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함께 꺼내 보았다.
어릴 적 아버지와 목욕탕을 자주 갔다. 아버지는 목욕탕 가는 것을 아주 좋아하셨다. 아버지와 나는 뜨거운 탕에 몸을 담그고 아버지는 동네 어른들과 이야기하고 나는 탕에서 조용히 놀았다. 사실 찬물에서 노는 것이 더 좋았는데 때를 밀려면 온탕에서 어느 정도 때를 불려야 한다.
아버지가 탕에서 나와 자신의 몸을 때밀이 수건으로 구석구석 별로 나오지 않는 때를 만족하실 때까지 밀어내셨다. 그 동안 나는 아는 친구가 왔다면 친구와 놀고 아니라면 혼자서 뭘 했는지 탕에서 최대한 때를 불리려고 온탕에서 인내의 시간을 가졌었다.
목욕탕을 많이 간 것치고는 아버지 등을 밀어드린 기억이 많지는 않았다. 나중에 커서는 몇 번 그랬던 것 같은데, 아버지가 나의 작은 몸 구석구석 땀을 뻘뻘 흘리면서 깨끗하게 해주셨던 기억이 많이 있다. 나는 오래 때를 미는건 그리 좋아하진 않았지만 아버지와 목욕탕 가는 날이 너무도 좋았다.
무슨 얘길 할 수 있는 상대도 아니었고 묵묵히 목욕탕에서 한 시간 정도를 아버지와 보냈다. 목욕탕에서 나와 간단히 야쿠르트나 바나나 우유를 마시고 옷을 입고 나와 아주 자연스럽게 그 근처 중국집으로 가서 짜장면을 먹었다. 짬뽕을 먹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런 루틴이 너무 좋았다.
아버지는 그 때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아무 생각도 없이 그냥 하루 하루를 놀기 바빴던 아이가 자신과 목욕탕을 와서 때를 밀고 중국집에서 맛있게 먹고있는 걸 보면서..
설날에 고향을 방문하면서 이젠 훌쩍 커버린 나의 아들과 목욕탕을 가 보았다. 예전에 서울에서 찜질방도 가고 워터파크도 가고 했지만, 고향에서 아직도 운영하고 있는 목욕탕을 가보니 감회가 달랐다.
모든 것이 옛 모습 그대로를 간직한 목욕탕은 들어서자마자 나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한 느낌이 들었다. 아들과 과도하게 데워진 온탕에 들어가 보기도 하고 사우나에 들어가 모래시계를 뒤집어 버텨보기도 했다. 이젠 나는 아니지만 수영장처럼 길게 만들어진 냉탕에서 아들이 재밌게 노는 모습을 보니 뭔가 짠한 느낌도 들었다.
그냥 냉탕이고 별거 없던 목욕탕인데 뭐가 그리 재미있었을까..
아들이 목욕탕에 구성이 자신이 가본 찜질방의 사우나와는 달랐으니 신기한 것들이 몇 가지가 있었다. 혼자 오는 아저씨를 위한 등밀이 기계가 아직도 있었는데, 그게 뭐냐는 아들에게 때수건이 덮여있는 동그란 판이 전원을 넣자 뺑글뺑글 돌았고 내가 등을 대며 이리저리 닿지 않는 곳까지 때를 밀 수 있다고 설명하자 신기하다는 듯이 자신도 해보겠다했다. 그걸 바라보며 우리 아버지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싶다.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어느 정도 커서 나와 목욕탕에 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예전에 등밀이 기계로 온 몸의 때를 미는 기이한 분도 있었던 것 같은데.. 곳곳에 내 머릿속 구석 상자에 담겨있던 추억의 물건들을 찾은 느낌이었다.
아버지가 느꼈던 것을 이제서야 조금씩 알아가고 있지만 살아가며 그 고마움을 표현해 드릴 수 있는 기회를 가지지 못하는 것 같다. 그저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서로 다른 의견에 멀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아직도 아버지는 목욕탕에서 장난치며 놀다가 나와서는 짜장면을 촵촵 먹는 모습을 흐믓하게 바라 보듯할 것 같다.
아버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