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은 무한히 샘솟는 샘물이 아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글을 읽고 쓰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독후감도, 일기도 많이 썼는데 기억에 남는 내용은 별로 없다. 그러나 내가 여전히 강렬하게 기억하는 일기가 하나 있다. 중학생 시절 잠 못 드는 밤에 쓴 ‘우물’에 대한 일기인데, 나는 아마 평생 이 일기를 잊지 못할 것이다.
중학생이 된다는 건 격변의 시기를 마주한다는 뜻이다. 이 시기는 몸도 마음도 자라는, 어린이에서 청소년이 되어 가는 과도기이다. 청소년도 사실은 미성숙한데, 이상하게도 이 미성숙에서 더 큰 미성숙으로의 과도기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런 혼란의 시기를 겪는 아이들이 모여 있으니, 중학교에서의 생활이 순탄할 리 없었다. 중학교 때 나는 남을 향해 형체 없는 칼을 휘두르기도 하고 남의 칼에 베이기도 하며 많이 아파했다. 그리고 많이 고민했다. 내 고통은 어디서 왜 오는 것일까? 형체 없는 이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런 시기에 쓴 일기가 바로 이 ‘우물’에 대한 일기이다.
중학생이었던 나는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 끝에 펜을 들고 공책을 꺼내, 마음이 마치 우물과 같다는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인간관계에서 마음을 주고받는 것이 우물의 물을 떠 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때 물을 너무 많이 주기만 하면 내 우물은 메말라 버리고 너무 많이 받기만 하면 다른 이에게 받은 물은 흘러넘쳐 버린다. 난 내 우물이 메말라지고 나서야 이 메커니즘을 깨달았다. 우물의 물이 무한하지 않다는 것도 그제야 알았다.
처음에 나는 물을 많이 퍼주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주위 친구들의 마음을 살피며, 나를 교묘하게 해치는 말을 감내했다. 그 말도 나에게 주는 물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그 물은 썩은 물이었다. 그 물은 따뜻한 마음이 아닌 악의를 담고 있었다. 그렇게 나를 돌보지 않은 채로 내 우물의 물을 마구 퍼주었다. 하지만 인간관계는 수학과 달라서 1+1이 2가 된다는 보장이 없다. 나는 분명 2를 줬는데 상대는 1을 받았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내가 다른 이에게 준 2가 채워지지 않기도 한다. 내 우물은 그래서 채워지지 못했다. 순식간에 메마른 우물 덕에 내 눈물샘에는 항상 물이 가득했다.
그 시기를 통해, 나는 내 우물에 스스로 물 붓는 법을 터득할 수 있었다. 내 우물을 살피며 다른 사람의 우물에 물을 줄 수 있게 되었다. 내 감정에 집중하고 나를 우선시할 수 있게 되었다. 내 우물이 메마르지 않게 유지하는 것이 다른 사람의 우물에 물을 주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다. 내 눈물을 대가로 배운 것은, 내 우물이 메마르면 나누어줄 물도 없다는 당연한 교훈이었다. 그 당연한 말을 깨닫기가 왜 그렇게 어려웠는지.
성인이 되고 돌이켜 보니 우물에 대한 일기를 쓴 것도 내 우물을 돌보는 하나의 방법이었던 거 같다. 일기를 쓰는 과정에서 인간관계와 그것을 이루는 마음에 대해 깊이 고민하며 나 자신을 살필 수 있었다. 지금 나는 그때의 경험 덕분에 더 수월하게 마음을 보살피고 있다. 여전히 힘든 부분은 많지만 내 우물이 메마를 날은 앞으로 없다. 우물을 세심하게 들여다본 과거의 나 덕분에 그럴 일은 없다. 버거운 고민 속에 파묻혀 눈물샘 마를 날 없었던 그에게 물 한 잔 건네고 싶다. 수고했다고.
작가의 말:
인간관계로 고민하는 모든 분들께 위안이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