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도날드에서
서울대 입구역 근처에서 살아갈 때 이야기다.
이 동네에서 안 좋았던 경험들이 있는데, 아무래도 내가 너무 어리숙해 보여 그런 일을 당한 것이라 생각한다.
오래전 기억이지만 아직도 문득 생각나서 괜히 기분이 좋지 않다.
이 동네에서 핸드폰 사러 갔다가 살 것 같지 않은 모양새여서 그랬는지 뭘 살지 알아보고 다시 오라고 혼난 경험.
다른 가게에서 같은 통신사인데 신규로 가입 권유받고 기존 혜택을 다 버리고 교체한 경험
(이후에 확인해 보니 너무 불합리했다.)
이마트인지 홈마튼지 기억은 안 나지만 갔다가 짐이 많아서 택시를 탔는데 가까운 거리를 왜 택시 타냐고 기사에게 욕 얻어먹었던 경험.
집 가는 어두운 길목에 담배 피우는 고등학생들 눈치 보느라 들어가지도 못하고 한참 동네 주변을 돌았던 경험.
사회 초년생이기도 했고 여러 가지 혼자 결정하고 처리해야 하는 일들을 좀 어리숙하게 대응했던 나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다. 지금도 실수 투성이긴 하지만.
좋은 기억도 있지만 인생에 약간의 역경을 안겨준 곳이다.
그중 가장 당황스러운 일이 있었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배달이 그렇게 발달하지 않은 시절에 혼자 밥 먹을 땐 김밥천국 아니면 맥도날드를 갔다.
그날은 매장이 조금 붐벼서 혼자 먹기가 애매했는데 마침 1인석이 비어 자리를 맡아 둔 후 빅맥 세트를 주문했다.
나는 후렌치 후라이를 조금 먹다가 빅맥을 다 먹고는 남은 후렌치 후라이를 먹는 루틴을 가지고 있었다.
그 시절에는 먹으면서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스마트 폰이란 것이 나오기 전이라 먹을 땐 온전히 먹는 것에만 신경을 쓴다. 가끔 쟁반에 올려진 광고지를 꼼꼼히 보기도 한다.
빅맥을 반쯤 먹고 있던 시점에 뭔가 인기척이 가까이서 느껴져 고개를 들었는데 대학 신입생처럼 보이는 한 남자가 내 앞에 앉아 있었다.
날 바라보진 않고 대각선 천장 쪽을 바라보며 내 후렌치 후라이 하나를 자연스럽게 자신의 입에 넣고는 작위적인 쩝쩝 소리를 낸다.
그리고는 내쪽 가까이 있던 사이다를 가져가진 않고 머리를 가까이 옮겨 쪽쪽 빨아먹었다.
목마른 얼룩말이 호수에서 고개를 숙여 물을 마시듯.
한 10초 정도를 난 이 상황을 영화를 보듯 지켜만 보았다. 그 녀석은 마치 삼촌이 사준 후렌치 후라이와 사이다를 자기 것인 양 먹어댔다.
그리 많이 먹은 건 아닌데 갑자기
"아~ 맛있다~" 하는 어색한 연기를 한다.
계속 대각선 위쪽을 쳐다보며.
그리곤 일어나서 나갔버렸다.
옆 테이블에선
"옆에 이상한 사람 와서 남의 것을 먹고 갔어~" 하곤 놀라며 웃는다.
뒤늦게 기분 나쁜 뭔가가 올라와서 그 녀석이 빨대를 쓰긴 했지만 개의치 않고 사이다를 다 마셔버렸다.
그리곤 다시 빅맥을 마무리하려는데 옆 테이블에서 "또 온다 또와"하는 소리와 함께 내 자리 근처로 와서 이번엔 앉지는 않고 허리를 숙여 내 사이다 빨대에 입을 댄다.
그리곤 크게 사이다를 빨아 댕겼으나 이미 다 마셔버린 상태였다. 순간 놀란 그 녀석은 뭔가 원망하는 눈빛을 보내며 잠시 서 있길래 나도 가만히 쳐다봤다.
당한 건 맞지만 더 이상 내 사이다를 뺏기지 않았다는 안도감도 들었던 것 같다.
그 녀석은 연기를 하 듯 "가야겠다~" 하며 다시 맥도날드를 나가버렸다.
이번엔 옆 테이블에서 대 놓고 웃는다.
나도 너무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냈다.
그리고 나는 사이다 없이 남은 빅맥과 후렌치 후라이를 먹었다.
몹쓸 녀석.
가끔 그 생각이 나면, 사이다 하나를 사주면 어땠을까 한다.
왜 이러는지 알고 싶다는 마음도 들고.
뭔가 이유가 있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