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가치 늙어가는 중입니다
나는 가겟방에서 태어났다. 앞으로는 시장 골목이, 뒤로는 안마당이 있어 뛰어놀기 좋았다. 초등학교 때는 주인집에 딸린 단칸셋방에 살았다. 그 방엔 주인집과 연결된 문이 있었는데 우리는 그 문으로 주인집을 들락거렸다. 그 집에도 우리 또래의 아이들이 있어서 같이 놀곤 했다. 주인아줌마도 맛있는 걸 만들거나 해외출장 갔던 아저씨가 과자를 사 오면 같이 먹자며 우리를 불렀다. 주인아줌마라기보다 그냥 맘씨 좋은 옆집 아줌마였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인아저씨가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비디오 가게를 차렸다. 주인집 식구들은 넓은 집에 가구만 놔두고 가겟방으로 이사를 갔다. 주인 떠난 빈 집은 우리 차지였다. 아버지는 그 집 마루에서 그 해 여름을 났다. 사업한다고 가게 판 돈을 극장식당에 투자했다가 몽땅 날린 후였다. 그 집 작은 방은 사방이 책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나는 그 책들을 읽느라 여름이 가는 줄도 몰랐다. 그때 읽었던 것들 중에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책이 있는데 한국출판공사에서 나온 40권짜리 명탐정 홈즈 시리즈였다. 책 자체만으로도 재미있는데 훔쳐 읽어서 그런지 스릴이 넘쳐흘렀다.
하지만 비디오 가게는 잘되지 않았다. 주인아저씨는 1년을 버티다 가게와 집을 모두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 우리도 그 집을 떠나 방 2개짜리 반지하 월세 방으로 이사를 갔다. 내 나이 열네 살, 지하세계에 첫 발을 내디딘 것이다.
그 집은 수도가 부엌문 밖에 있었다. 지대가 낮아 시멘트로 1미터 높이의 단을 만들어 그 위에 상하수도를 설치했다. 하지만 그 해 여름 갑자기 쏟아진 집중호우로 하수물이 역류해 방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방에서 TV를 보고 있던 우리들은 바가지를 하나씩 들고 정신없이 물을 퍼냈다. 얼굴도 모르는 옆집 아저씨까지 와서 도와주었다. 푸고 푸고 또 푸고……. 그 난리를 겪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가난이 부끄럽진 않았다.
내가 가난이 부끄럽다고 느낀 건 그다음으로 이사 간 지하 단칸방에서였다. 계단 입구에서 보면 계단 밑에 방이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 할 그런 곳이었다. 계단 입구도 좁아 장롱도 들어가지 않아 버려야 했다. 주인이 원래 방공호로 쓰려고 만든 곳이라 했다.
그곳의 어둠과 습기는 내 청소년기를 갉아먹었다. 누리끼리한 벽지엔 곰팡이가 피고 장판 밑엔 집게벌레가 숨어 있었다. 친구들이 우리 집에 놀라가자고 할 때마다 변명거리를 만드느라 등에 식은땀이 났다. 가장 끔찍했던 건 바로 옆 단독주택에 사는 애와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게 된 것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졸업할 때까지 같은 반이 된 적은 없었지만 난 아침마다 그 아이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계단 입구에 숨어서 그 집 현관부터 살폈다. 만약 누가 나오는 기척이 느껴지면 숨어 있다가 그 애가 먼저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지하 방에 누워 있으면 지상에 사는 사람들의 발이 보였다. 주인아저씨는 아침마다 우리 방 창문 앞을 쓸었다. 한 번은 이층에 세 들어 사는 아저씨가 술에 취해 우리 방 창문에 대고 문을 열어 달라고 소리친 적도 있었다. 그땐 정말이지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기분이었다.
뒤늦게 영화 ‘기생충’을 봤다. 내 가난이 그대로 보여서 보는 내내 기분이 나빴다. 영화 속 기택은 내 아버지였고 나는 기우였다. 단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에겐 있는 ‘근본 없는 긍정’이 내겐 없었다. 영화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기택네 가족에게 밴 지하실 냄새였다. 사람 몸에서 지하실 냄새가 난다니, 그럼 나한테도 났을까? 내가 지나갈 때마다 누군가 코를 막았다고 생각하니 너무 끔찍했다.
어느 날 골목길을 지나던 조카가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반 지하 방을 보고는 “이런 데 어떻게 사람이 살아? 너무 싫겠다.” 라며 얼굴을 찡그렸다. 그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난 그 아이에게 엄마랑 이모도 이런 곳에 살았었다고 말하지 못했다. 창피했다. 아직도 지하방에서 살던 부끄럽고 불편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그 시절은 ‘추억’이 아니라 ‘추악’ 그 자체였다.
가난이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아니, 비교 대상이 있는 한 가난은 부끄러울 수밖에 없다. 의자가 약해서 하는 소리라고? 아니, 살아보시고 말씀하시라. 가난이 인간의 정신을 어떻게 갉아먹는가를!
곧 전세 계약이 만료돼 이사를 가야 한다. 내 평생 살아본 집중에 가장 비싼 전셋집이다. 이 집에 사는 동안 가장 좋았던 건 택시를 타면 기사님에게 아파트 이름과 동만 말하면 추가 설명 없이 집 앞까지 편하게 도착할 수 있다는 거였다. 다시 재계약을 하고 싶었지만 이번에 집주인이 30대 아들에게 집을 증여했고 그 아들이 들어와 산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비워줘야 한다. 자기 집 자기가 들어와 살겠다는데 왠지 쫓겨나는 기분이다. 하긴, 머리 나쁜 흙수저가 타고 난 금수저를 어찌 이기나.
○○공사에서 반지하방을 ‘기회가 생기는 층’이란 의미로 ‘기생층’으로 부르려 했단다. ○○공사에선 행복주택 광고에 ‘금수저도 부러워하는 행복주택 거주자’란 표현을 썼다가 비난을 받았다. 욕먹어도 싸다. 남의 불행한 처지를 자기들 홍보에 이용하려 하다니 탁상공론이 따로 없다. 그들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애환 따윈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다.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라던 해맑던 공익광고를 믿었더랬다. 곧 집값이 떨어질 거라던 전문가의 말도 믿었더랬다. 그래서 대출받아서 집을 사고, 파는 사람을 보면 투기꾼이라고 비난했었다. 오히려 그들보다 빚 없는 내가 부자라고 착각했었다.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아껴 쓰고 저축하다 보면 언젠간 내가 원하는 곳에 내가 원하는 집을 살 수 있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월급만으론 절대 집을 살 수 없다고, 어느 책 제목처럼 ‘내 집 없는 부자는 없다’라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그들을 비난할 게 아니라 쫓아다니면서 투자 노하우를 배웠어야 했다.
이제야, 달팽이가 등에 집을 매달고 다닌 이유를, 그 무거운 집을 이고 힘겹게 기어가야 했던 이유를 알겠다. 부모 도움 한 푼 받을 수 없는 흙수저에겐 집이란 빚을 지고서라도 사야 하는 짐인 것이다.
영화 ‘기생충’의 마지막 장면에서 기우는 박사장네 지하 벙커에 숨어있는 아버지 기택에게 편지를 쓰며 상상의 나래를 편다.
“저는 오늘 계획을 세웠습니다. 근본적인 계획입니다……돈을 벌면 이 집부터 사겠습니다……아버지는 그냥 계단만 올라오시면 됩니다……그 날이 올 때까지 건강하세요.”
하지만 현실 속 기우는 반 지하 방에 있다.
나도 우리 집을 사면 엄마 이름으로 명패를 달아주려 했는데……. 엄마. 그 날이 올 때까지 건강하세요…….
과연 그 날이 올까? 이러다 평생 내 집 한 번 못 가져보고 죽을까 봐 두렵기 짝이 없다.