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시장의 역사 (하)
2000년대 이전의 석유 시장의 역사를 설명 드렸던 지난 주에 이어서 2000년대 이후의 석유 시장의 역사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2001 ~ 2008 미국, 테러와의 전쟁 + 베네수엘라 석유파업 + BRICs + 카트리나
2001년 9월 11일은 2000년 이후 세계사에서 손꼽히는 충격적인 날이었습니다. 이 시점부터 약 8년간 유가 수준도 전에 없던 충격적인 상승 곡선을 그립니다. 9.11테러 이후 미국은 알 카에다가 더는 숨어 다니지 못하도록 아프가니스탄에 전면적인 공격을 퍼부었고, 테러와 연관이 있는 모든 국가를 막강한 군사력으로 쥐어패기 시작했습니다. 테러에 의해 세계 정세가 불안정했기 때문에 유가는 계속 올라갔고, 특히 2003년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렸던 이라크와의 전쟁으로 주요 산유국 중 하나인 이라크의 생산 시설들이 파괴되면서 유가는 거침없이 상승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미인이 많은 국가 석유 매장량이 많은 국가인 베네수엘라도 2000년대 초반 유가의 지속적인 상승의 원인 중 하나였습니다. 이 시기 베네수엘라 정부(정확하게는 독재자 차베스)는 석유 국유화를 목표로 민간 석유 회사가 정부에 지불하는 로열티를 엄청 상승시키고 (유가상승1), OPEC의 석유생산 통제에 적극 가담하면서 원유 생산량을 줄입니다 (유가상승2). 독재에 대한 반발로 2002년에는 자국 군대에서 쿠데타가 일어나고(유가상승3), 베네수엘라의 국영 석유회사인 PDVSA의 노조 파업과 자본가들의 파업(?!)이 동시에 발생합니다(유가상승4).
이에 빡친 차베스는 PDVSA의 임직원 40%를 해고하고 파업 가담자들이 두 번 다시는 베네수엘라에서 석유관련 일을 할 수 없도록 보복했습니다. 자연스럽게 베테랑 인력들은 베네수엘라를 떠나게 되었고, 끝없이 치솟던 유가를 앞에 두고 원유 생산량은 감소하게 되면서, 이 당시 끝없이 치솟고 있던 유가를 통해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불안한 국제정세 속에서도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 BRICs 국가들의 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석유 수요가 급증하고, 유가 상승을 가속했습니다.
유가 상승은 하늘도 도왔습니다. 2005년 초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남동부를 폐허로 만들 때, 미국에 소재한 주요 석유생산시설도 엄청난 피해를 입고 석유 생산량이 큰 폭으로 감소했습니다. 당연히 유가는 큰 폭으로 상승했습니다.
2008 글로벌 금융위기 -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
2003년 - 배럴당 평균 31달러, 2004년 41달러, 2005년 57달러, 2006년 66달러, 2007년 72달러, 그리고 유가는 정말 미친듯이 상승하면서 2008년 7월에는 배럴당 145달러까지 올랐습니다. 그런데, 미쳐 날뛰던 유가가 2008년 연말에 44달러로 수직 낙하하면서 불과 몇 달 사이에 1/3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문이었습니다.
미국에서 벌어진 사건의 과정을 간략하게 말씀드리면,
① 미국이 경제를 살리려고 금리를 겁나게 인하 (5% -> 1%)
② 그래서 대출로 집 사고 -> 집 값 오르고 -> 집 더 사고 -> 집 값 또 오르고 반복
③ 부동산 호황으로 대출 규제 낮아져서 직업이 없어도 담보대출 가능, 위에 반복
(대출회사: 대출금 못 갚아도 집 팔아서 대출금 돌려 받을 수 있다!)
④ 낮은 금리에 의해 물가가 급상승 -> 금리 인상 -> 담보대출 이자부담
⑤ 집 내 놓고, 옆 집도 내 놓고, 앞 집도 내 놓고 -> 그런데 아무도 안 사고
⑥ 집 값이 대출금액보다 낮아지고 -> 대출금 못 갚아서 줄줄이 파산 -> 대출 회사 파산!
대출회사들은 대출채권을 금융회사에 판매했고, 금융회사는 채권을 미국은 물론 전세계의 투자자에게 판매했습니다. 대출회사가 파산하면서 리먼브라더스 같은 거대한 금융회사도 파산하게 되고 미국의 금융시장이 흔들리면서, 미국과 경제적으로 엮여있는 모든 국가들의 경제 상황이 악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나라도 글로벌 금융기관들이 자본을 회수하면서 주가가 폭락하고 환율이 급등하고, 경제가 급격히 악화됐습니다.
그 결과로 전 세계의 생산, 소비, 고용 등 모든 경제활동이 급격하게 쪼그라들게 되고 거침없이 올라가기만 하던 유가는 순식간에 폭락하게 됩니다.
2009 OPEC 감산합의 + 중국, 인도의 성장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까지 유가가 계속 오르면서 재미를 보던 OPEC 가입 국가들이 금융위기 이후 폭락하는 유가를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다시 감산에 합의하고 석유 생산량을 줄였습니다. 그리고 2000년대 이후 폭발적으로 경제가 성장하면서 미국과의 무역에서 막대한 흑자를 쌓았던 중국과 인도의 경우, 다른 국가들에 비해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의 영향을 적게 받았습니다. 그래서 중국과 인도는 다른 국가들 모두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도 계속 성장할 수 있었고 석유 수요를 끌고 갔습니다. 덕분에 국제유가는 2010년 79달러까지 다시 상승합니다.
2015 미국 셰일혁명
그 후, 2011년 95달러까지 회복한 뒤 90달러대를 유지하게 됩니다. 하지만 높은 수준에서 유지되던 유가는 2015년에 들어서면서 미국의 셰일혁명 때문에 급격하게 하락합니다.
1800년대에 발견된 셰일오일 (셰일가스, 셰일오일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디음 유튜브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T37SQXzXSY )은 시추기술이 없어서 개발되지 못하다가, 시추기술의 발전으로 셰일오일의 생산량이 급격히 증가하게 됩니다. 2012년을 시작점으로 미국은 40년동안 유지했던 석유 수출 금지 정책까지 해제하고 미국이 생산한 셰일오일을 원유 시장에 본격적으로 공급하기 시작합니다.
이 때, 미국에게 석유패권을 또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갖게 된 사우디가 석유 증산으로 셰일오일에 대응하면서, 석유 공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국제 유가는 엄청나게 하락하여, 2014년 배럴당 100달러에서 2016년 30달러까지 떨어졌습니다.
분명히 유가 하락에는 다른 변수들도 작용했겠지만 셰일오일 생산량 급증 시기와 맞물려 생각해본다면 셰일오일이 가장 강력한 변수였음이 틀림 없습니다.
셰일혁명 이후로도 유가는 불안정한 중동 정세를 비롯한 전세계의 정치적 사건들과, 경제적 요인에 의한 석유의 수요/공급 변화 등으로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다음 주에는 시리즈의 마지막으로 현재 석유 시장의 이슈들을 짚어보면서 가장 따끈하게 풀어 놓을 수 있는 “썰”들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공유하겠습니다.
즐거운 한 주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