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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만해

내가 선택한 가벼움

난 사람들과의 대화가 좋다. 다양한 주제에 대해 여러 가지로 이야기하는 중에 재치 있게 상대방을 웃음 짓게 하는 것이 너무 좋다. 그러다 보니 조금은 사람이 가볍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가까워지는 것과 가볍게 느끼는 건 종이 두 장 정도의 차이가 아닐까?


처음부터 말을 많이 하는 걸 좋아했던 건 아닌 것 같은데, 회사 생활을 하며 마음 맞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일까 하는 회상을 좀 해보기도 했다. 그래서 말에 무게가 없다 보니 가끔은 어른으로써의 이야기가 먹히지 않는 경우엔 속상하기까지 하다. 오해도 많이 받았고 하지만 대화의 재미를 포기할 정도는 아니었다.

나름 노하우도 생기는 부분도 있다. 웃기려다 보면 누군가에겐 선을 넘는 이야기가 될 수 있는데, 상대방이 그걸 이해하고, 하지 않고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상대방의 선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기도 한다. 누군가에겐 조금 정제된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튜닝이 되는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차라리 상대방과 친해지면 욕을 해도 웃고 넘길 수 있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친해지는 것이 먼저다.


가끔 회사에서 지위가 높은 분들이 식사 자리를 갖거나 직원들과의 담화?를 갖는 자리에서 언제든 자신에게 할 이야기가 있다면 언제든 말하라고 한다. 사실 이건 순서가 잘 못되었다. 불편함을 먼저 없애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렇다고 가까워지기 위해 말을 많이 하는 건 자칫 무거운 위치를 너무 쉬이 여길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가까워지기 위해선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도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많이 해야 할 것이다. 이야기를 듣기 위해선 질문도 많이 해야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선 시간을 많이 들여야 한다. 일도 많은데 그렇게 하긴 어려우니 가끔 직원들과의 시간에서 자신에게는 언제든 편하게 이야기해도 된다고 얘길 해두는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편하게 가는 길은 없다고 생각하는 나로선 속 편한 소리로 들릴 뿐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람이 어느 정도는 무거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만만해 보이지 않으려면 침묵을 유지하라는 조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침묵을 지키는 게 힘든 나는 나 스스로가 가벼운 사람이 되는 것을 자청하면서도 만만하게 보이지 않으려 애썼다니 모순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만만한 게 그리 나쁜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든 이유는 상대방의 의사를 정확히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배려심 때문에 내가 요청하는 것을 싫지만 거절하지 못하는 경우나 나 스스로가 다른 사람에게 강요가 될 수 있는 것 같아 좋아하는 것을 함께 해보자는 권유도 못하게 되는 상황들이 사회 생활하다 보면 많이 생긴다. 나이가 들면 사실 눈치를 조금 보게 되는 부분이다. 근데 상대방의 거절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역으로 편하게 물어볼 수 있다는 의미로 선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조금 만만해진다는 생각이 들어도 그 사람이 싫어하는 일을 강요하는 사람이 되진 않아서 좋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건 친해지기 위한 노력이다. 친해지면 그런 것들이 자연스레 따라온다고 본다. 다만 조금은 만만해 보일 수 있다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나는 그 단점보다 다양한 사람들과 아무런 의미가 없는 대화를 나누더라도 함께 시간 보내는 것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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