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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댕굴이 Jun 05. 2022

샤넬백을 갖기 전과 갖고 난 후, 달라진 것

※ 본 글은 닥터 스트레인지2 내용과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판타지 소설이나 영화를 보다 보면 흑마법에 대한 얘기가 빠지지 않고 다. 이러한 술법은 금기시되어 아무도 접근 못하게 봉인되어 있지만, 흑화한 어느 고수에 의해 결국 세상에 그 힘을 드러내게 된다. 그리고 주인공들은 그 흑마법의 대척점에 있는 선한 술법을 찾아내어 그것을 막아내려 한다.

흑마법 다크홀드의 대척점, '비샨티의 책' (출처: 닥터 스트레인지2)


최근에 본 닥터 스트레인지에서는 기존의 판타지 문법대로 주인공이 선한 술법을 찾아내긴 하나 그것 금세 소실되고, 결국 주인공 흑마법 사용을 '피치 못할 사정'으로 정당화하며 악당에 맞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흑마법으로 다른 차원의 본인에게 빙의하는 드림워킹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


다른 자신을 매개로 범접할 수 없었던 세상을 건너가서 그 세상을 직접 경험해보는 드림워킹. 기이한 비유일지 모르나, 최근 겪었던 감정과 상황에 비추어 볼 때 나는 드림워킹을 경험했다.




명품에 대한 선망이 '갖고 싶다'는 열망으로 변하게 된 것은 1년 전 즈음이었다.


급격한 자산가치의 폭등으로 월급보다 높은 주식 수익률.

그에 못지않게 일 년에 수어 번을 상승하는 명품 브랜드 가격,

로 인해 가열되는 오픈런 열기.

명품은 이제 소수 자산가전유물이 아니게 되었다.

그저 그것을 하는 이의 열망의 크기만 충분하다면, 어려울지언정 결코 넘볼 수 없는 것은 아니게 된 것이다.


(출처: 뉴스1)

명품을 얻기 위해 새벽부터 늘어선 에 혀를 차면서도 그것을 쟁취하고 매장을 나서는 이들의 한껏 펴어깨 자연스레 옮겨가는 부러운 시선.

그런 것에 돈을 쓰는 건 낭비라고 생각하면서도 그것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을 보면 괜스레 싱숭생숭해지고 주눅 드는 마음.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한동안 해외여행도 못 갔고 큰돈을 쓴 적이 없다는 명백한 팩트'와 '마침 오랜만에 친구의 결혼식을 가야 한다는 명분'을 만나 샤넬백의 세계로 나를 이끌었다.


(출처: 닥터 스트레인지2)

한번 명품이란 것에 손을 대고 나니, 전에 없던 물욕이 솟구쳤다. 대체 내가 언제부터 가방 하나 사는데 몇 달치 월급을 아무렇지 않게 썼다고?

마침내 한 개의 가방을 겨우 방 안에 들였을 뿐인데, 어느 순간 백화점에 보이는 몇백짜리 물건들이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왜나면, 나는 언제든 내가 그것을 진심으로 원하기만 하면 살 수 있으니까.


샤넬백은 마치 흑마법처럼 명품의 차원으로 나를 빠져들게 했다. 닥터 스트레인지가 흑마법으로 다른 차원을 드림워킹을 하듯, 나는 샤넬백으로 그전에 차마 가보지 못했던 명품 거리를 드림워킹했다.  

(출처: 샤넬 공식 인스타그램)

샤넬백 하나만 어께에 걸쳐 면 청담동 명품거리며, 백화점 명품 매장이며, 괜히 주눅 들어 가지 못던 곳들을  당당히 활보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진짜 다 소유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꿈을 꾸며 걸었다.


그 가방 하나면 말하지 않아도 명확한 메시지를 던질 수 있으니까.

돈이 없어서 안 사고 나가는 게 아니에요.
나도 마음만 먹으면 살 수 있는 사람이니까 무시하지 마세요.




닥터 스트레인지에서 드림워킹의 끝은 인커전이라고 했던가.

※ 인커전 : 서로 다른 차원(멀티버스)이 충돌하는 현상, 충돌한 두 개 차원 중 한쪽이 멸망해야 다른 차원이 유지됨.


일반 서민에 불과한 나의 자아는 명품을 열망하는 또 다른 자아가 커지면서 인커전을 불러일으켰다. 돈이 있으면서도 갖고 싶은 걸 가질 수 없다고 말하는 '서민 자아'가 바보처럼 느껴졌다. 동시에 한두 개 더 산다고 채워지지 않을 간사한 욕망을 통제하긴 커녕 계속해서 불려 나가는 '제2의 자아'가 한심해 보였다.


두 자아의 충돌은 생각보다 쉽게 막을 내렸다. 경기침체와 금리인상, 주식시장 폭락 등 거시 경제의 기침 콜록 한 번에 한 개인의 갓 태어난 '제2의 자아' 아주 간단히 멸망다.


비록 내 의지로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한바탕 정신적 소동을 겪고 나니 분명해진 것은 있다. 명품을 열망해보고, 소유해보고, 그 소유를 이용해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는 과정에서 느꼈던 감정과 그 경험들은 내가 명품백을 단 한 개도 구입해보지 않았더라면 결코 몰랐을 다른 차원에서 존재했던 이야기였다.


멀티버스 여행의 제1 규칙이 '안다고 생각하지 말 것'이라 했던가. 그렇다. 나는 큰 값을 치고 명품백 개와 함께 그 세상을 여행하고 온 것이다.


요새 눈에 들어오는 가방이 한 개 있긴 하다.

하지만 세상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다양한 볼 것즐길 것, 풍성한 이야기들이 수두룩하니, 한 번 다녀온 그 세상을 구태여 다시 가볼 필요는 없지.


(출처: 마블 코믹스, https://nerdist.com/article/who-is-mcu-america-chavez-marvel-comics-origins-powers-m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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