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잘 맞지 않았나 싶습니다.
어린 시절 크지 않은 군 단위 내 읍에서 살았다. 단칸방만 있는 공간에서 세명의 가족이 오순도순 살았는데, 젊은 나이에 애를 키우려니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이 많으셨던 것인지 주변 이야기를 듣고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 기억나는 건 6살 무렵부터 학원이라는 곳을 보냈다. 지금이야 5~6살만 돼도 학원을 보내긴 하지만 그 시절에는 조금 특이했던 것 같다.(아주 오래전이다.)
처음 시도했던 학원은 미술 학원이다. 어머니는 내가 어떤 능력이 있는지 확인해 볼 요양이었던 모양이다. 나는 그림에 ㄱ 자도 관심이 없었다. 그래도 친구들도 있고 낙서한다는 생각으로 다녔던 것 같다. 한 달이 지난 후에 내가 학원에서 그린 그림을 보시던 어머니는 학원으로 찾아가 원장님과 뭔가 이야기를 하고 온 모양이다. 그리고 나에게 미술 학원을 계속 다닐 건지 물어봤다.
학원에서 아무래도 가르치는 게 무리인 실력이었던 모양이다. 그런 나는 그 학원은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어머니는 두 번 묻지 않고 다음 달 학원을 등록하지 않았다.
화가 나셨던 것은 아니다. 그건 확실하다. 왜냐면 이후에 학원들도 마찬가지였으니까.
7살에 다닌 학원은 주산학원이다.
여기선 약 1년간 학원을 다녔다. 꽤나 흥미로웠다. 여러 줄의 3자리 숫자를 덧셈하고 뺄셈을 완벽히(?) 했다. 아버지가 천재가 났다고 학원 문제집을 풀어내는 나를 웃으며 지켜보셨다는 기억이 있다. 1년쯤 다녔을 때, 학원에서 중학생 반으로 넣어줬는데, 어떻게 하는지 알려주지 않고 곱하기, 나누기가 있던 시험 문제를 나에게 주면서 풀어보라고 했다.
구구단도 못 외운 애한테 그걸 주다니 한참을 보다가 소심했던 나는 선생님께 더 이상 물어보지 않고 어머니께 이 학원은 더 이상 못 다니겠다고 전했다. 다음 날부터 난 학원을 다니지 않게 되었다.
뭔가 찝찝하긴 했지만, 그 뒤로 학원을 몇 년을 다니지 않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는 피아노 학원을 보냈는데, 여기 보낸 이유는 고모할머니가 선생님으로 계셨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형제 분들이 많아서 고모할머니라 해도 사실 결혼하지 않았던 젊은 분이었다. 아무튼 피아노 학원도 "어린이 바이엘" 상권까지는 문제없이 다녔다. 나도 나름 이유 없이 그만둘 순 없으니까.
그러다 어린이 바이엘 상의 뒷부분인지 어린이 바이엘 하권인지 모르겠는데 오른손과 왼손이 따로 놀아야 하는 부분에 도달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왼손 손가락은 오른손의 지배를 받는 듯했다.
오른손이 집게를 쓰면 왼손은 무조건 집게이다. 순서도 그렇고, 그렇게 두 손의 엇갈림을 연습하다가 고모할머니에게는 아쉬운 소리를 전하게 되었다.
더 이상 피아노는 못하겠습니다.
(물론 이렇게 점잖게 얘기하진 않았다.)
3개월의 피아노 학습을 뒤로하고 4학년 땐 기원을 다니게 되었다.
4학년이 무슨 바둑인가 싶지만 여긴 그래도 반년 정도 다녔던 것 같다. 친구들과 노는 재미도 있었고 선생님의 기가 막힌 삼국지 이야기를 듣는 재미도 너무 좋았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이 하얀 화이트보드에 삼국을 그려 넣고 여러 장수들의 이야기를 하시는데 그때 유튜브가 있었다면 그분은 최고의 이야기 꾼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집중력 없는 초등학교 4~5학년을 데리고 한 시간을 이야기했으니 말이다.
가끔 수업 없이 그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기원이라는 학원이 좋았다.
하지만 기보를 외우는데 왜 그렇게 놔야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어느 날 함께 시작한 친구와 대국 비슷한 것을 했는데,
"야 너는 여태까지 뭘 배운 거고? 하나도 모르나?"
이런 소릴 했다. 그런 소리에 전혀 신경을 쓰진 않았던 성격이었는데, 그때 왠지 치부가 드러난 것 같아 고민을 많이 했다. 그리곤 어머니에게 기원은 그만 다니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곤 다시 기원을 기웃거리지 않았다.
이후에 커서 바둑을 배워보려고 시도해 봤는데,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솔직히 바둑알을 왜 거기다 두는지 알 수도 없고 왜 이기고 지는 것이 정해지는지 모르겠다.
다음 학원은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던 "컴퓨터 학원"이다.
5학년이 되던 해에 읍내 한 복판에 컴퓨터 학원이 생겼는데, 어머님은 컴퓨터라는 것은 잘 모르겠고 애가 공부도 잘 못하는 것 같고 산만하다 보니 기술을 배워서 나중에 먹고살아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에 등록을 해주셨다.
어머니, 잘 모르시겠지만 지금도 그 일로 먹고 삽니다.
그 학원은 나와 너무 잘 맞았다.
2년을 꾸준히 한 번의 무단결석을 제외하곤 무조건 나갔다. 한 번 나가면 몇 시간이고 살았다. 게임도 하고 프로그래밍도 배우고.
처음엔 뭘 배우는 지도 몰랐다.
그냥 시키는 대로 키보드를 두드리고 나오는 결과물을 보고 숫자를 수정해 가며 답을 맞혀갔다.
기억나는 건 학원 휴게실이 아주 컸는데, 거기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면 친구들이 와서 이야기하고 놀았다. 텔레비전도 보고 게임도 하고 공부도 한다.
2년 동안 학원에서 제공되는 모든 과목을 다 배웠다. 그냥 평범한 초등학생이 프로그래밍을 배우면 얼마나 알겠냐만은 그냥 어떤 과정이 있으면 그 과정에 참여해서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기대한 결과값을 만들어냈다. 기원도 그렇고 컴퓨터 학원도 이해 부분에서는 크게 차이나지 읺았지만 컴퓨터 학원은 내가 제어할 수 있는 범위 내였던 것 같다. 게임도 재밌기도 했고.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는 학원보다는 과외를 많이 했는데, 공부와 벽을 쌓고 있던 나에게 작은 희망을 보았던 사촌 누나가 대학에 들어간 뒤, 방학 때마다 고향에 내려와서 과외를 해줬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애들도 봐주면서 학비를 벌었던 것 같다.
학원 등록해서 배움의 기회는 어머님이 주셨지만 더 배울지 그만 둘진 전적으로 나에게 위임을 했다. 나를 믿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으나 결과적으로 나에게 선택과 집중을 어린 시절부터 경험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다양한 시도를 겁내지도 그 결과를 계산하지도 않는다.
그냥 해본다. 누가 추천하든 괜찮다 싶으면 해본다. 그게 맞을지 맞지 않을지는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최선까지는 아니더라고 그 배움이 나와 맞지 않는다는 판단을 하면 잠시 보류한다.
이상하게 가끔 다시 생각나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피아노와 미술은 다시 생각나지 않았다.
이런 교육관을 받은 나는 아이들에게도 그에 걸맞게 해보려 했으나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깨달았다. 어느 정도 아내와 합의도 봐야하고 요즘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해야하는 것들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했던 방식은 묻히게 되었지만 아이들에게도 알려주고 싶다.
세상에는 너무나도 다양한 일들이 있고 뭐든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 결과를 계산없이 시도해봐야 한다고..
배움의 방식은 그렇게 못했지만 아이들에게 나의 생각을 공유할 방법을 찾아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