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튼튼해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이 있다.
고등학교를 집에서 버스로 2시간 떨어진 곳으로 진학을 했다.
통학은 당연히 어렵고, 기숙사 생활을 했었다.
기숙사는 한 방에 10명이 사용했고, 남자들만 있어서 묘한 긴장감이 돌았다. 넘치는 힘을 주체 못 할 시기였다.
그런 곳을 잠시 벗어나 한 달에 1~2번 집으로 가서 평온한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곤 했다.
기숙사로 돌아오는 날 버스에서 내려 주변 오락실을 습관적으로 들렸었다.
별반 다르지 않은 어느 날, 오락을 하는데 누군가가 툭툭 치면서 "돈 좀 줘봐" 했다.
뭐야 게임하는데 하며 주머니에서 100원을 꺼내 손 위에 올려줬다. 친구가 달라는 줄 알았다.
갑자기 동전이 화면에 날아오더니 욕지거리를 하는데 그제야 얼굴을 들어 상대를 봤다.
모르는 사람이었다.
무서웠다.
주변 내 친구들은 어찌어찌 도망을 갔고, 나만 제대로 걸렸다.
친구들이 걱정돼서 도움도 되지 않는 내가 다시 돌아가다가 잡혔다.
아직도 기억난다.
굴다리 밑 인도에서 만난 그 녀석들을.
돈을 달라고 했지만 반사적으로 돈이 없다고 했다.
그 놈들은 바로 내 복부를 가격했다.
아프진 않았다. 근데 너무 무서웠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아프지 않았던 것 같은데, 왜 그리 사시나무 떨 듯 떨었던지.
그 공포에 나는 바로 지갑을 꺼내 학교에 학습지 비용으로 내야 하는 돈 6만 원과 내 용돈을 털렸다.
돈을 뺏고는 다른 애들은 놓치고 나만 붙잡고 그랬던 게 뭔가 짠했던 것인지 만원은 돌려줬다.
썩을 놈들.
사태가 끝나고 나서야 터덜터덜 돌아가는 길, 공중전화 부스로 들어가 부모님께 전화를 했다.
학습지 비를 뺏겼다고 얘길 하는데 너무 서글퍼 수화기를 붙들고 엉엉 울었다.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걱정하셨을지 그때는 몰랐다.
그날 밤 아버지는 2시간을 내리 달릴 수도 없었던 차를 몰고 학교 기숙사까지 오셨다.
중간에 차가 퍼져 늦은 밤 발 동동 구르며 다쳤을 아들을 걱정하셨을 것이다.
너무 죄송했다.
그렇게 부모님이 날 보고 다시 댁으로 가셨는데, 그 뒤의 여운이 참..
나의 나약함에 화가 난 것은 아니지만 뭐라도 해야 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철봉을 했다.
강해지고 싶은 단순한 마음이었다.
할 수 있는 건 학교 운동장에 있던 철봉과 평행봉.
계속하다 보니 재밌기도 했다.
하지만 뭔가 부족했다.
고등학교 졸업 한 뒤에는 합기도를 했다.
복부를 맞았던 그날의 나약함을 이겨내고 싶었다.
다시 만나면 되갚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깨닫기도 했다.
합기도, 검도를 해도 나는 그 나쁜 놈들을 때릴 수 없다는 것을.
오랫동안 내 기억에 남아 나를 괴롭혔다. 그리고 극복하기 어렵단 생각이 들었던 시점에 역설적으로 그 괴로움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걸 극복하기 위한 나의 노력이 있었기에 내려놓을 수 있었다고 위안했다.
그거면 충분하다.
몸도 튼튼해졌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