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카세란 일식당에서 상차림 전체를 주방장 추천에 맡기는 메뉴를 의미한다. 최근에는 한우부터 커피, 순대까지 온갖 음식에 오마카세라는 단어를 더해 '고급' 이미지를 덧씌운다.
연인들은기념일이면'파인 다이닝'에서특별함을더한다.가족 외식장소도 더 이상 동네 맛집에 머물지 않는다.어린아이가 있는 집일수록 취향껏 골라 먹을 수 있는 호텔 뷔페를 선호한다고 한다.
오마카세, 파인 다이닝, 호텔 뷔페까지. 한 끼에 적게는 십몇만원부터 많게는 몇십만 원까지 지출해야 하는 '프리미엄 식당'이 어느새 당연하다는 듯 유행하고 있다.
모두가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대중성이 아닌, 모두가 원하고 꿈꾸는 선망성을 딛고 유행의 반열에 섰다.
나의 첫 오마카세는 연말회식으로 가게 된 청담동의 '한우 오마카세'였다.고급스러움의 대명사인 ‘청담’에서 럭셔리 회식의 전통 강자인 ‘한우’와 고급의 상징 ‘오마카세’까지.끝판왕 조합에 황송해하며 점심도 커피 한 잔으로 때우고 식사 장소에 갔다.
'주방장 추천 상차림'이라는 의미답게 타르타르, 육포, 샌드위치까지 기존에 먹어보지 못한 새로운 맛의 향연이었다.메인 요리인 한우구이는 부위별로 한 점씩 정성스레 구워주었고 디저트 또한 새로웠다.
일반 한우 음식점과 한우 오마카세의 가장 큰 차이점은 전반적인 식사의 구성이었다.일반 고깃집에서는 고기를 구워 먹은 후 냉면이나 찌개와 같은식사메뉴로 마무리한다. 대한민국 어느 지역에서든 가능한 공통 구성이다.
반면, 오마카세의 핵심은애피타이저부터 메인, 디저트까지 식사의 전 과정에서 얼마나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가. 즉, 오마카세든 파인 다이닝이든 결국그 식당에서만 맛볼 수 있는 독창성과 고유함에 프리미엄을 지불하는 것이다.
뭐든 첫 경험이 중요하다고 했던가. 회식장소를 찾을 때만 해도 '1인분에 20만 원? 내 돈 내고는 못 먹겠다.'라고 생각했었는데, 한번 경험하고 나니 생각이 바뀌었다. '다른 곳은 어떤지 궁금하네'로.특별한 경험에 대한 호기심은 이전 같았으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고급 식당으로나를 서너 차례 더 이끌었다.
매일 똑같은 일상 속에서 새로운 자극과 재미를 찾는 것이 가끔은 21세기형 新(신)노동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이를테면 넷플릭스나 유튜브에 시시각각 쏟아지는 콘텐츠 중 내 취향의 영상을 찾아 끝없이 스크롤을 내리거나 매일 먹던 메뉴에 질려 배달 어플에서 새로운 맛집을 찾아 헤매는 것처럼. 그러다 '재미를 위한 노동'을 할 여력도 없는 지친 어느 날에는 결국 티비 전원을 꺼버리고 가스불 위에 라면 물을 올린다.
노동에 지친 직장인의 시선에서'재미 탐색 노동'을 대신해주는 오마카세나 파인 다이닝은 응당 그 값어치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더군다나 나이가 들수록 어지간해서는 새롭고 재밌는 것을 찾기가 쉽지 않다. 가랑잎 굴러가는 것만 봐도 깔깔 댄다는 싱그러운 시절이 지나가고 나니 어떤 자극에도 허허 하고 마는 심드렁한 시절이 찾아와 버렸다.
다 어디서 본 것 같고 먹어본 거고 들어 본 거다. 재미를 느끼는 역치가 높아졌다. 그러니 새로운 자극과 경험만을 알차게 모아서 종합세트로 제공해주는 서비스에 비싼값을 치르는 것도 기꺼울 수밖에.
프리미엄 식당의 유행을 두고 'SNS 인증 욕구 때문이다, 사치와 허세의 단면이다'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이것이 틀린 분석도 아닐 것이다. 다만, 첫 미식 경험 이후 '프리미엄 식당 = 사치, 허세'라는 편견으로 인해 경험조차 해보지 않는 것 또한 현상의 일면만 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본 적 없는 곳에서 이국적인 문화를 체험하며 견문을 넓히고 오는 해외여행처럼, 나에게 프리미엄 식당에서의 미식 체험은먹어본 적 없는 맛을 경험하며 식견(食見)을 넓히고 식견(識見)을 쌓는 계기가 되었다.
기존에 알고 있는 지식의 울타리 너머를 궁금해하고, 경험해 본 적 없는 '경험 거리'들을 경험해봄으로써 새로운 자극에 대한 갈증을 충족시키는 것이야말로 무료한 일상을 건강하게 채우는 방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