직장에 다녀야 하는데 그럼 직장을 그만둔 이후에야 모든 걸 할 수 있나? 어쩌면 나는 그냥 시작하는 게 두려운 건가? 노인이 된 내가 과거의 나를 원망하며 혹은 어린 나의 원성을 들으며 무기력하게 아스러진 모든 것들을 떠올리는 상상을 하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일에나 집중하자. 가장 바람직한 결말이다. 그러나 이렇게 아름답게 마무리될 리가 없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공부는 나랑 안 맞는데, 나는 뭘 하고 있는 걸까,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걸 해야 하는데 그건 무엇일까. 무한 반복이다.
나는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것 같다. 그렇다면 나의 의문은 미성숙의 표상인가? 아니면 살아가는 존재에게 부여된 당연한 운명인가? 자신을 긍휼히 여기지 않으며 모든 물음표를 가슴에 지닌 채 발을 내디딜 수 있다면 나는 어른이 된 것일까? 내 스스로가 수많은 질문에 침식되지 않으려면 그것들과 협화하는 수밖에 없다. 날뛰는 질문들을 길들이고 나를 태우게 하여 함께 나아가야 한다. 자신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또한 세계에 반항할 수 있도록, 역설적이지만 질문을 이어가자. 질문에서 벗어나기 위해 질문을 이어가야 한다. 질문을 잇고 이으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한 자리에서 고립된 채로는 질문의 폭격을 받을 뿐이다. 그렇기에 나는 모든 물음과 투쟁하고 화합하며 나아가겠다. 이건 의문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닌 그것과의 전진이다.
작가의 말:
질문하는 건 귀찮고 힘들고 감정적, 정신적 고통을 수반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묻지 않고 살아갈 순 없는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