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날 호기로 해외 여행을 가보려고 피씨방 알바를 했다. 대학 친구 아버지가 퇴직하고 차리신 피씨방이었는데 친구가 혹시 생각있으면 해보지 않겠냐해서 여행 자금을 두둑하게 할 요양으로 3개월만 하기로 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카운터를 보고 자리 정리를 했다. 가끔 손님이 없으면 자리 하나 잡아서 디아블로 2라는 게임을 했었다. 그 때 당시에 주로 운영했던 게임이 리니지, 디아블로 2 그리고 바람의 나라였다. 바람의 나라는 대부분 초등학생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게임이었는데, 디아블로를 하는 입장에서는 저런 그래픽과 칸칸이 움직이는 듯한 무빙이 재밌냐 싶었지만 초등학교 하교 시간에 30명씩 자리를 차지하고 소리지르며 즐겁게 하는 게임이었다. 피씨방이 생기면서 처음 운영하는 시점에 알바였고, 프랜차이즈의 피씨방이었기 때문에 본사에서 나와 가이드를 일부 해주었다. 그 중 한 가지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었던 것이 500원에 30분이었다. 원래 기본이 1시간에 천원이었는데, 초등학생들이 무슨 돈이 있겠냐고 500원에 30분도 하게 해주라는 사장님의 따뜻한 배려였다. 그게 알바인 나에게는 그 시절 초딩을 양아치로 보였던 계기 중 하나였다.
우선 이 녀석들은 몰려 다닌다. 약간의 그룹은 있는 것 같은데 한꺼번에 들어오고 한꺼번에 사라진다. 얼마나 시끄러운지 돈이 있는 녀석은 게임을 하느라 시끄럽고 돈이 없는 녀석들은 훈수를 두면서 시끄럽게 한다.
호기심이 왕성하다. 온동네 간섭하고 다닌다. 카운터에 자리마다 시간이나 과자,음료를 먹은 기록들이 있는데 와서 뭐 볼 것이 있다고 꼭보려 한다. 어른이 오전에 게임하는 경우들이 왕왕있는데 가끔 비번 입력을 뒤에서 몰래보고는 해킹했다고 떠벌리고 다닌다. 그러다 크게 혼난 녀석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강약약강이다. 아주 얍삽하다.
저녁 타임에 대학 후배와 교대를 하는데, 가끔 일찍와서 일을 도와줬다. 그러는 동안에는 그 양아치같던 녀석들이 천사가 된다. 조용한 독서실에 온 것 마냥 게임을 즐기더니 신사처럼 마무리를 하고 피씨방을 떠나는 모습도 보여줬었다. 가끔 새로 온 녀석들은 나의 대학 후배를 알지 못해서 혼이 난 경우가 있는데, 이게 딱 한번 뿐이지만 아주 효과적이었다. 나는 결국 초딩들의 천사같은 모습은 이끌어내진 못했고, 끝끝내 양아치 같이 행동했다. 요즘 드는 생각이지만, 그건 나의 문제인가 싶기도 하다.
양아치 같은 초딩들과 에피소드 1
500원의 30분이라는 시스템은 사장님이 귀여운(?) 초딩들이 무슨 돈이 있겠냐며 제안한 방식이다. 500원에 30분, 30분동안 뭘 하겠냐하는 생각에 500원을 내면 10분 정도는 유예시간을 줬다. 이게 큰 문제를 일으켰는데, 천원을 내고 1시간을 하더라도 10분을 받으니 500원을 두 번 낸다면? 이란 생각을 한 모양이다. 용돈 천원을 받았지만, 굳이 500원짜리 두 개로 준비를 한 듯 하다. 500원을 내며 "30분요!"하고 자리로 간다. 나는 아무런 의심없이 30분을 피씨에 넣어줬고, 즐겁게 "바람의 나라"를 친구들과 논쟁하며 하는 모습에 뿌듯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대게는 손님들이 많이 있기에 30분이 땡하면 바로 종료를 해야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10분이 지나서야 시간이 다되었으니 종료하라고 한다. 바람의 나라는 온라인 게임이다. 나도 온라인 게임을 하는 입장에서 그냥 바로 끄는 건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어느 필드에서 자신의 캐릭터가 호랑이나 도적들에게 죽임을 당할 수 있으니까.
알림을 한번 해주고 1~2분 뒤에 자리에 가서 끄라고 강하게 경고한다. 그러면 "조금만요~ 조금만 하면 되요~"라는 말에 잠시 머뭇한다. 그 조금이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아직은 귀여운 녀석들이라 생각했던터라 어떻게 게임을 하나 지켜보기도 하면서 시간을 좀 끌어주었다. 이제는 도저히 안된다. 강제 조치를 하겠다라고 말을 하면 그제서야 500원을 건내며,
"30분 더요!"
한다. 머리가 갑자기 띵했다. 이건 뭐지, 어떻게 조치를 해야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니 후배가 답답하다는 듯이 시간되면 그냥 Alt + F4를 눌러서 보내세요. 라고 했다. 어찌 그러냐..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맞는 말인데, 사실 쉽게 되지 않아 알바를 그만 둘 때까지 초딩과 치열한 눈치 싸움을 했다.
양아치 같은 초딩들과 에피소드 2
양아치 같은 친구들이 내 후배를 무서워 한 이유는 딱 한번의 경고에 일어나지 않으면 그냥 꺼버린다. 게임이 어떻게 되든, 그렇게 일을 만들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나중에는 후배가 애들 근처에만 가도 초딩들은 후다닥 정리하고 자리를 미련없이 훌훌 털고 일어난다. 신기한 녀석들이다.
"양아치니?!"
양아치 같은 초딩들과 에피소드 3
초딩들이 밉긴 했나보다. 사장님이 초코파이 몇 박스를 주면서 너도 먹고 애들도 좀 나누어 주란다. 근데 애들이 너무 많아서 한번에 다 털릴겁니다.. 사장님.. 그래서 난 애들을 주지 않았다. 근데 마침 중학생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조용히 자신의 과제를 한 것인지 잠깐 있다가 가려고 하길래, 다음에도 또 오라고 초코파이를 꺼내 줬는데 그걸 초딩 한 녀석이 보더니 친구들을 불러 자기네들도 달라고 소리친다.
하아..
이 녀석들은 선이 없다. 그저 먹잇감을 던져준 걸 본능적으로 물어버린다. 한동안 시달리다가 초코파이를 내어준 기억이 있다. 정말 알바가 힘들다. 비교적 착한 친구들이 오면 정말 잘해주는데, 자기는 왜 그렇게 안해주냐고 난리다. 그런식으로 윽박질러도 해주고 싶지 않습니다. 양아치 여러분.
한 번은 아침 일찍 학교도 안가고 청소하는데 찾아온 녀석이 있었다. 조용한 피씨방에서 바퀴 달린 의자를 타고 구석구석 여행을 다니면서 소리를 질러대길래 정말 참을 수 없어서 크게 혼낸 적이 있다. 화를 낼 줄 안다는 걸 깨달은 녀석은 그 날 이후부터는 꽤나 얌전해졌는데, 일일이 모든 양아치들에게 화를 낼 수 없으니 그것도 문제였다. 3개월간 알바를 하면서 정도들었지만, 그만 두고나서 마음에 무거운 무언가가 날아간 듯 한 기분이 들었다.
해방감이다!
최근 바람의 나라 클래식이 출시된 광고를 보고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 아이들은 그게 뭐라고 그렇게 열심히 하면서 친구들과 즐거워하고 싸우기도 하는 것었는지..
나는 그 시절의 초딩을 이해하진 못하지만 지금 드는 생각은 그 시간은 나라는 사람을 가장 잘 표현했던 장면이 아닐까 한다. 내가 곤란해도 부탁을 거절할 수도 없고, 착하게 살면 상대도 그렇게 받아주겠지 기대했다. 그 기대가 어긋나면 상처받아 혼자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그 영화를 내가 지금 보고 있다면 고구마 100개를 먹은 것과 같은 답답함이 있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