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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댕굴이 Sep 03. 2022

팝업스토어, 나이듦을 서럽게 하는 너

"있는 걸 모르는데 어떻게 가요"

최근 여권 유효기간이 만료되어 재발급 신청을 해야 했다. 신청할 때와 수령할 때, 두 번 모두 저녁 6시까지 방문을 해야 해서 퍽 부담스러운 일이었는데, 다행히 최근에 온라인 신청이 가능해져서 수령 시에만 방문해도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온라인 신청은 정부24 어플을 깔고 로그인, 재발급 신청 후 사진 파일을 첨부하고 결제하면 끝. 간편해진 프로세스 덕분에 하루만 일찍 퇴근하면 된다고 말하는데, 엄마의 덤덤한 말투에서 왠지 모를 서러움이 느껴졌다.


나 같은 사람은 온라인으로 할 줄 모르니
두 번 가야겠네.


속상한 마음에 얼른 "내가 알려주면 되지! 알려만 주면 엄마는 바로 할 걸"하고 말했지만, 딸이 알려주지 않으면 몰랐을 거라는 사실 자체가 엄마를 씁쓸하게 했으리라.


모든 이의 손에 스마트폰이 쥐어진 이후 길거리에서 손 흔들어서는 택시를 잡기 어렵게 되었듯, 갈수록 디지털화되는 세상에서 백신 인증 QR코드 설치부터 동네 식당 곳곳에 들어선 키오스크 사용까지 엄마에게 최근 몇 년은 숨 가쁜 배움의 연속이었다.

낯선  앞에서 강제적 배움을 마주해야 했던 매 순간마다 엄마는 자신의 나이를 마주 보고 서러움을 느꼈을지 모른다. 


환갑을 앞둔 엄마 나이 듦에 대한 서러움이 평범한 일상이 익숙하지 않은 것들로 인해 조금씩 불편해지는 것에서 비롯된다면, 삼십 대 중반의 나이 듦에 대한 불안함은 팝업스토어를 비롯한 각종 핫하고 힙한 것들을 조금씩 놓치는 것에서 시작된다. 




여름휴가로 제주도에 다녀왔다. 아무 계획 없이 숙소만 예약하고 편하게 다녀기로 한 여행이었지만, 딱 하나 한 달 전쯤 미리 예약한 것이 있었다. 부영농장이라는 곳에서 여는 팝업 이벤트였다.


부영농장은 삼천 평이 넘는 대지를 진귀한 나무와 자연 그대로의 돌로 가꾸어 낸 개인 소유의 정원데, 이번 팝업 이벤트를 통해 4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대중에게 개방 것이었다. 팝업 기간은 한 달.


초입의 오두막에서 드립 커피와 화귤에이드를 받아 들고 나무에 대한 설명과 정원에 얽힌 이야기를 들으며 한 시간 동안 그곳을 산책했다. 귀한 나무와 식물들이 제멋대로 가지를 뻗고 있어서인지 단정한 정원보다는 작은 숲처럼 느껴졌. 래서 더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방문했던 날은 팝업이 열리는 한 달 중 마지막 주말이었다. 이 정원은 이제 한 기업체가 넘겨받아 휴양을 위한 숙박시설과 레스토랑을 지을 예정이라고 한다. 숲을 닮 정원은 리조트에 어울리도록 다듬어질 예정이라고.


팝업(Pop up)이라는 말처럼 갑자기 나타나 마음을 훔쳐놓고 지금 이대로의 모습을  볼 수 없을 거라니.  운명을 모른 채 나뭇가지 사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거미줄을 바라보며 부영농장의 마지막 풍경 눈에 담았다.




부영농장의 팝업 행사인스타그램을 통해 알게 되었다. 여행을 위해 제주도 이곳저곳을 검색하자 알고리즘이 마침 방문예약을 받고 있던 부영농장 이벤트를 타이밍 좋게 추천해 준 것. 전혀 몰랐던 세계로 발 들여놓을 수 있게 돕는 셜 네트워크인공지능의 순기능이랄까.


신문물의 수혜를 입은 것에 감사한 것도 잠시. 인스타그램과 인공지능의 자동 추천이 없었더라면  영원히  수 없었을 거라는 실을 문득 깨달았다.

엄마처럼, 나 또한 새로이 등장하는 이 시대의 무언가 익히지 않는 순간, 세상엔 내가 모르고 지나치는 것들이 무수히 쌓여겠구나. 지금도 간신히 인스타그램 정도나 하는 수준이니, 오늘 이 순간에도 알지 못해 놓치고 있는 재미 거리들이 얼마나 많을까. 


다행히도 회사는 20대와의 마지막 남은 연결고리가 되어 준다. 내 또래가 아닌 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말문을 열 수 있는 유일한 공간. 그래서일까, 어린 친구들과 대화할 때면 꼰대로 비춰져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이 질문을 던진다.


요즘 친구들은 주말에 뭐 하고 놀아요?
요새 힙한 게 뭐예요? 어디가 핫해요?

결혼식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프로 불참러'가 되어 버린 한 연예인처럼, 무엇이 유행하는지 몰라 제대로 놀 줄도 모르는 '프로 노잼러'가 되어 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 20대의 일상을 기웃거린다. 각종 브랜드와 트렌드 매거진 계정으로 가득 채운 인스타그램 피드 기웃거림의 부산물이다. 내가 모르는 세상 어느 한 켠에서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모른다는 질투심은 사람을 이토록 구질구질하게 만든다.


보여주고 싶을 때만 나타나서 아는 사람만 알고 즐길 수 있게 하고 사라지는 팝업스토어는 나이 듦을 서럽게 하지만 덕분에 하나 다짐한 것이 있다.

어린 친구들에게 질문할 때 느끼는 구질구질한 감정은 비단 나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여권 재발급이든 키오스크든 뭐가 됐든 엄마가 묻기 전에 먼저 알려줘야겠다.

우리 모두 서럽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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