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랜트란?
갑자기 프롤로그를 꺼내든 건, [플랜트 산업 쉽게 접근하기] 시리즈의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지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구독이나 하고 지적..)
플랜트 업계에 종사하시거나 잘 아시는 분들에게는 익숙한 내용을 정리해서 전달 드리고, 모르시는 분들에게는 최대한 가볍게 설명 드린다는 생각으로 글을 썼는데, 플랜트에 관심이 없던 분들에게는 플랜트의 정의부터 필요하다는 고견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플랜트의 정의와 플랜트 산업이 우리 일상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등 가장 기본적인 내용을 먼저 정리하고 3번째 시리즈로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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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플랜트 (Plant)란?
먼저, 플랜트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 생산을 하는 일련의 기계나 공장 따위의 시설이나 설비 시스템을 통틀어 이르는 말
네이버: 산업 기계, 공작 기계, 전기 통신 기계 따위의 종합체로서의 생산 시설이나 공장.
구글: a place where an industrial or manufacturing process takes place. “산업 공정 또는 제조 공정이 이루어지는 장소”
사전마다 플랜트의 정의가 다를 수 있지만, “정해진 절차 (공정)에 따라 무엇인가를 기계적으로 생산하는 시설이나 설비의 집합” 정도로 보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플랜트 (Plant) 산업이 익숙하지 않은 분들에게 Plant는 “식물”입니다. 왜 식물을 뜻하는 플랜트가 복잡하고 위험하면서 때로는 거대하고 기괴한 기계 설비의 집합을 함께 의미하게 되었을까요?
2. 플랜트를 왜 “플랜트”라고 부르게 되었나?
Plant의 어원을 찾아봤습니다.
동사로 사용되는 plant가 ‘특정 위치에 두거나 고정하다 (to place or fix in a specific position.)’라는 의미로 쓰이기 때문에 거의 모든 기계들이 정해진 위치에 고정되어 있는 플랜트를 잘 표현하는 단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땅콩 박사로 유명한 미국의 농업학자인 George Washington Carver가 식물을 연구한 이론에서 착안하여, 헨리 포드에게 자동차를 대량 생산하는 방법을 깨우쳐 줬기 때문에 대량 생산이 가능한 조립 라인을 “플랜트”라고 부르기 시작했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흥미로웠던 주장은, 면화에서 솜과 씨를 분리하는 조면기 (cotton gin)의 발명에 의해 직업을 잃었던 18세기 후반 미국 남부 노예들이 새로운 엔진 농장 (당시 engine은 조면기의 다른 이름이었다고 합니다)에서 일하기 위해 목화 농장을 떠났던("He left the cotton plantation for the new engine plantation") 미국 남북전쟁 직전의 상황에서 유래되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플랜트는 농장을 의미하는 “plantation”이 축약된 단어라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그러니까 plantation에서 축약된 plant는 산업화된 농업,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어지는 노예와 같은 생활과 힘든 노동을 의미하고, 플랜트 산업 종사자는 노예라고, 그래서 기계화된 생산 설비의 집합을 플랜트라고 부르기 시작했다는 주장이 왠지 모르게 마음에 닿았습니다.
3. 플랜트 산업은?
플랜트 산업은 한국산업연구원의 설명에 따르면 “고도의 제작, 건설 기술 뿐만 아니라 엔지니어링, 컨설팅, 금융 등의 지식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기술 집약적 산업” 입니다. 플랜트를 건설하기 위한 모든 활동, 하위 산업, 연계된 산업, 관련된 직업 등을 모두 포괄하여 플랜트 산업이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플랜트 건설 프로젝트를 수주하여 설계 (Engineering), 구매 (Procurement), 건설 (Construction)을 실행하는 EPC 사업이 있고, 플랜트에 설치되는 기자재 생산, 플랜트에 필요한 다양한 기술 (license) 사업, 대형 건설 프로젝트에 대한 금융지원, 등등등 다양한 산업이 정교하게 맞물려서 돌아가야 하는 복잡한 산업입니다.
4. 플랜트 산업의 가치
플랜트의 사전적 정의처럼 무엇인가를 기계적으로 생산하는 것이 플랜트가 하는 역할이기 때문에, 우리가 입고 만지고 쓰고 사용하는 모든 것들이 플랜트를 통해 세상에 나옵니다. 플랜트 산업 없이는 지금 손에 쥐고 계시는 혹은 사용하고 있는 모든 편리함을 포기하셔야 합니다.
지금은 IT, 바이오 산업에 치여서 신문의 경제면에서 관련 기사를 보기도 힘들지만, 플랜트 산업의 경제적 가치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위 테이블에서 보듯이, 플랜트 산업이 수출 위주의 우리나라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불과 몇 년 전에만 해도, 반도체 다음으로 절대적이었습니다. 한창 플랜트 산업이 호황이던 2010년 초반에는 그 당시 정부에서 우리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신성장동력이라고 치켜세워줬고, 공대생들에게 최고의 직장은 플랜트 산업을 이끌어가는 국내 대형 건설사들이었습니다.
온전히 ‘사람이 전부’인 국가 기간산업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좋은 설계 툴을 사용해도 경험이 많은 노련한 엔지니어를 대신할 수 없고, (그 설계 툴도 사람이 만들고) 중국처럼 돈을 아무리 쏟아 부어도 숙련된 용접사와 배관사가 없으면 LNG선을 건조할 수 없습니다. (기사 참고: 中 조선업 또 'LNG' 굴욕, 韓 '초격차' 입증 https://n.news.naver.com/article/008/0004288624). 정해진 납기를 지켜내는 것도 플랜트 산업에 종사하시는 모든 분이 근면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시대의 수요가 화석연료에서 신재생에너지로,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 소유에서 공유로 아주 빠르게 변하더라도 ‘플랜트 산업’이 없으면 편리한 생활을 소유할 수 없었던 농경시대로 돌아가야 합니다. 지금의 플랜트 산업은 시대의 흐름을 이끄는 트렌디한 산업은 아니지만, 현재와 앞으로의 문명 생활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산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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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누군가 플랜트 산업에 종사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엄지를 세우고 고맙다고 표현해 주세요. 다음 주에는 플랜트 산업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또 다른 주제로 인사 드리겠습니다.
좋은 한 주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