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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습 그대로

사고 같았던 나의 첫 연애

아직도 생각난다. 초등학교 시절 그 친구가 크리스마스 카드에 적어 놓은 마지막 말을.


"나랑 사귈래?" 또박또박 예쁘게도 쓴 글씨에 난 굉장히 놀라고 말았다. 이게 무슨 일이지 싶었다. 어떠한 전조도 없이 이런 메시지를 받다니.


그리곤 처음 느껴본 감정에 손이 살짝 떨려오는 것도 느껴졌다. 이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애초에 나에게 이런 말을 건 여자애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 마음 속으로 좋아했던 여자애들은 있었지만 나란 녀석은 그녀들이 날 좋아해줄 것 같지가 않았다.


여튼 고백의 메시지를 받았으니 나도 답장을 해야 했다. 그런 말을 처음 들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평소에 좋게 보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나도 좋다했다. 마치 오랜시간 마음에 담아둔 것 처럼.


크리스마스 카드를 사고 작은 공간에 무슨 말로 채울까 고민을 엄청 했었다. 결국 사귀자는 이야기를 해야했는데 그냥 그 말만 적기엔 너무 성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귀자는 단어를 적을 뿐인데 그렇게 떨렸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참 풋풋했다는 느낌이다.


메리 크리스마스와 함께 카드를 수줍게 주고선 그 다음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이젠 그 친구를 바라보는 것도 심장에 무리가 올 지경이다. 지나가면서 부끄러워 아무말 못하고 잠깐 바라보고 고개 돌리거나 옆에 있던 친구에게 갑자기 장난을 치는게 다였다.


주변 아무도 나에게 어떻게 해야한다는걸 알려준 사람이 없었다. 어떤 연애를 곁에서 본 적도 없었다. 같이 시간을 보냈어야 했는데.. 잠시 스쳐지나 갈 때도 어떻게 해야할지 쩔쩔매기만 했다. 좋다는 기분이 이런 것이었을까..


전교생이 200명도 안되었고 한 학년은 70명 정도의 작은 중학교에서 이상하게도 인기가 있었다. 못 생겼지만 운동도 곧잘 했고 공부도 상위권에 모두에게 친절했던 나다. 그래서 좋아해준 것이 아닐까 싶다. 사실 모르겠다..

1년을 마음 졸이다 중 2가 되면서 서로 다른 반이 되었다. 6학년 크리스마스 카드를 주고 받은 이후로 한 번을 제대로 여자 친구를 대하듯 해본 적없이 우리는 서로를 포기하게 되었다. 사실 내가 다른 여학생이랑 사귀게 되었다. 어떠한 이별 통보도 없이.


그 여학생은 나의 일방적인 결론에도 어떠한 비난도 하지 않았다. 어떤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결말을 단지 몰랐다는 이유로 누군가의 마음을 애써 무시했었다.


많은 시간이 흘러 수능 시험을 치르기 전 친구들 모임에서 오랜만에 만나게 되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예전 우리 사이의 이야긴 꺼내지 않았다. 그렇게 또 한참을 보진 못했다.


대학에 들어와 어린 시절 친구들을 볼 기회들이 왕왕 있었다. 그녀는 정말 드물게 볼 수 있었는데, 어떻게 그런 상황까지 가게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만 남게 되었다. 단지 술이라는 솔직함의 비약으로 그제서야 우리의 초등학교 시절 시작된 작은 관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볼 수 있었다.


우린 문 닫힌 동대문 어느 대형 쇼핑몰 앞 분수대에 앉아 손을 잡았고 그녀는 내 어깨에 머리를 대고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제서야 "나랑 사귈래?" 이후 있었던 나의 마음들과 이젠 흩어져버린 좋아함의 감정을 솔직히 털어내는 진정한 의미의 이별이다.


오래도 걸렸다. 미안.



최근 차에서 자주 듣던 이문세 형님의 "옛사랑" 노래를 따라 부르다 마지막 가사가 문득 그 시절 내 어깨에 기대 울던 그 친구의 모습이 기억이 났다.


눈녹은 봄날 푸르른 잎새 위에 옛사랑 그대 모습 영원속에 있네..
<옛 사랑 - 이문세>


나를 진심으로 좋아해줬던 너의 마지막 손길과 눈물을 기억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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